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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심연위로 활화산이 되어 작열한 영혼, 키에르케고르


세상의 몰이해와 자신의 어둔 과거로 인해 일생을 세상안에서 고독과 자기 격리의 수도원적인 생활로 살면서도 미치지 않고 오히려 작열하는 불꽃으로 사는 게 가능한가? 키에르케고르(1813-1855)의 삶은 외형적으로 역사적 사건이 그리 많지 않은 단순한 일생이었다. 그러나 그는 현대의 묵시적 예언자로서 불안과 공포에 대한 전율하는 현대 영혼의 심층 깊이를 탐구하고, 그 치유로서 지식과 이해가 아니라 생을 실존으로 만나는 작업을 제시함으로서 예언자의 반열에 올랐다. 허세와 통속화로부터 벗어나와 진실과 영원에 대한 열정으로 자기 생을 불사르는 진리의 증언에 대한 투신에 온 생을 걸었다. 그가 일생을 건 것은 진실한 종교적 생활에 대한 알짬의 탐구이다. 그러므로 넓이만 있고 깊이를 상실한 우리는 그의 예언자적인 소리에 가슴을 열고 다시 경청을 해야 한다. 진리는 존재전달이요 터득이라는 그의 외침은 시대를 넘어선 영원한 메아리이다.
박성용 박사/비폭력평화물결 대표




어두운 과거로부터 영혼의 심지를 켜다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쇠안 키에르케고르는 한 부유하고 경건한 루터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덴마크어로 키에르케고르는 ‘교회 공동묘지’를 뜻하며 이는 그의 우울성과 고독뿐만 아니라 그가 말년에 공격한 덴마크 교회의 신앙사건 없는 형식성에 대한 그의 예언적 과제에 대한 숙명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그의 운명은 한때 종이었으나 갑자기 부자가 된 ‘양말상’인 아버지의 독특한 사건으로부터 주어진다. 미카엘 키에르케고르는 어린 소년이었을 당시 황야에서 쓰라린 배고픔과 자신의 불행에 대해 비참한 느낌이 들어 신을 저주한 적이 있었는 데 그 후 갑자기 부자가 되면서 신을 저주한 사건으로 인해 이 부를 즐길 수가 없었다. 또한 자신의 아내와 일곱 자녀가 연속적으로 죽자 그는 이 저주의 결과가 자신에게 내렸다고 믿고 있었다. 

자신도 요절할 것이라고 믿고 있던 쇠안은 아버지로부터 우울증을 물려받고 한 번도 웃어본 불행한 소년 시절을 보내고서 대학시절엔 방탕한 쾌락주의자가 되어 이야기 재간꾼으로 이름을 얻게 되었지만 22세 때 자신이 하녀인 어머니와의 죄의 씨앗이란 비밀을 알고 나서 충격을 받고 방종에 빠졌다. 그 후 3년 뒤 그는 죄에 대한 자각과 더불어 신앙에로의 복귀하라는 나팔소리를 들으면서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의 대지진을 경험하고 새로운 생의 전환을 맞이하게 되었다.

27세에 쇠안은 17세의 레기나 올센과 약혼을 하였지만 자신의 우울증과 어두움으로 인해 그녀가 애원함에도 불구하고 13개월 만에 파혼을 하고 만다. 이 결단은 그에게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선택에 있어서 심미적인 것을 넘어 정신적인 것, 종교적인 것에로 지향에 대한 결정적인 전한점이 되었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우울증과 레기나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은 정신적인 심지에 불꽃을 당겨서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출판한 1843년 이래 수많은 저술들을 쏟아내었다. 그리고 코펜하겐의 만화잡지 <코르세르; ‘해적’이란 뜻>의 비정한 공격을 통해 세인들의 조소와 몰이해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말년에는 기독교 복음의 진실을 위해 기성교회의 허위를 공격하였다. 그는 자기비용으로 <순간>지를 발간하며 마지막 돈까지 다 쓰면서까지 그의 교회의 갱신을 위한 그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1855년 42세로 폐렴과 척추마비로 거리에 쓰러져 병원에서 평온하며 광채어린 눈빛으로 임종하였고 그때까지 30여권의 저작을 남기었다. 저서와 일기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그는 정신적인 인간이었고 완전히 절대적인 것을 지향하고 있었다.


나는 신으로부터 철저한 훈련을 받았다

어렸을 때부터 우울의 깊이와 강력한 죄의 문제를 경험하면서 그는 인간의 생활을 지배하는 신비로운 힘들에 대한 시야를 갖게 되었다. 그러한 힘들이 인간의 생활을 지배하기 때문에 인간 생활은 자체로써는 해명될 수가 없다. 그리고 그는 현시대가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인간형성을 위한 새로운 기율이 필요함을 느꼈다.

