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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평화교실

글 수 24

(조셉 자보르스키의 "동시성 sinchronicity 한국판으로는 <리더란 무엇인가>을 읽으면서 그 어떤 전율이 나에게 다가왔다. 이는 최근에 읽었던 감동적인 에크하르트 톨레의 작품과 달리 단순히 명상과 행위를 통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장 효율성과 통제를 중요시하는 기업과 조직의 문화속에 어떻게 알아차림 즉 명상적 자세가 경영시스템이나 공적 제도에 있어서도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하기 때문이었다.


이는 마치 공간의 메타포를 사용하여 말하자면 점(카리스마적인 리더십) 이나, 선(협동의 참여적 리더십)을 넘어  면(field, 에너지장의 동시성의 리더십)이라는 새로운 인식(perception)과 숙달(mastery)의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물의 실재로서 입자가 아닌 사건의 파동으로서, 즉 상호관계로서 실재에 대한 이해에 기초하는 존재론적 리더십을 제창하기 때문이다. 이는 신학자 폴 틸리히가 자율과 타율을 넘어 신율이라는 궁극적 실재와 자아의 주체성의 결합을 이야기 했던 바와 일치한다. 이를 통해 '존재에로의 용기'가 발현된다. 다음은 그의 실재, 인식, 행위를 통합하는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이해에 관한 글이다.

2014.5.29)


 


                                                                              사고방식의 근본적인 변화

 

...

  어느날 오후 내가 조셉에게 물었다. “이 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요 원칙, 즉 전체를 아우르는 핵심 원칙이 뭡니까?” 조셉은 잠시도 망설임 없이 대답했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반드시 필요한 사고방식의 변화와 이런 변화로 인한 결과들이었다. 물론 그는 이런 아이디어들이 자신한테도 완전히 새로운 영역이며, 여기서 자신이 말하는 것들은 아직은 예비단계 혹은 아주 초기단계의 통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리고 아직 탐험하지 못한 광대한 신대륙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도. 나도 이런 생각에 동의하지만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조셉의 아이디어들은 충분히 유용하다. 특히 조셉의 여정에 본격적으로 합류하기 전에 개념을 잡아줄 길잡이를 바라는 독자들에게.

   첫째로 조셉은 우리가 근본적인 사고방식의 변화에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가에 대해서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뿌리 깊은 멘탈 모델을 갖고 있다. 이런 멘탈 모델이 변하지 않고 세상이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내가 이런 변화들이 어떤 것이냐고 구체적으로 묻자 조셉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세상이 사물로 구성되어 있다는 생각에서 세상은 열린 공간이며 주로 관계로 구성되어 있다는 생각으로의 변화라고. 그리고 세상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모든 것, 우리가 보고 만지고 느끼고 맛보고 듣는 모든 것, 너무나 사실처럼 보이는 모든 것이 사실은 실체가 없음을 깨닫는 것이라고. 심층의 실재는 우리가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사물과 현상들 너머에 존재한다고 했다.

   일단 이것을 이해하면 미래가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따라서 우리가 무엇이든 가능한, 가능성의 세계에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런데 사람들 대부분은 항상 깊은 체념 속에 살고 있다. 우리가 세상에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한다는, 적어도 의미 있는 정도로는 그겋게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결국 우리는 주변의 작은 일에만 집중한다. 최소한 거기서는 우리가 형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녀 양육에 최선을 다하거나, 부부관계에 공을 들이거나, 직업적인 성공을 위해 전력투구한다. 하지만 내심으로는 넓은 세상에서 완전히 무력하다는 사실에 절망감을 느낀다. 모든 구성원이 무력하다고 느끼는 그런 세계에 산다면, 우리의 미래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희망이 없고 무력한 상태, 절망 상태에서 하루하루를 살게 된다. 사실 이런 절망은 아인슈타인의 말대로 우리 사고방식의 소산이다. 스스로 그렇다고 생각하고 자기암시를 걸면 결국은 그렇게 되는 것이다.

...

  하지만 사공방식의 변화를 경험하고 나면, 우리가 느끼는 절망감은 기본적으로 순진한 세계관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실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은 전적으로 부단히 움직이고 있다. 자연 안에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무에 매달린 잎들을 보고도 우리는 멈추지 않는 생명의 흐름을 생생하게 그려볼 수가 있다. 두어 달이 지나면 나뭇잎들은 그 자리에 있지 않을 것이다. 물론 우리가 바라보는 순간에도 나뭇잎들은 변화하고 있다. 머지않아 색이 달라질 것이고, 이내 바닥에 떨어져 나뒹굴 것이다. 그리고 곧 토양의 일부가 되고, 다시 다른 나무의 일부가 될 것이다. 자연 속에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은 분명코 아무것도 없다.

