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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클로 중재하기 사례

조회 수 3165 추천 수 0 2013.05.15 11:57:25

서클로 갈등 중재하기 사례

 

이틀전 서클 프로세스에 근거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모이는 마음자리 인문학 독서모임이 시작되기 전에 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잘 아시는 분이 자신이 잘 아는 대안학교와 관련된 내부 교사들 간에 그리고 그와 공동 협력하는 외부 몇 분과 한 그룹으로 있는 데 그들간에 다툼이 있는 데 이제는 학교를 고소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 전화한 당일 저녁에 모임을 갖는 데 와서 중재 진행을 부탁하는 것이었다.


상황이 좀 다급하고 다른 시간을 내기에는 이번 모임이 중요한 것 같아 저녁
9시에 모임이 끝나면 찾아가기로 하고 내가 필요한지 동의를 받아 문자를 달라고 하였다. 서클 프로세스의 방식에 따라 파커 파머의 글을 통해 자기 내면을 비추는 독서 모임은 이제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를 끝내고 온전한 삶으로의 여행의 책을 주제로 9번째 모임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처음의 낯설음이 지나가고 이제는 서클에서 오는 적나라한 자신의 내면을 조금씩 내어놓으면서 상처와 두려움, 그리고 좌절과 희망을 나누는 단계까지 그룹원간에 형성되어가고 있었다.

 

이번 모임에도 파머가 인용한 장자의 목공이야기를 3의 것’(대화의 화두를 던지는 시나 글로서 이를 통해 자신의 경험을 성찰하도록 안전한 공간을 허락하는 것)으로 해서 자신의 인생을 성찰하고 생생한 만남에 대한 삶의 경험들을 나누는 과정에서 점점 깊이로 들어가 자기를 드러내는 말을 하기 그리고 남의 가슴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듣기 그리고 침묵 등을 통해 참여자 각자에게 공명과 자기 성찰의 깊이를 조금씩 맛보고 있다는 전체 성찰을 나누게 되었다.

 

이렇게 자기 이야기를 이런 방식으로 이야기 하는 것이 자기 생전에 처음 있는 일이고 친한 동료와도 하지 못한 삶의 경험을 잘 알지 못하는 참여자들 사이에 나눌 수 있다는 새로운 경험과 자신이 뭘 소중히 생각하고 있는 지에 대한 자기 탐구를 함께 있는 참여자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반추해서 자신의 삶을 확인해 나가는 방식에 대해 참여자들은 매우 만족해하고 있었다. 스토리텔링이 지닌 진솔함의 감각, 그리고 영혼의 손짓을 시비논리나 도덕적 판단을 넘어 그대로 노출하여 수용하고 연결되는 방식을 경험하는 것은 그동안 우리가 잊어온 대화방식이었던 것이다.

 

9시가 조금 넘어 독서모임이 끝나고 현장에 도착하니 전화를 해 준 지인이 나와 있었다. 갈등상황이 무엇인지, 누가 누구인지 확인도 못하고 자리 세팅을 위해 참여자들이 몇 명이고 갈등의 구조가 몇 명대 몇 명이냐는 정도로만 알고 회복적 서클의 본서클 진행방식으로 이끌어 갈 수 있겠다는 사전 구상을 갖고 10시에 서클로 모여 갈등중재 서클 모임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시작 처음부터 회복적 서클의 지도(map)에 따른 진행방식이 작동이 되지 않았다.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알아주길 원하는지 묻는 질문에 모두가 침묵하고 서로 눈치를 보는 상황이었고,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 침묵이 이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처음 말을 꺼낸 사람이 누구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상황을 이야기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속으로 생각한 진행방식에 대한 흐름이 깨어지면서 당혹감이 중재자인 나의 내면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30분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한 두 사람의 긴 이야기에서 이것은 개인과 개인의 얽힌 갈등이 아니라 한 학교와 그와 관련된 학교와 연결된 파트너 기관과의 갈등으로 표면화 되면서 두 기관의 2명과 한 학교 4명 그리고 그에 함께 하는 외부 교사 1명 그리고 나에게 전화한 지인 17명의 갈등 지형이 명료하게 되었다. 처음에 생각한 회복적 서클의 진행구조방식으로 이끌기에는 자연스럽지 않은 분위기가 형성되어서 갑자기 지도(map)가 명료하지 않게 되자 특별히 뾰죽한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 그대로 이야기가 흘러가게 내버려 두었다.

