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과 -공감하기 :: 2007/10/17 19:08

                    3과: 공감 -마음의 나약함을 위한 것이 아니다


“먼저 이해를 구하라 그러면 이해받을 것이다.”  Stephen Covey


♣ NVC로 한 여성이 어떻게 변했는가?


빙함톤 대학 2학년이자, 다문화 심리학 과정을 들고 있던 수산이 그녀의 ‘힘든’ 어머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내 엄마는 매우 비판적인 사람이다. 내가 무엇을 하던 그것은 충분치가 않았다. 그녀는 내가 입는 옷 방식, 내 친구, 내가 데이트하는 사람, 내가 여가시간에 하는 것, 내가 방을 어떻게 사용하는 가에 대해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쉽게 폭발하였다. 단지 집에 더 가고 싶지 않았다. 매 순간 그녀는 내가 임신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고 나를 지켜보았으며 나에 관해 점검하였다. 난 단지 그녀가 자기 삶을 갖고 나에겐 휴식을 주길 원한다.


NVC의 기본 원리들을 듣고 나서 수산은 이런 새로운 기술을 자신의 어머니와 대화하는 데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느낌과 욕구들을 알아차리면서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의 말을 듣고 그녀가 전에는 결코 갖지 않은 방식으로 그녀의 관심을 들을 수 있었다. 그녀가 발견한 것이 자신을 놀라게 하였다.


어머니와 반시간 정도 이야기하고 들은 후 진정으로 내가 할 수 있는 한 주의 깊게 들은 후, 내가 그녀에 대해 배운 것을 믿을 수가 없다. 얼마나 그녀가 나에 대해 위험을 느끼는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이 어렸을 때 잘려져 나갔다고 느꼈다. 그녀는 어렸을 때 임신했기에 그것이 무엇과 같을지 알지 못했고 대학에 갈 기회를 전혀 갖지 못했다. 그녀는 나에게 진정으로 최선을 다하길 원했다. 자신이 나를 사랑하기에 많은 것을 염려하고 내 안전에 대해 두려워하였다. 그녀가 말하기를 자신은 나를 위해 항상 거기 있을 것이지만, 그녀가 한 방식으로 내가 ‘망가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갈등과 오해의 수년 후 새로운 방식으로 자신의 어머니와의 연결은 어떻게 수산이 그녀와 그녀의 행동에 대해 생각하는지에 대해 변화시켰다. 수산은 그들의 변화에 대해 언급했다. “이는 놀랄만한 일(eye-opener)과 같아요. 전에는 난 항상 내 의견을 들이밀고 그녀에게 내가 느낀 것을 말했죠. 그리고 결코 진정으로 그녀의 말을 듣진 않았죠. 이제 난 그녀를 매우 다르게 보지요. 그리고 그것에 대해 난 매우 감사해요. 그리고 그녀에 대해서도.”


수산이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듣고 그녀의 행동을 인식했던 방식에 있어서 차이를 가져온, 그래서 분노와 참을 수 없음을 자비와 감사로 바꾸는 것은 무엇이었는가? 앞 두 장에서 보았듯이 어느 주어진 순간에 우리가 느끼고 욕구하는 것과의 연결함은 다른 사람과 우리 자신 안에 가장 살아있는 것에 우리를 연결하는 데 도움을 준다. 느낌과 욕구에 대해 들으면서 수산은 자신의 어머니가 두려워하고 있고 걱정하고 있음을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또한 그녀의 어머니가 그렇게 긴급하게 원하는 내면 안에 깔려 있는 욕구를 들을 수 있었다: 자신의 딸의 미래에 관한 마음의 평화. 그녀는 자신의 딸이 소녀의 시기에 자신이 즐기지 못한 기회와 선택들을 갖기를 원했다. 수산이 어머니의 희망과 두려움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을 때 그녀는 마침내 그토록 오랜 수년 동안 어머니의 행동에 동기를 주어온 것에 대해 감사할 수 있었다. 그녀는 또한 그들의 욕구들이 갈등에 있는 것이 아니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 둘 다 수산이 자신의 삶에서 선택과 의미를 갖기를 원하는 것이다. 둘 다 역시 충분히 듣기를 원했고 자신들의 관심들이 상대에 의해 존중받기를 원했다.    


