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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막고 있는 것이 길이다<

 

우리가 거의 그것에 대해

기대하지 않을 때,

길을 막고 있는 것이 길이다.

부서진 문이 빛을 들어오게 한다.

부서진 심장이 세상을 들어오게 한다.

바람에 흔들린 과일처럼,

우리의 부서진 계획들이

천사들을 매혹시킨다.

그 천사들이 노래하는 새처럼

우리가 감추어온 달콤함 위에서 포식을 한다.

이제는 결국 공개적으로

마음껏 그 달콤함을 즐긴다.

그렇게 또한 우리는 성장한다.

 

마크 네포, <Endless Practice> -

 


내가 종교인으로써, 더 정확히 말하자면 기독교인으로써 신앙과 신학의 수련을 받으며 양육되고 성장해 온 비폭력 실천가로써 살아온 것은 어느 덧 40여년이 된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신의 구원의 계획과 그분의 완전함 그리고 장차 보여줄 영광됨과 같은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자란 나의 내면상태는 마치 시골에서 어렸을 때 경험한 추석과 정월달에 널뛰기 놀이처럼 하늘로의 도약과 추락, 때로는 도약은커녕 중심을 잃고 옆으로 쓰러지는 경험이 더욱 크고 좌절스러운 경험을 갖게 되었다.

 

삶의 무게를 극복하고 허공으로 상승하는 매우 결정적인 체험들이 가끔씩 삶에 일어나면서 위로와 힘을 얻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와 같은 상승경험으로 인해 추락과 하강의 무거운 삶의 중력 또한 만만치 않게, 아니 오히려 더욱 예민하고 날카롭게 다가온 것도 사실이었다. 나는 대부분의 경우 다른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해 온 이야기들에 의해서 그리고 나 자신도 그다지 다른 독특한 인간이 아니었기에 이러한 추락과 하강에 대해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고 자신을 몰아붙여 세상의 무게로부터 자신을 끌어올려줄 신앙의 대상, 그리스도에 대한 치열한 헌신과 열정의 불꽃을 어떻게든 살려보려는 지난한 노력들이 있어왔다


 

일반 교회의 가르침이자 통상적인 신학자들이 제시했던 자신을 위한 지지자 혹은 구원자로써 그리스도라는 신앙의 도식이 한동안은 매우 거부감이 들었었다. 그것은 80년대 치열한 독재정권하의 민주화운동에서 그러한 낭만적인 신앙관이 현실에 부합되지 않다는 청년시절의 사회 불의에 대한 분노가 가슴에 배여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비폭력 실천과 관련하여 시민사회 활동가로 접어들면서부터는 행동하는 그리스도에 대한 뒤따름의 모델로 바뀌어져 갔고, 최근에는 샬롬의 평화영성과 관련한 기독론에 발을 딛게 되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처음의 구원이라는 도식에 의해 자신의 삶을 신의 이야기에 얽어매 보려는 노력들은 어쨌든 목사라는 신분의 삶(난 아직까지 이 신분이 내 몸에 맞지 않는 걸 느낀다)으로도 이루어지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나는 목이 굳은, 결이 곱지 않은 인간인지 모르겠으나 튕겨져 나오는 일들이 더욱 빈번해지면서 속으로 뭔가 자신이 없고, 확신이 서지 않는 엉거주춤한 상태에서 널뛰기의 패턴을 그대로 유지하게 되었다. 좀더 솔직해지자면 평화영성과 관련하여 토마스 머튼이나 에크하르트 톨레와 같은 영성가들의 신앙을 본받으려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 와서 어느 정도 위로와 힘을 얻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런 특별한 의지나 예지가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더욱 큰 좌절을 맛보는 것도 사실이었다.

 

내가 장차 되고자 하는 나됨의 정체성과 지금의 현실적인 나됨의 정체성 사이의 비극적인 간극을 계속적으로 경험하면서 얼마나 더 추구함의 노력을, 그리고 어느 정도의 더 센 강도를 갖고 해야 하는 지에 대한 근심과 우려 그리고 내면의 쓰라림과 심지어 영혼의 아픔이라는 내면적 상태를 들여다보면서, 하나의 근본적인 문제에 직면해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은 그다지 오래 전의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신의 이야기는 수없이 듣고 있었으나 내 존재의 이야기에 대해 내가 귀를 기울여 본 기억이 별로 없었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이 있게 되면서 생긴 일이었다.

