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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조회 수 255 추천 수 0 2017.07.02 10:32:02

>괜찮아<

     


작은 거미 한 마리가 문 열쇠구멍으로 기어 들어왔어.......

......

무덥고 먼지 낀 세상이었어. 희미한 빛이 비치는 그리고 위험한. 한번은 작은 깡충거미가 현관 난간 위를 기어가다가, 내 손에 들어와, 뒷다리로 서서, 더할 수 없이 아름다운 초록 눈으로, 내 얼굴을 빤히 보았어. 너는 그게 아니라고 하겠지만 진짜로 그랬어. 따뜻한 여름날이었어. 요트 몇 척이 항구 주변을 미끄러지듯 나아가고 항구는 뻗어나가 대양이 되지. 세상의 끝이 어디인지 누가 알 수 있겠어 열쇠구멍의 작은 거미야, 행운을 빈다. 살 수 있을 때까지 오래 살아라.

- 메리 올리버의 시 <괜찮아>에서-

 

 

자신의 삶에서 흉측함, 아니 기분 나쁘도록 불결하거나 소름끼치도록 거부감이 일어나는 물체나 상황을 만났을 때 대부분의 경우에는 화들짝 놀라며 몸을 뒤로 빼 거리를 두거나, 털어버리거나, 아니면 그 어떤 물건을 들어 제거하게 된다. 자신의 생존본능과 안전에 대한 자동반응으로써 그런 행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관계나 상황 혹은 사람의 문제에 있어서도 그런 기분 나쁘도록 불쾌하거나 몸이 굳어지는 긴장된 상태에 직면한다면 단순히 몸을 뒤로 빼거나 털어버릴 경우에도 그 실체가 안보일 때는 완전히 굿바이하지 못하고 거기에 몰두하게 된다. 그래서 어두움과 무거움이 수시로 올라오면서 호롱램프의 불꽃처럼 계속적으로 사념이 타 오르면서 자신의 의식의 공간을 지배하며 괴로움과 불쾌감을 지속적으로 느끼게 된다. 문제는 지속되는 불안한 생각의 근거가 약하다 할지라도 계속해서 그림자처럼 뒤따라오고, 털어내려는 의지가 있어도 생각은 어느 새 다시 찾아와 거기에 몰입되어 버리게 된다는 점이다. 어떻게 이로부터 우리는 벗어날 수 있을까?

 

어느 날 나는 아침에 집근처의 산책로 벤취에서 책을 읽다가 말벌 한 마리가 나를 맴돌며 선회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조금 몸을 흔들어 싫다는 시늉을 해 보았지만 이 녀석은 내 몸 앞뒤를 돌며 떨어져 나갈 줄을 몰랐고, 덩치로 보자니 그리 작은 몸짓도 아니어서 쏘이면 아픔이 크고 오래 갈 것 같은 섬뜻함이 안에서 올라왔다. 뭔가를 휘둘러 쫓아낼 것도 소지하지 않았고, 그렇다 해도 놀라게 해서 쏘이면 어쩌지 하는 불안이 더 커서 그럴 엄두도 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뭔가 수상한 행동을 내가 하면 여지없이 이 녀석에게 쏘일 판이라 약간의 손시늉을 해 보긴 했으나, 원체 그 벌은 극성스러운 몸짓으로 내 신체에 가까이까지 돌면서 계속해서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때 엉뚱하고도 대담한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래, 아무 것도 안하고 멈춰서 이 벌을 지켜보자. 도대체 무슨 수작인지를...” 이게 엉뚱하고 대담하다는 이유는 내 어렸을 적에 시골에 살았을 때 그리고 청년시절 조령산의 고사리마을에서 7년을 보냈을 때 벌들에게 여러 차례 크게 쏘인 힘든 경험들이 있어서 벌이라면 딱 질색이었던 것이었다. 사실 그런 생각이 올라온 것은 멈추면 흥미로운 것이 없어져 날아갈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뿔싸, 이 녀석은 내 배위에 앉아 버렸다. 의식속에서 다행히도 난 엷은 여름 옷을 입고 있다는 잠시의 안심이 있었지만 곧 벌침을 막기엔 너무 얇다는 생각에 불안이 곧이어 올라왔다. 어찌했거나 난 내 생애 처음으로 정말 살아있는 말벌을 그토록 가까이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보게 되었다. 그리고 배 표면 부위에서 느껴지는 가벼운 접촉과 움직임도 신체를 통해 전달되었다. 그리고 녀석은 천천히 움직이며 올라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지켜보는 것뿐이어서 정말 처음으로 호기심을 갖고 주목하여 그의 움직임을 관찰하였다. 정말 흉측하고 무섭고 떨쳐내야 한다는 자동적인 의식을 다행히도(!) -난 어떻게 이런 자세가 일어났는지 알지 못한다- 내려놓으니 참으로 경탄스러운 모습이구나라는 생각이 올라왔다. 그 생생한 색깔들의 뚜렷함과 화려함, 계속적으로 움직이는 두 기다란 촉수의 그 가녀린 몸짓, 그리고 몸의 피부로 느껴지는 움직임의 무게. 전 존재가 풍겨내는 우아함과 신비로움. 그리고 낯설은 존재의 형상이 주는 충격의 여운들...