♣ 단지 뭔가를 하려고 하지 말라. 거기에 있어라! (하지 않고 하기)


위의 예에서, 수산은 자신의 어머니와 “반시간” 이야기 했고 “진심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주의 깊게” 들었다고 보고했다. 우리가 어떻게 이런 방식으로 “진정으로 듣기”를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충분히 상대에게 현존할 때를 우리는 어떻게 아는가? 충분히 현존한다(being fully present)는 것은 단지 눈 마주침과 신체적 단서들-비록 그런 행동이 의도를 가리킬 수는 있지만-에만 관여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들은 말에 대한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니라 그 말 뒤의 에너지와 의도에 관여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듣는 것은 우리의 전 몸을 관여 시킨다-단지 우리의 머리만이 아니다. 듣는 데 관여하는 우선적인 기관은 가슴이다.  


우리 대부분은 단지 우리 머리로 듣는 데 익숙하다-의견, 생각, 판단을 주고받기. 연결, 교제 그리고 현존보다는 ‘머리로 듣기’는 보통 일종의 분리와 멀어짐/소외로 이끈다. 이런 분리의 ‘증상들’은 수많은 비-공감적 응답들, 예를 들면 정보, 분석 그리고 충고를 제공하기들을 포함할 수 있다. 가장 종종, 그것은 어떤 형태의 동의에 의해 (예, 이것이 문제여요. 그것에 대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어요?), 혹은 의견불일치 (판단, 기각, 최소화 혹은 부정) 등을 포함한다. 우리가 이런 방식으로 분리될 때, 우리는 자신들의 욕구들과 우리가 주목하기를 원하는 사람의 경험에 충분히 현존하지 못한다.


우리의 전 몸으로 듣고 선/악과 시-비의 사고로부터 나오기 위해 우리는 한 사람의 판단이나 이야기 그 안에 있는 것에 대해 공감적으로 들을 필요가 있다. 이것은 단지 한 사람이 표현하는 내용이나 관념에 단지 응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래에 있는 느낌들, 가치들 그리고 욕구들에 응답하는 것을 뜻한다. 공감하기의 목적은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그들의 행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목표는 상대방이 경험하고 있는 것을 가슴으로 느끼는 수준에서 그것과 연결하고 또한 이해하는 것이다.  종종 이런 종류의 연결은 그 자체로서 어떻게 우리와 타인들이 상황과/혹은 경험에 접근하는가에 있어서 명료함과 변화에 공헌할 수 있다.


♣ 돕지 않고 돕기


당신은 어떻게 종종 그리고 충분히 남이 들어주거나 지원받는다고 느끼는가? 누군가 당신과 당신의 관심들과 충분히 존재하는 것을 느껴보았는가? 내가 어느 날 교실에서 얻은 경험에 기초하여, 이런 종류의 경험을 즐겨본 적이 있는지 물으면 대부분사람들은 거의 없었다고  추측하게 된다. 교실에서 학생들은 어떻게 자신들이 다음 진술에 어떻게 응답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 “난 내일 중요한 시험이 있어. 내가 잘 될 것 같지가 않아” 만일 이것이 다른 동료에 의해 말해졌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표 3-1은 학생들이 응답한 수많은 방식들이다. 당신이 보듯이 가장 공통적인 응답은 우리가 ‘조언하기’라 불리울 수 있는 것이다. 진술에 대한 응답에 있어서 몇몇 학생들은 어떻게 그 사람이 배울 수 있는지, 어떻게 휴식이나 긴장풀기를 얻을 수 있는지, 혹은 시험이 잘 치러지지 않을 때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제안했다. 응답의 어느 것도 화자가 느낌이나 욕구들이라 할 수 있는 것을 나타내지 않았다. 오히려 응답하는 학생들은 그 상황을 ‘해결해 fix’보려고 노력했다.


