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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로 곪아진 민주주의에 대한 묵시적 예언과 그 비극적 간극에 서서<


  

......

불길이 일어나는 방식으로

나무를 쌓아

불이 일어나게 하라....

 

- 주디 브라운, <> -

 

촛불광장의 민심으로부터 발화되어 코앞에 새로운 현실의 가능성에 대한 최종선택으로서 대선의 긴장된 상황은 대선주자들과 관련된 되지 않은 이들의 마음까지도 흔들어 놓고 있다. 최근의 일련의 정치현실을 보고 있자면, 국가최고 리더십의 부재상황에서 대선에 언제나 출현한 안보이슈는 이른바 좌파정권의 등장이라는 프레임홍보를 기대한 측에는 권력의 재창출에 대한 일정한 공간을 얻어냈고, 안보상황의 이유로 사드배치와 관련한 미국쪽의 한국내 향후 예측되는 좌파정권에 대한 길들이기 시도도 어느 정도 영향력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남한의 정치상황과는 다른 상황에서 북한은 수십 년 동안 일관되게 미국과의 싸움에서 절대로 물러서지 않으며, 자신의 역량을 총 결집하여 핵무기의 위협이 얼마나 실제적인 상황이 될 것인지를 핵에는 핵으로라는 강성전략이 얼마나 견고한 의지인지를 만천하에 알려주었다. 이른바 그 어떤 공갈협박에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북의 의지를 알려줌으로써 오바마 정권에서 조미관계에 손놓고 있었던 이른바 전략적 인내의 파국과 중국 뒤에 숨어 대리전을 치르도록 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북은 중국이 정도를 넘고 있다는 강력한 경고메시지를 중국에 보내면서 중국과 북의 관계와 북과 미국의 관계가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직면해 있게 되었는지를 깨닫게 만드는 상황이 되었다.

 

미국과 남한은 한반도 위기상황이라는 프레임속에서 보게 되지만 국제정치역학관계로 보자면 한반도 위기 상황이 아니라, 정확하게는 수십년간 이어져 온 북미관계의 최종결투의 종착지점에 와있다는 사실에 대해 미국이 이제는 나서야 하고 기존의 방식으로는 스스로 위험을 초래할 것이라는 강력한 위기의 현실을 마주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리고 또한 위험한북한을 길들여 주도록 부탁받은 중국도 형님으로써 지위가 자신의 대미수출의 막대한 흑자를 계속 지속하려는 경제적 이득의 확보문제로 인해 미국에 협조하며 한 북한 때리기가 이제는 자신과의 관계에 있어서 근본적인 흔들림까지 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는 곤혹스러운 상황으로 가게 만들고 있다. 한마디로 국내정치의 흔들림만이 아니라 북미간에 있어서도 전례없는 대결정세의 궁극지점에 서게 된 것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분석에 있어서 전문가도 아닌 나로써 그리고 국내 정치상황의 전개의 흐름을 보면서 한 가지 깊이 패턴화된 갈등 시스템에 대한 이해로 인해 향후 예측되어지는 비관적 전망의 묵시록에 대해 대부분이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무거운 압박이 내 심장을 누르고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분석을 통해 가장 간단히 이해될 수 있는 것이지만 이른바 이념적 성향의 정치공학자들이나 현실정세분석에 대한 이론가들이 놓치는 부분이기도 한 부분이다. , 갈등 패턴과 그 효과에 대한 신념화가 미처 보지 못한 부분에 대한 것이다.


