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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서 거룩의 실천으로서 화해

 

본문: 18:21-28, 5:20-26

 

에스겔서를 읽으면서 보이는 것은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악으로부터 돌아서서 선을 행하여 생명을 얻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이들 그리고 선으로부터 돌아서서 악을 행하여 죄로 죽어서 하나님이 그들의 손실을 슬퍼하는 이들이 그것이다. 걸어갈 두 길이 있다. 선과 덕스런 행위의 길가 신앙을 깨뜨리는 이들의 길이다. 하나는 생명으로 인도하고 다른 것은 죽음으로 인도한다.


에스겔은 우리의 반응을 표현한다. 그 반응은 세대와 경계를 넘어 똑같이 남는다. 우리는 말한다, “‘주의 길은 공정하지 않다!’ 이스라엘의 가문이여, 이제 들을지라: 공정하지 않은 것이 나의 길인가, 아니면 오히려 너의 길들이 공정하지 않더냐?” 우리는 에스겔의 시대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삶에서 앞뒤로 가볍게 넘어지고, 선을 행하다가 악을 행하고 또 선을 행하는 것을 합리화하는 것에 쉽게 떨어진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일편단심이어야 한다, 마치 화살이 활을 떠나면 한 길로 가듯이. 하나님의 백성에 속한 이들에게, 이스라엘과 그리스도에로 세례를 받고 이제 하나님 안에 그리스도와 사는 우리와 같이 하나님과의 계약을 한 이들은 오직 한 방향만이 가져야 한다. 집으로 돌아가서 하나님과 서로 교제를 나누는 데로 인도하는 길이 그것이다. 다른 것을 선택하는 것은 신앙을 깨고 하나님을 모욕하며 우리를 부르시는 분에 대한 헌신한다는 우리 자신의 말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선택이다. 때때로 예이고 때때로 아니오일 수 없으며, 상황이 더 나쁜 것은 내가 지금 선택해야만 하는가이다. 하나님의 현존을 추구하는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하나님과 관계 속에 있는 것은 우리의 생명에 대한 선택에 있어서 순수하고 변치 않는 마음의 의지로 있는 것이다. 예언자의 이 솔직하고도 거센 경고는 우리가 실제로 얼마나 신실한지를 우리에게 묻는다. 편할 때만 우리는 신실한가? 일이 잘 풀리고 아무런 장애가 없을 때인가? 세상 나머지 사람들 혹은 최소한 우리 친구들이 우리와 협력할 때인가? 우리가 줏대 없이 살 때인가? 아니면 우리의 신실성이 집중되어 있고, 열정적이며, 헌신하고 있고, 일관되며, 더욱 더 일상적으로 완수하려 하고 있어서 돌이 심연 속으로 떨어질 때 물에 만들어지는 패턴처럼 퍼져가고 있는가? 이들 문제를 보는 다른 방식은 신실성의 언어를 거룩함으로 바꾸는 것이다. 복음서에서는 예수가 제자들에게-우리에게- 우리의 거룩함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혹은 그 외 사람들보다 능가해야 한다고 하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이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예수는 어느 이전의 예언자 못지않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예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율법에 복종함에 기초하여 어느 정도의 거룩함을 실천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예수는 그의 종교적 공동체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는 수많은 이들 율법을 취해서 그것들의 의미를 확장시킨다. 그는 에스겔처럼 삶과 죽음의 이슈로 시작한다.

 

살인하지 말라. 살인하는 자는 누구든지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조상들에게 하신 명령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다른 사람에게 성을 내는 사람은 재판을 받게 되며 다른 사람을 향해 폭력적인 언어를 쓰는 사람은 누구든지 산헤들린에서 대답해야 하고 네가 다른 사람에게 모욕을 한다면 너는 게헨나의 불에 처할 것이다.

 

예수는 살인자라고 생각되는 것의 경계를 확장한다. 물론 그것은 생명에 대한 신체적 파괴이지만 또한 말로 표현되는 분노, 미움 혹은 격노함이며 공적인 태도만큼이나 파괴와 분리에 대한 내적인 생각도 그렇다. 예수는 형제란 단어를 사용한다. 이는 그의 추종자가운데 모든 이들이 그의 가족에 친밀하게 관련되어 있고 모든 인간은 형제자매로 그리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하는 밀접한 결합을 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기 위함이다. 예수와의 연합에 댛나 요구는 뿌리에서 타인들에 대한 관계와 책임을 변화시킨다.


우리가 서로와 함께 하는 질적인 면은 제단에 우리의 선물을 바치기 전에 주의깊게 점검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어느 누가 우리에 반대하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음을 회상한다면 즉시 가서 화해해야 한다. 우리는 시간을 소비해서는 안된다. 화해는 예배에 앞서서 취해진다. 사실상 우리는 만일 우리 중 어느 누가 다른 인간과 불화가 있다면 예배, 기도, 하나님이 현존 앞에 혹은 공동체 앞에 서거나 할 수 없다. 그리스어로 화해라는 단어는 다시 함께 간다는 것을 뜻하고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에 오기 전에 하나가 되어야 됨을 명령받는다

 

예수는 우리 모두가 따라야만 하는 화해의 과정에 대한 윤곽을 밝히기를 계속한다. 먼저 우리는 화해해야 할 이에게 가서 그것을 행할 시간을 잃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삶에서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이다-서로 교제하며, 평화롭게, 공정하게 사는 것이다. 우리는 법정에 가기 전에 화해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 유죄판결로 가는 심판과 처벌의 이러한 점진적인 일련의 상승에서 우리는 예수가 여기 지상에서 우리의 길들에 대해 단지 말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 또한 말하고 있다.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해결하라 그렇지 않으면 너이 상대자가 너를 간수에게 넘길 것이고 그는 너를 감옥 속으로 던져 버릴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경고하노니, 너희가 마지막 한 푼까지 갚을 때까지 석방되지 아니하리라.”