“난 여태까지 좋은 학생으로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내가 시험이나 그 무엇에 염려할 때 날 심각하게 대하지 않아. 그들은 말하지 ‘오, 다비타, 당신은 단지 괜찮아.’ 그들은 알지 못하지 그리고 내가 시작하려고 할 때보다 더 긴장이 돼.” -Davita


♣ 재-확신/안심은 공감이 아니다


그다음으로 가장 공통적인 응답은 재확신/재안심이다. 화자는 자신의 느낌들은 ‘정당하지’ 않고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일어나지 않거나 사실이 아닐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우리가 누군가를 재차 안심시킬 때, 우리의 의도는 보통 위로와 지원을 주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그것은 종종 반대의 결과를 갖게 되고 대화를 단절시킨다. 그래서 위의 예에서 다비타가 시험에 대해 염려하고 내가 “너는 단지 괜찮을 것이야”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녀가 왜 염려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녀가 원하는 점수보다 더 낮게 나오는 것이 그녀에게 무엇을 의미할 것인지에 대해 난 전혀 이해를 하고 있지 않다. 그녀에게 안심을 주는 것에서 나는 그녀가 현재순간에 그리고 그녀 자신의 경험에 있어서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그녀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그 자체로 진정한 방식으로 난 그녀와 연결되는 것이 가망이 없게 된다.



                                 표 3-1

당신의 친구가 말한다, “난 내일 중요한 시험이 있는 데 내가 잘 해 낼 것 같지가 않아.”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학생들의 반응을 범주화하니 다음의 결과를 발견하였다.

1. “당신이 할 수 있을 만큼 열심히 공부해 그리고 염려하지 마”

조언하기/충고주기: 가장 공통적인 응답 형태

2. “오 그래? 당신은 머리가 좋으니 잘 해 낼 거야.”

재 확신/재 안심: 두 번째로 가장 공통된 응답형태

                다음의 응답형태는 덜 자주 제안된 것이다.

3. “걱정하지마. 걱정하는 건 어리석을 것이야.”

 감정의 부정

4. “많은 시험이 있어. 그까짓 하나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

 최소화하기

5. “네가 나쁜 결과를 가질 것이라 생각한다면 이번 주 내 시험 일정에 대해 들어봐야 해”

더 심한 것 놓기-난 네 것 이상이야

6. “심각한 이야기군. 네가 안됐다고 느껴.”

 동감

7. “그래, 그와 같은 것이 지난 학기에 나에게도 일어났어. 그 때 내가 한 것은....

 이야기 해 주기: 비교되는 이야기 주기

8. “가서 술 마시고 잊자.”

 피하기

9. “내가 네 공부하는 것 도와줄께”

 도움의 제공

10. “네 문제는 네가 강박적인 염려자란 거야”

 진단

11. “내 생각엔 네가 너의 부모를 기쁘게 하기 위해 너무 염려하는 것 같애”

 분석

12. “모든 것 다해 공부 열심히 해”

 판단

   


♣ 동감(sympathy)은 공감(empathy)이 아니다


학생들이 하는 다른 형태의 반응은 동감이다: “얼마나 두렵니. 네 말을 들으니 나도 무서워.” 우리는 다른 사람-특히 내가 돌보는 사람-이 강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볼 때, 이것이 우리 안에서 공감어린 감정, 즉 우리가 믿기에 타인이 경험하는 것에 비슷한 감정을 자극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슬프다고 느낀다고 우리가 들었을 때 우리도 역시 슬픔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이 동감적인 감정(“느낌의 같음” 혹은 “함께 느끼기”)이다. 이런 방식으로 느낄 때, 그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가슴으로 연결된 것처럼 보여질 수 있다. 확실히 이런 순간들에는 우리의 감정들이 자극된다. 그러나 공감을 제공함에 있어서 화자에게 어떤 감정적 교제를 제공하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욕구와 경험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지 타자의 경험과 욕구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함에 있어서 우리는 충분히 타자와 연결되거나 충분히 그에게 현존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고통어린 경험을 누구에게 말하고 나서 그들의 반응이 너무 강해서 당신이 당신의 관심을 그들을 지원하는 데로 바꾸게 된 것을 발견한 적이 있는가? 이것은 극단적인 예지만 이는 우리가 공감적으로 들을 때 우리는 화자의 욕구와 느낌들에 대해 집중하는 것을 유지하고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화자의 느낌과 욕구들과 연결되는 데 열려 있어야 함을 보여준다.


