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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교육학 및 SEL

글 수 108

분단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민주시민윤리의 재성찰

- 민주적인 시민역량을 위한 한 평화활동가의 성찰과 작은 시도 -

 

                                                                                                         박성용 비폭력평화물결대표

(이 글은 "샘"지 35호 기고문임) 

--- 목차 ---

- ‘비통함의 회상

-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타자사냥, 그 비참한 사회정치적 현실

- 진정함과 자비로움이 소통되는 안전한 공간 형성하기

- 나의 실험들 ?진지한 영혼들의 안전한 활동공간형성을 위한 작은 시도

- 나오며 ? 비통함의 정치학에서 희망의 정치학으로

 

비통함의 회상

내가 태어난 곳은 서해에서 한강입구로 들어오는 길목이다. 김신조 사건(일명 무장공비서울침투사건”) 이후, 강제 이주로 없어진 한강변에 직접 맞닿은 마을인 강화도 양사면 철산리 철곳이란 곳이다. 북이 2.4킬로밖에 안되고 남한강 저편에 북의 주민들이 일하는 모습이 간간히 보이곤 하였다.

지금도 한 가지가 기억난다. 동네마다 마을이장 댁에는 큰 스피커가 있었고 평소에는 민요가 흐르다가 갑자기 예고 없이 대북선전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나왔다. 물론 이것은 북측도 마찬가지였다. 상대방에게 매우 강한 어조의 증오와 비난의 말들을 상호하다가 다시 민요의 노래로 바꿔지곤 하였다.

남과 북의 경계지점에서 태어나서 삐라와 선전 그리고 구호 적힌 플래카드를 항시 보면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 때는 이것이 정상적인일상의 반복이었다. 어른들 그 누구로부터도 이에 대해 그 어떤 불평을 듣지 못했고, 그러한 침묵과 길들여짐의 문화 속에서 나 또한 동화되어 있었다.

내 이름은 아버지의 고향, 평남 성천군 구용면 운전리에서 따왔다. 8명의 형제들 중 혼자 내려와서 그런지 심한 알콜중독에 빠진 아버지가 자신의 역할을 못하고 가족에 고통을 주기 때문에 그를 낯설어하고 비난하며 산 것도 20여년이 된다. 최초로 그분을 이해한 것은 80년대 초 어느 방송사가 주최한 이산가족찾기프로그램이 계기가 되어 아버지를 따라 여의도에 가서 가족과 친척을 찾아보던 경험을 통해서이다. 한 개인을 비난하던 내가 전쟁이란 것이 사회심리적으로 한 청년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되붇게 했고, 그도 피해자라는 막연한 이해를 처음으로 가질 수 있게 한 계기가 그때였다.

그런데 아버지에 대한 회상을 꺼내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미국유학중 암재발로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귀국한지 사흘만에 아버지는 끝내 돌아가셨다. 이때 아버지가 마지막에 주신 두 가지 사연이 있다. 하나는 어머니나 나도 모르는 아버지의 과거 경력이다. 자신이 케로부대출신-이른바 북파공작원(HID)으로 미국의 CIA산하에 북쪽 청년들로 구성되었다-이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밝혔다. 또 하나는 통일전망대에 자신을 데려다 달라는 말씀이었다. 그러나 조금만 움직여도 심한 고통을 느끼셔서 어찌 해볼 도리가 없었다.

자신을 품어준 고향을 의 군사정보와 파괴의 대상으로 삼았던 20대 청년기에 겪었을 심리적 고뇌가 얼마나 컸으면 30년 가까이 가족에게 아무런 말을 안했을까? 돌이켜 생각하면, 80년대 초에 시국이 한창 뜨거웠던 시기에 대학 다니는 나에게 아버지는 대학생의 데모는 정신 나간 짓이라고 늘상 비판하던 아버지가 매우 불편했었는데 자신도 희생자인 것을 알지 못하고 -우리라는 논리에 갇혀서 적을 이롭게 한다고 생각되는 것에는 무조건 반대만 하였던 아버지의 삶에 애통한 마음이 들었다.