예수의 말에서 나오는 이 말들은 잔인하고, 위협적이고, 힐문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그렇다.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 칭하는 이들에게, 빛의 추종자라고, 세상에서 용서의 복음의 소지자라고 하는 이들에게 특히 그렇다. 다른 이들이 우리와의 관계에 있는 곳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왜냐하면 예수의 심판에 대한 기준에 따라 우리가 거룩하고 덕이 있는지 아닌지를 그것은 그 어느 다른 것보다 더 드러낸다. 이것은 거룩함에 대해, 신실함에 대한 것이며 예수의 말은 율법에 따라 거룩 하려는 의도를 가진 이들을 능가하라는 명령으로 시작한다. 모든 거룩은 생명과 함께 시작하고, 그것을 지키고 그것을 존중하며 양육한다. 분노, 경멸, 폭력적인 언어, 폭력의 표현, 타인으로부터의 고의적인 분리 그리고 인간성의 결여는 모두가 용서, 자비, 그리고 화해의 자격을 지닌 예수의 가족의 결속을 절단한다.


명령은 부인하는 측면과 긍정적인 전유 둘 다를 가지고 있다. 퀘이커의 초기 교부인 윌리엄 펜(William Penn)은 말하였다.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어떤 친절이 혹은 내가 어느 동료에게 할 수 있는 그 어떤 선한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내가 그것을 지금 하게 하라 그리고 그것을 연기하거나 무시하지 않게 하라. 나는 이 길을 다시 걷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다른 사람의 참살이에 대해, 서로 평화롭게 사는 것에 대한 관심이 태도이다. 헨리 워즈워드 롱펠로우(Henry Wadsworth Longfellow)는 말하였다. “우리의 적들의 비밀스런 역사를 읽는다면 우리는 서로 각자의 삶에서 모든 적의를 풀어버릴 슬픔과 고통을 발견할 것이다.” 살인, 격노함, 증오, 경멸 그리고 힘의 남용은 다른 사람을 우리와 구별하여 우리가 그들을 인간으로서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발견되어진다.


예수의 왕국에서는 타인을 비인간화하는 것은 경건에 대항하는 죄, 신실한 덕의 삶에 대항하는 죄이다. 우리가 미워하고, 우리 마음속에서 살해하고, 경멸하는 이들은 우리 영혼속에 있는 칼들을 그만큼 많이 비춰준다. 안더 기데(Andre Gide)는 이에 대해 말했다. “나는 친구에게 많이 빚졌다. 그러나....심지어는 내 적에게 더 많이 빚졌다. 진정한 사람은 애무아래서보다 침(sting)아래서 더 삶에로 도약한다.” 

 

예수는 우리의 행동에 대해 우리가 책임지는 것에 관심하며 그러나 심지어 더욱 일상의 기반에서 모든 다른 사람에게 책임지는 것에 관심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홀로 서도록 허락되지 않았고 우리가 다른 사람을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그들과 함께 서기를 거부한다면 그 말씀을 들을 것이란 기대를 할 수 없게 된다. “우리는 모두 모든 다른 사람에게 모든 것에 대해 책임이 있다.”

거룩함에 대한 이러한 직무는 덕스러운 행동 이상의 것을 포함한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예배와 서로에 대한 자비의 상호 엮기의 태도에서 구축된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드리는 똑같은 존경으로 서로를 대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율법에 대한 복종은 취해진다. 그러나 우리는 율법을 어기는 데로 인도되거나, 율법을 어기거나, 율법이 보호하기 위해 의도된 사람들의 가장낮은 단계에 있는 이들을 잃어버리는 것에 주의 깊어야 한다. 우리는 예수의 길에 집착함에 의해 율법으로부터 방면되지 않았으며 우리는 율법의 더 영혼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서 율법이 영으로 빛나고 하나님과 세상 앞에서 우리 자신의 거룩함의 깊이를 드러내도록 해야 한다.


상호응답적인 시편은 하나님과 다른 인간 둘 다를 하나님의 견해로부터 오는 관점에 놓는다: "오 야훼여, 당신께 우리의 죄를 감찰하시면 누가 그것을 견딜 수 있나이까?" 이러한 인정과 고백은 기도이자 하나님 앞의 제단에서 우리 자신의 위치에 대한 통찰로서 서고 우리에게 우리와 다투는 데 좋은 원인을 지녔을 지도 모를 누군가를 기억하게 한다. 유일한 응답은 시간을 지체 않고 가서 하나님과 화해하는 것이고 그분은 우리가 우리 인생의 한계로 이끄시고 함께 제단으로 향하게 하신다.


출처:<Lent: The Daily Readings Reflections and Stories> Megan McKe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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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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