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글 수 5

                                                             >> 서클 인식론의 터전: 존중하기 <<

 

서클은

거칠고 힘든 것으로

시작해서

아름답고 선한 것으로

나온다.

익명의 서클 진행자 -

 

 

무엇이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가?

 

서클에 있어서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은 참여자들이 느끼는 안전한 공간 안에서의 존중의 분위기이다. 내가 경험한 퀘이커의 펜들힐의 서클모임과 필리핀 민다나오의 중앙고지에서의 원주민들의 모임에서 특징적인 인상은 존중의 신성함과 따스함의 흐름 그 자체였다. 그것은 내면의 태도로 머물러 있지 않고, 내 눈으로 목격되고 있는, 이른바 공기 속에 타고 흐르는 에너지로서 전체를 감싸며 흐르며 모임을 휘감고 있었다. 그곳은 아주 독특한 그리고 일상과 구별된 침묵과 경청의 비가시적인 결들이 여러 겹으로 포개어져 밀도높은 에너지가 빈 공간을 꽉 채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무엇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정보능력을 넘어선 안전(security)과 복지(well-being)와 연결된 문제를 내포한다. ‘내가 무엇을 알 수 있을까?’무엇이 알 수 있게 만드는가?’와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그 앎의 내용이 과연 중요하고, 소중함하다는 것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와도 연결되어 있다. , 인식하는 것은 인식하게 하는 것과 더불어 그 인식한 내용이 중요함을 무엇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가하는 가치판단까지 내포하는 포괄적 질문을 내포한다. 우리의 배움, 성장 그리고 변화가 이해에 기초하고 있다면 그 이해는 무엇이 가능하게 하는가, 그리고 그 이해의 수많은 내용 중에 무엇이 소중하다는 것을 어떻게 우리는 아는가?’ 이는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갈등과 폭력의 영역에서 작업하던 나에게 다가오는 것은 갈등당사자가 서로에 대한 이해를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엇이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지는 매우 큰 숙제거리가 되어왔다. 그리고 더욱 조심스러워지는 것은 논리와 설명이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는 기존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무력감의 현상에도 직면하게 되었다. 내가 발견한 모순적 상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갈등해결이나 그 전환은 사람의 심성의 변화(성격의 변화)와 인과관계가 있지 않다. 완고한 마음이나 성품을 부드럽게 바꾸는 전략은 비효율적이거나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목표에 도달하기도 전에 포기되어진다. 그러므로 갈등상황을 줄이고자 하는 목적의 인성교육은 대부분 실패로 끝나게 된다.

 

둘째, 갈등과 폭력의 상황에 대한 해결책에 있어서 상호 이해의 단절이 열쇠인 것 같은데, 그 이해를 증진시키려는 논리적 설명은 무력함을 경험하게 만든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객관적(?)) 자세의 논리적 설명의 시도는 기분나빠하는 상대방의 마음을 녹일 수 없다. 내가 상담한 부부간의 갈등이나 집단적 갈등은 오히려 각자의 옳고 그름의 정당성의 덫에 의해 더욱 얽혀진 사례들이었다. (하나같이 놀랍게도 그 덫에 걸려 처음 갈등 시발점보다 더욱 얽혀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갈등해결이 성품이나 인성의 변화보다는 이해에 기초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그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이성, 논리, 설명으로는 역부족이라는 데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서클로부터 얻은 지혜는 그러한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궁극 터전은 바로 존중(respect)이며, 그러한 존중이 상대방의 자동 반응(reaction)을 선택적인 응답(response)으로 바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이해이전에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존중이며, 존중은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선험적 기반, 곧 이해 경험을 위해 미리 존재론적인 기반으로 존중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존중은 삶의 성스러움과 인간화를 위한 기반이다

 

앞서 잠시 언급하였듯이 존중은 단순히 인성교육이나 도덕교육에서 주목되는 윤리적 실천의 덕목으로 제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존중은 이는 낯설은 주장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사물, 관계, 사건, 상황을 이해하는 인식론적 기반인 것이다. 아니 더 나아가, 만물과 사건의 상호의존성이 동양종교와 양자물리학의 실재(reality)에 대한 공통된 이해라면, 그것은 바로 존중의 존재론적 특성을 말하는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 이렇게 존중은 윤리적 실천의 덕목의 제한성을 넘어 인식적이고 존재론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신성한 사랑의 에너지인 존중은 타자를 향해 열림으로써 자기-초월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타자와의 관계에서 신성함을 경험한다. 존중의 빛은 광석으로 있는 각자의 존재에 보석의 빛남을 주목하게 하고 이를 반사시키며, 전체 공간과 시간의 흐름을 빛의 파동속으로 참여시킨다. 존중은 이런 점에서 변형(transformation)의 연금술적 특성을 지닌다. 시간의 무거움과 공간의 유약성을 존중은 환대하고 연결하여, 연약함을 돌보고, 전체의 관계망속에서 재-정위시켜 상승과 도약을 가능하게 한다. 존중은 시간의 무거움과 공간의 제약성에 무제약적 개방성을 불어 넣으면서 삶의 신성함이라는 에너지를 공급한다.

