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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정직성과 대화를 위한 순교자, 변선환

- 서거 20주년에 스승을 기억하며 -

박성용

비폭력평화물결 대표

평화서클교회 담임목사

 

  평화활동의 현장에서 몸을 담고 있는 내가 30여년의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감신 캠퍼스의 변선환 박사를 기억하자니 감회가 새롭다. 수많은 기억의 단편들이 지나간다. 여름이면 항상 입은 하얀 모시 한복, 언제나 수업시간 손 옆에 든 보따리속의 수많은 신학원서들, 몇 년을 신었는지 모를 언제나 같은 빛바란 구두, 낮은 목소리의 수업시작 때의 한결같은 기도, 끝나는 종쳤는 데도 계속되는 강의, 조직신학은 조지는 신학이라며 가끔씩  튀어나오는 너털웃음과 이북 사투리. 이것은 80년대초 함께 있었던 동료들에게는 비슷한 기억들일 것이다.  


그리 머리가 특출한 학생에 속하지 못했기에 나는 변교수께는 그리 가까이도 그러나 멀리도 아닌 거리에서 있었지만 그래도 그분 주위를 서성이게 된 것은 바로 학부 초기에 들은 그분의 현대문학과 기독교강의로부터 받은 충격과 강의에 매료됨 때문이었다. 도스또엡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그레엄 그린의 <위스키 신부>, 허먼 멜빌의 <백경> 등등의 작품속에서 인간의 고뇌와 실존적 궁지, 희망과 삶의 의미추구에 대한 변교수의 교리를 넘는 보편적 인간성에 대한 열정적인 강의로 인해 비로소 나는 서서히 그분이 계속해서 주장하는 지적인 정직성,’ ‘자유혼그리고 진실의 탐구에 대해 점차 눈이 떠지게 되었다.

  

변선환 교수를 이해하기엔 매우 복잡하다. 우선 그분의 신학적 스펙트럼의 다양성 자체가 그러했다. 실존주의철학과 현대신학, 서구신학에서부터 아세아신학, 종교간의 대화에 따른 불교와 기독교의 교차점, 대화신학과 기독론의 전문적인 다양한 관점들을 줄줄이 엮어서 마치 그가 말했던 나는 하늘에서 비행기로 공중투하하듯 할테니 너희들이 이것을 받아 연구하라고 주문한 것처럼, 수많은 신학자 이름과 저서들을 나열하며 수업에서 떨어뜨리는 것을 학생으로서 듣는 어지러움은 누구나 겪는 경험이었다.


사실 그렇게 보면 어디를 가든 언제나 보자기로 싼 보따리에 항상 신학서적들이 있어서 그는 정말 책의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는 사모님으로부터 들은 바로는 화장실에도 들어가면 상당한 시간동안 안 나오고 그런 그를 건드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화장실에서도 책에 몰두하는 습관 때문이기도 했다(난 사실 학생회일로 화장실에 들어간 그를 불러내는 전화를 한 적이 있어서 그로 인해 불같은 그분의 욕설을 들은 실제 경험도 있다). 내가 아는 한 그분은 거의 자신의 수입의 많은 부분을 신간서적 구입에 썼던 것으로 알고 있고 외국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신간의 신학서적은 거의 출판과 동시에 누구보다 먼저 구입해 읽을 정도였음을 따로 그분과 공부하는 서클모임에서 가까이 보면서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지독한 공부벌레이기도 한 그에게는 다른 특이한 성격도 존재했다. 정치적 백그라운드를 지닌 그 누구든 정직하지 못하다고 매우 싫어하였고 고집스러운 점이 있는 고집불통의 일면이 있기도 했지만 신학적 관점은 언제나 열려있었다. 또한 일상에서 그는 전망이 있는 학생이 게으르거나 교조적인 신념을 가진 학생이 보인다 싶으면 호통과 야단을 치는 게 보통인 반면에 자기 영혼의 색깔이 있고 신념대로 독특하게 사는 학생의 경우에는 그 사람이 운동권 출신이든 변교수를 따르지 않든 상관없이 아낌없이 사랑하셨고 그런 학생들중 일부가 시국이나 학내사태로 정학이나 어려움을 받을 경우 따로 그를 불러내고 생색내지 않고 도움을 주는 일을 멀리서 보기도 하였다. 그만큼 고집스러운 면과 다정한 면이 동시에 있었던 복잡한 성격을 지니고 계셨던 것이다.


나는 그분이 언제나 어려워서 가까이 다가가지는 않았지만 그가 말하는 지적인 정직성의 학문적 태도에 반해서 그분의 수업은 가능한 아무리 어려워도 낑낑거리며 신학독어강독까지 그분의 수업을 따라다녔다. 머리가 좋아서가 아니라 그분으로부터 오는 뭔가 알 수 없는 용솟음치는 진리의 샘줄기에 대한 갈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학원에 들어가 그분이 당시 가장 신학적 벗으로 여긴 사람중 한 사람인 존 힉(John Hick)을 졸업논문으로 쓰게 되면서 -그 당시 그분의 제자그룹에 있던 학생들은 대부분 변교수가 추천하는 신학자들을 논문과제로 쓰는 경향이 있었다- 나는 종교간의 대화에 대해 당시 깊이 몰두하게 되었는 데 그것은 모두 변선환박사의 영향이 컸기 때문이다.