 

내가 내 존재의 이야기에 대해 내 속으로부터 일어나는 제 소리에 대해 듣기 어려웠던 것은 내가 독서하면서 내 행동의 힘은 거의 많은 부분이 독서에 의해 이루어진다. 나는 전철이나 화장실에서도 책을 읽는 습관이 몸에 배여 있다 배우게 되는 영혼의 자이언트들이 지닌 훌륭한 덕성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거기에다 더욱 결정적인 것은 내가 청년이 되도록 옆에서 지켜본 아버지의 심한 알코올중독의 경험, 어머니의 아버지에 대한 스트레스를 자식한테 풀었던 여러 비난들과 내 자신의 실수와 잘못들에 대한 기억들이 합쳐져 무언가 내면의 훌륭한 요소들이 나에게 있다는 생각을 상상조차 할 수 없도록 나의 기억을 덮어버린 것 때문이었다.

 

내가 내 생존의 방식 중에 나도 모르게 가졌던 것은 빠르게 잊는 것이었다. 결국은 놀랍게도 내 과거에 대해 거의 몇 가지 기억 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은 상태로 대부분의 모든 것을 잊고 사라진 형태로, 또한 불쾌한 일은 빨리 잊는 체질로 바뀌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뭔가 잘못되고 부족하다는 결핍과 삶의 두려움은 가시지 않고 무겁게 나를 내리 누른 것 또한 사실이었다.

 

다행히도 운이 좋았었는지, 아니면 언제부턴가 내 자신의 문제에 대한 자각에서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나의 잘못과 실패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 서서히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 결정적인 시작은 미국에서 한국의 국가부도사태를 지켜보고나서 결심하고서 박사과정때 여성학부에서 두어 학기를 보내면서, 조직신학과 종교학의 추상성에서 일상성에 대한 성찰로 바뀌는 경험을 통해서였다. 그리고 서서히 자신과 화해하는 과정의 내면적인 작업을 하게 되었는데, 묘하게도 회복적 정의에 대한 활동에 관심이 있게 되면서 잘못과 실패에 대해 새롭게 집중적으로 들여다보는 일들이 계속적으로 생기면서 서서히 나는 나의 어둠에 대해 그리고 그 어둠이 주는 진실에 대해 숙고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우리가 거의 그것에 대해

기대하지 않을 때,

길을 막고 있는 것이 길이다.

부서진 문이 빛을 들어오게 한다.

부서진 심장이 세상을 들어오게 한다.

바람에 흔들린 과일처럼,

우리의 부서진 계획들이

천사들을 매혹시킨다.

 

마크 네포의 글이 크게 다가온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나의 내면 작업에 있어서 화해의 길을 스스로 걸어가면서 얻은 통찰과 맞물려, ‘아 그렇지라는 동의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뒤돌아보면 느리게 그리고 크게 우회하는 길을 걷고 있었지만, 나는 나의 부서진 심장에 대해 그동안 실망하고 부담스러워 했고, 심지어 온전하지 못한 상태에 대한 암묵적인 비난과 죄책감으로 인해 거리를 두고자 했던 오랜 저항으로부터 서서히 모호하지만 조심스럽게 다가가고 접촉하려 하고 이제는 껴안는 상태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리고 마크 네포 말대로 전혀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러한 껴안음(embracing)’으로 인해 내가 정상작동 불가능이라고 판단한 부서진 심장이 그대로 있지 않고 다시 맥박이 뛰고 열려지면서 나와 세상을 좀더 예민하게 느낄 수 있게 되어가고 있다. 진실로 내가 부서진 심장으로 헉헉대면서 널뛰기에서 흔들려 떨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그 순간과 추락과 넘어짐의 수많은 경험들로 인해 내 영혼이 무엇을 그리워하며 갈증을 느끼는지를 알게 되었고, 그래서 뜻밖에도 본질적이고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에 대한 보이지 않는 길을 찾도록 내 심장이 여전히 뛰고 있었던 것이었다. 진실로 길을 막고 있는 것이 길이 되었다’ .

