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움직이는평화교실

글 수 24

                                                             전체와 조각내기

 

내 과학·철학 저술 활동에서 주된 관심은 실재의 본질, 특히 의식의 본질을 하나의 전체로 이해하는 일이었다. 전체는 결코 고정되거나 완결되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펼쳐지는 과정이다....보통 사람들은 무언가를 생각할 때는 그것을 정지된 이미지 혹은 정지된 일련의 이미지로 이해한다. 하지만 실제로 운동을 관찰하면 결코 끊기거나 나뉘지 않는 흐름을 느낀다. 이흐름을 생각 속에 고정시킨 이미지는 달리는 차를 찍은 스틸 사진과 비슷하다...


여기에 덧붙여 사고와 실재는 무슨 관계인가라는 질문이 있다. 주의깊게 살펴보면 사고 또한 움직이는 과정에 있다. 다시 말해 일반적 물질 운동과 별 다르지 않은 흐름을 의식의 흐름에서도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사고 또한 실재의 한 부분이 아닐까? 그렇다면 실재 안에서 한 부분이 다른 부분을 안다’‘는 말은 무엇을 뜻하며 어느 정도까지 알 수 있을까? 사고의 내용은 실재가 추상적이고 단순화된 스냅 사진에 불과할까? 나아가서 실재 경험에서 느끼는 움직임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까?


운동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면, 사고나 사고 대상들의 전체성 wholeness, totality이라는 문제와 반드시 만나게 된다... 운동 경험과 사고를 담당하는 뇌의 본질과 기능에 대한 현대 과학 지식에 따르면, 사고와 사고 대상은 명확히 구분하기 힘들다. 여기서 우리는 어려운 문제에 직면한다. 어떻게 끊임없이 흐르는 실재 사태를 하나의 전체로 그것도 사고(의식)와 우리가 경험하는 외부 실재를 포함하는 전체로 생각할 수 있을까?

이는 당연이 우리의 세계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세계관에는 실재의 본질에 대한 관념과 우주 전체 질서에 대한 관념인 우주론이 포함된다. 세계관에 대한 문제를 고려할 때는 우주론과 실재의 본질에 대한 관념 안에 의식에 대한 설명이 일관되게 자리해야 한다. 반대로 의식의 개념에도 실재 전체가 의식의 내용물이 된다는 이해가 들어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두 관념이 짝을 이루어 실재와 의식 사이 관계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나는 여기서 전체를 생각하는 방식(세계관)이 우리 정신 질서에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전체가 독립된 조각으로 이루어졌다면 그 사람의 정신도 조각나고 만다. 반면 모든 것을 일관되고 조화롭게, 경계나 분할 없는 (모든 경계는 분할이나 분열을 뜻한다) 전체 안에 아우를 수 있다면, 정신 또한 비슷하게 작동하며 이로부터 전체를 염두에 둔 질서 있는 행동이 나올 것이다...


접힌 질서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여러 요소들 사이에 의존이나 독립을 결정하는 요소는 시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요소들 사이에 아주 다른 관계가 성립할 수 있으며 일상 시공이나 분리된 물질 입자는 더 깊숙한 질서에서 뽑아낸 개념이다. 일상적 개념은 실제로 외연 질서 explicate order’ 또는 펼친 질서 unfolded order’에서 나타나며, 이 질서는 모든 내포 질서 전체에 포함된 특수한 질서이다.


원래 분할이란 주로 실용 기술이나 기능 영역에서 관리하고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사물에 대한 사고방식이다(다양한 작물을 심기 위해 토지를 분할하듯). 하지만 이런 사고방식을 자기 자신이나 전체 세계에 확대 적용하면서 자아관·세계관 분할을 그저 편리한 도구로 보지 않고, 자신과 세계가 실제로도 그렇게 조각났다고 믿고 경험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조각난 자아관·세계관에 따르면 자신과 세계를 쪼개는 식으로 행동하게 되며 마침내 모든 일이 마치 자기 사고방식과 척척맞는 듯 보일지 모른다. 이로써 조각난 자아관·세계관을 입증한 듯 보이지만 실제로 조각을 낸 장본인은 바로 그런 사고방식에 따라 행동하는 자신임을 잊은 것이다. 그리고는 조각들이 자기 의지나 소망과는 상관없는 원래 독립된 존재라고 여긴다.


여기서 건강health'전체whole'를 뜻하는 앵글로색슨어 할레hale’에서 왔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건강하다는 것은 전체를 뜻하며 이것은 (‘완전함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살렘shalem’과도 같은 말인 것 같다. 마찬가지로 신성함holy’이라는 단어 또한 전체whole'와 그 뿌리가 같다. 이 말은 가치 있는 삶이란 전체성 또는 온전함이 함께 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조각난 삶을 살고 있다. 당연히 우리는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해 주의 깊고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전체성이야말로 현실이며 조각난 현실은 조각의 환상에 사로잡힌 인간의 행동에 대해 전체가 반응한 결과이다. 다시 말해 전체가 현실이기 때문에 조각내는 행동은 반드시 조각난 현실을 낳는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조각내는 사고 습관을 깨닫고 주의를 기울여 이를 그만두는 일이다. 그러면 실재에 대한 접근 방식이 전체가 될 수 있고 그 반응 역시 전체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고 활동을 원래 모습대로, 곧 통찰방식(바라보는 방식)으로 봐야지 실재 그대로 베낀 것으로 보면 안 되다.


