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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본문: 4:1, 5-9; 5:17-19

 

                                생명과 안전을 위한 하나님의 규정과 마음으로 지키기

 

 

모세는 백성들 앞에 서서 약속의 땅에 그들이 들어가기 앞서 권고한다. 그들은 사막에서 여행을 해왔고, 전체 한 세대가 없어졌고, 하나님이 그들을 인도하는 땅에서 새로운 삶을 직면하고 있다. 그들이 들어가서 약속의 땅을 소유하게 될 것이라는 율법을 듣고 이를 지켜야 함을 권고받는다. 이런 복종에서야 비로소 그들은 다른 나라들에게 그들이 지혜로움을 증거하게 되는 것이다.


이들 법들은 생명을 주는 것이다. 그것들은 출애굽과 사막에서 발견된 하나님과 역사에 대한 구명선(life-lines)이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은 빛과 희망으로서, 그들의 관계, 계약, 결정 그리고 삶의 방식에 있어서 하나님의 힘을 증언하며 하나님의 현존하심으로서 나라들 가운데 거하게 된다.

모세는 그의 마지막 의지와 유언을 남기고 백성들로 하여금 그들이 누구이고 그들에게 하나님이 무엇을 하셨는지 잊지 않기를 간청하며 그들의 역사를 잊지 않기를 바란다. 율법을 주의깊게 지키는 것 이외에 그들이 기억함을 확실히 하는 한 방법은 그들의 자녀와 후세 자녀들에게 가르치고 그것을 말씀, , 그리고 공동의식을 통해 전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대대로 그들의 자녀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축복이다-하나님의 뜻을 그들의 돌판에 새기고, 계약의 백성으로서 이제 마음과 삶에 새기는 것. 그들은 나머지 민족들이 읽고 놀라워 할 살아있는 교과서가 되어 그들에게 그토록 가까이 하시고 그들과 더불어 그런 지혜와 지성을 나누는 이 하나님을 일별하여 볼 수 있게 하게 한다.


율법없이는 그들은 생명, 희망, 방향 그리고 강함도 없다. 그들은 서로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된다. 그들이 이 땅에서 복종을 배우고 사막의 교훈을 잊지 않는 것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신실함, 복종, 신뢰, 그리고 자신들의 지도자에게서 하나님의 음성을 주목하기. 그들은 자신들의 옛 생활방식으로부터, 노예됨으로부터 그리고 하나님이 약속보다 덜 한 것에 정착하는 것으로부터 전환하여 끝나게 된다. 그들은 기억하고, , 불복종 그리고 자신의 사명을 잊어버림에 의해-서로를 이집트에서 다루었던 것처럼- 분리되었던 것을 다시 떼어 붙이는 실습을 해야 한다. 그들은 다른 나라들과 달라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몫이다.


복음서에서 예수는 자신이 율법이나 예언자들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님을 명확히 한다. 그는 대신에 그것들을 완성시키러 왔다. 예수는 율법의 가장 작은 문자라도 지키고 폐지되지 않게 한다. 예수는 자신의 사람들에게 모세가 한 것처럼 기억하기를 탄원한다: “이 계명의 가장 의미없는 것을 깨뜨리고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하도록 가르치는 자마다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리워질 것이다. 이 계명들을 성취하고 가르치는 자는 누구나 하나님 나라에서 위대하게 될 것이다.” 예수는 모세보다 더하시고 사람들을 이집트의 노예생활에서 해방한 자보다, 예언자보다, 율법보다 더 크신 분이다. 예수는 자유, 복종, 온전성(wholeness) 그리고 정의의 영이시다. 예수는 심지어 모세를 통해 백성들에게 주어진 율법에서 계약의 하나님보다 더 친밀하시다. 예수는 율법이며 예수의 어떤 이해도 율법에 대한 소중히 여김과 주의깊은 충실함을 가정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몸이 되셨다.


심지어 율법의 가장 작은 글자를 지키는 것은 홀로 되어질 수 없다. 이런 종류의 복종과 거룩함은 우리가 예수에 매인 공동체에서 살고 있음을 가정한다. 이 공동체는 자유로워지고, 매일 신뢰하며 살고, 희망을 실천하고 음식, , 방향 그리고 생존을 위해 하나님의 섭리에 의존하는 것을 배우는 사막에서의 하나님의 백성을 반향(echo)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려고 한다면 우리는 함께 배우고, 함께 여행하며, 함께 기도하고 서로를 지원해야 한다. 우리는 함께 집으로 간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가지 못한다. 우리 모두는 서로의 부분이다. 우리는 말씀을 듣도록, 함께 듣도록 부름을 받았기에 서로에게로 방향을 돌려서 긍정, 확신 그리고 용기를 제공할 수 있다. 명료함, 끈기, 복종, 강함은 일치로부터, 공동체로부터 온다.


