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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사회 활동가(및 회복적 서클 진행자)의 활동과 내면작업의 근거

 

예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드시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군중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셨다.

그리고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셨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6:41-42)

 

 

삶의 풍성함을 단절시키는 두 근원적 사건들

내가 비폭력 실천가로 전환되는 것을 가장 어렵게 만들었고, 또한 역설적으로 그로 인한 통찰이 나에게 강력한 동기와 지혜를 준 사건이 둘이 존재한다.


하나는 가난의 경험이다. 내가 경험한 아버지의 인생 2/3가 알코올중독이었기에 가난이 몰고온 내 정체성에 있어서 불확실성, 주저함, 경제적 불안에 대한 두려움이 오랜 시간 근본 정서로 깔려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지갑에 현금 2~3만원이라도 넣고 다니지 않으면 뭔가 불안할 정도이다. 미국유학 10년 동안 경제적 곤핍함의 문제는 안 쓰고 견디는 방식으로 가난의 문제를 해결해 왔다.

그런데 나 자신의 가난에 대해서는 스스로 내성을 키우는 방식으로 견디어 왔지만, 가난에 대해 성찰하는 계기가 된 것은 바로 내가 첫 목회를 하던 문경새재의 고사리마을에서 7년 반동안 아이들과 함께한 경험이었다. 거기는 옛길이 보존되어 있어서 주말이면 조령관문을 걷는 수많은 가족, 그룹들이 지나간다. 그리고 마을여성들은 생계를 위해 길목에서 산나물, 곶감, 버섯, 한약재료 등을 좌판에 놓고 판다. 덕분에 주말에는 아이들도 어머니 심부름을 위해 바쁘다.


내가 우리 아이들을 돌보면서 자주 본 장면은 등산복을 입고 지나가는 가족의 아이들의 치장에 대한 부러움, 눈을 마주치지 않기, 타인들에게 노출되고 싶지 않은 마음, 특히 사람들이 많이 밀릴 때 좌판에서 자기 어머니의 심부름에 대해 많이 짜증을 반복적으로 내는 모습이었다. 심지어 어쩌다 성탄절날에 지나가거나 도시에서 온 예배참여 가족이 있는 경우, 그렇게도 장난치고 말도 안 듣던 아이들이 이상스럽게 조용해지고 수줍음을 타는 분위기로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둘째는 갈등과 폭력에 대한 대응의 경험이다. 나는 강화 양사면 철산리 철곳이란 곳에서 태어났다. 바로 북한의 전시마을이 가장 가까이 보이는(2.4키로) 곳이며, 내가 건빵을 얻어먹던 군부대가 지금은 전망대 장소로 바뀌어져 있기도 하다. 나는 초등학교 들어가기 직전까지 거기서 살면서 나는 하루에 정규적으로 남북간에 거대한 스피커 방송으로 서로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선전방송을 듣고 살아야 했다. 문제는 나나 어른들도 이에 대해 아무런 의문이나 질문을 하지 않고 그대로 수용하면서 살아왔다는 것이다.


내가 회복적서클 진행자로서 본격적으로 학교폭력 사건이나 시민사회 단체내 갈등사건 혹은 부부나 가족구성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지인들의 가정내 갈등에 대해 개입하게 되면서, 가해자나 피해자 혹은 방관자라는 딱지로 인해 수많은 내적 외상과 분노 혹은 감정조절의 불능 상태로 빠져 불행한 결과로 치닫는 수많은 사건들을 목격하게 되었다. 일단 가해자 혹은 피해자로 이름이 붙는 순간, 그에 대한 주변의 시선과 자신에 대한 시선은 패턴화되어지고, 가해자는 무관심이나 변명, 피해자는 자기보호나 증오가 당연하거나 정당화되어진다

 

