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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와 무의미의 소용돌이 속에서 존재의 용기에로의 감행

-사색하고 회의하는 지성인의 사도인 폴 틸리히-


(법무사저널 9/10호 기고)


폴 틸리히 (1886-1965)는 ‘20세기 오리게네스’라는 당대의 칭송이 어울릴 만큼 현대 지성사의 거목이다. 그에게 수여된 10여개의 명예박사학위가 보여 주듯이 문명비평가, 실존철학자, 역사철학자, 심층심리학자, 이념비평가, 문화신학자라는 다양한 면모를 지니고 있다. 한 영역에 머무르지 않은 포괄적인 그의 ‘경계선상’에서의 사상적 탐구는 양차 세계대전이 준 인류문명의 위기와 개인의 실존적 고뇌와 비극에 대답의 추구에 기초한다. ‘문화는 종교의 형식이고 종교는 문화의 내용’이며 ‘궁극적 관심’으로서 신앙과 종교를 재해석함으로써 기존 종교의 편협성과 광신주의를 일신하고, 세속적 유사종교인 국가주의, 공산주의의 허무성을 진단한다. 그의 목표는 현대인간의 실존상황인 분열, 분쟁, 자기 파괴, 무의미 그리고 절망이라는 ‘흔들리는 터전’에서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 용기와 갱생된 삶을 살 수 있는가에 있다.
                          
                                                                                       



어린 낭만적 신비주의자의 성장


폴 틸리히(Paul Johannes Tillich)는 독일 베를린 근처 작은 마을 슈타르체델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는 날 밤에 그는 여러 번 끊어져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경험한다. 이는 일생동안 그가 탐구한 죽음과 비존재의 두려움에 대한 상징적인 예고인 셈이다. 아버지가 루터교 목사였던 관계로 그는 목사관의 아름답고 넓은 정원과 마을주위의 자연을 통해 낭만적이고 존재론적인 신비주의를 갖게 되었고 존재의 거룩함, 그리고 발틱해의 깊이, 파도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는 존재의 역동성, 마성적인 것 그리고 무한한 것 등에 대한 통찰을 얻게 된다.


틸리히는 고등학교과정에서부터 슈팽글러, 피히테, 칸트 등 고전철학을 탐구하고 1904년 베를린 대학시절 거리의 서점에서 쉘링 선집을 발견하여 그의 자연철학에 매혹되면서 자신의 철학적 사유의 관점을 얻게 된다. 그는 교실보다 자연과의 내적 대화를 통해 더 많은 것을 얻었으며 휠더린, 노발리스, 릴케를 통해 자연의 환희와 탄식에 대한 공감을 배웠다.  그 후 할레 대학에서 경건주의와 바울과 루터의 영향을 받게 됨으로서 죄인만이 아니라  회의주의자에게도 주는 은총을 배웠고 몇 년 후 목사 안수받기 위한 이론과 실습 수련도 받게 된다. 베를린 노동자 구역에서 실습수련을 통해 전통적 종교용어가 진리전달에 어렵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비종교언어로의 재해석에 대한 필요성을 알게 된다.


그는 “이성의 밤”이라는 저녁 토론모임을 주관하면서 예술가, 사업가, 여성 지도자, 학생, 철학자, 법률가, 종교인들을 불러 모아서 진리, 예술, 신비주의, 문화, 종교 등의 주제를 통해 현대 세속주의 속에 사는 ‘사색하고 회의하는’ 현대인들을 위한 새로운 종교적 표현양식의 중요성을 익히게 된다. 그래서 다양한 학문의 경계선 상에서 사물의 전체상을 보는 안목을 갖고, 신앙을 실존 해명을 통해 재해석함으로써 현대 지성에 정직해지려는 자신의 독특한 입장을 구축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옛 세계의 무너짐과 새 문명 건설에 대한 결단


1914년 군복무에 자원입대할 당시 군국주의와 국가주의는 유럽 전역에 전염병처럼 번져 나갔다. 1차 대전이 발발함으로 신이 아무튼 선한 것으로 이끌어 주리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r는 참전하게 된다. 그러나 최전선의 지옥에서 다른 세계, 다른 인간을 목격하면서 자신의 사상 전체와 그의 존재가 밑바닥에서부터 뒤흔들리는 지각변동을 경험하였다. “우리는 가장 무서운 비상한 파멸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세계에서의 종말의 경험입니다. 종국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 종국은 가장 깊은 통증을 동반하고 있습니다”(가족에게 보낸 편지). 이 전쟁참화의 경험을 그는 첫 번째 정신적 죽음으로 표현하였다.