♣ 이야기 말하기와 비교는 공감이 아니다


덜 공통적이지만 학생들은 그들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이야기를 나눔은 일종의 재 안심과 조언하기의 형태일 수 있다. 그건 또한 우리가 그들이 경험하고 있는 것을 이해하고 우리가 공감적임을 보여줌으로 타자와 연결을 시도하는 한 방식일 수 있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그것은 또한 우리가 지원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초점을 유지하기보다(최소한 그 순간에는)우리 자신의 경험에 주목을 되돌리는 결과를 갖게 될 수 있다. 특별히 누군가 강한 감정을 경험하고 있을 때, 일화를 나누거나 그들 상황을 비교하는 것은 더 큰 이해나 연결을 촉진할 가능성이 적다. 그것은 초점을 그들 밖으로 이동시켜서 최소화나 거부의 형태로 행동할 수 있다.



♣ 타자의 발에 신을 놓기 


한 사람에 대한 응답에 있어서 우리가 어떻게 선택하든지 그 선택에 아무것도 “잘못된” 것이 없다. 때때로 당신의 경험에 대해 듣거나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가 단지 그가 원하는 것이다. 그런 응답들은 교제, 이해, 명료함 그리고 지원을 위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 그러나 하나의 의사소통 전략을 선택하기 전에 당신은 당신이 말하는 그 사람들에게 그들이 조언이나 당신 자신의 이야기를 즐기는지 혹은 그들이 단지 누군가 그들과 함께 있어서 최소한 당분간은 들어주길 원하는지 묻는 것을 바랄 수 있다. 먼저 검토하는 것은 자율, 인식 그리고 선택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공헌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그 사람이 충족되지 않은 자신의 욕구들에 의해 이미 자극될 때 특별히 중요할 수 있다. 먼저 검토하는 것이 당신으로 하여금 그 순간에 있어서 다른 사람과 그의 욕구에 전렴하게 하는 데 도울 수 있다.


어떻게 응답할 것인지를 선택함에 있어서 당신이 느끼고 욕구하고 있는 것을 알기 위해     당신 자신에 대해 검토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만일 당신이 어수선해지고 괴로움을 느낀다면 당신은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있어서 무엇이 진행되는지 들을 수 없거나 들으려 하지 않을 수 있다. 혹은 아마도 당신은 이 사람이 이전에 비슷한 어떤 것을 표현하는 것을 듣고 같은 이야기처럼 당신의 귀에 들리는 것을 들으면서 절망하거나 지치는 것을 느낄 것이다. 왜 우리가 이 선택을 하는가에 대한 충분한 알아차림 없이 이와 같은 시기에 있어서는 우린 재 안심, 충고 혹은 다른 비 공감적인 응답으로 응대할 수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가 흥미를 갖지 않거나 지금 가능하지 않고 다른 욕구에 집중하기를 원하는 것을 소통하기 위한 한 전략일 수 있다. 이 순간에 그러나 전략으로서 비공감을 사용하기 보다는 우리는 우리에게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정직하고 진실해질 수 있다. “수희, 난 당신이 내일 시험에 대해 얼마나 염려하는 지 듣고 있어. 그리고 내겐 진정으로 제 때에 행해져야 하는, 진짜 신경 쓰이는 오늘 5시에 내야 할 숙제가 있어. 난 그것에 전렴하기 원해.” 그렇게 함에서 우리는 정확성, 정직 그리고 신실함뿐만 아니라 선택과 자기 돌봄에 대한 우리의 욕구에 전념할 수 있다. 