가난과 갈등/폭력의 경험은 매우 강력해서 DNA처럼 자기 내면에 각인을 시켜 삶의 수많은 가능성을 좁히고, 그 사람의 정체성을 고정화시킨다. 내가 이 문제가 당연한 것이 아니라 의문을 가지게 된 것은 어떻게 삶의 수많은 가능성이 가난과 갈등/폭력으로 그렇게 하나의 문제로 축소되어 삶의 동기와 과정을 그 문제로 일관되게 정열시킬 수 있는가라는 자각으로부터 일어났다. , 어떻게 신비스럽고 다차원적인 가능성과 다면적인 면모를 가진 개인이 한 번의 폭력 경험으로 가해자 혹은 피해자라는 딱지로 그의 삶과 정체성을 평면화시켜서 그 이후의 삶과 시간을 고착화시키고 거기에 에너지를 빼앗기게 만들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것이다. 마치 한 개인을 다면적인 수정체로 볼 수 있다면 어떻게 우리는 다른 다양한 측면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고 오직 그 하나의 경험적 측면-폭력의 가해자나 피해자 혹은 방관자의 경험-이 크게 클로즈업되어 그것이 다른 측면들을 다 빨아들여 못 보게 만드는 블랙홀로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어린 성찰이 생긴 것이다.

 

 

삶의 에너지를 발원시키는 두 시각: ‘결핍의 눈인가 충분함의 눈인가


 

나는 가난과 폭력의 경험이 각자의 인생에 있어서 자기 정체성, 삶의 동기와 목적에 있어서 보이지 않는 인식론적인 패턴을 형성해 준다는 사실을 아주 최근에서야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은 결핍이라는 관점에서 자아, 관계, 세상을 보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인식의 근거로 자리 잡기 때문에 그 주인공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저항하기 무척 어렵다. 말하자면 자신의 정체성, 일의 추진동기, 삶의 목적, 행위에 대한 평가를 바라보는 이기 때문에 눈 자체를 인식한다는 것은 실상 거의 불가능하기에 모든 것이 이 결핍의 눈으로 재정렬하게 되어 현실로 나타나게 된다.


예를 들면, , 여행, 권력, 영향력, 즐거움, 물리적 소유로 인한 안전함, 타자와의 차이에 따른 구별, 성취에 대한 몰두, 과제의 평가에 대한 동기로써 보다 나은 업적 등등이 사실상 보이지 않는 이 결핍의 눈에 의해 동기화되어진다. 그리고 나의 정체성은 이 결핍의식으로 말미암아 의심, 두려움, 수치감, 외로움이 정서적으로 작동하게 되고, 타인을 향해 인정, 통제, 힘의 행사를 무의식적으로 원하게 된다. 무엇보다 이 결핍의 눈은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충분히 얻을 수 없는 희소성의 법칙이 작동되는 현장으로 인식하게 만들어 적자생존의 원칙은 당연한 것이며, 따라서 더욱 노력한 사람에게는 정당한 보상이라는 이름하에 과대한 노력의 필요성을 증가시킨다. 어쨌든, 노력은 의도적이든 잠재적이든 중요한 삶의 가치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현대 물리학자 데이비드 봄이 말한 것처럼, 비유컨대 씨앗이 나무가 되는 것은 결핍이 충족되어가는 과정으로서가 아니라 조리개로서 이미 햇빛, , 바람, 어둠의 전체성(충분함)이 그에게 소통되어지는 열림의 과정으로 인식할 수 있다면, 자신은 그러한 충분한 전체성의 한 통로로써 자기 개방을 통해 저절로 출현하는 것으로 인식할 수 있다면,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 삶의 과제, 타인과의 관계, 세상에서의 삶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겠는가? 이는 단순히 개념에 의한 추상적 이해의 문제가 아니라 실재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가져오는 것이다. 자본주의 및 공산주의의 경제시스템이 바로 이러한 결핍의식에서 일어난 것이며, 반면에 평화와 지속가능성을 향한 공유경제 및 선물경제 혹은 도덕 경제의 근본인식은 바로 이러한 충분함의 인식에 근거하고 있다.