 

징그러움과 흉측함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가시고 처음으로 신비의 경탄스러운 낯선 몰골에 마치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느낌으로 쳐다보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의식이 되는 게 내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활성화되는 느낌이었고 내 몸, , 그리고 이 주변의 공간이 마치 하나의 흐름으로 모아지면서 하나의 생생한 공간으로 느리게 가고 있었다. 그렇게 지켜보는 나를 향하여 그 녀석은 정말 호기심이 많았는지 계속해서 느리게 올라오면서 결국은 이제는 얇은 옷의 마지막 경계를 넘어 목덜미의 살갗에 접촉하게 되었다.

 

무섭기 보다는 살갗에서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생생한 그 접촉으로 인해 묘하고도 황홀한 분위기가 나를 감싸게 되었다. “그래 내가 의지처가 되어 줄 테니까, 맘대로 놀아보렴.” 그게 내 속에서 일어난 생각이었다. 그의 발가락들이 던져주는 낯설고도 세미한 움직임이 파동을 일으키며 전신에 퍼지고 있었다. 이제는 그 경험이 무엇인지 기억에 흐릿하지만 매우 특별한 접촉감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렇게 해서 약 7~8분 가까이 그러나 나에겐 아주 긴, 아니 시간을 잃은 듯한 경험이었다- 목과 귀밑으로 올라왔고, 다시 내게 두려움이 몰려와 혹시 귓속으로 들어가면 어떻게 하나? 라는 의구심이 들어오는 순간에 다행히도 그 벌은 날아가 버렸다.

이 벌과의 특별한 만남의 경험은 빅터 프랭클이 말한 한 문장의 소중함과 그 의미를 확연히 이해하도록 돕는다. 그는 자극과 반응 사이에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서 성장과 자유의 기회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자극으로 인식되는 불쾌함, 재수가 사나움, 맞이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상황에 있어서 자동격발로 했던 물러섬, 뭔가의 무기로 맞섬에 대한 다른 가능성과 그로 인한 새로운 실재의 경험에 대한 이해로의 여정에 길을 연다.

 

불쾌감과 무거움의 원인 경험과 그에 대해 끊임없이 뒤따라오는 추사유(追思惟)로 인해 나는 에너지를 점점 소진하고 어두운 그림자의 영역에서 길을 잃고 혼란에 빠진다. 이는 우리가 자극-반응의 무의식적인 올무속에서 그 메카니즘을 보지 못하고 대부분 힘든 상황이나 힘든 인간에 대한 제거, 수정이나 그 대상의 변화에 몰두하기 때문에 오는 비극적인 경험이다.

 

메리 올리버의 시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추악함 혹은 흉측함이 내 존재속으로 파고 들어올 때, 통제와 거부, 저항과 보호에서가 아니라 호기심으로 맞이할 수 있다면 그 흉측함의 들어옴이 <문 열쇠구멍>을 내게 선물로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정말 우리가 경험하는 무덥고 먼지 낀 세상의 경험속에서 혹시나 다르게 변형시켜 따뜻한 여름날에로의 경험이 될 수도 있게 됨을.

위험한그리고 온통 거부감을 일으키는 그 존재가 사람, 관계, 상황, 사건, 도전, 위기- 때로는 주목해서 볼 수 있다면, 예기치 않게 아름다운 초록 눈으로자신의 얼굴을 빤히 보면서 다가와 나를 황홀하게 만들고, 결국은 신비롭게도 그 <열쇠구멍>으로 항구를 보고 대양이 펼쳐지는 실재를 경험할 수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이는 마치 내가 벌을 통해 우리가 모두 연약한 존재이며 서로 의지할 수 있고 그를 통해 내 피부와 그의 존재 그리고 함께 있는 공간과 순간이 하나로 공명하는 세계임을 생생하게전 존재로 알게 해 준 선물로 그 말벌을 경험한 것과 비슷하다.