 

내가 삶의 널뛰기놀이에서 그토록 흔들림 없이 서 있으려 노력한 까닭은 이제 생각해보니 그 널뛰기로부터 추락해 넘어졌을 때 주위의 시선으로부터 오는 부담감 때문이었다. 나의 낭패감과 초라함을 그대로 노출될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인해 나도 모르게 그리고 나의 기력 이상으로 흔들리지 않으려 했고, 정상인 것처럼 보이려 했던 것이다. 그래서 흔들리지 않으려고 너무나 많은 긴장과 힘이 들어간 삶을 살아왔었다.

 

내가 신앙과 영혼의 자이언트들에 대한 시선에서 벗어나 나의 잘못과 실패 그리고 추락에 대해 시선을 돌리면서 내가 어떤지를 진실로 천천히 - 처음에는 우연히 그러나 이제는 의식적으로 돌아보게 되면서 내가 배워가는 것은 삶과 신앙은 흔들리지 않는 확신과 견고하게 있기라는 헌신의 차원보다는 오히려 여는 것과 껴안기에로 방향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확신과 견고한 헌신을 향한 끊임없는 널뛰기를 하면서 내게는 긴장과 스트레스가 가중되었고 웃음을 잃었었다. 그런데 이제 나는 삶과 신앙이 자신의 심장을 열어젖히는 것과 무엇이든 다가오는 것을 껴안는 법을 배우면서 유연함과 부드러운 삶의 지지를 얻게 되었다. 흔들리지 않으려 했던 노력으로 오는 낭패감을 이제는 흐름을 타면서 나와 주변을 음미하게 되었다.

 

부서진 문이 빛을 들어오게 한다.

부서진 심장이 세상을 들어오게 한다.

...

우리의 부서진 계획들이

천사들을 매혹시킨다.

 

내가 거주할 집(home)의 문이 부서져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전전긍긍하며 자신의 거주처가 초라함에 대해 감추고자 했던 그 순간에 다행스럽게도 빛이 들어오는 데 처음 주목하는 걸 배우게 되었다. 빛이 내게 비추고 있다는 걸 그 부서진 문으로 인해 본다는 것은 마크 네포가 말한 달콤한 통증(sweet ache)’일 수 있다. 부서짐의 통증은 있지만 그것이 달콤한 것은 빛을 맞이하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거주하는 처소가 이제 빛이 들어오는 공간으로 전환이 된다.

 

역설적이게도 부서진 심장이 세상을 들어오게 한다.’ 역설적이라 함은 부서진 심장으로 인해 내 고통과 아픔을 돌보느라 세상을 둘러볼 수 없게 되었었는데, 오히려 부서진 심장의 경험으로 인해 자신의 심장이 열려 세상의 고통이 확연히 자신의 심장 속에서 느끼게 된다. 내 부서진 심장은 세상의 부서진 심장들의 한 일부이며 세상의 아픔과 부서짐에 참여하게 된다. 오히려 세상의 부서진 심장들로 인해 내 심장이 고통을 받고 내 심장이 새롭게 맥동이 뛰게 된다. 그래서 내 부서진 심장의 이유를 발견한다. 세상의 부서진 심장들과 함께 맥박이 뛰기 위해, 세상의 부서진 심장들이 내 심장이 되기 위해 내가 그렇게 부서지게 되었구나라는 깨달음의 선물이 주어지게 된다. 그 아픔의 눈물이 자기 심장을 깊숙이 적시면서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한다. 비난할 필요가 없었고 단지 필요한 것은 내 부서진 심장과 세상의 부서진 심장들을 껴안는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의 계획들의 날개가 세상의 폭풍우라는 거센 광란과 거칠은 운명의 장난에 의해 선한 계획들이 추락을 할 때, 나는 거의 확신을 가지고 이것은 실패이고 객관적인 비극의 결과라는 생각들을 해 왔었다. 내가 한창 뜨거운 청춘일 때 찾아온 폐결핵이 그랬었고, 오래 지속한 우정과 사랑의 단절의 끔찍한 경험이 그랬으며, 신혼 후 태내 일기까지 쓰던 첫 애기의 사산이라는 그 깊은 충격도 그랬었다. 그리고 유학 후 처음으로 직장을 가진 곳에서 후임원장으로부터 반강제적인 축출의 쓰라닌 경험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운명의 짓궂고 거칠은 뒤흔듬은 거의 끝 모를 그리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심연 속으로 추락시키는 것처럼 다가왔다.


