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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월터 윙크의 <사탄의 체제와 예수의 비폭력>에서 발췌한 것으로
기독교와 평화운동 수업자료로 사용된 것이다)


                                 폭력과 지배체제의 이해



지배체제의 신화

폭력은 우리 시대의 시대정신(ethos)이며 현대 세계의 영성이다. 폭력은 종교의 위치까지 차지하여, 그 추종자들에게는 죽기까지 절대적 복종을 요구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추종자들은 그들이 폭력에 헌신하는 정도가 종교적 경건성의 일종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폭력은 결코 신화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기에, 실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오히려 신화로서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폭력은 단순히 사물의 속성인 것처럼 보인다. 폭력은 확실히 효과가 있다. 갈등을 해결하는 데 마지막 수단, 때로는 처음 수단으로서 폭력은 불가피한 것으로 등장한다. 좌파에 속한 사람이나 우파에 속한 사람, 혹은 종교적 자유주의자나 보수주의자들 모두가 똑같이 신속하게도 폭력을 애용한다. 폭력의 위협만이 침략자들을 저지할 수 있다고 믿어왔고, 지난 45년 간 테러의 균형을 통하여 폭력의 위협이 우리를 방비해왔다. 우리는 폭탄이 평화를 보장할 것이라고 배웠다.

[우리의] 진짜 종교는 기독교가 아니라 폭력이라는 이름의 종교다. 우리의 대중문화, 시민 종교, 국가주의, 그리고 대외 정책 등을 뒷받침하고 있는 구원하는 폭력(Redemptive Violence)이라는 신화가, 바빌론이 지배하기보다는 훨씬 오래 전부터 인간 존재를 특징짓는 지배체제의 뿌리에 고대의 뱀처럼 되리를 틀고 있다


구원하는 폭력이라는 신화

리꾀르(Ricoeur)는 평하기를, 이런 종류의 신화가 궁극적으로 전하는 것은, 창조의 드라마를 통하여 신이 박멸했던, 그리고 계속 박멸해 나갈 권세를 원수 대적으로 지목하는 것에 근거한 전쟁신학이다. 거룩한 전쟁, 즉 성전(聖戰)에 대하여 조리 있게 설명하려는 모든 신학은 결국 이런 기본적인 신화의 형태로 되돌아간다. 왕과 적대자의 관계는 무엇보다 뚜렷이 정치적인 관계를 회상시킨다. 이런 신학에 따르면, 적대자는 악한 자요, 전쟁은 그에 대한 처벌이다. 악은 선한 창조의 세계 속으로 침입한 것이요, 전쟁은 타락한 결과로 등장한 것이라는 성경의 주장과는 달리, 이런 신화는 전쟁이란 처음부터 주어진 것이라고 본다.

이런 고대 신화의 구조는 바빌론 창조 설화, 전투신화(combat myth), 열광적인 민족주의 이데올로기, 혹은 구원하는 폭력의 신화 등등 여러 가지로 불려졌다. 이런 신화의 특징은 폭력의 수단을 써서 혼돈을 이겨내는 질서의 승리다. 이런 신화는 가진 자의 최초의 종교요, "힘있는 자는 항상 옳다"(Might makes Right!)는 생각을 처음으로 명확히 표현한 것이다. 그것은 곧 지배체제의 근본적인 이데올로기다. 즉 신들은 정복자들을 편들어 준다. 거꾸로, 누구든 정복하는 자는 신들의 편애를 차지한다. 일반 대중들이란 왕, 귀족들, 제사장들에게 신이 내린 권세와 특권을 유지해주기 위해서 존재한다. 종교는 권세와 특권을 합법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존재한다. 삶이란 곧 투쟁이다. 이런 신화에 의하면, 어떤 질서도 혼란보다는 낫다. 우리들의 세계란 완전하지도 않고, 또 완전하게 될 수도 없으며 힘센 자가 상금을 차지하는 영원한 투쟁의 무대다. 이런 고대 역사적인 종교의 중심에는 전쟁을 통한 평화, 힘을 통한 안보가 확신으로 도사리고 있다.


현대 대중 문화에서 구원하는 폭력이라는 신화

전투 신화의 구조는 매주일 텔레비전 속에서 거듭 거듭 어김없이 반복된다. 즉 혼돈을 상징하는 강력한 힘이 공격해오고, 주인공은 방어적 전투에 나서고, 그러나 틀림없이 무참한 패배를 당하고, 악의 힘은 승리의 욕망달성에 만족하지만, 주인공은 무력화되어 도망을 치고, 그러나 힘을 되찾은 후 다시 나타나 마지막 싸움에서 결정적으로 승리하고, 혼돈을 물리치고 질서를 되찾는다. 이런 오락성에 대하여 월리스 엘리오트 (Willis Elliot)는 "우주탄생설(cosmogony)은 자아탄생설(egogony)이다. 당신은 모든 일들이 어떻게 탄생하였는가를 보고 이해함으로써 당신 자신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주탄생설을 통제하는 사람은 누구든 그들의 자손들도 통제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구조는 변경될 수 없다... 수시로 돌출되어 솟아오르는 혼돈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이런 신화적 형태는 언제나 동일하게 끊임없이 반복되어야 하며, 수많은 모양으로 변형되어 나타날지라도 그 근본구조는 결코 변할 수 없다.