미국에서 만 10년간의 유학시기 끝학기에 9.11비극이 터졌다. 나는 마침 퀘이커의 영성훈련공동체인 펜들힐에 있었다. ‘에 대한 섬뜩한 증오감으로 강하게 충전된 감정들이 미전역에 퍼져나가고 있을 때, 퀘이커들이 별다르게 보여주었던 평화적 행동에 나는 감전되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겨우 정신 차려보니 내 나이가 이미 40대 초반이었다. 한국에 들어와 잠시 조정기간을 유네스코관련 기관에서 보내다가 지금의 단체에 20055월에 와서 처음으로 맡은 일이 강화도에서 진행된 ‘7.27 한강하구 평화의 배띄우기사업 총진행책임자였다. 20여년도 더 넘은 기간을 한 번도 찾지 않은 내 고향을 찾게 되었을 때 그 감회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한창 어렸을 때 지긋지긋한 가난으로 인해 볼품도 없는 추억들 그리고 아픈 상처의 지나간 공간을 다시는 찾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어떤 숙명과 소명 즉, 경계선에서 태어난 나의 과거와 그로부터 부여받은 타자에 대한 아우름의 새로운 과제가 지금의 나를 규정짓고 있었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타자사냥의 비참한 사회정치적 현실

정말 아이러니하다. 50년 가까이 되는 나의 기억에 비해 오늘의 현실이 나아진 것은 별로 없다. 내가 기억하는 구호, 선전, 비난과 타도의 논리, 타자에 대한 증오와 공격 그리고 침묵과 순응의 문화는 사회적 진화가 없이, 변화 없는 대결의 끊임없는 반복의 연속으로 새로운 겉모습과 상황 그리고 새로운 인물들로 대치되었을 뿐이다.

얼핏 생각해 봐도 그와 유사한 사례는 너무 많다. 정치 진영의 판에 박힌 투쟁과 우리의 정체성이 상대의 정체성을 오히려 강화시킨다. 언론이 보수화함에 따라 빨갱이 마녀사냥이 횡행하고 기득권이 성채처럼 구축된다.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국가사업을 강행하며 국민적 피로감이 누적된다. 전문가집단이 권력과 결탁함으로써 사회적·생태적 약자 혹은 희생자가 거꾸로 침묵을 당한다.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 증오와 대결의 정점은 바로 북미 그리고 남북 간의 핵과 미사일 대결긴장이고, 지난 몇 달간 연일 보도되는 학교폭력과 자살이다. 특히 후자에서 집단적인 상대방 괴롭히기는 모르는 타 학교 학생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적 집단인 학교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 충격적이다. 이러한 적대시하고 타자화하는 교육현장의 실상과 미래세대의 모습에서 우리는 사회심리적으로 두려움과 불안감을 갖는다.

교과부 학교폭력 전수조사에서 나타난 것처럼 중학교를 넘어 초등학교에까지 광범위하게 학교 폭력이 만연해 있다. 물론 이것은 학생들만의 문제만 아니다. 가족이나 교사에 의한 폭력도 있다. 또한 고등학교에서 입시경쟁에서 중도탈락하고 나온 매년 7만 명의 학생들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지역사회에서 시한폭탄과 같은 폭력성 잠재 보유자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2009년부터 시작된 쌍용자동차 노동자문제는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시점에서 17명이 넘는 자살자가 보도되고 있다. 이처럼 죽음의 행진이 진행되고 있는데도, 이들은 타자화되어 보이지 않는 음지 속으로 고립되고 정치경제계의 아무런 관심도 얻어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직도 궁금증이 가시지 않은 천안함 사건 이후의 남북 대결의 강력한 무력 대응의 시위와 갈등, 4대강 개발 프로젝트, 제주강정마을의 군사기지화, 원전의 대량 건설계획, 비정규노동자문제 등과 같은 또 다른 비참함의 현실들은 그 문제가 누가개입되어 있는가 보다는 어떤 관계 패턴과 정당화 논리들이 설정되고 있는가에 있어서 우리로 하여금 탈출할 수 없는 악순환의 덫에 빠지게 한다. 이것의 문제점은 우리의 존재 그 자체가 ?세포, , 가족, 지역사회, 국가- 공동체로서 상호의존과 상호관계성에서 그 생존과 활동의 에너지를 얻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를 떼내어 타자으로 혹은 좌익이나 속죄양으로 분류하고 격리와 제거를 합리화한다는 것이다.

그런 관계 패턴과 정당화 논리는 자신이 어디에 속해 있는가에 따라 자신의 행동과 주장을 결정하는 구조적 시스템을 형성한다. 그래서 나의 정체성이 강화되는 것은 적과 타자의 설정이 강화되는 데 영향을 주고, 반대로 상대방이 분명히 드러날수록 나의 정체성도 분명하게 된다. 자신의 선명성이 상대방의 선명성을 강화하고 상대가 그러할수록 나나 우리 역시 그렇게 되어진다. 결과적으로 중요해지는 것은 나와 상대가 어디에 속해있고 어떤 입장인가이지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의 문제는 사라지게 된다. 무엇을 각자가 원하는가가 아니라 누가 옳고 그른가 그리고 얼마나 그른가에 따라 비난이 관심의 주된 목표가 되어 버린다.

