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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통합형 회복적생활교육연구회가 이제 발족되어 사업들이 점차 가시화되어가고 있어 축하드립니다. 지난 3년 씨앗을 서울시교육청을 통해 현장에 뿌려져서 이제야 비로소 총회도 하고 비전워크숍과 자율연수 등의 기획까지 나오게 된 것은 여러 선의의 노력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교사동아리를 지지하는 한 사람으로써 함께하시는 분들께 격려를 드리고 한 개인의 비전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갈등, 손상, 폭력의 영역은 그간 할 수 없고, 하고 싶지 않고, 못하는영역처럼 여겨져서 대부분이 기피하는 블랙홀과 같은 영역이었지요


 

사실 이는 개인에게는 갈등, 손상, 폭력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나 준비가 안된 부분이기도 합니다만, 구조적이고 문화적 실천에 있어서는 이를 엘리트나 특정한 권력에 있는 사람들의 일로 만들어 지배체제를 강화해온 사회적 관행이 더 큰 요인이기도 합니다


 

그런 것을 할 수 있는 공공기관인 경찰, 법원, 교도소, 그리고 군대가 바로 권력자나 그들 그룹이 세상을 지배하면서 우리가 그런 것을 책임져 줄께라는 안보의 비용으로 지배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하지요.

 

더 나아가 갈등, 손상, 폭력은 그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를 정확히 알려주는 바로미터이기도 합니다. 힘의 충돌이 일어나는 접점지역이기 때문에 어떻게 이를 다루는 지는 그 공동체가 어떠한지(수준, 능력, 비전 등)를 정확히 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약자를 어떻게 대하는 지도, 그 사회 구성원의 심장과 분위기가 어떤지도 알 수 있는 핵심영역이기도 합니다


 

두려움, 의심, 위협, 비난과 강요라는 사회적 관행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면서, 존중, 연민, 대화, 협력에 대해 그 힘이 무력하며, 후자들은 작동이 안되는 열등한 인간들(더나아가 악한 인간들)에 대한 이미지가 고착되어 왔습니다. 아이러니는 그런 응보적인 사회적 관행이 이 사회의 어둔 그늘을 더욱 확장시켜왔고, 선의를 가진 일반 시민들을 탈주체화시켜옴으로써 견고한 권력과 지배구조를 양산해 왔습니다.

 

이것의 최대 피해자는 바로 성직자와 교육자들입니다. 존중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에게만 적용되고 이 사회의 범죄자나 해나 혼란을 야기하는 사람들에게는 엄한 규율과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발상은 존중의 비일관성이 가능하다는 분열증을 낳아서 자신이 가치있게 여기는 연민과 자비, 공감과 연결, 치유와 화해, 공동체성 등이 막연하고 추상적이며 잡히지 않는 환상 혹은 개념으로만 존재하게 만들었습니다.

 

말하고 믿는 것과 실제 실천사이에 큰 괴리를 가져오면서, 신앙인들에게는 신의 은총에 대해그리고 휴머니스트들에게는 인간의 자유와 선의에 대해 한계를 정하면서 갈등, 손상, 폭력의 영역에서만은 엄격하게 두려움과 고통이 효과가 있다는 제외영역을 설정하여 은총과 자유에 대한 열망이 한계가 있다는 이분법을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혼란을 야기시키는 자, 예외적인 삶의 특질을 가진 소수자, 이념적 적대자, 범죄자들에게는 무자비하고도 연민없는 비인간적인 관행을 정상이라고 생각하게끔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우주의 질서가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로도 존재하듯이 그러한 혼란, 예외적인 삶의 취향, 이념적 차이, 그리고 실패와 잘못은 실상 우리 인생에게 누구에게나 있는 취약성의 부분이며 가끔씩 나타나는 삶의 일부분이기도 하며,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혹은 법에 걸리지는 않았지만 내면에서 종종 겪는 일탈의 가능성은 종종 존재합니다.

 

사회적 낙인을 통해 어떤 부류의 인간이나 특정한 경험을 속죄양으로 삼아 두려움, 고통 그리고 비난과 의심이 효과가 있다는 발상은 오히려 프로이드의 주장대로 무의식적인 억압기제로 작동하여 자신의 정체성, 관계의 역동성, 사회의 문화적 구조를 경직시키고 수많은 희생자들을 양산합니다. 그리고 희생을 개인화시키고 개인의 책임문제로 전락시켜서 실제로 주범인 구조적인 폭력을 안보이게 만듭니다.

 

나는 회복적 생활교육이 어떤 흐름을 현재 갖고 있는지는 다 이해를 못하지만, 최소한 이에 대해 관심을 가진 교사라면 궁극적으로 우리가 무엇을 소중히 여기며 무엇을 우리의 현실로 원하고 있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것에 대해 저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 나의 참된 정체성은 도대체 무엇으로 인식되는 것일까요? 행위이전에 본래 타고난 존재 그 자체는 어느 정도 참된 정체성과 연관되는 것인가요?


- 타자는 도대체 나에게 무엇일까요? 도대체 나 아닌 것은 어디부터이고 그 타자성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일까요?

- 우리는 무엇을 얼마나 함께 꿈꿀 수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얼마나 어느 정도까지 승화의 경험을 할 수 있고, 어디까지 이 사회에 대한 열망을 품을 수 있는 것일까요?

 

- 그리고 우리는 어디서 인생이 살만한 가치를 가졌다는 궁극의 터전을 찾을 수 있을까요? 내가 내 인생과 이 사회에서 보는 비참함의 모습들속에서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자살하지 않고 견디어 내는 그 궁극의 의미근거는 어디에 둘 수 있는 것일까요?