나의 향후 한국 민주주의의 염려와 비통한 심정에 대한 메타포에 대한 설명은 다음 애니메이션 상황극 설명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내가 어렸을 때 인상적으로 그리고 매우 좋아하며 보았던 애니메이션은 뽀빠이라는 것이었다. 처음 흑백TV가 나온지 얼마 안 되어 내가 대여섯 살 때쯤인가 상영된 것으로 기억되는 데 줄거리는 항상 명확한 것이었다. 올리브라는 한 가느다랗고 여린 한 여성이 보기만 해도 언제나 흉측하고 기분 나쁘게 만드는 인상을 가진 부르투스에게 항상 겁탈당하는 아슬아슬한 장면이 처음엔 연출된다. 부르투스는 올리브를 못살게 굴고 올리브는 비명과 위협을 느끼며 항상 도망가는 역할속에서 구원자인 뽀빠이가 나타난다. 약자인 올리브에게 선의를 가진 뽀빠이는 용감하게 남의 일에 나서서 부르투스가 지닌 무력에 대해 줄곧 얻어터지다가 나중에는 시금치를 먹고서 결국은 상대방을 KO패시킴으로 올리브는 뽀빠이에 대해 고마워하고 사랑을 하게 되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지극히 복잡한 정치적 상황에 대해 애니메이션 이야기를 꺼내는 것에 의아하게 생각하겠지만 여기에 우리의 무의식적인 의 보편성이 놓여 있다. 뽀빠이 역할극의 프레임이 그대로 우리의 현실에 언제나 적용된다는 것이 나의 통찰인 것이다.

 

1) 연약한 약자 역할을 맡은 올리브(민중)은 언제나 자신을 괴롭히는 공격자 역할인 부르투스와의 부정적인 과거 경험에 대해 한번도 자기 방어에 대한 성찰을 하지 못한다. 그녀의 선택은 오직 비명지르고 무서움에 대해 직면하여 예방조치를 하는 법을 모르고 오직 도망가는 방법이 가장 최선의 것이었다 (반복되는 부정적 경험으로부터 오는 예방에 대한 통찰의 무지).

 

2) 올리브는 상대방의 흉측한 모습에 대한 이미지에 갇혀서 도대체 왜 그가 계속 괴롭히는지 그 이유에 대해 물어보거나 궁금해 하지를 않으며, 그 부르투스가 그렇게 하는 데에는 그 어떤 의도가 있을 것이라는 것에 상상하지를 못한다(-이미지의 견고화와 타협이나 협상의 상상력 부재)

 

3) 갈등당사자이자 공격자인 부르투스는 올리브에 대해 접근하는 데 있어서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며 자신을 혐오하는 것에 대한 분노에 갇혀서 최선의 효과있는 전략이 오직 두려움과 위협 혹은 고통주기의 방식이라는 신념에 의문을 갖지 못한다. 그는 자신에게 뭐가 진실인지를 표현하는 방법을 전혀 모르고 있다(위협과 고통주기라는 흔들림 없는 신화의 비극).

 

4) 뽀빠이는 연약한 여인에 대해 펼쳐지는 불의한상황에 직면하여 그가 책임있고 선한 존재라면 그 상황을 모른채 하지 않고 개입해야 하며, 자기 목숨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그 불의한 공격자에 대해 저항이나 공격을 통해 징벌해야 하는 것을 당위로 생각한다. 그의 역할은 그러한 불의에 참지 않아야 하며, 희생의 위험이 있을 지라도 개입은 정당하며, 그 정당성을 실천하는 방법이나 힘은 바로 상대방 부르투스가 가지고 있는 똑같은 종류의 힘보다 더 강력해야 한다는 것으로 배운다. 그래서 통제하거나 제어하는 무력이 정당화되고 효과가 있는 것으로 인식된다(효과있는 방법으로써 더 강한 무력의 정당성에 대한 확신의 견고화).

 

5) 불의한 상황에서 올리브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공격자에 대해 자신이 무력하다는 것에 대한 인식과 그에 대한 해결의 방법으로서 뽀빠이와 같은 구원자가 필요하다는 해결사의 존재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한다. 구원자는 효과가 있고 필요하며 따라서 구원자가 존재하는 한 자신의 내적인 자원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할 수가 없다(외부 구원자의 개입의 타당성을 인식하고 그것을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것으로 생각하는 배움과 그 배움의 패턴화).

