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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의 위험성과 장벽들

 

본문: 7:25-52

 

 

우리의 세속적인 현대 세계와 그 속에서 삶은 신적인 존재를 전제하지 않고도 스스로의 당위와 가치에 의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것이 사회과학이나 인식론에 있어서 그리고 배움과 성장에 있어서 자체의 작동원리와 실재를 설명하는 자체의 논리가 작동한다. 가족과 관계에 있어서도 최소한 심리학적 접근에 의해 문제가 설명되고 그것들의 가이드에 삶을 잘 영위할 수 있다. 스스로 신앙인이라 하여도 도덕과 윤리의 공리(公理)에 있어서는 아직 그 영향이 남아있지만 내면의 깊이에 있어서는 별반 다르지 않다. 일부 창조론자나 교리적 학습을 받은 자들의 저항과 신앙의 관행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거의 고립적이거나 배타적인 소수의 저항에 불과하다. 수많은 대중교회의 성장과 그 거대한 규모는 이미 마음의 분리적 전제(세상은 세상, 신앙은 신앙)가 아니면 기업의 CEO관리시스템을 종교언어로 바꾸어 교회를 운영하고 있는지 오래이다.

 

이와 반대로 열린 마음 혹은 진보적 기독교인들은 대개 개인의 자유의 관점에서 얽매이거나 그 어떤 도덕이나 당위로도 자신이 침해당하는 것을 싫어한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신적실재에 대한 낯설음에서 신에 대한 그리움의 어릴 적 기억의 향수에 따른 의무나 합리적 생활의 근거와 연결되는 행동에 의미를 주는 메시지에 관심을 갖는다. 그래서 존재보다는 아이러니 하게도 자신의 행동에 관심이 가면서 신이 사라진다. 최소한 윤리적 행동의 전제로서의 기반이 되면 충분할 뿐이다.

요한기자와 그의 공동체는 세상에 대한 저항의 성/속의 이분적 사고를 지닌 투사나 합리적 행동의 선험적 근거(당연히 신적인 경험은 아니다)로 축소되는 지금의 삶에 있어서 하나의 중요한 실존적 고뇌에 대한 대안으로서 생명과 빛그리고 은총과 진리의 화육(incarnation)에 대한 신적생명과의 일치에 대해 계속해서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 그것은 경험적 실재이며, 보이는 현실과 다른 진정한 현실에 대한 도전인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과 연결하여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이 도대체 어떤 것이며 어떤 유형의 형태가 보여지는 지에 주목하여 보면 새로운 그러나 영원한 앎의 패턴이 보여진다. 본문의 스토리를 따라가보면 그리스도를 안다는 게 무슨 의미를 내포하며 어떤 차이를 가져오게 하는 것인지 우리 각자에게 도전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이에 대해 피할 수 없다. 그리고 각자가 아는 정도와 스타일에 따라 그리스도의 본성과 그의 영향력을 규정하게 된다. 또한 이것이 자기 이해의 정도에 따라 자신이 얻는 것에 대한 자명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첫 번째 무리는 전통의 라인에 선 사람들이다. “그리스도가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무도 모를 것인데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지 다 알고 있지 않은가?”(27) 율법의 가르침에 의거해서 삶의 상황을 판단하는 부류이다. 삶의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타당하고 진실한 그리고 주어진) 규범과 규칙 혹은 교리가 그들의 의식을 지배한다.

 

-두 번째 예수를 따르는 무리는 삶의 증거들에 대한 긍정성, 도움, 그리고 효과가 있는 실익에 대한 만족을 채우는 무리이다. “그리스도가 정말 온다 해도 이분보다 더 많은 기적을 보여 줄 수 있겠는가?”(31) 당신의 삶에는 두려움과 결핍에 의한 많은 해결할 것들이나 필요가 존재한다. 그리스도는 실질적인 어떤 방식이든- 해결이나 이득이라는 자신의 노력을 넘어선 그 무엇으로부터 오는 기적의 결과들이 존재한다. 이것이 내가 신앙인으로 있는 납득할만한 이유이다. 당신의 이 지상에서 실존적 한계상황에 대해 뭔가 대답과 치유, 혹은 소득이 나에게 신앙인됨의 근거로 작동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리고 이런 말이 낯설게 들리겠지만 세 번째 무리는 자신의 궁극적인 실재에 대한 앎이 논쟁의 즐거움을 주는 부류이다. “‘저분은 분명히 그 예언자이시다.’ 또는 저분은 그리스도이시다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있겠는가?...’ 이렇게 군중은 예수 때문에 서로 갈라졌다”(40-44). 자신이 아니는 것을 반박과 가르쳐주려는 충동으로 살게 되는 부류이다.