분명 서로 다른 통찰 방식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이때 사고를 통합하려 하거나 통일성을 강요하면 안 된다. 그렇게 강요하는 관점 자체가 또 다른 조각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다양한 사고방식 모두를, 단일한 실재를 다르게 바라보는 방식으로 각각이 명확하게 잘 들어맞는 영역이 있다고 인정해야 한다. 이론은 사실 어떤 대상을 바라보는 특정 관점이라 할 수 있다. 관점들 하나하나는 대사의 어떤 한 측면을 보여주지 대상 전체를 드러내지는 않는다. 대상 전체는 어느 한 관점으로 이해될 수 없으며 이 모든 관점에 비친 단일한 실재라고 함축적으로만 파악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이론을 일종의 관점으로 마음 깊이 이해한다면 실재를 분리된 조각으로 보고 행동하는 습관에 빠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반면 이론이 실재를 있는 그대로 기술한다고 여긴다면 사고나 상상 속에서 실재란 조각들의 집합 정도로 보일 것이다...


이 새로운 통찰 방식을 흐름 속 미분리된 전체라고 부르자. 이 관점에서 흐름이란 어떻게 보면 흐름 속에서 형성되고 흩어지는 듯 보이는 것들보다 먼저이다. 이것이 무슨 뜻인지 의식 흐름을 예로 설명하겠다. 의식 흐름은 정확히 규정되지 않지만 규정되는 형태의 사고나 관념보다 분명 먼저 일어났다. 흐름 속에서 사고나 관념은 시냇물이 흐르는 모습처럼 어떤 생각처럼 생기고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시냇물이 흐르는 모습처럼 어떤 생각은 되살아나 한동안 일정하게 지속되며 어떠 생각은 곧바로 사라진다.


여기서 제안하는 새로운 이해 방식에 따르면 모든 물질에는 이런 성질이 있다. 분명히 규정되지 않은 전체 흐름이라도 은연중에 분명히 규정된 (안정되거나 불안정한) 형태나 모습을 통해 그 존재를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마음과 물질은 분리된 실체가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끊어지지 않는 움직임 전체의 서로 다른 측면이다. 이렇게 전체가 여러 측면으로 나뉘지 않는다고 보면 현재 원자론처럼 모든 것을 철저히 조각내는 일을 막을 수 있다. 물론 원자론이 통찰 방식으로 적합한 부문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흐름 전체는 나눌 수 없다 해도 거기서 뽑아낸 다양한 모습들에는 어느 정도로 자율성과 안정성이 주어진다. 이는 흐름에 대한 일반 법칙 덕분에 주어진다. 하지만 그러한 자율성과 안정성에는 한계가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시냇물에서 생기는 난류 소용돌이를 떠올려 보도록 한다. 소용돌이의 구조와 분포는 소용돌이 운동에 대한 기술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소용돌이 구조 전체를 만들어 내고, 유지하며, 결국 흩어뜨리는) 시냇물 흐름의 형성 활동과 분리할 수 없다. 따라서 시냇물의 형성 활동을 바꾸지 않고 소용돌이를 제거하려는 것은 명백한 모순이다. 전체 운동의 중요성을 올바로 이해하면 그런 쓸데없는 시도는 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전체 상황을 주의 깊게 살피면 무엇이 난류 소용돌이를 없애는 데 적절한 행동인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실제 사고 과정과 이 과정에서 나온 사고 내용이 정말로 하나라는 사실을 파악하면 사고 운동 전체를 이해할 수 있는 통찰력이 생길 것이다. 그러면 전체에 맞는 행동을 찾아내 매순간 삶을 조각내는 난류 운동을 없앨 수 있을 것이다.

 

 

데이비드 봄, <전체와 접힌 질서>중에서 발췌

엮인글 :
문서 첨부 제한 : 0Byte/ 2.00MB
파일 크기 제한 : 2.00MB (허용 확장자 :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 윌리엄 아이작스 <대화의 재발견>을 통한 인문학 독서모임 - 2017년 9월부터 평화세상 2017-08-10 748
공지 ‘회복과 돌봄의 서클’ 진행자양성 연구모임 안내 평화세상 2017-01-31 2103
공지 평화로 가는 독서모임2016.3.15-5.31 총10회 매주 화 오전10시-오후1시 file 평화세상 2016-02-21 1912
공지 가르칠 수 있는 용기 10주 마지막 스케치-7장 더 이상 분열되지 않기 file 평화세상 2015-12-03 2536
공지 서클대화모임 진행자 양성 워크숍 평화세상 2015-11-27 2101
» 전체와 조각내기-데이비드 봄 평화세상 2015-05-10 2629
공지 마음자리 인문학 독서모임의 진행성찰-영혼의 자기 돌봄에 대해 평화세상 2014-12-20 2774
공지 문제와 역설-David Bohm 평화세상 2014-12-20 2647
공지 사고방식의 근본적인 변화 평화세상 2014-06-02 3027
공지 신뢰의 공동체에 대한 묵상 평화세상 2014-05-25 4679
공지 분리된 삶으로부터 뫼비우스 띠 위의 삶으로-파커 파머 글 묵상 평화세상 2014-04-03 3048
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