나와 고사리마을의 아이들은 다양한 삶이 주는 충만함의 경험들이 꽤 있었다. 자연으로부터의 위로와 경이로움, 놀이에서의 창조성과 즐거움, 돌보는 타자로부터의 선물받음, 자기 내면에서 들려오는 감사나 기쁨의 순간들, 반려동물과의 교감 등등의 삶의 무제한적인 다양성과 가능성의 풍성함과 충분함의 경험들이 그것이다. 그리고 자기 자아도 꿈, 주고 받음, 다양한 재능의 가능성과 그 확인, 몰입의 다양한 순간들의 풍성함이 자기 자아의 정체성에 존재한다. 그런데 그렇게 다양한 측면들이 오직 단 한 가지의 결핍인 가난(물질적소유의 상대적 부족)이라는 요소 하나에 의해, 또는 단 한번 혹은 겨우 몇 번의 폭력경험에 의해, 그 다양한 가능성과 풍성함 혹은 충분함의 경험이 소실되는 것이 어떻게 정상이라 할 수 있겠는가

 

나는 가난과 폭력의 문제는 그것이 당사자의 정체성(who)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경험의 (what & how)에 대한 인식론적인 문제라는 생각에 도달하게 되었다. 개인의 삶과 우주는 끊임없이 풍성함으로 성장하거나 팽창한다. 그것은 본래 충분함에서 풍성함으로 나가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실재의 경험을 어떤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인가라는 것이다.

 

 

충분함의 인식과 그 펼쳐짐의 세계

 

6조 선사 혜능이 사미승으로 있을 때였다. 부엌에서 일하다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동료 사미승들이 흔들리는 나무를 보면서 논쟁을 하고 있었다. 한쪽이 주장하기를 나무로 인해 흔들리는 것이다라고 하고 다른 한쪽은 그게 아니라 바람으로 인해 그 나무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혜능의 답은 이렇다: ‘둘 다 아니다. 흔들리는 것은 그대들의 마음 때문이다라고 말하였다.


가난과 폭력은 그 자체의 속성 때문도, 아니면 그것을 담지한 개인(나무)의 문제도 아니다. 반대로 그 개인을 넘어선 구조적인 분위기와 환경(바람)의 문제도 근본적인 것은 아니다. 그것을 어떻게 인지하는가하는 인식자(마음)이 문제이다. 결핍의 눈으로 실재를 보는가 아니면 충분함의 눈으로 보는가이다.


회복적 서클의 진행에 있어서 그 작동원리가 이러한 충분함의 눈과 연결이 되어진다. 그 충분함의 눈이란 바로 공동체의 자기 돌봄 프로세스라는 핵심원리에 녹아있다.


갈등당사자들은 적대적 감정에 빠져있고, 쟁점이 되는 이슈는 서로 모순적이어서 해결책이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만난다. 여기서는 아무도 만족스럽지 않은 충분하지 않은 결핍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공동체의 자기돌봄 프로세스란 서클대화나 대화카페에 온 사람들로 충분히 지혜가 작동되며, 그들이 충분한 자원(resources)가 되어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인식을 진행자는 가지고 있다. , 가해자나 피해자 개인이든 아니면 갈등 집단이든, 자신이 직면한 혼란의 경험속에는 의미소(意味素)라는 프랙탈이 있어서 충분히 그 혼란을 질서로 만드는 에너지로 작동하고 있는 것을 진행자는 인식하고 그것이 노출되도록 돕는다.


그래서 충분함의 인식은 과정과 참여자를 신뢰함에서 나타난다. 과정을 믿고 참여자를 믿음으로써 그 충분함으로 돌봄의 행위가 발생하게 된다. 그러한 발생이 일어날 수 있는 지성은 각자에게 의미있고 소중한 것이 출현할 때 어떻게 이를 서로가 포착하게 만들고, 또한 그 의미있고 소중한 것에 대한 포착을 서로 돌보게 하는 데서 지성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지성은 서로 이미 있는 소중한 의미에 대해 잇는 데서 오는 자연스러운 결과로 비추어진다.


여기서 서클 진행자는 일반적인 상담과정이나 조정자의 진행과정처럼 필요를 충족하게 만드는 방식과는 좀 다르게 이미 충분한 것을 마음을 열어 확인하고 그 마음을 서로 연결하여 나누는 방식으로 충분함이 이행되었을 때 어떻게 풍성함이 일어나는 지를 사후서클을 통해 경험하게 만든다

  

다른 예는 성서의 예이다. 인가가 없는 빈들판 한적한 곳에서 저녁 무렵에 예수와 제자들은 5천명의 무리와 허기짐의 문제를 직면하게 되었다. 본래 나는 자유주의적 사고방식에 익숙해서 예수의 신성을 입증하는 증거로서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오천 명을 먹인 이적에 대한 액면 그대로의 해석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동안 아이도 자기 먹을 것으로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가져온 경우라면 어른들은 이미 자기 품에 자신이 먹을 도시락정도는 가지고 있었는데 남들 눈치 보느라 참고 있다가 아이의 선한 행동으로 감화 받아 자기 먹을 것을 내놓았다는 해석에 마음이 움직여 있었다.