 

존중을 통해 사물(그것), 논의 주제(아젠다)는 그것됨(it-ness)을 넘어 파커가 말하듯 위대한 사물(great things)의 은총을 경험한다. 위대한 사물이 지닌 진리성이 우리를 인도한다. 존중을 통해 타자의 타자됨(Other-ness)는 인식의 감옥이 아닌, 실재를 보는 창(window)이 되는 선물을 경험한다. /그녀가 친밀한 당신(YOU)’의 인격성을 발하면서 안전과 지지의 공감대라는 신성함을 경험한다. 위대한 사물의 진리성과 타자의 인격성은 나의 정체성과 함께 엮어진다. 그래서 나의 에고의 가면(마스크; 페르조나)이면에 있는 내면의 참자아의 신성함으로부터 오는 울림과 진동의 목소리가 점차 강화되고 뚜렷이 들리게 된다.

 

-타자-그것이 신성함의 손짓으로 변형되면서 비로소 나는 두려움(위협과 공포)과 수치심의 덫으로부터 점차 벗어나 인간화라는 휴머니티를 회복한다. 휴머니티란 원래 땅의 속성(the earth-ness)의 회복을 말한다. 이는 민감성/유약성의 되찾음이며, 강함이 아닌 연약함, 추락과 실패라는 혼돈됨(chaos)의 수용, 몸의 지식으로써 감정/감각에 대한 주목하기, 유한성의 선물에 대한 인식이 포함된다.

 

존중은 하늘을 향한 자기초월적인 인식론을 준다는 점에서 신성하지만 반면에 땅의 속성에 대한 감싸안음을 향해 다가간다는 점에서 우리를 인간화한다. 그러한 인간화는 일상의 만남, 사건, 상황에서 환대와 경청, 연결과 능력부여(힘을 주기) 등을 통해 일어난다. 이를 통해 소통(communication), 마음의 교제(communion) 그리고 돌봄과 지지의 공동체(community)가 현실화 된다.

 

존중은 마음의 습관을 근본적으로 바꾼다. 우리가 성취하기와 원하기라는 마음의 근본적 정향으로서 얻기와 소유라는 결핍의 지향성을 관성적인 습관으로 지속해 왔다면, 존중은 그러한 마음의 지향성을 변형시킨다. 그것은 성취하기원하기를 넘어 열기라는 역동적 상호의존성을 통한 마음의 현존성으로 바꾼다. 이렇게 마음의 습관을 성취와 원함의 지향성에서 열기의 현존성으로 바꿈으로서 충분함과 풍성함을 출현시킨다.

 

 

작동 메커니즘으로써 존중의 프로세스

 

존중이 영성의 핵심인 경이로움에서 흘러나오는 신성한 사랑의 에너지이며, 역동적 상호의존성에 기반한 마음의 현존성인 열기(개방성)’이라는 실재로 인식된다면, 존중은 개인의 휴머니티가 소유할 수 있는 것으로 볼 수 없다. 그것은 우리의 인간성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현존하며 자신을 개방함에 의해서 출현하는 실재이다. , 소유하지는 못하지만 그것을 향하여 자신을 열어 놓을 때 실재로 경험되어지는 살아있는 그 무엇(what-ness)인 것이다.

 

존중이 소유가 아닌 개방성에서 출현하는 살아있는 실재라고 인식할 때 우리는 두 가지 삶에 대한 통찰을 얻게 된다.

 

첫째는, 개방이라는 것이 관계의 역동성에 대한 사이’(between-ness)경험에 주목하게 만든다. 이것은 나, , 그것이라는 고전물리학에서의 질량(개인의 도덕적 품성)A지점에서 B지점에로의 움직임(불만족상태에서 만족한 상태로의 이동)에 대한 인식을 넘어서는 것이다. 오히려 나, , 그것이 펼쳐지는 공간과 그 공간에서 흐르는 관계의 장을 주목하게 만든다.