무릇 모든 생명의 본질은 그것이 개인이든 사회 혹은 생태계이든 간에 상호관계성을 통해 형성되는 법이고 이를 통한 에너지와 정보의 소통을 통해 생존과 성장을 모색해 나가는 법인데, 분리와 배제, 증오와 비난, 힘의 지배와 오용이 이런 관계와 소통을 막음으로써 수많은 사회심리적 고통과 슬픈 결과들의 현상이 정상적인것처럼 펼쳐지고 있다. 오히려 왜곡된 관계질서로 생긴 구조적 시스템으로 인해, 교육을 담당하는 학교, 안전을 지켜야 할 군경 및 법조계, 인간적인 삶의 조건을 책임져야 할 정계와 실업계가 도리어 적과 타자를 재생산하면서 두려움의 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노자의 굳고 강한 것은 죽음의 무리이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삶의 무리이다라고 한 말이 생각난다. 종교적 이유이든 신념적 이유이든 혹은 향유하고 있는 것의 차이의 이유에 의한 것이든 간에 자기와 타자를 대척하여 설정하고 자기 영역을 강하고 굳게 지키고 상대의 다가옴은 침범으로 규정하거나 상대방과의 가까움을 두려움을 갖고 벽을 쌓아 막는 문화가 지속된다면 여기서의 삶은 단절의 고통과 분노로 표출되게 된다. 그 이유는 존재의 실상이 상호의존과 상호관계에 의해 안전과 복지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인데 이런 존재의 법칙을 거스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존재의 실상을 왜곡되어 보는 우리의 생각과 관념이-이념, 종교적 신념, 옳고그름의 논리- 비참함의 실재를 키우고 확산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죽음에로의 충동과 방향을 몰고 오는 굳고 강한 것의 주장과 논리보다는 이제는 부드럽고 약한 것이 주는 새로운 관계와 소통이 절실해지고 있다.

 

진정함과 자비로움이 소통되는 안전한 공간 형성하기

진보이든 보수이든 간에 굳고 강하게 행해지는 구호와 선전, 타도와 비난, 증오와 공격의 반복의 연속 속에서, 망가지고 깨어지며 소리 없이 사라지고, 또한 상심하고 무기력해지고 결국은 포기하고 마는 이 착잡하고 비참한 현실에서 무엇이 가능하겠는가?

민주 시민세력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은 보수진영의 완고함과 체제안정에 대한 맹종만이 아니다. 진보영역에서 보는 냉소와 거칠음 그리고 양쪽진영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자기주장의 독백도 한몫을 한다. 진실이 표현되고 공유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잘못에 대한 빠른 판단과 선동적인 응답의 악순환을 즐기는 ?때로는 심각하도록 진지하기까지 한’- 게임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과거 혹독한 독재 시절에 기라성같이 나타난 카리스마적인 인물들의 저항의 지도력은 한 때 변화의 열정과 흐름을 거슬러 나아가는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힘과 결과를 개인 소유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분들의 은퇴나 상황의 변화 등으로 인해 지속적인 운동의 에너지나 시스템으로 진화하지 못하고 유산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설 때 광우병파동으로 일어난 촛불시위의 그 뜨거운 열정과 수많은 소리들은 두 차례의 사과를 대통령으로부터 받아냈지만 그 결과는 혹독했다. 이로 인해 충격을 받은 집권층들은 집요하게 방송사, 공공기관 그리고 금융기관에서 타자의 의심을 갖고 있는 이들을 잔인하도록 철저하게 솎아내기 시작했다. 이른바 공직윤리지원관실 등의 설치에 의한 민간인 사찰이 단적인 예이다. 사전에 준비된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촛불의 촉발이었고 그 흐름을 건설적인 시스템 구축으로 이끌어 가는 핵심역량이 없었던 결과로 지난 4년간 촛불집회단체들로 낙인찍힌 통일, 평화, 인권 심지어 환경단체들에게는 추운 겨울이 불어 닥쳤고, 특히 명망가 단체 몇을 제외하고는 자생했던 통일단체들의 1/2이상이 고사되어 사라지는 현실을 보고 있어야만 했다.

지금까지 사회적 진보와 평화운동을 성찰하면서 자극상황과 이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저항이라는 순환으로는 우리가 기대하는 진정한 풀뿌리 민주주의 실현이 어렵다는 사실을 나는 점차적으로 깨닫게 되었다. 그냥 상대방을 치고 비난하며 상대의 자리를 점유하는 논리로서는 진정성 있고 심도 깊으며 공공선에 뿌리내리는 지속력있는 민주주의가 어려운 것이다.