 

-또 하나는 자기 신념에 손상을 준 것으로 이해하여 증오심과 상대방에 대한 굴복을 의식과 에너지로 갖고 있는 부류이다. “어찌하여 그를 잡아 오지 않았느냐?”(45). 자신이 아는 것이 확고부동한 확신이 되어 이를 건드리는 사람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이 존재하는 것은 자기신념을 손상시킨다고 생각하여 상대방의 존재를 지우려 하거나 죄인 혹은 혼란을 일으키는 악한자로 이해한다.
자신의 앎이 어떤 근거에 자리잡고 어떤 행동유형을 만들어내는지에 대해 본문에서 보여지는 몇 가지 유형들을 보았다. 그런데 앎(그노시스gnosis, knowledge)이란 예수에겐 어떤 것으로 여겨지는가?

 

그는 앎의 핵심을 사회적 환경과 삶의 조건들에 대한 이해보다는 신적연결의 앎에 대해 말한다. “나는 알고 있다. 나는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은 나를 보내 주셨다.”(29). 존재적 일치의 앎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그 앎이 가능한 유일한 방법은 그 앎에 목이 말라 자기 존재를 던져 그 속으로 들어가는 연결과 그것으로부터 사는 것이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서의 말씀대로 그 속에서 샘솟는 물이 강물처럼 흘러 나올 것이다.”(38) 영혼의 목마름이 변형되어 영혼의 샘이 생명으로 품어져 나오는 변형이 앎의 경지이다.

 

사실상 본문을 따르다보면 우리의 문제는 두려움이나 결핍, 상실이나 실패라는 삶의 조건에 대한 안전함의 문제가 아니라 앎의 문제로부터 기인한다.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이렇게 영혼의 목마름 혹은 메마름의 감각에서 일어나는 자각으로부터 발생한다. ‘빛과 생명그리고 은총과 진리라는 영혼의 갈급함이 그리스도(신적생명, 로고스의 화육)를 제대로 보게 만든다. 거기서 펼쳐지는 앎은 아버지로부터 왔고 보냄을 받았다는 자녀됨의 본성적 일치(존재)와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생명의 감각의 펼쳐짐(상태와 활동)이 자신의 앎을 직접적으로 증거한다.

 

나의 앎이 전통의 기억을 넘어서서 지금 여기서의 생생함을 어떻게 가져올 수 있는가? 필요에 대한 만족이 아니라 어떻게 충실함의 일관성을 지킬 수 있는가? 어떻게 나의 앎이 지적인 유희나 논쟁의 근거가 되지 않고 생명을 주는 데에만 전념할 수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나의 앎이 신념적 타자의 삶의 자리를 침해하지 않고 각자를 진리의 순례자로 보아 목마름을 축이고 더 나아가 각자의 샘이 솟도록 도울 수 있는 것일까?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개념적인 이해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자신의 본래적 터전인 거룩한 실재와의 연결과 자녀됨의 내적 상태로부터 오는 신성한 생명의 에너지를 삶에서 품어 내는 능력과 연결되는 문제이다. 그렇기에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자기 존재가 개화됨이며 또한 주변의 존재가 생명을 얻게 됨에 연결된다. 또한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나의 존재를 주변의 상황과 조건으로부터가 아니라 아버지 하느님의 눈으로 아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나의 진정한 정체성을 비로소 알게 된다는 뜻이다.

 

 

거룩한 독서 방식에 의한 메시지 탐구하기

 

본문을 각자 읽어가며 성서(text)가 어디에서 내 삶(context)에 말을 걸어오는 부분에서 묵상하며 가슴을 열어놓는다. 무엇이 오늘 내 존재를 움직이게 하고 있는가?

 

2. 내 영혼이 주목하게 되거나 내 마음을 움직이는 텍스트와 머물면서 깊이 연결하라. 상상력과 저항없는 호기심을 갖고 가슴을 열어 환대하고 수용한다. 낯설거나 불편하거나 도전적인 것들을 지켜보며 감싸 안아서 무엇이 일어나는지 주목한다.

 

3. 자기 심장안으로 지금 숙고한 것들의 통찰이 들어오게 하며, 그것들이 말하는 것에 자신을 연다.

 

4. 텍스트의 고유한 목소리가 들려지게 허락한 후에 신적인 현존안에 잠시 머물러 있는다. 내면에 은총과 진리로 받아들일 것과 연결하여 있고, 이제 삶의 빛과 생명으로 안내받을 것으로 감사하며 잠시 침묵속에 품고있다가 지금으로 되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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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용박사 | ecopeac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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