이 어둠과 불안의 심연의 체험을 통해 그는 형이상학적 교육 곧 하나님이 뜻에 의한 냉혹한 훈련을 명백히 느끼게 되었다. 그로 인해 자기 저서 전체를 통해 자신은 종교적인 인간(기독교도)이 되도록 훈련받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인간정신의 참된 형성자로서 그에게는 평탄한 성공의 대로가 아니라 영원한 것과 관련된 ‘외톨이’의 삶을 지향하게 되었다. 현대 기독교의 기율없음에 반하여 그는 엄격의 가치를 강조한다, “필요한 것, 그것은 엄격이다”

이 엄격에로의 요청으로 인해 자기 마음의지배자인 레기네와 파혼을 결정한다. 한편으로는 젋은 처녀의 직접성을 형언할 수 없는 행복으로서 활기를 받았음에도 그녀의 포기에는 형이상학적 훈련이라는 큰 정신적 고통이 스며있었다. 파혼을 통해 그는 가장 사랑스러운 것을 신의 제단에 올려놓고 동시에 ‘신과 맺는 약혼’으로 받아들였다. 그의 쓰디쓴 고통에서 실제로 그의 신에 대한 결합이 탄생한다.

이 비극적 사건으로 인해 그는 신기하게도 시인으로 성숙하였다. 절대적인 것에 도취되는 근원적인 열망이 품어져 나오게 된 것이다. “시인이란 무엇인가? 불행한 사람으로 그의 독특한 입술 구성으로 그가 쉬는 한숨과 절규들은 아름다운 음악으로 변한다. 반면 그의 영혼은 남모르게 고뇌에 몸부림친다.” 자신의 ‘찢어진 마음’을 통해 영원에 대한 진지성을 품어내고 상상력을 통해 이상과 관계하는 영원을 지시하는 시인으로 변모하게 된다.

 
무시무시한 심연이 다가오고 있다

자기 자신의 어둠의 경험을 통해 쇠안은 우리 현대인의 영혼 저변을 뒤흔들어 놓는 인간 실존의 심연에 대한 예지를 얻게 되었다. 이것은 당시 코펜하겐에서는 전혀 이해될 수 없는 심연에 대한 전조의 예언이었지만 1차 대전 후 인간 생활의 악마적 어둠에 대해 인류에게는 일종의 계시가 되는 효과를 나았다. 전에는 더 이상 유의하지 않았던 숙명적인 절박성을 가지고 심연에 대한 그의 예언이 모든 인간 존재의 핵심을 건드리게 된 것이다. 그것은 바로 절망-죽음에 이르는 병-에 대한 예고이다: “안전과 안정은 절망하고 있음을 의미할 수 있다. 바로 이 안전, 이 안정은 절망일 수 있다”

절망과 불안은 아주 일상적인 것이고 이 비극은 눈에 보이지 않고 조용히 진행된다.  세련된 생의 향락(“심미적 삶”)을 생활 원리로 하는 세속화된 생활감정의 결과는 바로 필연적으로 절망에 이르게 된다. 마취적 생활의 불꽃을 탐욕적으로 잡으려는 이 현상의 불가피한 종말로서 절망적인 불안의 상황에 대해 남는 가능성이란 멸망할 것인가 아니면 종교적인 닻을 잡을 것인가에 달려있다. “모든 심미적 인생관은 절망이며, 심미적으로 사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알든 모르든 절망하고 있다” 이 절망과 불안은 심미적(만족) 생활방식에서 오는 필연적인 결과이다. 이에 대한 극복은 절망을 통해서 영원에 대한 손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절대자에게 이르는 참된 길은 회의를 통해서가 아니라 절망을 통해서 간다.’


깊이가 없는 통속성에 항거하라

쇠안 키에르케고르는 시인으로서 타락하고 있는 시기에 다시금 어떤 높은 이상-신적 사명의 봉사-에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하는 책임을 의식했던 인물이다. “나는 근본적으로 시인이며--다음 속죄자다” 이를 위해 그는 모든 차이를 평준화 시키는 시대적 풍조에 대한 날카로운 저항을 꿈꾼다. 그리하여 당시 대중이 가진 무감각성과 통속성을 신랄하게 풍자한다. “생에 대해 배우고자 하는 내면성을 찾아보기란 아주 드물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종돈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생에 의해 기만당하게 되는 즐거움, 경향 및 자극이다”

그가 진단한 시대의 병은 정열이 없는 무감각의 상태로 인간의 영혼이 잠을 자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생의 신비성을 위한 감각이 없이 혼합된 뉴스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진단한다. 이러한 부르주아적적 안일성은 정보의 양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수다스러움과 익명성은 제공하지만 깊이를 넓이로 대체하고 지성적이긴 하지만 어떤 길을 가고자 하는 정열은 상실한다. 근원성을 잃어버린 현대인은 우울이라는 시대의 병을 지니고 있다. 자신의 터전에 근거를 주는 정신적 결속이 사라짐으로서 행동할 힘, 신앙을 잃어버렸다고 주장한다.