 

6) 그 어떤 공간에서 만남이 각자에게 공격자, 희생자, 구원자의 도식이 형성되는 순간에 그들에게 중요해지거나 관심의 초점이 되는 것은 위협주기, 도망가기, 패퇴시키기, 자기 보호하기, 증오하기라는 전쟁놀이에 몰두하게 된다. 이 전쟁놀이에 대해 한번도 지겨워하거나 왜 우리가 그런 놀이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 없다. 기쁘게 함께 노는 것에 대한 상상력이 일어나지가 않는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그 만남이 공간에서 무엇을 기대하고 무엇이 기쁜 것인지를 표현하거나 알아채지를 못한다. 올리브는 이제 흉측한 인상의 인물만 봐도 확인하지 않고도 두려움과 판단이 견고해 진다(다른 놀이에 대한 상상력 결여와 위협과 공격자이미지에 대한 신념화)

 

7) 가장 비극적이고도 교묘한 지배로써 이제 올리브는 자신을 부르투스에서 구원해준 뽀빠이에 대해 은혜를 갚아야 하는 도덕적 의무/책무를 지게 된다. 뽀빠이를 섭섭하게 하거나 사랑을 안 주는 것은 올리브에겐 배신인 것이고 비도덕적인 것으로 자신을 인식하게 된다. 따라서 자신을 구원해 준 존재에 대해 자신의 사랑을 주어야 하며, 뽀빠이의 강요하는 사랑의 방식에 대해 뭔가 의문을 품는다는 것은 자신의 성실성의 결여로 인식하게 된다. 따라서 다른 선택은 생각할 수 없다. 특히 어려운 상황에서 그녀는 구원자의 행동방법에 대해 다른 방법을 전혀 기대할 수 없다(구원자에게 충성하기).

 

 

이 단순한 애니메이션의 갈등분석과 그 패턴은 이 7가지로 끝나는 게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권력/힘에 대한 이해가 오직 power-overpower-under라는 강제하는 힘과 복종하는 힘만으로 이해되어져 새로운 힘인 power-withpower-to라는 함께 하는 힘과 관계하는 힘에 대한 아무런 상상력을 갖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특히 중독증이 심하게 되는 것은 바로 후자의 방법은 전혀 비효과적이고, 약하고, 너무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만연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내가 설명하고 싶은 내용의 다가 아니다. 진짜로 심각한 것은 우리 모두가 이미 설정된 폭력의 각본(scripts of violence)’에 대해 모두가 꼼짝없이, 아무런 의심없이 연기자로 참여한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빠져나갈 탈출구가 전혀 보이지를 않는다. 그 연기에 너무나 몰두해 있고 모두가 참여하고 있어서 그 각본이 다르게 쓰여 질 수 있다는 상상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 폭력의 각본이 우리를 지배하는 현실이 된다. 더욱 무서운 것은 내가 연기자로써 거기에서 선택하며 결정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지만 이미 그 각본의 경향과 시나리오에 중독이 되어 있어서 그 결정에 자동화되어 있어서 그것마저도 자기 선택이라는 착각을 현실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나는 이 뽀빠이 만화영화에 대해 매우 좋아했고, 동네꼬마들과 함께 5원내고 TV앞에 앉아, 부르투스가 나올 때마다 저 나쁜 놈이라고 외쳐댔으며, 빨리 뽀빠이가 나와주길 간절히 고대했고, 올리브가 위협받고 부르투스의 손아귀에 거의 들어가는 순간에 패닉상태에서 뽀빠이가 아니면 나라도 저 속에 들어가 구원해야한다는 흥분으로 그 영화를 보았다. 마지막 순간에 결투를 통해 뽀빠이가 상대를 응징하는 순간, 정서적 흥분은 정화되고 안심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곤 하였다. 그 이후에 나온 만화영화들, 이를테면, 황금박쥐, 아톰, 배트맨... 등이 다 이런 악한자, 희생자, 구원자 도식(scheme)속에서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뿐이었고 거기에 내 의식과 세포가 완전히 중독되어 있었다.


