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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봉오리 속에 숨어 있는 것이

위험을 무릎쓰고 꽃을 피우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날이 있었다.

- 아나이스 닌 Anais Nin -

 

 

꽃 봉오리가 더 고통스러운 나의 궁지

 

 

지난 몇 주 동안 우연히도 여러 건의 갈등사례를 직접 다루는 일이 있었다. 각종 워크숍 일정이 빽빽이 짜여져 있는 상황에서도 이러 저러한 인연으로 나 몰라라 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상대방 개인과 그들이 속한 공동체가 갖고 있는 고통이 얼마나 심할지 상상이 되는 상황이어서 남은 시간을 쪼개고 스케줄을 남에게 넘기면서 갈등상황에 들어가게 되었다.

 

하나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학교폭력 사례로 여중1학년에 하필이면 폭력성향의 학생들과 왕따의 아이 그리고 결손가정 학생들이 함께 배정이 되어 20명의 학생들이 다중충돌과 복합적인 갈등전선이 형성되어 마치 여러 마리의 뱀이 서로의 꼬리를 물고 있는 형국이어서 학교도 학부모도 손을 들어버린 사건이었다. 게다가 만남과정 속에서도 계속 다른 학폭위사건들이 이들 간에 연이어 터지는 일들이 발생하여, 한 반 아이들 간에 여러 사건을 동시 다발적으로 사전서클과 본서클이 열리는 전례 없던 사건이었다. 다른 하나는 기업체에서 상무와 부장 그리고 차장들 간의 의사소통과 언어폭력 등으로 인한 상급자와의 직무갈등상황이었다. 여기서는 명령과 통제, 보고 시스템과 효율성, 두려움과 안전, 개인성격등의 복잡한 조직문화가 회복적 서클이 안고 있는 평등성과 관계성에 대해 큰 도전을 주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사례는 대안학교에서 선후배간의 관계에 있어서 선배의 만성적인 구타와 패드립 그리고 성문화의 문란함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건이었다. 외부 강사의 여러 차례의 인권교육과 교사들의 훈계와 처벌에도 불구하고 2년이 넘는 만성적인 문화로 자리 잡혀 있어서 교사들과 학생들 사이에는 어찌해 볼 수 없는 아이들이나 선배로 낙인이 찍혀서 생활지도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위의 세 가지 사건은 지금까지 내가 진행한 회복적 서클 사례로는 모두가 처음 경험하게 되는 지독하게 다루기 힘들었던 복잡한 사건이자 매우 민감하고 낯선 사건들로서 진행자로서 몇 번의 절망과 다음 진행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을 한꺼번에 만나야 했다. 그런 상황에 처할 때마다 내 존재를 던진 가운데 내 모든 세포가 깨어서 알아차림과 경청 그리고 연결에 온 힘을 다해야 했고, 다행히도 거의 파국에서 전환이 일어나 사건이 잘 마무리되어 본인들과 주변의 담당자들이 매우 행복해 하며 웃음을 되찾게 되었다. 나는 이 세 갈등 사례를 통과해 나오면서 그간에 무의식적으로 갖고 있던 갈등에 대한 내면의 두려움이 갑작스럽게 걷히면서 뭔가 쉬워지고 편안해지며 이제는 무엇이 와도 정말 담담하게 맞이할 것이라는 예감을 갖게 되었다. 뭔가 어떤 원리를 터득하고 나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한 내적 감각이 충족된 느낌이 전신에 퍼진 것이다.

 

아이러니 한 것은 이런 지옥과 가까운 경험의 기간 속에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진행하는 회복적 서클, 스터디 서클, 그리고 신뢰의 서클을 한주 동안에 2일 또는 2일반씩 세 가지를 다 경험하는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우연의 일치였지만 이렇게 연결된 각각의 다른 서클의 공간속에 있으면서 비참함과 열정의 내면성, 추락과 상승의 공간, 마음열림과 연결, 역설과 제 3의 은총, 부분과 전체성, 환대와 인도받기, 경청과 열린 질문, 공간점유와 공간허락하기, 울음과 웃음, 침묵과 진술, 공간 에너지와 파동, 취약성과 서클리더십, 내적 직관과 발언하기 등등의 각종 주제들이 살아 움직이면서 나의 내면과 서클 공간을 휘돌아 움직이며 가슴과 서클의 공간을 꿰뚫는 일들이 일어났다. 마치 고압(高壓)의 전류가 흐르듯 내면에서 일어나 공간을 타고 흐르고(flowing) 있어서 완전히 이들 살아있는 주제들의 강물 속에 깊이 침잠해 있었던 일주간의 시간이었다.