  

80년대 전두환 독재정권시절의 갑갑하도록 어두운 시국상황에서 그분을 따랐던 적지 않은 제자들이 해외유학으로 발길을 돌렸듯이 나도 목회에 대한 절망과 갑갑함에 대한 탈출구로 쉽지 않은 해외유학을 91년에 떠나게 되었고 그때부터 나 자신보다 그분이 나에게 안부와 편지를 보내오는 매우 뜻밖의 경험도 맛보았다. 왜냐하면 교단의 정치재판의 분위기가 훨훨타오르는 시점이기 때문이었다. 학장직을 내려놓고 시련의 시기를 맞이한 그분을 마지막으로 뵌 것이 93년에 미서부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변박사의 추천으로 다시 미동부의 템플대 박사과정을 들어가기 직전 잠시 귀국한 여름이었다. 그분은 자신이 좋아하는 종로5가 평양냉면집을 제자들과 함께 들렸다가 다시 산책겸 옆의 비원을 걷고는 하셨는데, 그때에 외풍의 거센 정치부흥사들의 탄핵 바람에도 내색하지 않고 부드러움과 따스함으로 환대해주시고 우리 부부와 아이들의 손을 일일이 잡고 관심을 가져주신 것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이런 그의 모습은 나에게만 베푸는 독특한 것은 아니었다.

  

나에게 돌아가신 변박사가 말년에 보여준 몇 가지 장면이 내 가슴속에서 소중히 살아 삶의 지표가 되고 있다. 그것은 교회안에서 최종 종교재판이 열렸을 때 이미 자신을 축출하기로 시나리오를 짠 교단정치재판위원들 앞에서 최종변호에서 보여주신 그분의 순진한(?) 행위가 그것이다. 바로 자신이 역시 보자기로 싸서 들고 온 책들을 하나씩 판사석앞으로 가져다 페이지를 보여 주면서 신학적인 설명하면서 자신의 스타일 그대로 그 누구의 변호없이 스스로 자기 신념을 끝까지 일관된 학자의 자세로 변증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고별설교를 감신동산에서 하면서 진리를 위한 순교자에 대한 키에르케고르의 말 우리가 오늘날 필요로 하는 이는 천재가 아니라 순교자이다라는 고별설교의 언급이 그것이다. 그리고 또한 마지막 순간 타종교를 위해 원고를 쓰다가 서재에서 돌아가신 그분의 초지일관한 자세도 포함된다.

  

사실 나는 종교신학도로서 그 당시 내적으로 감리교신학에 대해 아쉬워하는 한 가지 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독재정권에서 사회정의문제가 정점을 이루고 있던 학부시절이후 감리교의 토착화신학과 종교신학이 가는 대화의 신학적 방법론이 사회정의를 위해 피를 흘리는 상황에서 보여주는 정치적 무관심에 대해 일종의 부끄러움이 존재했었다. 그런데 길게 보면 변박사는 자신의 교단축출상황에서 변호사없이 스스로 자신의 양심에 일관되게 서면서 진리에 대한 일관된 자세와 대화도 순교자의 피를 요구한다는 사실을 자신의 삶과 죽음으로 증명해줌으로써 대화의 과제가 결고 가벼운 것이 아닌 목숨을 거는 문제임을 일깨워줌으로써 나를 새롭게 각성시킨 것이다.

  

나는 국내외 정치부흥사들이 국내외 모든 교회에 변선환 제자들을 교회에서 축출하는 거대한 움직임을 목격하고 학자로서 스승의 죽음에 대한 깊은 충격을 경험하였고 동시에 97년 국가부도사태와 20019.11사태를 겪으면서, 그 와중에 다행히도 퀘이커의 기독교평화운동을 만나면서 일생이 바뀌게 되었다. 지식이 아니라 지적인 정직성과 대화를 도구로 비폭력 실천과 평화훈련을 위한 실천가로서 서서히 가슴속에서 불길로 치솟게 된 것이었다.