내가 탄식하는 이유는 이것이 단순히 만화영화의 세계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분단이후의 우리 현실이 현재까지 그대로 이 만화영화 현실과 똑같다는 점이다.

 

1) 남북 및 북미간 대치상황이 그대로 위협주기와 무력으로 공격하거나 방어하기, 상대방의 무력보다 더 힘센 것으로 무장하는 것이 더 효과있고 작동되는 방법이라는 신념과 우리의 게임은 오직 그러한 게임방법외에는 알지 못하며, 다른 방법은 약하거나 의문시가 되거나, 두려움을 벗어나게 하는 데 비효과적이라는 인식이 보편화된다.

 

2) 남한 내의 주요 정치적 갈등은 언제나 이러한 공격자와 피해자 그리고 구원자의 구조속에서 상대방을 보며 다른 역할에 대한 가능성을 상상할 수 없고, 구원자는 상대방을 징벌하는 데 합법적인 역할이 부여된다는 점 그리고 구원자(국가지도자, 엘리트, 전문가 등)의 지나친 역할은 올리브인 당사자들은 거부하거나 저항하면 안 되며, 특히 국가폭력은 구원자로서 그 정당성이 인정된다는 것에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다

 

3) 올리브인 민중은 자기 희생과 고통에 대해 스스로의 지혜와 자원이 충분히 있다는 자각보다는 누군가 대신 해결사로 나서주는 영웅이 필요하며, 그러한 영웅의 역할을 자처하며 나타나는 누군가에 대해 그의 역할에 대해 고마워할 필요가 있고, 그의 힘의 행사의 정당성을 인정하며, 그는 또한 구원자로서 예를 들면, 적폐청산이든 김정은정권으로부터의 보호이든- 그가 무력적인 힘을 행사하는 것에 당연한 기대가 있다. 그런 기대에 응답하지 않으면 그는 구원자가 아니며 어쨌든 올리브는 그런 역할을 할 수가 없다.

 

4) 갈등상황에 있어서 문제의 핵심은 부르투스를 제어하는 것이다. 그 부르투스가 누구로 나타나든간에 좌빨이든, 부패한 보수엘리트이든- 최종 종착지는 부르투스를 비난하고, 그를 없애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에너지와 시간과 돈이 누가 부르투스이고 어떻게 그를 제거할지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그래서 나쁜 놈이 문제이지 커뮤니케이션의 부재가 원인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생각하지를 못한다. 왜냐하면 커뮤니케이션의 문제가 나타나면 꼼짝없이 나에게도 연루되기 때문이다. 난 상대방의 잘못에 관심이 있지, 나에 대한 심리적 부담까지 지고 싶지는 않다.

 

5) 갈등문제를 협력과 신뢰의 방식이 필요하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위협/두려움이 전체 만남의 공간을 지배한다. 그가 책임있고 강한 역할자라면 마땅히 그의 역할은 상대방에 대한 논리적인 비난과 공격의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면 올리브와 관객은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 구원자의 주요한 무기는 언제나 상대방을 무력화하는 공격의 효율성, 자기방어의 논리적 정당성, 그리고 얼마나 올리브에 대한 책임감이 투철한지에 대한 도덕적 의무감과 열정이 요구되어진다.

 

6) 구원자는 공격자에 대해 희생자/약자를 보호하는 것에 있어서 일정한 사랑의 보답을 받을 권리가 있고, 그에 대한 댓가나 희생이 당연한 것을 이를테면 사드부지와 그 유지비용- 올리브가 모르면 이것은 구원자의 문제가 아니라 올리브의 책임이행의 도덕성 문제인 것이다. 안전을 보장해 주었는데 그에 대한 보상은 당연히 기대되는 것이며 이를 거부하면 고스란히 올리브에게 있지, 그것을 요구하는 구원자(미국, 국가지도자, 삼성 등 국민을 먹여살리는 경제엘리트)에게는 의심을 할 수 없다.