교육사상가이자 실천가인 파커 파머는 최근의 책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에서 9.11사건 이후 흔들리는 미국의 민주주의 혼란에 대해 성찰하면서 심층민주주의의 회복에 대한 몇 가지 흥미 있는 제안을 한다. 민주주의는 열린 영혼에 기반하고 있고, 타자의 말을 경청하는 안전한 공간에서 성장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원칙들이 존재한다:

 

- 우리는 이 안에서 모두 함께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 우리는 다름의 가치를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 우리는 생명을 북돋는 방식으로 긴장을 끌어안는 능력을 계발해야 한다.

- 우리는 개인적인 견해와 주체성에 대한 의식을 가져야 한다.

- 우리는 공동체를 창조하는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

 

공정하면서도 너그럽고, 생각과 의견만이 아니라 전 존재로 경청하며 관심을 주고, 민주주의를 위해 동료 시민을 신뢰하며 용감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파머의 실험은 매우 시사하는 바가 있다. 한국의 상황에서 지배와 차별을 끊고 공정과 평등 그리고 자유와 공동체적 가치를 지향하는 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것은 단지 구호와 선전 그리고 지적 담론과 저항만으로는 한계와 지쳐버림 그리고 나아가서는 냉소주의에 직면하기 십상이다. 내면의 진실성을 회복하고 관계의 장에서 그 진실이 소통되며 이해와 공감의 대화가 가능한 소통의 공간이 밑바닥에서 올라올 때, 그리고 그것이 삶의 방식으로서, 관계의 질서로서, 그리고 구조적 형태로 표현될 때에 비로소 미래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새로운 실재를 몰고 올 수 있는 가능성은 해야 만하는것에 대한 도덕적 당위, 주장이나 선언에서 보듯이 상대를 가르치려는 그 어떤 시도에서도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정당한 대의라 할지라도 그것이 내면의 자발성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한 힘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거꾸로 내 탓이오라는 자기 고백운동으로도 이루어질 수 없다. 자기 고백이 진실에 대한 증언과 저항으로 표현되지 않는 한 사회변화의 에너지로 자리 잡기 힘들기 때문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대안은 다음과 같다. 피차간에 생각과 의견이라는 지적 견해를 넘어 자기 영혼의 깊이에서 우러나오는 진실·진정함의 열망을 강화하고, 타자와의 대화를 통해 그러한 진실들이 소통되고 서로를 풍성하게 만드는 안전한 공간들이 존재하며, 약자의 아픔에 대해 민감한 주의력이 공공의 영역에서 우선적으로 화제가 되어서 대중의 마음에 호소하고, 이러한 담론들을 보장하는 구조적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는 것이다.

이 대안을 좀 더 풀어보자. 먼저 생각과 의견 그리고 지적 견해를 넘어 자기 영혼의 깊이에 진실과 진정함을 모은다. 우리의 의식과 말하고 듣기는 대부분 자극되는 상황에 대한 판단과 반응하기에 초점을 둔다. 대부분 자기생존본능에 따라 상대가 무엇을 그리고 얼마나 잘못하고 옳았는지에 대한 판단과 이를 논증하는 데 우리의 에너지를 대부분 소진하게 된다.

우리의 생각과 의식이 옳고 그름 그리고 좋아하고 싫어함이라는 시비·호불호의 논리에 따라 이루어질 때 내면의 진실이 모아지기 어렵다. 삶과 모두의 신성함과 상호관계성에 대한 존재론적 각성, 진정함과 자비로움의 일관된 인식, 그리고 비폭력과 공감을 통한 행동이라는 존재-의식-행동의 근본적인 각성과 경험이 일어날 때 우리는 영혼의 깊이에서 진실과 진정함이 자리 잡게 된다.

두 번째로, 대화를 통해 진실이 소통되고 상호 풍성하게 하는 안전한 공간을 관계 속에서 형성한다. 우리의 말하고 듣기는 논쟁과 다툼 혹은 회피하기와 굴복하기의 독백에 대부분이 머물러 있다. 나의 진심이 상대에게 상대의 진심이 나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자기주장과 그것에 대한 입증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대화는 당사자들이 각각 진리의 조각들을 갖고 있다는 것을 신뢰한다. 적극적 경청과 공감을 통해 상대방의 진리를 듣고 이에 자신을 개방하며, 자기 진실에 대한 나-메시지 전달법을 통해 상대방의 말에 대한 대응이 아니라 나의 진실을 초점으로 말하는 방식을 통해 진실이 서로 소통되고 서로의 진실에 의해 더욱 큰 진실에 각자를 서게 한다.