 

처음 당황스런 마음을 내려놓고 일단 기본적인 중재자의 태도로 되돌아오기로 결심하였다. 그것은 서클을 돌보며 온전히 현존하기와 연결하기라는 방식이다. 이것은 무슨 상황이 어떻게 벌어지고 감정의 메시지가 파고를 일으키며 서클 안에서 출렁거릴지라도 중재자로서 내면에서 자기를 잊고 전체의 에너지와 각 존재의 현존에 주목하며 서클을 안전한 공간으로 보호하는 것이다. 그리고서 각자의 중요한 이야기에 대해 중재자로서 그 의미와 욕구를 확인하며 전체에 다시 돌려주는 방식으로 앉아 흐름을 타고 가는 것이었다.

 

이러한 중재자의 기본 태도를 통해 서클 진행자로서 나는 자신의 중심과 서클의 중심을 함께 붙잡고(“holding”하며), 강제없이 참여자들 간에 자발적인 소통이 일어나면서 연결의 끈들이 이어지도록 돕는다. 여기에 회복적 서클이 지닌 상호이해와 진심나누기(자기책임의 규명) 그리고 제안과 동의에 대한 이해를 전체 흐름에서 확인하며 이를 진행자로서 의식하며 흐름을 따라 스포트라이팅(참여자들의 대화를 각각의 단계에 맞는 상황에서 재조명하여 빛을 비추어줌으로 명료화하는 것을 돕기) 하는 것을 택하며 앉아 있었다.

 

대화 참여자들은 그 대안학교의 가치에 대한 열정으로 뭉쳐져 있어서 그 강한 성격과 비전이 어울려 이를 위한 자기 희생의 강도가 무척 강한, 좀처럼 만나기 드문 유형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성격과 가치와 비전에 대한 놀라운 헌신과 집중력이 논쟁에 있어서는 매우 강한 자기 표현으로 독백식의 자기 주장과 상대방의 허점과 잘못에 대한 집중 추구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었다. 의견이 잘 맞으면 매우 강한 추진력이 발생하여서 지금까지 잘 해왔지만, 한 두 의견차가 충돌을 일으킬 때는 서로의 에너지를 상쇄시키고 탈취하는 방식으로 소통이 진행되어 서로에 대한 깊은 상처를 유발시키는 유형이었는데, 불행히도 이번 사례의 경우 의견의 차이가 서로에게는 따지고 들어가는 방식으로 역순환되어 서로를 힘들게 하고 있었다.

 

이렇게 센 유형의 사람들, 즉 성격도 세고, 논제에 대한 집중력과 옳고 그름에 대한 분명한 논리주장의 사람들이 하는 대화는 거의 별다른 감정 메시지가 전해지 않고 과거의 일어난 것에 대한 분명한 설명을 하고 듣는 데 에너지와 시간을 다 소비하게 된다. 이렇게 될 때 진행자가 자신의 진행지도(map)에 따라 이들을 이끌어 가려고 할 때는 무리가 따르고 힘도 들며 자연스럽지 않은 흐름을 생성하여서 중재자로서 달리 선택한 것은 흐름을 따라가며 공감해주고, 정리해주며 중요한 부분을 천천히 가게 하면서 의미와 욕구를 반영해주는 방식으로 최소한의 역할을 하면서 그 서클에 참여하게 되었다.

 

사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뭔가 긍정적인 것이 나올 것이란 기대도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너무 센 에너지와 과거에 일어난 사실확인의 대화들이 끊임없이 핑퐁 게임하듯이 왔다갔다 하기 때문이다. 12시까지만 얘기 하자고 처음에 시작한 것이 1시를 넘어가고 있었고 그렇게 왔다갔다 하는 대화 속에서 누가 말하고 누가 듣는지 정리를 해주고 개입을 자제시키면서 계속해서 듣는 말과 말들이 여러 사람의 입을 거치면서 때로는 약간의 제안이 나오다가도 과거의 상대방이 미쳐 몰라준 것에 대한 사실확인과 긴 설명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성공할 것이란 기대를 아예 못 가진 상태에서 그리고 오히려 실패의 가능성이 점쳐지는 그런 흐름 속에서 계속해서 이야기는 지그재그로 말하고 싶은 것을 각자 말하는 방식으로 흘러가게 내버려 두었다.

 

때로는 졸음이 오는 것을 쫒아내며 그렇게 시간을 새벽 두시를 넘어가면서 내 신체적 한계인 졸음을 의식하면서 그리고서는 다시 전체 서클을 확인하면서 대화는 어느 덧 상호 이해를 어느 정도 넘어서 저절로 진심나누기로 들어가고 있었고 이제야 비로소 분위기는 어느 정도 가라앉아 차분해 지고 자기 주장을 계속 펴던 사람들이 점차 생각하는 시간과 듣는 시간이 많아지는 국면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갔다. 여기서 내 할 일은 상대의 제안을 다시 그 의도를 읽으며 전체에게 반영해주는 것과 진실로 원하는 것에 대한 실마리가 나타날 때 상대방에게 되풀이 들려주면서 흐름을 끊지 않는 것이었다.