7) ‘폭력의 각본은 건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이미 공기처럼 문화속에 깊이 새겨져 있어서 우리의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미치되 그것에 대한 자각이 존재하지 않는다. ‘두려움이 실재이며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안보상황이든, 경제나 복지에서의 문제이든 간에 두려움은 우리의 실재이며, 그 두려움의 눈으로 상대방, 상황, 사건, 관계, 기구를 평가해야 하고, 비난할 대상을 찾으며, 비난할 대상이 생기면 그를 속죄양으로 처리해야 하고, 그래야만 정의가 세워지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안심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우리의 현실이 과거에도 그래왔지만- 완전히 뽀빠이 만화영화에 충실한 복사본이며, 외부 구원자로써 기대가 , 미국의 역할과 며칠 후 대선에서 뽑힐 새 대통령의 역할- 지금처럼 부지와 그 비용에 대한 댓가의 정당성과 국내대선정국에서 상대 진영에 대한 공격하기의 리더십이고, 폭력각본에 따른 두려움안전의 프레임속에 있다면, 거의 나의 예측은 바뀌어지지 않을 것이란 불안한 예감이 맞아질 것이란 예언을 하게 된다. 우리가 폭력각본의 연기자 역할의 덫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그리고 올리브가 공격자에 대한 대화와 구원자의 필요성에 대한 의존에서 다른 상상력을 갖지 않는 한 미래는 없다는 것이다. 적어도 박근혜정부의 반대역할뿐이고 그 폭력각본의 패턴은 그대로라면 우리의 비참함은 아직 더 경험되어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민주주의는 쉽게 상처받을 수 있는 불안한 존재이고 아직 서양 문명권에서는 제대로 실현하지 못한 지속적인 과제이다. 내가 의구심이 드는 것은 구원자의 역할을 맡아온 경찰, 법원, 교도소, 그리고 군대없이도 수천 년의 세월을 별다른 문제없이 지내오고 있는 원주민의 서클민주주의에 대해 깊은 자각을 통한 현재 우리 상황의 대안에 대한 것이다. 어떻게 그들은 자신의 공동체에서 이러한 폭력의 각본과 외부구원자, 희생자 그리고 가해자의 역할을 넘어 다른 방식으로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해 왔는지 매우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아직도 구원자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올리브의 마음이 있다면 두 가지 경종을 울리고 싶다.

 

첫째는, 구원자는 언제나 자기 존재를 증명하려는 올리브의 상황을 필요로 한다. , 망치가 손에 들려지면 박을 못을 찾는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역할이 심심해지거나 자기 역할을 안하고 있다는 것을 평소에도 올리브에게 보여주고 싶지가 않다. 그래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사건이나 기회가 없으면 불안해지고 심심해져서 살 맛을 잃을 수도 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자기가 개입되는 것에 불평을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개입할 기회가 없는 것에는 두려움이 생긴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자신이 끊임없이 올리브에게 필요하다는 상황이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심지어는 그런 상황을 만들어 자신의 존재의 필요성을 증명하기까지도 할 수 있다.

 

둘째는, 정말 이 말까지 하면 올리브가 상처받을까봐 비밀로 남겨두고 싶었는데, 차마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때때로 구원자는 올리브인 당신에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조언이나 가르침을 줄 수도 있는 데 그것을 안하면 어느 순간에는 그 뽀빠이는 부르투스로 나타나 당신을 징계한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당신은 자신의 상처와 고통의 경험으로 인해 이 말을 믿기 힘들 것이지만, 잘 생각해보면 당신의 구원자로 생각한 가정의 파트너가 때때로 자기 말을 안듣는다고 사랑의 이름으로 공격하는 경험을 가졌다면 이 말이 사실일 수도 있을 것이다.