슈퍼맨(Superman)도 사람들의 신념이나 가치관을 재평가하도록 도전하지 않으며, 혹은 사람들을 변화의 고뇌 속으로 노출시키지도 않는다. 그는 단지 주어진 환경을 교묘히 조작할 뿐이다. 악당들은 외부의 캄캄한 세계속으로 내몰리기는 해도, 악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구원되거나 혹은 참된 인간됨으로 회복되지도 않는다.

로버트 쥬에트(Robert Jewett)가 지적했듯이, 이런 자경단 정신(Vigilantism)이란 민주주의 기관에 대한 불신, 민주주의의 희망에 기본적인 시민 책임과 인간의 지성에 의존하기를 거부하는 배신이다. 그것은 일반대중들이 수동적이고 현명하지 못하며, 악을 분간하지 못하고, 합리적인 대응을 할 수 없는 존재들로 본다. 공공적인 수단이란 마땅한 것이 못되기에, 결국, 메시아, 그것도 무장한 구원자, 민주기관의 법적 구속을 넘어서는 개성과 확신의 능력을 가진 자, 그래서 악당이란 인물로 쉽사리 표현된 악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줄 메시아를 필요로 한다는 메시지가 된다.

-이들 자경단원들은 무법을 권장하지 않으면서도 실제로는 법을 자신들의 손에 쥐고 우리를 구원한다. 즉 그들은 사람을 죽이고 그리고는 마을을 떠남으로써 우리들의 죄의식을 없애준다.

-우리들의 폭력적인 구원자에 의하여 무죄한 사람이 죽임을 당할 가능성을 제거하려고 악당이 먼저 총을 뽑게 하거나 혹은 매복하여 사격을 가하게 한다.

-사회의 추악한 면모를 정화하기 위해서 그런 악질적인 자들은 마땅히 죽임을 당해야만 한다. 관중들은 타인의 죽음에 슬픔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즐거워한다. 그런 악당들은 민주적 절차로 다루어질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원초적으로 티아맛(Tiamat)의 초월적 능력을 지닌 자들이라 너무도 강력하기 때문이다.

-민주적인 방식을 떠받들기보다는 대중문화의 강력한 초 영웅의 방식을 택하는 것은, 보다 단순한 해결책을 그리워하는 향수를 반영하는 것이다. 문명사회의 지루한 절차에 대해 참지 못하는 조금성과 폭력적인 해결방식을 선호하는 열성이 그 신념을 대표한다.

-스파이공포영화의 예처럼 자기의 나라를 우한 봉사의 이유로 스파이는 살인, 유혹, 거짓말, 도둑질, 불법잠입, 법원의 허가없는 전화도청, 다른 말로 기독교 문명의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도록 허가된다.

-어린이들이 일단 지배자들 사회의 기대에 순응하도록 길들여지면 그들은 모든 악이 자신들 밖에 있다고 믿는 욕구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들은 이 세상의 모든 잘못된 것들에 대하여 남들을 희생양(scapegoat)으로 (빨갱이들, 미국놈들, 동성애자들, 비동성애자들, 깜둥이들, 힌둥이들 등등) 삼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복감의 사회적 기준을 고수하고 자기네 그룹의 집단적 정체성에 계속하여 의존한다.

-기독교의 주일학교들이 점차로 축소되어 가는 시대에서는, 구원의 폭력이라는 신화가 종교의 역사에서 그 어는 것보다도 철저하고 효과적인 종교적 길들이기의 방법으로서 어린이들을 자발적으로 묵인하고 받아들이는 것으로 되었다.

 

구원하는 폭력과 국가안보체제

모든 시대에서 구원하는 폭력이라는 신화는 폭력을 통하여 힘있는 자들과 특권을 누리는 자들을 떠받쳐주기 위하여 일종의 종교로서 거듭 나타난다. ...이렇게 하늘과 땅의 권세들이 상응하는 것을 평가하는 고대의 방식은 신들이 단지 각 국가들의 권력서열을 조정하는 모습으로 우주적 의인화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 신화란 지상의 억압적 기관을 위하여 걸구한 합법성을 제공하는, 실제의 권력관계를 신비화한 것으로 보여진다.

즉, 신들은 인간 국가의 권력을 가공적인 마스크로 은폐하는 것이 아니라, 신들은 그 권력의 실제적 영성이라고 지적했다. ... 그것이 천명하는 바는, 왕이 마르둑을 대신하여 혼란을 진압하고 질서를 이룩하도록 행동한다는 점이었다. 국가는 우주의 질서를 반영하는 것이고, 따라서 정항이나 반항은 하늘에 대한 범죄다.