   우리의 현재 의식 상태에서 가장 불가사의한 일은 아무것도 고정되지 않은 세상에 살면서, 의식은 고정된세계를 인지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면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어떻게 미래가 고정될 수 있겠는가? 어떻게 우리가 끊임없는 가능성의 세계가 아닌 곳에 살 수 있겠는가? 이런 사실을 알고 나면 예전보다 훨신 활력을 느끼게 된다. 데이비드 봄이나 경영전문가 에드우드 데밍 같은 사람이 갖고 있던 바로 그런 활력이다. 그들은 어디서 그런 활력을 얻었을까? 아마도 고정성이라는 환상 유지에 묶인 의식을 어느 정도 풀어주었고, 때문에 일반인보다 활기찬 생활을 할 수 있었으리라. 사실 우리는 순전히 사고방식 때문에 스스로의 생명력을 옥죄어 죽이고 있다. 일단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면, 자신의 숨통을 조이는 행동을 중단하게 된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눈 그날 오후 조셉은 이런 말을 했다. “이런 근본적인 사고방식의 변화가 일어나면 우리의 정체성 역시 바뀌고, 서로를 진정한 인간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나는 이제야 이런 단계에 도달했다. 서로를 진정한 인간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실제 어떤 의미인가를 제대로 인식하기 시작한 단계에. 우리한테는 고정성이라는 환상을 지키는 철갑이 씌워져 있고, 이는 주변의 사물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과 타인까지 고정된 존재로 간주하게 만드는 작용을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내가 누군가를 봐도 사실은 그를 보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단지 그가 상기시킨 내면의 저장된 이미지, 판단, 느낌, 의심, 신뢰, 호감, 비호감 따위를 보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를 진정한 인간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실로 경이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아마 이것이 바로 사랑이리라. 사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어떤 식으로든 사랑의 힘, 즉 서로를 진정한 인간으로 보는 데서 오는 장점을 알고 있었다.

   조셉은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고 우리가 이런 근본적인 사고방식의 변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스스로를 펼쳐짐의 일부로 간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 삶이 의미가 없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자기 삶이 무의미하다고 느끼려면 스스로에게 의미가 없다고 말하면서 미친 듯이 일하는 방법밖에 없다. 현실의 깊은 속을 들여다보면 우리의 삶은 의미가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왜냐면 모든 것이 끊임없이 펼쳐지고 있으며, 우리는 그런 펼쳐짐에 상상도 못할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펼쳐짐과의 연결에는 의식적인 노력, 특정한 기술, 학습, 지식 따위는 전혀 필요 없다. 그저 타고난 권리다. 살아 있다는 정의가 바로 이것이니까.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집이란 우리가 힘들여 얻어야 하는 그런 공간이 아니라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삶에서 이런 종류의 의미 있음을 굳이 노력해서 얻을 필요가 없다. 이미 존재하고 있으니까.

   조셉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이렇게 달라진 사고방식과 존재 상태에서 활동하면, ‘헌신의 의미에 대해서도 전혀 다르게 생각하게 됩니다.” 헌신 하면 떠오르는 전통적인 이미지는 힘든 노동으로 뭔가를 해낸다는 것이다. 그리고 희생을 해야 한다. 상황이 잘못되기 시작하면 우리는 더욱 열심히 하거나, 능력이 부족하다고 혹은 충분히 헌신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자책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두 가지 존재 상태에서 갈팡질팡하게 된다. 하나는 일종의 자기최면으로 내가 더욱 열심히 하지 않으면 일이 끝나지 않을 거사고 스스로에게 말함으로써 어떻게든 일을 끝내게끔 만든다. 다른 하나는 죄의식을 느끼면서 능력 부족을 한탄하는 상태다. 하지만 어느 쪽도 헌신의 깊은 본질과는 무관하다.