그의 이러한 시대 인식은 자유주의의 번성기로서 시민시대의 물질적 호경기에 마음껏 떠들고 아름답고 호화스러운 분위기에 대한 예민한 진단이 놓여 있던 것이다. 농담을 하면서 마음껏 떠들고 즐거워하는 배 앞 수평선에 무서운 밤의 출현을 그는 보았다. 이 무서운 밤의 출현 앞에 그는 내면에의 전향을 외친다.


신앙은 이해가 아니라 존재전달이다

우리의 흔들리는 터전과 더불어 다가오는 불안과 절망의 밤으로 인해 그는 사변적 합리주의에 반대하고 종교적 실존의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종교의 객관적 사유양식(합리주의, 논리, 체계)를 비판하면서 그리스도교는 ‘존재전달’이고 신앙의 실존양식은 터득이라고 주장한다. “중요한 것은 터득이다.” 사태를 관찰하고 진술하는 추상적인 사고방식을 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진리는 주관성이기에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자신의 성찰에 의해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터득을 통해 그는 자기가 이해한 대로 실존하며 그것을 자기 삶속에 투영시키게 된다. “진리는 아는 데 있지 않고 진리가 되는 데 있다.”

실재를 인식하는 것으로는 만족되지 않는다. 그것을 통해 내 생의 무엇이 변화될 것인가? 내면성을 키우는 터득이 문제가 된다. 단순한 지성을 넘어 신의 부름을 들어야 한다. 덴마크의 소크라테스로서 그는 외친다. “기독교의 사변적 탈선을 버려라. 체계를 벗어나라. 그리고는 신과의 해후가 오직 가능한 곳인 현실로 들어가라!” 쇠안은 기독교 신앙(모든 종교는)은 존재와 관련 있고, 존재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이 신앙의 일차적 관심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기독교(종교)는 ‘존재전달’이기 때문이다.

존재만이 인간으로 하여금 최종적 실재와 접하게 된다. 지성적 추상적 교리와 개념에 갇혀  있었던 종교를 해방시켜 그것 고유의 존재 범주로 되돌리는 데 있어서 그는 어떠한 흥정도 용납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진실은 “문장들의 총화나, 어떤 개념 규정 및 그와 같은 것이 아니며 하나의 생”이기 때문이고 존재는 인간이 지닌 전 정열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생의 진실은 체계나 강의가 아니라 구체적인 생을 통해 논거되어야 한다. 스스로 존재자가 되는 대신에 존재적인 것을 말로 설명하는 것은 인간을 더 이상 고양시키지 못한다.

신앙은 터득이고 존재전달이라는 그의 주장은 ‘동시성’이란 질적 도약을 통해 그리스도라는 신적 존재와의 직접성을 강조하게 된다. 역사적 간격을 메움으로써 추상적 체계를 넘어 신적 존재와 인간 간에 놓인 세기들을 제거함으로써 실제로 신적 존재 앞에 서는 직접적인 관계와 터득을 해결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절대적인 것과의 관계에 있어서 오직 하나의 시간, 현재만이 있다. 절대적인 것과 동시적이 아닌 자에게는 이 절대적인 것은 현존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성 그것은 시와 현실간의 차이이다.” 여기에서 간격을 두는 모든 객관성과 추상성은 직접적인 현실성 앞에서 사라지게 된다. 신적 존재는 이제 과거가 아닌 이 순간 현재의 한복판으로 옮겨진다. 된다. 그리고 그 앞에서 비약하고자 하는 결단의 순간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코펜하겐의 기독교의 사회는 전적으로 돈, 명성, 잡담이라는 일상성에 매몰되어 어떠한 결단의 긴장력도 갖지 못함을 그는 비판한다. 기독교를 무거운 생을 위한 부드러운 위안으로 선전하는 행위에 그는 분노한다. 타락과 태만에 대한 놀라움에서 그는 한밤중을 뒤흔드는 뇌우가 되어 나타났다. 생과 죽음을 건 폭풍우의 도래를 알린 것이다. 평범성과 수다, 유희와 단편적인 내용없는 말들로 채워진 나태한 경건성으로부터 빠져나오도록 뇌우가 되어 “이것이냐 저것이냐” 택일 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증언한다: 인간은 자기 생을 통하여 신이 현존함을 밝힐 수 있다!

“어느 때 한 마리의 야생 거위가 길든 거위들을 꾀어 자기들 무리에 가담시켜 함께 먼 남녁으로 날아가도록 하고자 했다. 이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왜냐하면 길든 거위들이 야생 거위의 권유에 즉각 동의하지 않아 야생 거위가 너무나 장기간 동안 길든 거위들과 그것에 대해 토의했기 때문이었다. 이야기의 마지막은 야생의 거위가 길든 거위로 되어버리는 것이다.

길든 거위가 너를 지배하기 시작함을 네가 알아채는 즉시 떠나가라! 이들 무리를 저버려라. 네가 자기의 비참한 운명을 행복스럽게 만족하고 있는 길든 거위가 되는 결과로 끝나지 않도록.”


2009,11-12월호 법무사 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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