우리가 앞에서 본 대로, 구원하는 폭력이라는 신화에서는 한 나라의 생존과 복지는 땅에서나 하늘에서나 최고의 선으로 격상된다. 즉 나라 앞에서는 다른 신들은 없다. 이 신화는 국가의 중심에서 애국적 종교를 성립시킬뿐만 아니라, 또한 국가의 제국주의적 명령에 대해 신성한 재가(sanction)를 내리는 것이다. 죠오지 코르드(George Khodr)가 지적한 대로, 모든 전쟁은 형이상학적이다. 즉 사람은 종교적으로 전쟁터에 나간다. 따라서 구원하는 폭력이라는 신화는 군사주의의 영성이다. 즉 극소수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국가는 신의 권한으로 명령하여 시민들로 하여금 그들의 생명을 희생하게 한다. 국가의 통치에 저항하는 악한 적대자들의 세계를 청소하기 위하여, 신의 법령으로 폭력을 사용한다. 그런 나라를 통치하는 사람들은 부와 번영을 누릴 권리가 있다. 그리고 선택된 나라와 그 통치계급의 지배권을 특별히 축복하고 편들어 주기 위하여 하느님의 이름을-기독교의 하느님을 포함하여, 어느 신의 이름이든-불러내는 것이다.

...모든 권세들은 외형상의 기구적 형태는 물론 내부적 영성을 갖고 있다. 국가안보체제의 영성이란 국가안보체제라는 이데올로기다. ..."국가의 생존은 절대적 목표다. 국가의 정책은 국가의 생존 계획을 위하여 전 국가를 통합시키며, 각 개인의 삶에서 그것이 무조건적 목표가 되도록 만든다."

"국가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국가에 바칠 최고의 충성과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순간, 어떤 이론, 어떤 교리, 어떤 이데올로기, 어떤 감정, 열정, 이상, 가치 등등 그 무엇도 포기할 수 있도록 항상 준비하고 있음을 말한다. 국가주의란 그 자체로 절대적인 단 하나(Absolute One)이외의 것이 될 수 없고, 국가가 존속하는 한, 그 목적은 또한 절대적 목표(Absolute End)일 수밖에 없다. 국가주의가 그것을 초월하는 어떤 다른 목적의 단순한 도구가 되는 장소는 어디에도 없으며,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이처럼, 구원의 폭력이라는 신화는 부유한 엘리트의 권력과 협소하게 정의된 국가의 목표를 높이기 위하여, 기독교의 상징들, 전통이나 습관들을 사용한다. 즉 그것은 평등한 경제적 조정이나,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동정 같은 것에는 흥미가 없다. 그것은 단지 종교라는 껍질을 이용할 뿐이며, 그 껍질 속에는 국가안보체제라는 불경스러운 교리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의 예언적인 생동감이 텅 비어버린 탓으로, 이들의 외형적인 모습은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특권층들을 보존하려고 권력체제를 조작한다.


하느님이 통치하는 미래

협력사회와 지배사회의 구별, 하느님의 통치와 지배체제의 구별, 예수의 이야기와 구원의 폭력이라는 신화 사이의 구별은, 성서가 말하는 하느님의 길과 세상의 길 사이를 구별하기 위하여 우리가 필요로 하는 날카로운 대조를 제공한다.

사회적

형태

지배 체제

하느님의 탈지배적 질서

성별(gender)의 차이

가부장적: 서로 다르다는 것은

우월/열등을 의미함

성의 평등: 서로 다르다는 것은 전 문화에 이르게는 하지만 지위의 차이에 이르게 하지는 않음

권 세

군림하는 권세: 사람의 생명을

주무르는 권세, 통제, 파괴

서로 나누는 권세: 베풀고 생명을 베풀고, 지원하고, 양육함

정치

정복, 독재정치, 권위주의적, 관료주의적

외교, 민주정치, 권능을 부여함,

탈중심적

경제

착취, 탐욕, 특권, 불평등

나눔, 충분함, 책임성, 평등

종교

남성 신-시샘, 분노, 처벌, 율법을 줌

여성신-포용적인 신의 형상

어머니/아버지, 사랑/심판

동정적임/매정함 자비로운/강요하는

관계

지위를 세움

지배를 위한 위계설정

노예, 계급주의, 인종차별주의

우리들/그들 경직됨

연결을 꾀함

실현을 위한 위계설정

기회의 균등

우리들/우리들 유연함

변혁의

형태

폭력, 강제, 전쟁

갈등을 억제

비폭력적 대결, 협상, 포용

비폭력적 갈등 해소

생태학적 자세

착취, 통제, 경멸

조화, 협력, 존경

논리

이것이냐/저것이냐 둘 중 하나

분석적

이것도/저것도 둘 다 모두

종합적/분석적

자아의

역할

자기 중심적인

제휴 지향적인

교육

사상 주입식

능력 부여식

성적인

책임

엮자들의 출산 능력과 성적인 표현을 남성의 통제 아래에 복종

공동체의 가치관에 따라 개인이 성적 행동을 통제

종말론

현상유지, 권세를 지니고 유지함

이 세상, 이 악한 세대

미래에서 영원성

현재에서 불의

문화적 변혁

하느님의 통치,

오고있는 세대

현재에서 영원성

미래에 정의

* 중요한 것은 하느님 이미지의 실제적인 혁명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하느님의 이미지가 우리를 창조하기 때문이다.

-사탄의 체제와 예수의 비폭력: 90-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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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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