   우리가 펼쳐짐의 일부임을 깨닫는 그런 정신 상태에서 움직이면 헌신적일 수밖에 없다. 사실상 헌신적이지 않은 상태라는 것이 불가능하다.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사건 하나하나가 지금 일어나야 하는 무언가의 일부이다. 실수마저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지금 여기서 배워야 하는 것을 배우는 과정에서 반드시 해야 하는 그런 실수를 한다. 말하자면 헌신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헌신적인 존재상태가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의 존재가 본질적으로 펼쳐지는 변화의 일부로서 헌신 상태에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헌신적이지 않을 유일한 방법은 이런 깨달음을 망각하고, 다시금 삶에 참여하고 있지 않다는 환상에 빠지는 것이다. 이런 깨달음은 온전한 내맡김’, 말하자면 헌신적인 상태에 모든 것을 맡기고 굴복하는 역설적인 사오항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저 귀를 기울임으로써 헌신을 실현하고, 거기서 나의 행동이 나온다. 때로 가장 헌신적인 행동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앉아서 기다리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알 때까지 말이다.

   요즘 같은 조직에서 이런 태도를 취하는 관리자가 있다면 관리태만이라는 소리를 듣기 십상일 것이다. 문제가 있어도 바로 잡으려는 행동을 하지 않으니까. 우리는 헌신과 행동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계속되는 행동들을 만들어낸다. 내가 많은 일을 하는 모습을 모두에게 보여주고, 그들이 나를 정말 헌신적이라고 생각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정신없이 바쁜 상태는 자신의 삶이 의미있다고 스스로가 믿게 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마음 깊은 곳에서는 무의미 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테지만. 모든 상황이 절망적이고, 우리 자신도 절망적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런 상황에 어떤 식으로도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

  최근에 아주 성공한 경영자가 나한테 이런 말을 했다. 어느 날 문든 그동안 자신의 모든 삶이 선헤엄처럼 제자리걸음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노라고. 우리는 실제로 전혀 전진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광적인 헌신을 보이며 선헤엄을 치는 모순된 상태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멈추면 익사하지 않을까 두려워 멈추지도 못한다.

   조셉이 말한 새로운 형태의 헌신이 발휘되면 우리 주변에 하나의 흐름이 생긴다. 사건들이 그저 우연히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시간과 장소만 맞으면 아주 작은 움직임으로도 여러 가지 결과를 발생시킬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예술가들이 간결함(economy of means)'이라고 부르는 능력을 키우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는 노력과 완력으로 일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공기가 흐르듯이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움직여 일을 처리한다. 우리 주변에 의미의 흐름이 만들어져서 우리가 더 큰 대화 속에 참여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이것이 바로 데이비드 봄이 강조하는 대화’, 다이얼로그(dialogue)’의 고저적인 의미다. 사람들 사이를 흐르는 의미의 흐름’. 사물들이 다소 이해하기 힘든 방식으로 우리에게 끌려온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한다. 기저의 원인들, 일련의 힘들이 작용하기 시작한. 마치 우연히 이곳에 모인 자석들이 만들어내는 자기장에 둘러싸여 있는 기분이다. 하지만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자석들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미묘한 인과관계에 반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매사추세츠공과대학 조직학습센터를 시작했을 무렵 이런 놀라운 일이 나한테도 일어났다. 글자 그대로 사람들이 그냥 나타나기 시작했다. 불과 두 세 달 동안에 생각지도 못했던 세 명의 여인이 나타났다. 11년 전에 어떤 모임에서 만난 이들이었는데, 당시 그들이 하던 일이 우리 센터에서 준비하는 새로운 프로젝트와 중요한 연관이 있어서 오랜만에 그들을 다시 떠올렸다. 하지만 연락 방법은 물론 그들이 지금 어디 사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두어달 사이에 그들이 한 명씩 전화를 해서 센터 관련 소식을 들었다면서 도울 일이 있으면 돕고 싶다고 알려왔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원인을 설명하기란 정말 쉽지가 않다. 하지만 우리가 조셉이 말하는 다른 의미의 헌신을 토대로 새로운 정신 상태로 움직이면, 정말로 뭔가가 우리 주변에서 작용하기 시작하는 것 같다. 어쩌면 이를 끌림이라고 부를 수도 있으리라. 온전한 내맡김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발휘하는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능력이라고.

   마지막으로 헌신과 내맡김상태에 있을 때, 우리는 때로 동시성이라 불리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말하자면 동시성은 하나의 결과다....같은 맥락에서 이런 사고방식의 변화를 경험한 사람들 주위에서 생기는 끌림, 일종의 자기장은 조셉이 예측 가능한 기적이라 부르는 현상을 만들어낸다.

 

 

조셉 자보르스키, <리더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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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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