  

시민사회영역에서 특히 평화훈련 영역에서 지난 10연간을 활동가로 고진분투하면서 이젠 한 달에 쉬는 날이 거의 없을 정도의 훈련 워크숍과 현장에 돌아다니는 것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나에게 지적정직성과 대화는 갈등을 전환하고 승승의 문제해결을 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그리고 유일한 효험이 있는 삶의 도구가 되고 있다. 가정, 학교, 단체, 지역공동체에 문제가 생기고 힘든 일이 발생할 때, 판단과 강제, 비난과 고통주기라는 방식이 아니라 갈등 당사자들이 마음을 열어서 선입견없이 일어난 것을 주목하고, 서로 연결되어 공통적인 관심을 발견하고 원하는 미래를 선택하도록 돕는 데 있어서 지적인 정직성과 대화의 방식은 가장 실천적이면서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영혼의 내적인 진실에 대한 감각을 세워서 영혼과 역할간에 분리가 아니라 진리의 전체성이 자신을 수단으로 하여 펼쳐져 나가도록 허용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지적인 정직성과 대화가 단순히 윤리적 수단을 넘어 궁극적으로는 존재의 근거이자 실재임을, 곧 진리와 은총이 개념이 아닌 리얼리티의 구성요소라는 사실을 명료하게 이해함으로써 이로부터 에너지가 발생함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므로 지적인 정직성과 대화는 진리를 발견하고 충전하고 이로 인해 존재하고 그로 인해 움직여 나가는 실재의 본성이자 삶의 근거라는 사실을 이제 50대 후반에 와서야 평화활동영역에서 깨닫게 되었고 이것이 나의 정체성의 살아있는 본성으로 변용이 되기 시작하고 있는 셈이다. 이 지적인 정직성과 대화가 나에게 지식이 아니라 갈등과 상처의 상황에서 살아있는 지혜의 문을 열어주고, 앞으로 나아가는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원천이라는 것이 이제는 명료해지고 -물론 약간의 사회과학적 기술이 덫붙여지긴 했지만-, 이를 통해 학교폭력이나 가정폭력 상황에 개입해서 여러 실제적인 삶의 변화라는 열매들을 거두고 있다.

  

깃발을 들고 앞으로 나서는 것이 아니어도 근원적 민주주의를 세우는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대화를 통한 공통된 이해와 이를 통한 행동의 실천이다. 따라서 대화는 혁명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사물의 실재가-세포, , 가정, 공동체, 지역사회, 국가, 지구, 천체 모두가- 본래 공동체적인 것이자 관계적인 것임을 양자역학이 증명해냈다면 대화는 필연적인 것이자, 사물의 본성과 무엇이 진실로 일어나고 있는지를 분별하는 데 유일한 인식론적 수단이 된다. 이는 인식만이 아니라 실천에 있어서도 그리고 힘을 얻는 데에 있어서도 동일하다.

  

그리고 대화는 지적인 정직성이 전제될 때야 비로소 진실해지고 힘이 있게 된다. 나의 평화운동과 화해사역의 현장에서 변선환교수의 지적인 정직성과 대화의 가르침은 그대로 살아있는 지혜이자 변혁의 가장 강력한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강력하게 작용하고 효험있으며 치료의 에너지로 작동하고 있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사람들이 분열과 상처, 적대감과 고통주기로 맞서는 것을 넘어 진실이 소통되는 안전한 공간을 마련하고 지적인 성실성과 정직성을 갖고 대화를 통해 다시 의미가 흐르도록 (물리학자 데이비드 봄에 따르면 이것이 dia[통하여; through] + logos[의미; meaning] 즉 대화의 본성이다.) 함으로써 원하는 미래를 새로 창조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이것이야 말로 지배체제를 무너뜨리고 온전한 자아와 풍성한 삶을 향한 근원적 민주주의를 새롭게 세울 수 있는 살아있는 지혜와 힘이다.

  

지적인 정직성과 대화가 우리의 삶과 영혼에서 살아있는 한 순교자 변선환은 죽은 것이 아니라 부활하게 된다. 나의 경험으로는 우리를 진정으로 위협하는 것은 실제로는 어둠이 아니다. 지적인 정직성과 대화의 부활이 우리를 위협한다. 우리가 두려운 것은 권력이 아니다. 우리 내면에 있는 무궁한 빛이 우리를 위협한다. 변선환 박사가 학부시절에 키에르케고르에 대해 인용하면서 말했듯이 우리 앞에 있는 거짓의 위협이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 뒤에서 끊임없이 뒤쫓아 오면서 지칠 줄 모르고 짖고 있는 하늘의 사냥개(신의 부름)”가 위협이 된다. 지적인 정직성과 대화로 이 사회를 위협하자. 그 위협앞에 우리가 서자. 그리하여 간디가 말한 것처럼 그대가 보기 원하는 변화가 되기로 결심하자. 그것이 변선환을 복권시키는 것이다. 육체가 아니라 새로운 정신으로 부활시키는 것이다.

  (2015.6.1)

그 부활의 몸들로 인해 이 사회가 위협을 느끼게 하는 것, 이것이 그분의 서거 20주년을 의미있게 맞이하는 방법이다. 그분은 말씀하신다. “나를 징검돌로 삼고 나를 밟고 건너라.” 란 바로 지적인 정직성과 대화의 자유혼을 말한다. 이 초대에 대해 우리가 (아멘)”이라고 응답하며 나서도록 순교자의 피가 우리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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