 

나는 여기서 거미 혹은 말벌 자체가 이른바, 흉측하고 위험한 사건, 상황, 사람 그 자체가- 그러한 선물의 존재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흉측하고 위험한 사건과 존재, , 상황, 사람이라는 자극에 대해 일반적인 자동 반응이 아닌 다른 메커니즘을 혹은 프로세싱을- 설정할 때 그러한 메커니즘이라는 공간이 성장과 자유의 기회를 가져온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거미 혹은 말벌 자체의 위험성은 사라진 게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대응 메커니즘이 그 존재자체보다 더 중요하다. , 자극과 반응보다 그 둘 틈사이에서의 메커니즘이라는 공간의 중요성이 핵심인 것이다.

메커니즘이라고 말할 때 이는 현대물리학자이며 대화론자인 데이비드 봄의 용어이며 학습조직론자인 윌리엄 아이작스는 이를 공간대신 필드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내가 의미하는 것은 반응을 멈추고 주목하기, 환대하기, 연결하기, 관찰하기, 탐구하기 그리고 상호작용하기와 나아가기라는 서클의 작동방식으로써 안전한 공간의 설정안에서 이루어지는 방금 말한 프로세싱이라는 일관된 작동구조에 대한 것이다.

보복, 응보, 저항의 반응 메커니즘은 강하게는 제거로부터 시작해서 점점 약하게는 조작, 통제로 타자를 향해 나아가며 내면으로는 거부, 그리고 최종적인 내면의 단계로는 자기 방어와 보호에로 까지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그러한 <자극-반응>의 메커니즘은 자극에 대해 우리가 익숙한 세계를 끌어올려 과거의 기억과 경험에 대해 생존과 안전의 경향성을 통해 삶이 괜찮지 않음의 실재를 강화시킨다. 결과적으로 그러한 괜찮지 않음은 두려움과 비난, 의심과 무력감의 에너지를 작동시키게 된다.

그러나 <환대-관찰-허락>의 메커니즘은 자극에 다가가며 연결하여 호기심을 일으키고, 서로 환대의 공간에서 릴케의 싯구처럼 서로 접하여 인사하고 응하는방식으로 기존의 이해나 습관에 낯설은 그러나 새로운 변용의 방식을 작동시킨다. 그래서 두려움과 저항, 생존과 안전의 올무(프레임)을 넘어서서 우아함과 아름다움의 실재를 펼친다. 우리의 일상적인 흐름인 지루함과 더 나아가 흉물스러움의 감각에 좁고 작지만 <열쇠구멍>을 내고 거기로부터 항구와 대양의 무한성을 열어 놓는다. 그게 우리로 하여금 생존의 두려움을 내려놓게 만들고 삶이 괜찮다는 근본적인 방향감각을 불러일으킨다.

 

놀라운 것은 그 거미 혹은 말벌이 <열쇠구멍>의 내면공간을 내 삶에 선사했다는 정도가 아니다.

 

“......더할 수 없이 아름다운 초록 눈으로, 내 얼굴을 빤히 보았어......”

그 거미나 말벌의 눈이 아름다운 초록 눈으로 다가오는 순간에 난 내 얼굴을 의식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무덥고 먼지 낀 세상이었어. 희미한 빛이 비치는 그리고 위험한> 것이 세상이 아니라 나였고, 내가 나 자신에 대해 무겁고 먼지 낀 존재로, 의식이 희미한 성태로 살면서 그리고 위험한 괴물로써 신뢰하지 않았던 나의 정체성에 대해 그 거미와 말벌은 내 존재를 경이로움으로 일으키고, 아직도 그러한 가능성, 곧 연민을 머금은 내 존재의 가능성을 열어 준 것이다.

행운을 빈다. 살 수 있을 때까지 오래 살아라.”

내가 영혼의 샘이 메말라 끝난 줄 알았는데, 아직도 자비와 연민을 품을 수 있다니, 아직은 괜찮은 그 뭔가가 그 흉측한 사건과 경험을 통해 남아있다니... 아직도 행운을 빌 수 있는 연민이 내게 있다니... 그렇다면 난 아직도 그 무언가 살려는 의지와 에너지가 남아있는 것이로구나!

 

괜찮아. 괜찮은게 맞아.

너는 그게 아니라고 하겠지만

진짜로 그랬어.

괜찮아. 괘찮고 말고.

행운을 빈다.

살 수 있을 때까지 오래 살아라.

 

괜찮아.

 

(201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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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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