지금까지 안전하게 지탱해오던 세계관, 가치관 모두가 밑바닥에서 뒤흔들리는 종말과 문명의 무질서화와 쇠락을 의식하면서 그는 새로운 것이 도래하고 있고 이를 위한 행동을 할 때라는 각성을 통해 그는 낭만과 환상을 갖지 않는 냉철한 사색가로 바뀌게 되었다. 전쟁 중 에 너무나 추하고 무서운 허무의 공포와 비존재의 위협을 체험함으로써 기존의 전통적인 유신론의 관념, 곧 모든 것을 마지막에 가장 좋게 마무리지어주시는 맘씨 좋은 할아버지 같은 신 관념을 새로운 참 하나님 모습으로 대체되어야한다고 확신하면서 그 문제로 고투하게 된다. 유럽문명의 쇠퇴에 대한 예감과 국가주의의 맹목적인 열광에 대한 죄책감은 이제 그를 교수직을 통해 철학적 신학자로서 서구문명의 재건에 전념하기로 결심한다.



두 실재의 경계선위에서 만개하는 결실들


틸리히는 1933년 히틀러가 제 3제국 출범시키고 교수직을 박탈하자 라인홀드 니버의 초청으로 미국의 유니온 신학교로 오게 되면서 그의 사색은 풍성한 결실을 맺게 된다. 수많은 피난 이민자들로부터 인간 삶의 비참함의 도전을 통해 인간의 내면성 속에 내재하는 악마적 구조와 악한 세력의 실재성을 직시하면서 삶에 대한 용기와 재창조의 의욕을 잃게 하는 허무의 권세와 내면세계의 황폐화에 대항하는 내면의 재건을 모색하게 된다. 


인간실존의 분리로부터 오는 불안은 의학적 치료 이상의 존재론적 치유가 필요하며, 죽음, 운명, 무의미, 허무 속에서 존재할 수 있는 용기가 무엇인지를 1952년 ‘존재의 용기’라는 책에서 다룸으로서 그는 대중들의 확고한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인간 실존의 곤궁성에 응답하기 위해 굳어져 버린 전통적인 종교언어를 일상 언어로 재해석하여 현대인의 의미물음에 대답을 모색한다. 이때부터 과학과 종교, 정치와 윤리, 권위와 자유, 유럽의 사회주의와 미국의 자본주의, 존재와 비존재의 경계선에서 양쪽을 포괄하며 전체를 깊이에서 통찰하는 변증법적인 철학적 신학자로서 명성을 얻게 된다.   


틸리히는 말년 10여 년간 하버드대를 포함한 십여 개 대학으로부터 명예학위와 독일로부터 명예 훈장들을 받을 정도로 서구 지성사의 거장으로 활약하였다. 1963년 타임지 40주년 기념식 주 강연에서 인간 실존상황의 모호성을 근거로 절대 진리의 주장은 위선이자 교만임을 주장하고 서구 현대문명의 수평 지향적 확장문화에 대해 수직적인 깊이의 문화의 필요를 역설하였다. 노년의 질병으로 숨을 거둔 후 그는 인디아나주 뉴하모니 마을의 ‘틸리히 공원’에 안치되었다. 



궁극적 관심에 사로잡힌 인간과 삶의 궁지


틸리히는 도스또엡스키의 종교 재판관이 주는 개인의 자유와 생명을 짓밟는 권위주의와 그 조직들에 대해 일생을 경계하며 싸웠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답으로 인간은 단독으로 자기 실존을 직면해야 할 필요성과 영혼의 내면성을 강조한다. 내가 누구인가를 묻는 것은 인간의 궁지라는 인간의 실존상황의 문제제기로부터 일어난다. 삶의 의미문제는 궁극적 관심에 대한 어떠한 해답을 갖고 있느냐에 의존한다. 그리고 신앙과 종교는 바로 이 궁극적인 것 또는 무제약적인 것을 향한 방향정위인 것이다.


궁극적 관심이란 “어떤 것에 관하여 궁극적 심각성 곧 무제약적 심각성을 가지고 대하는 것”이며 우리를 붙잡는 궁극적인 것은 매우 강력하여 우리의 전 인격적 결단을 요구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 모두는 종교인이자 신앙인이다. 비록 그 궁극적 관심이 교리나 경전과 같은 종교적인 것뿐만 아니라 민족, 성공, 자본주의, 국가주의라 할지라도 심지어 냉소주의자라 할지라도 냉소주의 자체가 궁극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세속적인 관심도 유사종교적 성격을 지니게 된다. 그에게 궁극적인 것은 자신에게 신인 셈이며, 그에 의해 붙잡힌 상태에 있다는 것이 신앙을 지닌 것이 된다는 뜻이다.