 

집은 개별적 물질인 흙, 모래, 재목, 철근 등의 총합이 아니다. 그것들이 모인다고 집이 되는 것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것들 총합위에 그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구조(structure)이다. 구조는 사이곧 관계의 역동성이다. 집의 형상이라는 관계의 역동성이라는 전체성이 개별성(재료들)을 결합함으로 이루어진다. 관계이 구조가 변형될 때, 질량과 A에서 B지점의 이동없이도 양자도약과 더불어 빛(광자)이 발산된다. 그래서 전체가 바뀐다. 그것은 질량과 움직임과 상관없이 일어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관계의 역동성을 작동 메카니즘이라 부를 수 있다.

 

둘째는, 소유하지는 못하지만 개방하면 출현할 수 있다는 말은 자유와 성장에 있어서 큰 위로가 된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져야 한다면 거기엔 노력이 필요하고, 그 노력에는 도달되지 못한 기간 동안의 힘들음과 절망의 에너지가 표출된다. 트라우마 영역에서는 이를 호전반응이라고 부른다. , 극복되어 호전되기 전까지 증상이 더 심해지는 것을 말하는 데 이 호전반응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가 꺾이고 회복을 위한 노력을 중단하기도 한다.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개방의 문제라는 사실은 덕성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임을 알려준다. 소유와 축적의 문제에서 눈뜸의 문제라면 물론 이것도 눈감고 있으려는 사람에게는 어려울 수도 있지만- 최소한 소유와 축적의 문제가 안 풀려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겐 다른 선택의 가능성이 열린다. 덕성의 문제로 소유하기에서 개방하기로 주목하기를 돌리는 것은 낯설기는 하지만 훨씬 더 자유와 성장을 돕는다. 왜냐하면 자연의 생태계에서 자유와 안전은 자기를 열어 소통하는 능력 속에서 일어나고 있고, 마음의 생태계도 이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열어 이미 자연과 마음속에 있는 존중의 메커니즘을 작동시키면 그러한 자유와 성장은 그대로 일어난다.

 

그렇다면, 존중의 메커니즘은 어떤 것이며, 어떻게 작동되는 것인가?

 

서클은

거칠고 힘든 것으로

시작해서

아름답고 선한 것으로

나온다.

 

존중의 메커니즘이란 거칠고 힘든 것의 입력(input)아름답고 선한 것의 출력(output) 사이에 있는 변형의 프로세스를 말한다. 인공두뇌학의 한 변형인 컴퓨터를 비유로 하자면, 입력과 출력간에 프로세싱이라는 소프트웨어의 메커니즘을 통해 모든 거칠고 힘든상황을 아름답고 선한상황에로 변환된 결과를 출력시키는 것이다.

 

갈등과 폭력의 자극 상황이라는 입력에 대해 기존의 갈등 대응방식이 손상과 파괴, 분리와 죽임의 출력을 가져왔다면 그것은 의식되지 않은(습관화된) ‘비난과 강제의 메커니즘을 프로세싱으로 작동시킨 결과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비난과 강제의 메커니즘을 대신하여 존중의 메커니즘으로 데이터를 프로세싱하면 그 결과는 변형되어 출현하게 된다.

 

존중의 메커니즘으로 과정을 세팅(프로세싱)하는 요소들은 무엇인가? 서클대화를 통해 그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존중이 서클대화에서 펼쳐지는 모습은 다음과 같은 요소를 통해 작동된다.

 

첫째는 환대와 연결하기이다. 문제아, 적대자 및 문제상황을 거부하지 않고 환대하며 성장과 배움, 전체성의 진리에 대한 이해를 위한 기회로 맞이한다. 그리고 자신을 열어 상대방, 문제와 연결하여 상대/그것의 진실을 듣는다.

 

둘째는 소통이 안전한 공간의 형성이다. 관계는 공간안에서 진실이 직조(weaving)을 통해 출현하는 의미의 소통이 주는 선물이다. 따라서 관계는 공간안에서 주어지며 그 대화의 공간이 안전할 때, 자신의 약함과 취약성, 진실의 목소리가 반향을 일으키며 공명하게 된다. 공명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의 형성은 존중의 메커니즘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셋째는 경청과 열린 질문의 중요성이다. 강제와 비난은 영혼의 폭력을 일으키며 공간의 안전을 해치는 주범이기도 하다. 상대방의 심리적·정신적·영적 공간을 침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침묵, 경청 그리고 열린 질문이 요청된다.

 

넷째는 함께 탐구하기의 동반의 여정이 필요하다. 시간을 갖고 서로의 이야기를 비추고 들어주면서 이야기가 지닌 내면성, 진실성 그리고 희망과 절망이 탐구되고 서로를 직조하도록 동반(companionship)의 여정을 갖는다. 동화에서 동굴탐험은 일정한 시간동안은 두려움과 나약함 그리고 실패와 좌절의 경험인 어둠속으로 들어감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어둠속으로의 탐험은 경청의 동반자가 있을 때 두려움을 극복한다. 그리고 그 동굴탐험을 통해 우리는 마침내 보석이 빛나는 공간에 다다르게 된다.