거꾸로 두려움과 수치심이 없는 안전한 관계의 공간을 형성함으로써 상대의 진실에 의해 내가 자발적으로 수정되고 나의 진실에 의해 상대가 동의하여 수정될 수 있 수 있도록 한다. 진실이 소통되는 대화의 안전한 공간은 이렇게 각자가 상대의 말에 대한 대응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중심에 있는 진실을 말하고 들을 때도 상대의 말보다 그 말 뒤에 있는 의도의 진실만을 듣는 방식으로 형성된다.

셋째로는 약자의 아픔에 대해 민감한 공공 영역의 강화와 확산이다. 지구화의 빠른 속도에 의해 타자와의 거리와 경계가 해체되거나 가까워지고, 한 곳에서의 사건이 지구 전체에 즉각적으로 미치는 빠른 속도의 상황에서는 개인들 각자의 자유와 정의에 대한 열망과 시도만으로는 사회변화와 안전을 확보하기에는 부족하다. 지금까지 우리가 세상과 사회 속에 주로 소속한 사적 공간(가정), 정치공간(정당) 그리고 사업공간(직장)의 영역에 대하여 제 4의 영역인 공공영역(시민사회)의 확대가 절실히 필요하다.

이 공공영역은 사회적·생태적 약자들의 고통에 민감한 감수성을 가진 시민역량들이 다양한 활동을 하는 영역이다. 통일, 평화, 인권, 환경, 풀뿌리 자치 등의 활동을 통해 인간안보와 사회자본을 형성하는 영역으로 공공선과 안전의 토대를 지닌 공동체적 의식을 실천하는 다양한 장들이 형성되어야 민주주의의 시민역량이 확보가 된다. 개인을 엮어내는 공동의 지혜가 발휘되고 자발성과 헌신, 책임과 나눔의 미학이 자본 민주주의의 폐습을 갱신하는 에너지로 작동하게 된다. 이 공공영역을 담보하는 수많은 이슈 공동체 혹은 돌봄의 공동체들이 존재할 때, 이들의 네트워크로 이루어진 사회 안전망을 통해서 약자가 존중받고 그들의 공간이 확보되는 보다 인간적인 사회를 형성해 나갈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는 새로운 삶의 이야기가 재생산되는 구조적 시스템의 구축이다. 진정성과 자비로움은 한 개인이나 그 어떤 그룹의 선의나 자원봉사로 촉발될 수는 있지만 그것의 생산, 지속 그리고 확산은 선의나 자원봉사의 윤리적 수준에서는 어렵다. 진정성과 자비로움이 스스로 작동되고 유지되는 구조적 시스템이 사회체제 속에서 형성되어야 한다. 이것은 시민대중에게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 정책, , 조직운영, 지도력 등에 있어서 제도와 조직, 기구와 공동체운영에 대한 탈지배체제의 형성이 요구된다.

구조적 시스템의 형성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 기구, 단체가 지닌 목표(미션)를 공공이익의 가치 중심에다 방향을 설정하고, 구성원들 간의 따사로운 소통과 공동체성이 가능하도록 관계를 맺는 일이다. 이를 위한 중요한 수단은 의사결정을 다수결로 하지 않고 소수 의견이 들리는 동의과정을 밟는 것이다. 그리고 지도력을 비전과 카리스마를 소유한 소수 인물에 의존하지 않고 모두가 기여하는 지도력을 작동시켜 개인이 아닌 최선의 아이디어가 전체 구성원들을 이끌도록 공동의 지혜가 지도력을 갖게 하는 방식으로 조직을 운영해 나가는 것이다. 이런 방식을 사람중심의 민주주의 (demo-cracy)가 아닌 동의절차에 의한 관계형 민주주의 (socio-cracy)라고 부른다. 그렇게 될 때 그 기구 및 단체는 상호 배움과 돌봄의 커뮤니티로서 존재하게 되고 진실된 영혼들이 상호교류하는 심층 민주주의’(deep democracy; 파커 파머의 용어)를 학습하게 된다.

 

나의 실험들 ?진지한 영혼들의 안전한 활동공간형성을 위한 작은 시도

비폭력평화운동에 관련된 한 단체에 2005년에 대표자로서 삶의 공간을 바꾸면서 복잡한 과제들에 나는 직면하게 되었다. 이 영역에 문외한이면서도 일을 해야 한다는 것과 폭력과 갈등의 거대한 이슈들의 쇄도 앞에서 무엇을 어떻게해야 하는지에 대한 당황스러움을 직면한 것이다. 그 와중에 4년간 준비와 진행에 참여하면서 한국평화활동가대회를 통해 알게 된 평화단체 실무자들과 활동가들의 고민을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그 상황이란 4~5년 이상을 버티지 못하는 파김치된 활동가들, 소수 인원의 과대한 과제들, 내면의 힘의 고갈, 관계문제, 목표와 전략의 부재, 승리 없는 결과의 모호함, 단체의 재정과 생활안정의 불안 등이 몇 가지 예이다.