이렇게 인간의 존재의 의미와 궁극성의 문제를 틸리히가 연결시키는 것은 인간의 실존을 왜곡하는 두 현실에 대한 통찰과 이에 대한 경고에 기인한다. 그 첫째는 악마화의 위협이다. 이는 기성종교가 특별한 상징들, 신조들, 관념들을 절대화한 나머지 유한한 것을 절대화하는 우상화의 잘못이다. 여기에는 유신론이 지닌 위험성인 존재의 근거이자 존재의 힘으로서의 신을 대상화하고 어느 종교 용어로 절대화하는 것도 포함한다. 둘째는 정치적 이념(자본주의, 사회주의) 혹은 성공이나 소비주의에서 보듯이 우리의 궁극적 관심을 사로잡는 유사종교들의 우상화의 위협이다. 이것들은 유신론적 종교들처럼 추종자의 충성과 숭배를 요구하고 있고, 결국은 철저한 세속화와 허무성을 내포하고 있다.


유한한 것을 궁극적인 것으로 곡해하는 악마화와 우상숭배는 그 결과가 하나의 유한이 다른 유한을 용납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 절대화를 통해 타자를 정복하는 충동과 의사소통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결국은 파멸로 빠지게 한다. 교리를 절대화 하든 국가나 민족을 절대화하든 그 결과는 타율적이게 되거나 궁극성 혹은 무제약적 차원을 잃은 세속적 공허감속으로 전락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들은 모두 자신의 의미의 근거인 무제약적 근원과의 관계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에 관하여 또는 무엇을 위하여 우리의 삶 또는 내적 생명을 바칠 것인가 하는 질문은 참된 궁극적 관심에 대한 의식적인 자각을 통해 대답을 얻게 된다. 그리고 인간의 성숙은 도치된 유한한 관심들에 대한 계속적인 저항과 궁극적이고 무제약적인 근거에 대한 자각과 그 실현에서 얻어진다고 주장한다. 궁극적 관심을 갖지 않고 ‘재미 보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 틸리히는 궁극적 의미를 찾지 못하면 살 보람과 의미를 얻을 수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 소유는 얼마 못가고 모른 채 눈감아도 궁극적 관심은 다시 찾아와 전 존재를 흔들어 놓기 때문이다.



흔들리는 터전위에서 존재하고자 하는 용기


인간 실존의 유한성과 존재의 근거로부터의 소외와 분리로부터 우리는 불안을 경험한다. 틸리히는 현대인이 경험하고 있는 세 가지 실존적 불안으로서 운명과 죽음의 불안, 공허함과 의미의 상실에 대한 불안, 그리고 죄의식과 정죄의 불안을 이야기 한다. 이 세 가지 실존적 불안은 우리의 안전한 기반을 흔드는 존재론적 특성을 지닌 실존적인 불안으로서 정신의학으로도 치유할 수 없으며 반드시 존재의 용기 속으로 끌어들여야 치유된다. 이는 기성종교가 신조의 안전이나 신집단주의속에 참여로도 해소될 수 없는 근본적인 불안이다. 


죽음, 무의미 그리고 정죄의 불안에 대한 존재의 용기는 자기 자신의 힘이나 자기 세계의 힘보다 더 강한 ‘존재의 힘’ 속에 뿌리박아야 가능하다. 의미에 대한 절망 속에서도 존재의 힘을 받아들임으로 절망 속에서도 자기 긍정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럴 때 비존재의 경험은 역설적으로 ‘~에도 불구하고’ 무제약적 궁극성의 경험을 노출시킨다. 틸리히는 말한다. “인간이 자신의 불안을 떠맡는 용기를 유지하고 있는 한 그러한 원천은 그의 내부에서 작용한다. 존재의 힘은 우리가 그것을 알고 있든 그렇지 못하든 상관없이 우리 속에서 효력을 발휘한다. 용기의 모든 행위-그 행위의 내용이 의심스럽다 하여도- 는 존재의 기반이 드러나는 표현이다.”(존재에로의 용기)


틸리히는 비존재의 위협을 자신 속에 받아들이는 모험을 통해 자기 자신이나 세계 자체가 아닌 존재 자체의 힘 속에 참여한다면 그 자아는 자신을 돌려받는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존재의 힘은 개별적인 자아들의 힘을 통하여 작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궁극적이고 무제약적인 근거가 바로 대상화된 유신론적 관념을 넘어서는 진정한 신이며, 거기에 존재의 용기를 위한 궁극적 원천이 있게 된다. 이 존재에로의 용기에 대한 한 예는 사랑의 실존이다. 이는 분리된 것을 결합하며 자신의 유한성에도 불구하고 용납되어짐과 무제약적 차원이라는 존재의 깊이를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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