 

다섯째는 마음의 일치를 통한 함께 나아가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서로에게 생명을 주고, 풍성함을 가져오는 방식으로 충분한 마음의 일치를 시도한다. 마음의 일치(communion)는 힘, 지위,영향력, 논리가 아니라 자신의 진정성과 상대방의 진정성간의 연결과 상호 취약성의 포함을 통해 이루어진다.

 

 

존중의 메커니즘을 이루는 환대와 연결, 안전한 공간, 경청(침묵)과 열린 질문, 함께 탐구하기, 마음의 일치를 통한 선택 등 이 5가지 요소들은 바로 거칠고 힘든 것을 아름답고 선한 것으로 변형시키는 연금술적인 도구들이다.

 

복어는 맹독을 품고 있지만 요리방식이라는 레시피의 프로세싱을 통해 세계에서 3대 가장 맛있는 음식의 하나로 변형된다. 일상의 개울물의 흐름은 물레방아라는 프로세싱을 통해 빛과 전류, 그리고 쌀을 도정하는 작업활동으로 변환된다. 존중의 메커니즘은 이렇게 변형의 연금술적인 프로세싱을 통해 문제상황을 배움과 성장의 상황으로 전환시킨다.

 

지금까지 서술을 통해 나는 존중이 단순히 윤리적 덕목이 아니라 인식론과 존재론의 뿌리라는 것 그리고 신성화와 인간화의 핵심이며, 그 존중의 메커니즘은 5가지 프로세싱의 요소를 지니고 있다는 경험적 사실을 진술해왔다. 존중은 단순히 서클모임의 진행에 있어서 핵심일 뿐만 아니라 개인이 삶을 대하는 인식렌즈로서 가장 근본적인 것이다. 그리고 비폭력과 평화의 실천에 있어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 왜냐하면 이 렌즈를 통해 실재가 다르게 출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실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자신의 정체성과 사물, 사람, 상황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존중의 메커니즘은 거칠고 힘든 것아름답고 선한 것으로 출현시킨다. 그러므로 존중은 건설적(constructive)이고, 창조적(creative)인 능력을 실재에 부여한다. 이것은 삶과 죽음, 거짓과 진실, 환상과 실재 사이 속을 뚫고 살맛나는 생생한 삶을 일으킨다.

 

존중이 살맛나고 생생한 삶의 근원이 된다는 나의 말에 동의가 안 된다면 이 질문은 어떠한가: 최소한 누구 혹은 상황을 비난하고 살기엔, 우리는 지금 너무 절망적으로 살고 있지 않는가? 삶의 신성함을 이해하기 위해 존중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너무 이상적이고 추상적으로 들리는 말처럼 보인다면, 이 질문에 어떤 응답을 할 수 있는 것인가: 지금 나는 충분히 절망적이지 않는가? 아니, 얼마나 더 추락과 절망을 끝까지 맛보아야 하는가? 그리고 그 비난이 정말 위로가 되고 있는 것인가? 상황과 사람에 대한 그 비난이 더욱 추락과 절망을 은밀히 가져오고 있지는 않은가?

 

평화 훈련 영역에서 난 충분히 그리고 오랫동안 절망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비난과 거부 그리고 저항은 몸속 구석구석까지 배이도록 맛보았기 때문에, 그리고 가정폭력과 학교폭력 현장에서 조정자로 활동하면서 너무나 심각히 그 절망의 뿌리에 닿아 있는 절망적인 심성의 사람들을 충분히 봐왔기에 이 존중에 대한 새로운 자각과 울림이 나를 일으켜 세우고 있다. 존중은 건설하고 창조한다는 것을 그리고 새로운 실재에 대한 감각을 준다는 사실을 배워가고 있다. 이 늦은 나이에......

(2017.2.25.)

 

엮인글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 서클 인식론의 터전: 존중하기 평화세상 2017-02-25 233
4 갈등 상황에서 대화의 두 동기 평화세상 2016-12-09 306
3 갈등 완화: ‘우선순위 설정’과 ‘의미의 호출’에 따른 역동적이며 충만한 삶을 살기 관리자 2014-01-29 1683
2 평화훈련 워크숍: 나, 너, 우리의 스토리, 그 변형과 갱신을 통한 중심세우기 메인즈 2012-05-18 1517
1 평화적인 모임과 회의 진행 방법 익히기 메인즈 2012-05-12 1998
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