솔직하게 말해 나는 이적설도 그렇고 감화설도 그렇고 그런 방식의 이해에 마음이 들지 않는다. 단지 내가 여기서 깨달은 제 3의 방식은 이것이다. 갈등의 상황(어두워지는 빈들에서 굶주림의 도전적인 상황)에서 무엇이 어떻게 펼쳐지는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다. 마치 이 성서구절은 과학적 설명은 불가능하지만 최소한 충분함의 인식이 과정으로 펼쳐지는 것은 보여준다.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수용하여 하늘을 우러러 감사의 기도를 하고서 나누어 주라고 하는 충분함의 인식과 그 결과이다. “모두 배불리먹었고 남은 것을 주워 모으니 열 두 광주리에 가득찼다는 보고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충분함의 인식과 그것을 나누는 것으로부터 오는 결과로서 모두 만족하고 가득 차는 풍성함의 경험이다.


조직가로서 비폭력훈련의 영역에서 단체와 지역 네트워크를 세우고 지지하는 일련의 과정을 보면 나는 바로 이러한 충분함의 인식과 그것의 나눔의 과정이 사람을 세우고 지역에서 평화센터들이 세워지는 데 핵심 에너지가 됨을 본다. 충분함으로부터 나눔을 생각하면 기꺼이 하려는 자발성과 열성을 품는 지혜가 솟는다. 결핍으로 단체를 경영하거나 조직운동을 하게 되면(, 지금의 부족함과 결점을 미래의 성취로 충족하고자 하는 프로그램과 사업을 하게 되면) 날카로움과 긴장어린 에너지 소진이 발생하여서 일이 부담이 되고 상대방이 기대보다 못해서 비난하거나 강요하게 되는 부정적인 감정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충분함을 풍성함으로 작동시키기

 

충분함의 눈은 노자가 말한 습명(襲明)’ 즉 안에 있는 밝음을 작동시킨다. 도덕경의 27장에 있는 이 습명은 억압하거나 매이게 하지 않아 풀어주고, 타자(Others)를 버리지 않고 사물(things)을 버리지 않는 심묘함()’의 이치가 실재로 작동하도록 돕는다. 활동가(혹은 회복적서클 진행자)가 이러한 충분함의 원리를 작동시킨다는 것은 오병이어의 기적의 풍성함에 깃든 원리와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충분함의 원리란 무엇일까?

 

첫째, 상황을 인식한다.
이는 무엇이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가에 대한 주목하기로써, 그러한 인식은 비난하며 거부하여 맞서거나 도피하거나 얼어붙는 방식이 아니라 상황을 자각하고 느끼는 방식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알아차리는 것만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 당신에게 어떤 몸의 지각과 감정이 올라오는 지를 느낀다. 이것이 어려운상황에 납치당하지 않고 지금 여기에 있도록 당신을 현존하게 만든다. 현존하는 순간 당신은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다. 그러나 맞서기, 도피, 얼어붙기는 과거의 무거운 기억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당신의 마음이 납치되어 선택할 수 없게 만든다. 현재만이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알아차리고 느끼는 것을 통해 온다. 이 알아차리고 느끼는 것이 자극(stimulus)과 반응(reaction)’사이의 연결고리를 끊고 선택의 가능성이라는 공간을 펼쳐놓는다.

 

둘째, 당신의 가슴에 연결하고 원하는 미래에 집중한다

이것이 손에 드시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는 것의 요체이다. 그 문제적 상황, 관계, 도전, 위기가 당신의 영혼의 진정성을 울리도록 한다. 그것이 손에 든다는 것이다. 그 문제적 상황과 위기 그리고 도전이 당신을 두려움으로가 아니라 내면의 진실을 울리게 가슴과 연결한다. 그리고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미래에 마음을 연결한다. 이것이 하늘을 우러러라는 의미이다. 이 문제가 풀려서 어떤 이상적인 장면이 진행되기를 진정으로 바라는지를 확인한다

 

