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나타났구나!
창2:1-25
요즘의 우리의 삶이 매우 바빠지고 활동들이 많아지면서 이 모든 바쁨과 활동이 무엇을 향해 어디로부터 오고 있는지 그리고 시간을 보내고 공간에 함께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자주 심각히 숙고해야 할 것들이 많아지고 있다. 우리는 새해 주일을 보내면서 첫주에 롬15장 ‘마음의 변화’에 대해 ‘새롭게 선하게 완전하게’의 초대, 둘째주에 눅 2:39-52를 통해 ‘영혼의 자라남’에 대해, 셋째주에 롬13:8-14:23을 통해 삶의 목표로서 ‘성령안에서 정의, 평화 그리고 기쁨’을 향한 ‘빛안에서 사랑의 에너지로 살기’에 대해, 넷째주는 출33:1-11,40:34-38, 겔47:1-12, 엡3:14-22을 통해 ‘안전한 공간에서 성스러운 공간에로’의 의미에 대해 그리고 지난 주는 창1:1-2:4; 계21:1-7을 통해 ‘시작과 끝이 지시하는 것’에 대한 존재와 삶이 일어나는 시간에 대한 문제를 다루어왔다. 오늘은 삶의 공간과 존재로서 인간됨에 대한 이해에 도달하게 되고 이러한 뒷받침에 근거하여 우리는 사순절을 맞게 된다. 즉 제대로 우리가 새해부터 본문을 따라왔다면 마음을 새롭게 함, 그것의 근거가 되는 영혼의 의미와 목표, 거룩한 공간으로서 성소와 시간의 시작과 끝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공간과 인생의 근원자리에 대해 우리 자신을 살펴보고 사순절에 그리스도와 함께 걷는 시간과 공간을 여는 준비를 하게 된다.
오늘 분문을 통해 우리가 생각하는 근원적인 삶의 공간의 시작과 그 공간에서 인간됨의 문제를 어떻게 근본적으로 통찰할 수 있을까? 2장은 몇 가지 시사점을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이를 해결하고자 바쁜 우리 인생길에 던져주고 있다.
첫째, 우리의 공간과 존재는 그 기원이 신의 블레싱의 터전에 있다는 것이다. 그 블레싱은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2:1) 상태에서 신께서 하셔야 할 일을 ‘다 마치시고’ ‘쉬셨다’(2절)는 점에서 실재는 근본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사실이며, 신의 작업을 통해 존재하게 된 것들로서 각 존재는 신의 의지에서 출현하였다는 점이다.
둘째, 인간이란 존재는 신이 이미 성취한 창조의 풍성함에 대해 기쁨(“에덴”의 원래 뜻)이란 공간(“동산”) 맛보고 청지기로서 돌보는 -“에덴에 있는 이 동산을 돌보게하시며”(15절) 살도록 초대받았다는 것이다.
셋째, 동료들은 삶의 파트너로서 돌봄의 일을 거드는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의 일을 거들 짝을 만들어 주리라”(18절)- 동료(companion)로 주어졌다는 점이다. 그들은 기쁨이란 공간에서 실재에 이름을 붙여주는 친밀함과 관계맺기 그리고 돌봄을 함께 거둘 파트너로서 신으로부터 주어진 존재들이다.
그들의 관계는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23절)라는 외침속에서 표현되는 것처럼 인간은 신의 호흡속에서 창조되고 동료는 자신의 뼈와 살로 만들어진 관계로 이루어졌다.
넷째, 기쁨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과 관계는 기쁨을 돌보고 관계를 세우는 이름붙이기를 위한 것이어서 생명의 풍성함에 관련되는 것이다. 이를 위한 장애 한 가지는 ‘판단하지 않기(선악과를 먹음)’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다. 옳고그름은 생명을 풍성하게 하고 돌보는 일을 어렵게 하고 기쁨과 친밀한 관계를 훼손시킨다는 것이다.
탐구질문
1. 성서를 다시 천천히 읽으면서 다가온 단어나 문장에 머물러 그것이 당신의 영혼에 말하도록 허락한다.
2. “야훼 하느님께서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코에 입김을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진흙이 생명이 되어 숨을 쉬는 데는 신의 입김이 들어갈 때 가능하다면, 당신의 삶이 아직 아무것도 나지 않은 진흙의 상황은 무엇이며 어떻게 신의 입김이 들어가도록 허락할 것인가?
3. 당신에게 허락한 기쁨의 공간은 무엇이며, 거기서 잘 자랄 수 있는 ‘보기 좋고 맛있는 열매를 맺는 나무’라는 가능성들은 무엇이 있는가?
4. 당신의 일을 거둘 짝/동료를 ‘드디어 나타났구나!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로 맞이할 수 있는 마음의 태도와 관계의 방식은 무엇이고 당신이 해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