사실 자신들의 폭력에 대한 의문보다는 오히려 비폭력이라는 말에 대한 그 효율성을 설명하라고 물어오는 힘든 상황에서 금방 앞에서 진술한 평화단체들의 힘든 상황을 똑같이 겪고 있던 나 자신의 근본적인 문제의식은, 평화활동이 진행되는 현장을 추스르고, 그 현장에서 버티며 그 현장을 가꾸는 일꾼을 세우고, 그 일꾼이 일할 수 있는 신념과 사회적 도구를 지닌 훈련 모델이 나의 역할로 다가왔다. 사실 지금까지의 삶이 조직가이기보다는 연구자로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 어떤 전략이 존재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직감적으로 폭력에 대응하여 폭력적인 수단(신념, 언어, 관계, 구조에 있어서)을 어떻게 배제하며 살 것인지, 안정보다는 비전과 가치에 중심을 두기, 공동적인 지도력, 진실어린 소통, 개인성장과 사회변화를 동시에 추구하기와 같은 몇 가지 원칙들에 서서 네트워크 단체들과 개인들과 더불어 공동의 지혜가 작동되는 방식을 취하기 시작하였다.

각 단체의 텃밭은 침해하지 않고 스스로 관리하되 우물은 같이 만들고 각자의 텃밭에 물을 가져다 주자라는 공유된 목표인 활동가 양성과 훈련이라는 우물에 사람들과 단체들을 초대하였다. 그 처음이 2006년에 맛보기로 시작한 삶을 변혁시키는 평화훈련(AVP; Alternatives to Violence Project)’이었다. 40명이 모여 시작한 AVP는 독일 진행자들의 도움으로 2010년에 첫 훈련가 과정을 마친 최종 14명으로 시작하여 이제는 20명이 AVP활동가모임이라는 배움과 돌봄의 AVP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그 과정을 밟고 있는 사람들만도 70여명에 이른다.

이 첫 모델이 준 통찰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텍스트로 사용하기, 경험먼저 그리고 그 경험으로부터 원리를 뽑아내어 일반화하고 재적용하기, 자신의 절망과 희망이 담긴 감정을 표현하고 이를 전체가 들어주기, 팀 진행을 통한 공동의 지도력을 구축하기, 상대의 말에 대한 대응이 아닌 자신의 진실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말하기와 듣기의 안전한 공간 형성하기, 공유된 가치와 목적에 대해 자발적인 헌신과 몸으로 생활하기, 서로 격려하고 지원하는 돌봄과 배움의 커뮤니티의 필요성과 이를 실제로 구축하기 등이 그것이다.

자발적인 배움과 돌봄의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것에 대한 나의 시도는 그 후 계속되었다. 그 예는 다음과 같다. 40여개 단체가 모였던 비폭력평화 세계 대행진캠페인(2009), 7~8개 단체들이 결성한 회복적정의 네트워크’(2009년 말부터 시작), 마찬가지 숫자의 평화교육단체들이 모인 평화교육네트워크’(2011), 여러 다양한 20명의 개인들이 모인 어린이청소년평화지킴이(HIPP; Help Increase Peace Program)’(2010) 훈련 과정 모임과 또 다른 20여명의 개인들이 모인 한국회복적 서클(RC; Restorative Circle)’ 모임(2012) 그리고 학교폭력에 관한 회복적대화모임’(2012), ‘사회적·감정적 배움’(SEL; Social&Emotional Learning)모임 (2011) 등이 그것이다.

2년간 한시적이었던 세계대행진캠페인만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모델들은 주로 활동가 양성 훈련과 관련된 모델들이고 자생적으로, 지속적인 배움과 상호 돌봄을 위한 결사체적인 커뮤니티 성격을 갖고 활동 중에 있다. 어떤 것은 처음부터 각각의 다른 단체의 활동가들이 공유된 목적으로 커뮤니티를 구성하는 것도 있지만, 평범한 시민으로서 점차적으로 공유된 가치를 세우고 평화의 비전에 헌신하려는 목적에서 형성된 커뮤니티들도 있다. 각 모델들은 그 나름의 성격들이 다르게 존재하지만 유사한 진행의 공통점들은 다음과 같다:

 

- 조용히 적극적인 광고 없이 그리고 점진적으로, 상업적이지 않는 방식으로 공유된 목적과 동의된 가치들을 중심으로 모임들이 자발적으로 진행되어 나간다.