 

더군다나 그 와중에서 평화서클교회의 거룩한 현존의 서클대화 준비로 만난 예수의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6:63)은 거의 뇌성에 가까운 울림을 내게 가져왔다. 말이 장벽(barriers)이 되는 것에서 창문(windows)이 되는 것에 신경을 써온 갈등전환 작업자로서 나는 이제 좀더 근본적인 문제, 곧 어떻게 언어 행위가 이자 생명으로 전환될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궁극의 질문을 받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회영성이나 근원적 민주주의의 형성 그리고 리더십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로 내게 다가와 내 어깨를 붙잡고 흔들어 대면서 그 대답을 말해봐라고 있는 것을 이제 목격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다중 경험들이 갑자기 한꺼번에 몰아친 지난 한 달 동안의 경험을 겪어오면서 나에게 있어서 그 어떤 전환이 일어나게 되는 감각이 영혼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고통에 대한 인식의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간의 고통스러운 날이 우리 사회의 비참함을 보는 것에 대한 고통 때문에 힘들어 왔다면, 그런 비참함에도 불구하고 비폭력활동가로서 내가 추구해 온 목표는 위험을 무릅쓰고 꽃을 피우는 것에 대한 갈망이 내면에 있어 왔었다. 생존과 안전에 대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뭔가 희망어린 꽃에 대한 품음의 간절함이 나를 지탱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그러한 간절함은 수많은 현실의 도전과 안 되는상황의 장벽으로 인한 추락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내가 놓치지 않고 참으로 오기에 가까울 정도로 지키고자 한 절망적인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뒤돌아보니 이러한 태도의 핵심에는 바로 내가 두려움희소성의 법칙이 리얼리티라는 현실에 둘러싸여 있어서 위험을 무릅쓰고 꽃을 피우는 것을 일종의 내가 원하는 미래를 위한 일종의 희생이자 당위로 생각해 왔었던 것이다. , 두려움과 희소성이 세상의 법칙이라면 그 속에 사는 나는 당연히 꽃을 피우려는 시도에 있어서는 위험이라는 것이 따라올 수밖에 없고, 따라서 논리적으로 고통스러운 날을 경험하는 것은 당연한 보상으로 간주해 왔었다. 그래서 암묵적으로 고통스러운 날을 즐기며 외로움을 살아온 것도 그것이 나를 타자로부터 분리시키는 나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런데 3 가지 복잡한 갈등의 폭풍우를 뚫고 지나가고 나서 보니, 다른 한편으로는 3 가지 서클 모델 경험을 한꺼번에 겪고 보니까 문득 내가 다른 지형에 와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각자의 진실과 자비로움이 갈등상황의 열쇠로 작동되는 것을 목격하고, 서클의 안전한 공간과 경청 그리고 연결의 마음이 공간을 충만한 에너지로 파동을 일으키며 각자의 영혼을 감싸는 것을 보면서 다른 현실 인식에 대한 -아니 정확히 말하면 현실 인식이라기보다는 다른 실재 인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공간속에 내 발걸음이 옮겨져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바로 꽃봉오리 속에 숨어 있는 것이 더 고통스러운 현실이라는 것이라는 자각인 것이다. 내 주변이 두려움과 희소성이라는 리얼리티로 싸여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꽃봉오리라는 진실과 자비로움의 리얼리티가 둘러싸고 있었다는 실재 인식에 대한 눈뜸이고 그것을 모르고 그 속에서 숨어서 떨고 있던 나, 그것을 즐기지 못한 나에 대한 깊은 충격이 올라오고 있다.

 

꽃봉오리 속에 숨어 떨고 있는 나에 대한 실재-인식으로 인해, 그간의 나의 두려움과 연약함 그리고 인식의 무지라는 것에 대한 내장이 뒤틀리는 듯한 애도가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정말로 두렵고 절망적인 고통은 바로 꽃봉오리 속에 숨어 있는나에 대해 아무 것도 못하고 그대로 지켜보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 나의 현재에 있어서 가장 궁극적인 고통이다. 꽃봉오리는 보이는 데 아직 과거의 습관화된 패턴이 숨어 있는 나를 흔들어 깨우는 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셈이다.

 

언제 나는 이 꽃봉오리에 나를 위탁하고 의지할 수 있을 것인가? 어째서 꽃봉오리 속에 숨어 있는 것이 더 본질적인 고통임을 알면서도 손과 발이 그리고 심장이 움직이지를 않는 것일까? 왜 이 고통을 느끼면서도 빛으로 나오거나 꽃봉오리에 기대지 못하는 것일까? 빛이 너무 밝은 것일까 아니면 꽃봉오리가 너무 황홀하여 감히 다가가기에 주저하는 것일까? 내가 아직 내 영혼의 목소리를 잘 듣지 못해서 알 수가 없다.

 

(2016.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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