한 최근의 경험이 이런 문제에 대해 어떤 통찰을 제공해 준다. 내가 한 선택들에 대해 그리고 이런 선택들이 내 삶에서 충족되지 않고 남아있던 어떤 욕구들에 어떻게 공헌하지에 대해 실망을 느끼고 있었다. 난 슬픔을 느끼고 나의 관심들을 어머니와 나누었다. 그녀의 직접적인 응답은 나와 의견이 다른 것이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내가 한 건설적인 결정들의 예들과 얼마나 문제된 그 결정이 사실상 내 삶에서 어떤 ‘긍정적인’ 결과들에 공헌해 왔는지를 지적하였다. 나의 경력서를 읽어가듯이 그녀는 내가 삶에서 행한 모든 것들의 목록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난 전보다 더욱 의기소침하고 우울해짐을 느꼈다-그리고 좌절하고 의기소침해졌다!  


이 상황에서 무엇이 일어났는가? 나의 어머니와 함께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것을 나눔에 있어서 난 교제와 지원을 원했다. 난 이해를 원했고 들어준다는 것을 느끼는 것을 원했다-다른 사람이 나와 함께 있기를. 내가 추측컨대 그녀에게 나이 고통을 듣는 것은 매우 큰 도전이었다. 부모로서 그녀는 아마도 내가 내 삶에 만족함을 느끼는 깊은 욕망을 가질 수 있다. 나의 안녕/복지에 대해 관심을 지닌 그녀는 편안과 수용을 촉진하길 원했지만 그 방법을 알지 못했다. 나에게 재 안심을 줌으로서 그녀는 사실상 그녀 자신의 두려움과 불편함에 응답하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내가 교제를-누군가 나를 위해 “단지 거기에 있음”- 그토록 원하는가에 대한 나의 절망을 표현한 후, 그녀는 듣게 되었다. 그녀에게 그것은 도전이었음을 난 확신한다. 그러나 그녀의 단순한 거기 있음은 커다란 선물이었다. 나는 그녀의 들음에 있어서 돌봄과 이해에 대한 감각을 경험했다. 충분히 나 자신을 표현한 후, 나의 감정은 향상되었다. 아마도 당신이 괴로워하거나 누군가가 당신의 감정을 ‘변화’시키려 원하는 때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이들이 나를 도와줄 수 있는 때를 생각하는 것은 타인에게 어떻게 내가 응답하기를 원하는 가에 대해 좀더 알아차리고 선택하게 한다. 내가 공감적으로-내 가슴으로- 듣기를 원하는가? 혹은 나는 내가 주기를 원하는 지원과 교제를 제공하지 못하는 -조언하기나 해결하기 같은- 그러나 좀더 편하거나 익숙하게 느낄 전략을 선택할 것인가?

♣ 초보자에게


물론 우리 대부분은 비 공감적인 응답들을 주고받는 것에 익숙해 있다. 처음에 습관적으로 응답하지 않는 것은 매우 어려울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우리가 듣는 것에 의해 자극받았다면 분석, 불일치, 조언 혹은 다른 형태의 사고에 기초한 응답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은 쉬울 수 있다. 그 이유로 다음 구절의 문장 틀은 우리가 느낌과 욕구에 집중하게 하는 데 매우 유용할 수 있다. 이 초점은 공감적 연결을 지원한다.

                         공감 추측을 위한 문장 틀들

 

1. 당신이 (  욕구어 삽입 )을 욕구/원하고 있기 때문에 당신은 (  느낌어 삽입 )을 느끼고 있습니까?

 

2. 당신이 (        )을 욕구/원하고 있기 때문에 당신이 (        )을 느끼는지 궁금합니다.

 

3. 당신은 (          )을 원하고/욕구하고 있기 때문에 당신이 (      )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여집니다.

 

4.  당신이 (        )을 욕구/원하고 있기 때문에 당신이 (        )을 느끼는지요.

5. 그래서 당신은 (          )을 원하고/욕구하고 있기 때문에 당신이 (      )을 느끼고 있는 것이군요.