- 대화의 방식에 있어 자신의 내면에 있는 중요한 것을 표현하고 그것을 중도개입 없이 듣는 경청의 방식을 차용하고, 자신의 좌절과 희망 등의 감정을 안전하게 표현할 수 있게 하고 상대방이 듣는다는 신뢰의 분위기를 지닌다. 이것의 한 예는 체크인, 체크아웃의 시간을 처음과 끝에 갖거나 우리의 동의를 만들어 지킨다.

- 의사결정에 있어서 강요 없는 초대, 다수결투표 없는 동의과정을 통한 소수자의 목소리를 드러내고 듣기, 의견의 차이를 주목하고 그 논점의 뒤에 있는 의도와 욕구를 듣기, 결정된 것을 다시 명료화하는 절차를 거친다.

- 사회와 진행을 특정 개인에게 맡기지 않고 돌아가며 하고 자원의 원칙을 하고, 각자의 진실을 모으며, 공동의 지혜가 최대한 소통되고 발휘될 수 있도록 의식을 하며 내 말하는 의도와 말하는 것의 전체에 대한 영향 그리고 참여한 구성원 전체의 복지를 생각하며 말한다. 그 예로서, 상상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평가없는 브레인스토밍 시간을 갖고, 거기서 가장 좋은 동의된 최선을 선택하고 다른 의견에 대한 기회를 다시 준다.

- 주최단체로서 각 모델의 기득권과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고 공유 시스템을 구축한다. 자발성과 신뢰를 중심으로 원하는 방향에 대해 무엇이 장애인가 보다는 무엇이 가능한가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때때로 모호해도 직감에 맡긴다.


위와 같은 방식들은 처음에는 한 두 모델에서 좋은 피드백을 통해 나온 긍정적이고 유효한 것들을 자연스럽게 하나둘씩 점차적으로 적용해가며 대화의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 가던 경험적인 것들이었다
. 하지만 나중에 이것들이 바로 서클 프로세스라는 방식에 의해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것이라는 이론을 접한 후에는 각 모델의 특성은 달라도 보편적으로 이러한 서클 프로세스와 소시오크러시(sociocracy-번역어가 아직 없어서 그 의미를 동의에 의한 관계적 민주주의라고 부르고자 한다)의 방식을 적용하면서 지속되어 발전하고 있다.

흥미있는 것은 처음에는 각 훈련 모델들은 각자의 고유영역에서 발전하고 서서히 성장하고 있지만 한 모델의 경험자는 위에서 말한 서클 방식의 다른 모델들에 대해 참여하고 그로부터 배움, 가치와 의미의 명료함, 헌신의 방향, 관계의 질적 향상 등에 있어 상호 시너지 효과를 얻는 일들이 점차 늘어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또한 자체 내에서 구체적인 현장의 개발, 핵심역량의 배분, 파트너십의 확대를 서서히 도모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예로서는 AVPHIPP이 거점도시인 대전, 부산 그리고 광명을 중심으로 지역에 뿌리를 서서히 내리려는 시도를 하고 있고, RC와 회복적 대화모임, 평화교육네트워크 등은 학교현장을 접목하여 모델학교를 선택하는 등의 활동의 폭이 심화되고 발전적인 확대를 갖고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생명의 자기조직화 이론과 같이 스스로 발전하고 방향을 찾고 소통하며 그물망처럼 뻗어나가는 생명력을 갖고 있다. 비록 지금은 시초이지만 향후 5년 이후에는 지금 성장하는 싹들은 매우 크게 가시화되고 있을 것이다.

이들 모델의 구성원 대부분은 처음부터 사회변혁의 그 어떤 깃발을 세우거나 열정을 품은 사람들은 아니다. 오히려 많은 이들이 평범한 일상을 살지만 고통스러운 현실에 대한 자기 경험과 희망을 나누는 과정 속에서 그리고 각 모델이 갖고 있는 평화로운 소통의 안전한 공간을 통해서 의식들이 깨어나고 함께 하기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진정성과 자비로움의 대화방식을 통해 뭔가 공유된 목적을 향해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걷는 행렬에 동참하는 과정 중에 있게 된 것들이다.

 

나오며 ? 비통함의 정치학에서 희망의 정치학으로

파커 파머는 최근의 책, 비통한 자들의 정치학(원제는 민주주의의 심장을 치유하기)에서 참된 민주주의를 위한 사회운동의 4 단계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더 이상 분리되어 살지 않겠다고 결정하기, 일치의 공동체를 형성하기, 비전을 가지고 공적인 장으로 나아가기, 처벌과 보상 시스템을 변형시키기가 그것이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나 그간 필자가 해온 평화훈련영역에서 해온 작업들이 이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 순서와 요소들은 매우 중요한 통찰과 운동의 흐름을 정리한 것임을 필자의 경험을 통해서도 확인되어 파머의 명료한 도해는 앞으로 활동에 큰 격려가 되고 있다.