 

새벽 세시가 넘어가면서 전체 사건에 대한 각자의 관점과 이해들이 명료해지고 상대방의 처지가 무엇이었는지 보이기 시작했다. 이는 새로운 사실들이 노출되고 점점 쌓이면서 이해가 넓혀갔다는 뜻만이 아니다. 처음에도 똑같은 주장을 했고 중간에 서너 차례 반복이 되어 중재자로서는 이렇게 너무 늦은 시간에 그리고 아침에도 나나 그들도 출근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시간이 아까운 생각도 들었지만 그렇다고 다르게 갈 진행지도에 대해 확신도 없고 해서 그냥 일어나는 것을 놔둔 것이 이제야 비로소 각자의 귀에 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는 중간 중간에 다시 각자가 중요하다 생각하는 과거 사건에 대한 상대방에 대한 설명이 지속적으로 반복해 일어나는 것을 그냥 놔둔 상태로 흘러가게 해 두니까 -letting it be- 대화는 각자에게 듣기 어려운 아킬레스건이라 생각되었던 사건들도 다루어지면서 자신과 상대의 상태가 진실로 어떠했었는지를 살피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이 점점 말하기에서 상대방 말을 듣기로 분위기를 전환시켜주었다. 각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드러내었지만 즉시 실행을 위한 동의과정으로 가기 보다는 뜸을 들이고 성찰할 시간이 필요하게 되어 서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다시 서로에게 반영해주고 마무리로 자신에게 일어난 것을 말하게 하였다.

 

마무리에서는 각자 자신의 입장을 재차 정리해서 말하고,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확인하였고, 잠시 시간을 갖고 어떻게 서로 두 기관이 서로 관계를 맺을 것인지 내부 논의와 생각할 시간을 갖기로 하였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공격적이었던 사람이 울기를 시작했고 자신의 진심이 무엇인지 다시금 확인하고 자신이 무엇에 두려움을 갖고 있었는 지 고백을 하고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함께 하는 것임을 고백하는 순간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제는 서로가 많이 누그러지고 어느 정도 상대의 진실이 무엇인지 보고 듣게 되었고 인간적인 고뇌와 힘든 처지를 공감하게 되었다.

 

끝나고 시계를 보니 새벽 340분이 되었다. 한 자리에서 한 번도 일어나지 않고 10시부터 무려 5시간 40분을 그렇게 앉아 있었던 것이다. 몰려오는 피로감과 다시 한 시간 반을 승용차로 집으로 갈 길이 남아있었다. 그런데 그런 피로감을 상쇄하는 배움의 수확도 있었다.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서클로 문제해결의 상황에 직면하면서 서클이 작동된다는 사실이었다. 해답을 모른 채 온전히 서클을 붙잡고 자기중심과 서클의 중심을 지켜나가는 것, 현존하고 연결하며 계속적으로 흐름을 타고 가면서 때때로 나오는 중요한 사실과 의미 그리고 느낌과 욕구를 전체에 비춰주는 것 그렇게 상호이해와 진심나누기를 하다보면 저절로 뭔가 앞으로 나아가는 출구가 나타난다는 것에 대한 확신이었다.

 

이번 사례는 너무나 다급해서 사전 서클도 없었고, 문제에 대한 파악도 하지 못한 채 허겁지겁 당사자들을 만나는 경우였다. 처음부터 준비에 대한 결함이 있었지만, 그 시기가 중요한 시점이어서 -서로 결별하고 고소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할 것인가- 다른 선택이 없었다. 그럴 때 무슨 조건과 상황이든 환영하고 거기서 드러나는 사실들을 과정속에서 확인하면서 탐구해 들어가고 서로 의미 연결과 관계 연결을 하면서 흐름속에 맡기고 각자의 진정성에 의존하는 분위기를 안전한 공간속에 확보하며 나아가는 것 이외에는 할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결과는 거의 결별을 작정하고 따질 것은 따져서 논쟁하려온 이들 참석자들은 서로에게 열려지고 자기비난과 타인비난을 넘어 서로 무엇을 소중히 공통적으로 생각하는지를 비로소 듣게 되었고, 새로운 가능성 앞에 서게 되었다.

 

그동안 가볍고 안전한 회의나 전략 기획을 위한 모임에 서클 프로세스를 해 보았지만 이번처럼 첨예한 대립의 갈등상황에서 문제해결로서 서클 프로세스를 진행한 것이 그동안은 없었다. 이 사건을 통해 이제는 어느 정도 서클이 어떻게 갈등상황과 위기의 도전에 공동체 구성원의 지혜에 의존하여 해결할 수 있는 지와, 문제를 가진 공동체는 지혜도 지니고 있다는 서클 원리의 원리에 대해 다시금 몸으로 경험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2013.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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