 

저에게 있어서 회복적생활교육의 화두는 존중이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윤리나 도덕의 실천덕목이 아니라 삶의 신성화와 우리 개인의 인간화에 대한 존재론적이고 인식론적인 창을 제공합니다. 존중이 존재론적이기 때문에 무차별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인식론적이기에 이를 통해 실재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이해 이전에 존중이 존재합니다. 실재가 상호의존하고 상호관련이 있다는 말은 저에겐 만물의 모든 세포는 존중하는 유대감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유지한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이로 인해 평등성과 관계성이 일어나며 그것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도 세워집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정체성도 존중을 통해서만 알려지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학교현장에서 존중은 마치 촛불처럼 인식되어졌습니다. 비난과 처벌이라는 어둠이 있는 상황에서 존중은 그야말로 촛불을 켜는 것과 같은 새로움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아직은 미약하지만 그러한 촛불로 인해 우리는 그동안 정상적이라는 이름하에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가해자·피해자·방관자라는 낙인에 대한 그만두어야 한다는 자각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아직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이를 위해 뒤따르는 무리가 아직은 소수라는 의미에서 충분하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아직 두 가지 넘어야 할 장벽이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충분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첫째는 존중의 촛불만으로는 미흡합니다. 존중이 혁명적인 패러다임으로써 에너지를 가지려면 존중의 일관성이라는 레이저광선이 필요합니다. 촛불의 이미지는 존중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주변의 장벽과 세력을 만나면 흔들리거나 꺼지거나 아니면 장벽에 막힐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레이저광선으로써 존중은 무차별적인 일관성을 갖는 말입니다. 그 어떤 갈등상황, 악한 인간, 손상과 폭력앞에서도 존중의 일관성을 갖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배체제의 사회적 관행을 뚫어내지 못합니다. 찻잔속의 태풍이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그 어떤 기분나쁜 상황에 있어서도 그리고 내가 옳고 상대가 그른 정당성이 내게 주어진 상황에서도 그 상황과 상대에게 존중이라는 무차별적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는 우리의 가르침과 배움의 핵심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자에게 깊은 각오로 나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존중의 일관성을 포기하지 않고 지킬 것이다라는 자신에 대한 무제약적인 성실성을 답보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는 두려움이 실재이고 효과가 있다는 신념에 대한 거부입니다. 존중이 실재(reality)라는 믿음에 대한 헌신이 요구됩니다. 잘못은 책임있게 다루되 비난이나 분노는 다른 것이라는 이해하는 것입니다. 잘못을 책임있게 다루는 것은 존중에서 나온 것이지만 비난이나 분노는 두려움에서 나온 행위입니다. 응보적 조치와 회복적 조치는 단순한 접근방식의 차이가 아닙니다. 그것은 세상이 무엇에 근거하고 있는지에 대한 궁극실재에 믿음의 싸움입니다. 우리는 어떤 실재에 대한 믿음에 근거하여 우리의 언어, 행동 그리고 태도가 출현하는 것일까요? 지배체제와 우리의 에고는 두려움을 실재로 이해하고 거기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로써 외적인 실재와 자유를 품고 있는 우리의 영혼은 존중을 기반으로 그 생명을 유지합니다.

 

두려움은 환상이고 존중은 실재입니다. 개인과 사회의 모든 비극이 두려움이라는 환상의 조작에 의해 우리의 모든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데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교묘하게도 우리에게 일어나는 자극상황 갈등, 손상, 폭력-조차도 문제(a problem)’로 인식합니다. 이는 자극상황을 두려움의 렌즈에서 보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그래서 해결과 조치에 대한 필요성이 일어나서 강요, 비난, 고통부과의 방식이 저절로 생성됩니다. 우리는 그러한 자극상황들이 그동안 등한시한 존중의 필요를 일으키는 기회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문제로 다가가는 한 언제나 두려움은 교묘히 작동합니다. 그러나 존중이 필요한 역설로 맞이 할 때, 이해하려는 호기심이 발생하고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주장이 아니라 함께 숙고하고 함께 작업하는 에너지를 얻게 됩니다.

회복적 생활교육은 마치 바늘구멍과 같아서 낙타라는 이 세상의 거대한 응보적인 시스템과 문화적 관행은 통과할 수 없습니다. 회복적 생활교육을 추구하는 교사들에겐 이 세상이 점점 더 버거워지며 힘들어지게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이 이제는 정상적이고 당연하게 보이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족할 것입니다. 바늘구멍으로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바늘구멍을 통과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존중을 통해서입니다. 존중을 통해 바늘구멍을 통과함으로써 우리는 새로운 실재를 경험합니다. 이 바늘구멍은 우리에게 존중이외에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고 합니다. 나의 지식, 논리, 힘의 추구만 아니라 다행히도 무력감과 좌절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바늘구멍은 매우 준열하도록 매서운 요구를 하지만 존중으로 인해 펼쳐지는 실재는 너무나 벅찹니다. 그것은 내 내면의 깊이에서 지속적으로 울린 목소리에-“네 삶을 존중하라!”- 대해 화해를 하고, 세상이 신성한 빛깔로 나를 환대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존중의 무차별적인 일관성과 존중이 실재라는 신념을 우리가 지니게 되면 그 신념은 에너지를 발생시켜 자연스럽게 우리의 말, 행동 그리고 태도를 통해 파동을 울리며 주변으로 번져나갈 것입니다. 얽힘과 비국소성의 이 세상에서 타자와 공명하면서 같은 진동(vibration)을 일으키고 이는 갑작스러운 변화를 전체 사회에 가져올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꿈도 우리에게 실재가 되기를... (201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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