이 단계들을 좀더 필자의 경험을 통해 풀자면 먼저, 자신과 사회속의 타자’(심지어 까지도)의 비통스런 현실에 대한 자각과 연민을 통해 그들에게 다가가는 용기를 갖는 개인적인 자각이 영혼에서 먼저 일어나는 것이 필요하다. 공유된 목적과 가치를 향한 배움과 돌봄의 지속적인 공간을 허락하는 공동체를 나름대로 구축하여 여기서 핵심역량을 만들어 내는 것이 2차 순서이다. 이 공동체를 통해서 신념과 힘을 부여받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는 사회문제의 공공영역에 말을 걸고 이슈들에 대해 개입해 들어가는 데서 공동관계성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이 강화되며 새로운 우리의 영역을 발견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공동체와 사회에서 어떻게 정의, 공평함을 구현할 것인가라는 근본 문제에 있어 타자’ ‘문제의 인물을 골라내고 고통을 주는 응보적인 구조적 시스템을 변혁시키는 치유와 관계회복 그리고 공동체 복원의 회복적 정의시스템의 구축이 사회전반에 실천시스템으로 구축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안전과 복지가 사람을 죽이는 법에 숙달된 군인, 위험한 자를 골라내고 격리하는 경찰, 처벌과 고통을 부과하는 법집행자들인 법조인, 그리고 승리와 패배의 적 이미지를 생산하고 이에 대해 결투하여 상대를 쓰러뜨리는 정치인, 그리고 한 체제의 엘리트들에 의해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이념적 타자을 무찌를 수 있는 파괴적인 무기의 힘이 중요하다는 국가 경영자들에 의해 우리의 안전이 달려있다는 이 신화(a myth)’를 우리가 아직도 갖고 살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순진하고도 불행한 현실인가? 파커 파머는 결사체적 공동체를 형성하여 공공영역에 개입해 들어가는 것이 민주주의의 건강성과 안전을 지키는 길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필자도 이에 동의한다.

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앞에서도 주장했지만 다시 진술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의 비참한 현실을 텍스트로 말을 걸고 듣기, 카리스마적인 지도력이 아닌 공동의 지도력 그리고 공동의 지혜가 작동되는 방식으로 사는 결사체적 혹은 배움과 돌봄의 실천 공동체(practice community)를 형성하기, 진실이 소통되고 실수로부터 배우는 긍정적인 피드백이 가능하고 안전한 대화 공간을 확보하기, 공유된 가치의 신념만이 아니라 적용할 수 있는 변화의 실천적인 사회적 도구들을 훈련모델을 통해 익히기, 폭력의 폭풍우라는 사회 이슈 속으로 공동체와 네트워크가 개입하는 접촉공간을 열기, 그리고 의식과 관계 그리고 구조 속에서 타자로 하여금 공동의 선을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건설적 프로그램을 갖기 등이 그것이다.

이런 시도들을 통해 각자는 무엇을’ ‘어떻게만큼이나 자신이 그리고 함께 하는 이들이 누구인지를 다시 배우게 되고, 영혼의 진정성이 의식과 관계, 그리고 구조에 있어서 어떻게 새로운 실재의 가능성을 가져오게 될 것인지를 직접 경험하며, 그 안전한 공간에서 다시 경계를 넘어 불안한 공간혹은 신음 지대에로 진입을 시도할 수 있게 된다. 변화의 주체가 된다는 거창한 구호가 아닐지라도 진정성 있는 마음들이 모아지면 흐름이 생겨나고 그 흐름은 자연스럽게 바닥이 낮은 곳으로 흐르며 길을 만든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이것이 샘으로부터 솟아나와 시냇물이 되어 가장 낮은 바다로 흘러가는 자연의 이치와 같은 것이다.

단지 필요한 것은 자신의 비참함과 고통의 현실 깊이에서 샘이 솟게 하고, 다른 샘들로부터 오는 물줄기들을 조우하여 관계망을 맺고 함께 공유된 목적과 가치들을 확인하여 같이 흘러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서 단지 자신들은 흘러갈 뿐인데 스스로가 자정이 되어 투명한 영혼이 되고, 치유가 일어나며, 주변은 생명을 받고, 숲이 생기며, 도도히 흘러가는 강물이 된다. 결국은 비통함이, 지긋지긋한 현실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들로의 변혁들이 일어나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된다. 왜냐하면 마틴루터 킹이 말했듯이 도덕적인 우주의 원호(arc)는 길지만 정의 쪽으로 기울어져 있기때문이다. 이것이 우주와 존재의 법칙이요, 그것을 따르는 것이 삶의 가장 자연스러운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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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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