그런데 내가 모르는 것이 있었다면 그런 심연속으로의 추락에서 있었을 때, 그것이 바로 마크 네포도 경험한 천사들을 매혹시킨다는 부분이었다. 그 당시에는 완전히 객관적인 실패이자 비극이라 여겨진 것들로 인해 천사들의 관심과 활동을 부추겼다는 것을 나는 그때에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고 절망 속에서 정신없이 추락하고 있었지만 어느 새 나도 모르게 천사들의 손에 의해 다른 차원의 터전에 놓여있게 된 것을 나중 정신차려 보니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보이는 천사들의 손과 날개에 의해 지금은 나의 흔들림이 이제 흐름을 타는 방식으로 삶이 펼쳐져 나가고 있음도 알게 되었다.

 

내가 고백하게 되는 것은 내가 빛을 경험하고 세상을 알게 되며 천사들의 움직임을 느끼는 것이 지금까지 전통적인 신앙이 말한 나의 훌륭한 미덕과 견고한 확신과 헌신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내 영혼의 부서진 문과 부서진 심장 그리고 부서진 계획들로 인해 역설적으로 빛과 천사들을 알게 되었다는 그 한 가지 명료함이다. 그래서 삶은 그렇게 직선적이거나 철저히 계산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오히려 노력하는 자보다 실패한 자가 오히려 더 많은 진실을 볼 수 있다는 삶의 신비에 대한 겸허함과 판단보류가 필요하다는 것뿐이다. 물론 모든 부서진 문이 빛을 보여주고, 부서진 심장이 항상 세상을 만나게 하며 또한 부서진 계획이 꼭 천사를 부르는 것은 아니다. 오직 그 키에 대한 한 가지 비밀이 있다면 그러한 부서짐의 경험이 자신의 불행에 대해 비극이라고 고집 부리게 만들고 있는지, 아니면 그것이 나 자신을 열고 껴안게 만드는가에 달렸기 때문이다.

 

이제는 결국 공개적으로

마음껏 그 달콤함을 즐긴다.

그렇게 또한 우리는 성장한다.

 

나는 추락과 실패가 항상 쓰디씀으로만 아니라 오히려 숨겨진 달콤함의 비밀을 간직할 수 있다는 암생존자인 마크네포의 말에 동감한다. 그리고 그러한 잘못, 추락, 그리고 실패가 바로 나의 성장을 위한 것이었음을 받아들인다. 마치 자전거를 능숙하게 타기 전까지는 모든 실패와 넘어짐이 자전거 타기라는 숙달을 위한 배움의 한 과정이었던 것처럼 나도 삶에 숙달되기 위한 배움으로 그러한 추락, 실패 그리고 잘못이 필요했었던 것이었라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정말 내가 요즈음 배우고 있는 신비는 그러한 추락, 실패와 잘못들에 대해 이제는 마음껏 그 달콤함을 즐기게되는 과정 속으로 초대받았다는 것이다. , 이 얼마나 아름다운 달콤한 통증이란 말인가! 나의 결함과 실패는 바람에 흔들리는 과일처럼완벽하게 달콤함의 맛봄을 위하여 준비되어 있었다. 얼마나 완벽하게 적절한 타이밍을 위한 실패와 흔들림이었는가? 적절한 타이밍의 추락으로 달콤함을 맛보게 되나니, 그토록 완벽하게 실패가 적절하게 일어났던 것이다.

 

 

2017. 10.1. 추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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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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