우리는 갈등과 폭력 그리고 도전적인 상황에 있어서 과거에 경험한 무능력과 실수, 그리고 상황의 어려움과 복잡함의 예측과 불안으로 포위되어 있다. 이는 자동적으로 순식간에 그리고 무의식적으로결핍의 눈으로 현실을 보게 하고 그것에서 나오는 언어와 행동의 자동반응을 격발시킨다. 그래서 우리의 의식은 못하고 안하고 하고 싶지 않은부정적 에너지를 발생시킨다. 이러한 의식은 디펙 초프라가 말한 대상 조회’(object referral)에서 발생하며 결핍의 핵심 코드가 된다.


충분함(enough)’의 눈은 외부의 부정적 조건들이 없다는 환상이나 무시가 아니라, 주목하기라는 인식의 방향을 다르게 설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두 가지이다. 그러한 환경과 문제, 위기와 도전에 있어 당신의 내면의 진실과 연결되는 것과 진정으로 바라고 있는 미래의 이상적인 모습에 대한 연결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미 혜능이 외부조건(바람)이나 그 상황의 본질(나무)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자(활동가, 서클진행자)의 마음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이야기해왔다.


결핍의 눈은 자동적으로 심각함, 즉 옳고 그름 및 변화되어야 할 현실과 다가가야 할 목표 간의 간극을 메우려는 노력 및 힘을 요청한다. 충분함의 눈으로 당신은 놀이에 참여하게 되고, 만나지는 것은 새로운 경험과 배움의 기회로 전환되어진다. 더욱 중요한 것은 타자로 하여금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자신의 충분함을 당신과 나누도록초대한다. 먼저 주저한 제자들이 나누는 행위를 하기 시작했고, 이어서 군중들도 그 나눔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충분함의 나눔은 결과적으로 모두가 배불리 먹고 12광주리에도 가득참의 풍성함을 나비효과의 방식으로 가져온다.


줌과 나눔은 이미 충분함의 본성을 전제로 할 때만 가능한 행위이다. 줌을 통해 이미 무엇을 그가 가지고 있는지를 거꾸로 깨달아가게 된다. 줄수록 더욱 많이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이 충분히 가지고 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러한 줌의 행위 속에서 발견하는 선물을 받게 된다. 풍성함은 그러한 충분함의 파동으로 서로 얽혀질 때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나오며


우리의 문제는 나무이든 바람이든 사람, 상황, 관계, 위기, 도전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보는 결핍의 눈의 문제이다. ‘충분함은 나의 내면에, 상대에게, 공동체에 이미 주어져 있다는 인식은 우리 모두가 부분이면서 전체라는 홀로그램 우주속에 있기 때문에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인간의 지문, 타액, 분비물, , 머리카락은 각각 다른 부분들이면서도 한 전체를 담고 있어서 그 어떤 조각으로도 그가 누구인지를 찾아낸다. 광양자를 둘로 나누어 수백, 수천 킬로를 격리시켜도 한쪽의 자극은 동시에 다른 쪽의 자극을 시간차이없이 발생시킨다. 아니 세포가 출발을 하지 않았어도 목적지에서 이미 정보를 알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은 바로 비국소성(non-locality)’과 얽힘(entanglement)이라는 전체성 때문에 가능해진다

 

더욱이 우리가 탐구해야 할 것은 노력한다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배움과 성장은 노력을 통해 오는 것인가, 아니면 충분함의 인식과 그 나눔에서 일어나는 연결의 문제인가이다. 배움과 성장이 A지점(현실)에서 B지점(목표지점)에로의 변화이고 그것이 노력을 요청하는 것이라 인식한다면 그 결과는 에너지의 소진과 탈진은 불가피하다. 만일 의외로 충분함에 근거한 연결과 나눔으로 인식한다면 놀이, 창조성, 그리고 생생함과 풍성함이 지속적으로 존재할 것이다. 내가 가난과 갈등/폭력에 대해 가진 인식의 문제는 이해가 가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심각하게 바라보고 거기에만 집중해서 전체성의 가능성을 하나의 단면화로 축소시켰다는 점이다. 이제는 마음의 연민으로 그 중요성을 축소시켜서 다른 가능성이 보이기를 기원해야 할 시점이다.

 

(2017.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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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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