우리는 율법을 사랑함으로서 시작하고 그리고 함께 율법의 가장 작은 글씨가 개인적으로 그리고 함께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을 찾아 나선다. 율법은 한 사회의 가치와 사람들을 보호하고 동시에 보호가 가장 필요한 이들을 소중히 생각하는 그들의 실천에 매진하는 이들을 가르친다. 예를 들면, “너는 살인하지 말라는 우리 자신의 가정, 부족, 혹은 민족에 대해서만 적용하기 위해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작은 문자는 우리에게 우리가 누구든-친구, 이웃, 낯선 , 잘못한자 혹은 적- 죽이지 말하고 할 뿐만 아니라 위험, 질병, 폭력, 권력의 남용으로부터 가장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자들, 증오, 국가주의, 인종주의 그리고 빈곤의 그물에 사로잡힌 이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우리는 파괴와 폭력을 비폭력으로, 온순함과 용서 그리고 용기로 저항하고 창의적이고 상상력 있는 희망을 힘없는 이들에게 준다. 율법의 가장 작은 글자에 복종하는 것은 우리가 모든 인간, 상황, 나라에 있어서 하나님을 공적으로 존경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음을, 하나님의 성령께서 한 세대에서 다음세대로 무엇이 실천되어져야 하고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지를 정의하도록 하는 의도가 있음을 드러낸다. 그렇게 삶으로 율법은 우리의 인간성을 심화시키고 하나님의 힘을 모든 삶의 영역으로 확대한다. 예수는 온전한 영과 진리로, -단지 여기 저기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기를 의도하신다.


예수는 명확하다: 율법의 가장 작은 부분이라도 깨뜨리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자신의 위치를 줄이는 것이다. 예수의 나라에서 위대한 자는 복종에, 하나님의 공동체로서 율법의 의미와 의도를 깊이 탐구하는 데 기반을 둔다. 우리는 성령과 예수의 마음으로 율법을 해석하는 것을 배우고 그것을 예수 자신의 호의와 존경으로 실천하고자 한다.


어떻게 우리는 그런 복종을 배울 것인가? 먼저, 우리는 그것을 공동체에서 긴 오랜 시간에 걸쳐 배우고 우리를 가르치기 위해 오늘날 자신의 입에 하나님의 말씀을 지닌 예언자들을 통해 배운다. 우리는 그것을 성서에서, 설교와 우리 주변의 세상에서 배운다. 우리는 그것을 율법에 복종하지 않는 결과인 거친 방식에서 배우며, 율법이 폭력과 불의로부터 보호하고자 하는 가치와 백성들에게 의도하는 것에 못미치는 것에서 배운다. 우리는 역사속에서 그리고 뼈를 깎는 질문에서 그것을 배운다: 어떻게 대학살(holocaust)이 하나님, 예수 그리고 성삼위를 믿는 나라에서 일어나는 것이 가능했는가? 어떻게 작은 대학살들이 보스니아, 르완다, 아프리카의 굶어가는 나라들에서, 우리의 도시와 학교 그리고 가정의 점증하는 폭력에서, 고국과 해외에 있는 그룹의 테러에서, 한 나라가 다른 나라와 대적하는 데서, 핵 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숙고하는 나라들 속에서 지속될 수 있는가? 어째서 우리는 이런 선택을 하고 그것들이 우리의 이름으로 일어나게 하는가? 어째서 우리는 편견, 증오 그리고 사악함이 라디오, TV 그리고 정치에서 지속할 수 있게 허락하는가? 어째서 우리는 두려움, 불안함 그리고 신뢰없음이 우리의 삶과 의사결정을 지배하도록 하게 하는가? 죄는 세상의 혼란, 파괴, 그리고 정의의 뿌리 원인이고 죄는 우리 삶의 뿌리에 또한 존재한다. 요한은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만일 우리가 죄없다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고 진리는 우리안에 있지 않게 된다.”(11:8). 우리는 이런 죄의 현실에서 우리 자신을 구할 수 없다. 그러나 만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이미 구원받았다(7).

다니엘 베리건(Daniel Berrigan)하나님의 악몽에서 말한다:

 

세상의 생태가 도덕적 악의 결과로 파괴된다. 이것은 계시록의 견해이자 창세기 그 자체의 반향이다. 아무도 분리되어 구원받지 못한다. 우주의 어떤 부분도 어느 다른 것과 떨어져 파괴되지 않는다: 도덕적 질서에서 악은 우주의 파괴에 결과를 미친다.