 

차마 당신은 그 파트너가 아무리 그래도 뽀빠이로 보고 싶어 부르투스로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에는 고개를 흔들 것이나, 이 건 확률상으로 가능한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구원자로 좋게 선의로 부탁이나 조언 혹을 가르치려 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곤란한 상황에 있거나 문제가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진심으로 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올리브인 그대가 그의 말을 안 듣게 되면 그는 점점 화가 날 것이고, 나중에는 올리브에겐 자신이 부르투스로 바뀌어 있다는 사실을 그 구원자는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구원자의 입장에 여전히 있다는 사실로 착각할 것이다. 그러한 착각에 올리브인 자신도 정말 전염이 되어 아직도 구원자로 보고 싶겠지만...

 

~~! 이 말이 너무 심하다면 잊어주길... 그러나 난 요즘 누군가 내가 구원자가 되어줄께라고 나에게 나타나면 왠지 싫어지고 의심이 생긴다. 왜 그가 나에게 그런 역할을 해야 하는 데? 그리고 부르투스가 나타나면 지금까지 해 온 것이 너무 싫증이 나서 한 번 다가가서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도대체 뭘 원하는 것이요?” “어떤 의미로 그런 건가요?” “난 달아나기에 지쳤고, 당신도 그리 재미있는 놀이는 아닌 것 같은 데 뭘 우리가 달리 해볼 수 있는 게 없을까요?”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어떻게 이제부터는 부르투스가 나타날 때 상대방의 행동에 온통 신경쓰며 반응하면서 살기보다는 내가 그 순간에 진실로 원하는 것을 어떻게 의식을 주목하면서 그에 기초하여 내 행동을 선택할 것인가이다. 그리고 구원자가 나타 날 때는 뭔가 내가 해볼 수 있는 자원이나 나의 지혜가 무엇이 있는 지를 먼저 생각해보고 그 구원자를 끌어들이지 않는 방법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집단적으로는 올리브들이 자신의 자치역량을 어떻게 키울 것인지, 상호 존중과 함께 협력하는 아름다움의 시스템을 만들어 부르투스도 상호 풍성해지기의 결과에 참여하는 소통과 의사결정 방식을 배우게 되는 것에 대한 꿈이 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고통의 현실을 역할자로 나누어 희생자, 공격자 그리고 구원자의 역할로 고정시켜 견고히 하는 것은 너무도 잔인하고 지칠 때가 되지 않았는가? 나는 누군가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싶고,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시간을 들여 배우기보다는 누군가 구원자로 나서서 내가 배우는 고통을 빼앗아 가는 것에 대해서도 썩 기분이 좋지는 않다. 그들이 부르투스건 뽀빠이건 간에 나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주고 나도 그들에게 집중해서 귀기울이면서, 이 지루한 폭력각본의 놀이말고 다른 것을 통해 타자를 경험하고 싶다. 이제는 너무 지겹고 정말로 내 영혼이 그런 상황들에 다 지쳐있다. 뭔가 신나고 즐거운 그러면서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경험을 해보기를 간절히 원한다. 나 혼자로써는 어렵기에 무대에 함께 있는 다른 연기자들도 그런 것에 함께 만들어가보면 어떨까?

 

나는 요즘 폭력의 각본이 아니라 테리 템피스트 윌리엄스가 말하는 민주주의의 심장을 가진 인간과 그런 사회에 간절한 바람이 있다. 그리고 지금껏 보아온 것이 너무 지겹고 지쳤다. 현실로가 아니라면 꿈이라도 꾸며 살고싶다:

 

인간의 마음은 민주주의의 첫 번째 집이다.
거기에서 우리는 묻는다.

우리는 공정할 수 있는가?
우리는 너그러울 수 있는가?
우리는 단지 생각만이 아니라 전 존재로 경청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의견보다는 관심을 줄 수 있는가?

살아 있는 민주주의를 추구하기 위해
용기 있게,
끊임없이,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동료 시민을 신뢰하겠다고 결심할 수 있는가?

 

(20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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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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