어느 것이 혼자 우주에서 뿌리, 촉수, 외적인 도덕적 진동없이 선다는 것은 단순히 상상할 수 없다. 그리고 비슷하게 아무도 홀로 다시 태어날 수 없다.

죄는 적절히 그리고 성서적으로 이해하자면 일대일에 기초하여 홀로 판단될 수 없다. 일대일은 모두대모두이다. 회사의 죄는 단체의 죄이다.

도덕적 악, 재산우상숭배(property-idolatry)는 세계의 복지를 위협한다. 폭탄은 결코 우연한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를 통과하여 오는 것이다-그런 공포에 앞서서 폭탄은 우리 내부에서 폭발한다.

 

베리건의 말은 죄가 무엇이고 그것의 결과가 우리에게 그리고 세상에 무엇인지에 대한 보통의 상투어를 넘어 놀랍게 하고 마음을 흔든다. 죄는 결코 개인적인 실패가 아니다. 죄는 전 역사와 예언적 전통에 따르면 백성 전체 백성에게 적용된다. 이사야는 말한다: “나는 부정한 입술의 사람이라. 내가 부정한 입술의 백성가운데 거하고 있다”(6:5). 세상에서 잘못 된 것은 우리에게서 잘못된 것이고 우리 모두는 개인이자 공동적 구조로서, 정치, 경제, 사회계층, 교회, 가족으로서 철저한 개혁의 욕구, 회개가 필요하다. 어느 누구도 어느 것도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이러한 권고로부터 배재될 수 없다.


우리는 물론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과 그분의 명령, 의지 그리고 섭리를 기억하며 시작한다. 이스라엘은 그들이 하나님께 범죄한 후, 우상숭배하고 불평하고 하나님을 시험한 후에조차 사막에서 돌봄을 받았다. 매일매일 그들에게는 맛나와 메추라기 그리고 물이 주어졌다. 매일의 신뢰, 희망, 기도 그리고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수용이 그들을 사막에서 이끌었다.


쥴리안 노르위치(Nulian of Norwich)는 말한다: “죄는 필요하다 그러나 모두는 잘 될 것이다. 모두는 잘 될 것이고 모든 사물은 잘되어질 것이다.” 쥴리안은 어려운 시기에, 흑사병이 있던 시기에 살았고 이 말들은 오늘날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는 만큼 그녀를 깜짝 놀라게 했음이 틀림없다. 그녀는 또한 말했다: “우리의 겸손한 주님께서는 그의 종들에게 그들이 종종 그리고 슬퍼하며 넘어질지라도 절망속에 있도록 원하지 않으신다....영혼이 우리 주 하나님의 친절과 사랑을 보면 볼수록 그는 죄를 싫어하게 된다.” 우리는 확신, 희망, 신뢰 그리고 먼저 하나님을 함께 향하도록 권고 받는다. 그렇게 함에 있어서 우리는 긍휼과 자비를 배우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한다. “기도는 희망의 숨이다. 우리가 기도하기를 멈출 때, 우리는 희망하기를 멈춘다.” (돔 페드로 카살다리가, Dom Pedro Casaldaliga)


그러고서 우리는 우리의 기도에서 실용적으로 우리가 누구에게 속한지를 기억하며 행동한다. 방해받은 삶 An Interrupted Life에서 에티 힐레숨(Etty Hillesum)은 대학살에서 강제이송에 직면하여 이렇게 썼다:

 

나는 하나님, 당신이 내 강함이 썰물처럼 빠져 나가는 것을 멈추도록 돕겠습니다, 비록 미리 그것에 대해 보증할 순 없지만. 그러나 한 가지는 내게 점점 명료해 지는 것이 있습니다: 당신은 우리를 도울 수 없다는 것, 우리가 당신으로 하여금 우리자신들을 돕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을.

심지어 이런 마지막 단계에서조차 당신을 호위하는 대신에 안전한 곳에 진공청소기, 은수저를 놓는 어떤 사람들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오 하나님, 그리고 그들의 몸을 안전한 곳에 놓기를 원하지만 수천의 두려움과 쓰디쓴 느낌을 위한 쉼터이외에는 이제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말합니다, "나는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손아귀속으로 나를 집어넣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당신의 팔안에 있는 누구도 그들의 손아귀에 있지 않다는 것을 그들은 잊고 있습니다.

 

예언자를 주시하고, 율법과 막아주는 보호를 간절히 바라는 이들을 보호하는 데 있어서 그리고 모든 것이 하나님에 달려있는 것처럼 기도하고 모든 것이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처럼 일하는 데 있어서”(십자가의 성 요한) 율법의 작은 글자라도 우리는 소중히 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우리는 어느 날 하나님 나라에서 위대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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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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