 

6. 당신이 (          )을 원하고/욕구하고 있기 때문에 당신이 (      )을 느끼고 있는 것인가요?

 


이 틀에는 세 가지가 주목되는 것이 중요하다. 첫째는 그것들은 현재를 향해 있다는 것이다. 당신이 지금 느끼고 욕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그 사람의 경험을 현재시제에서 이해하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 순간에 그들에게 ‘살아있고’ 강요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현재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가끔 개인의 느낌들은 과거 경험에 대한 사상에 관여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이 과거 사건에 대해 생각하거나 말한다면 그 사건은 여전히 지금 그것과의 경험을 공명시키고 있다. 그래서 과거에 대한 것으로 우리가 한 어느 진술도 현재 시제로 틀 지워질 수 있다. 이것이 “현재로서 과거”틀이 보여지는 바이다.

현재로서 과거:

“( 년, 개월,  일)전에 일어난 것에 대한 당신이 생각할 때, 당신은 (      )을 욕구하기 때문에 (       )을 느끼고 있는가?

종종 과거를 가져올 때 그 사람이 현재 상황에 대해 “붙잡고 있는” 것이 얼마나 강하고 고통스러울 수 있는지를 그것은 가리켜 준다. 연결되지 않음과 성취되지 않은 욕구들의 역사가 존재한다. 이는 그들에게 공감을 지원할 때 당신이 아마도 거기에 대응하기 원하는 느낌의 강도와 깊이를 가르치고, 그것들을 지원하는 데 있어 알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 추측은 단지 추측일 뿐


기억해야 할 두 번째 점은 공감적 숙고의 잠정적 특성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분석하거나 “그들을 계산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오직 화자는 그들이 경험하는 것을 안다. 우리는 그 경험의 본성을 추측하려고 노력하고 우리의 추측이 그 경험과 일치하는지 아닌지 확인한다. 이는 우리가 “당신은 ....를 욕구/필요하기 때문에 ....를 느끼십니까?”라는 질문형태에서 우리의 공감적 추측을 해 주는 이유이다.  다른 대안으로, 만일 질문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우린 “그래서, 당신은 ...를 원해서 ...를 느끼는 군요”라는 어조로 개방상태를 보인다. 우리는 또한 “그것이 맞습니까?” “그것이 당신의 경험에 부합되는가요?”라는 부가의 의문을 첨부할 수 있다. 질문을 할 때 우린 또한 그것이 “옳은지”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공감을 주는 그 사람은 우리의 추측이 자신의 경험과 부합되는지 알려 줄 것이다. 부합되지 않을지라도 단지 우리의 의도- 우리가 공감을 주려고 시도하기-는 연결을 충분히 창조해 낸다. 문제가 되는 타인과 충분히 현존하는 것이 우리의 의도이다.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명료해짐에 있어서 우리가 공감을 주는 사람을 지원하기 위해, 내용과 관련된 질문, 예를 들면 “당신은 가족과 헤어져 있어 교제와 지원을 원하기 때문에 슬픔을 느낍니까?”와 같은 질문을 묻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그런 질문은 “당신은 어떤 느낌입니까?” 혹은 “당신은 무엇을 원합니까?”와 같은 제한 없는 자유문답(open-ended)의 질문보다 훨씬 연결과 탐구를 촉진시킨다.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한 “난 모르겠어” 혹은 “난 확신이 안 서”와 같은 공통적인 응답들은 단지 우리의 대화와 연결은 궁지(dead-end)로 이끈다.


“왜 그렇게 느끼지?”와 같은 질문은 특히 피해야 한다. 이런 종류의 질문(이유나 설명을 요구하는)은  느낌과 욕구와의 연결보다는 쉽사리 생각과 지각을 도출해 내기 쉽다. 때때로 사람들은 또한 이런 종류의 질문을 그들의 느낌을 정당화해야 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공감을 줄 때 우리는 수용과 연결을 촉진하기를 원한다. 우리의 느낌은 우리의 느낌인 것이다. 정당화하거나 설명해야 할 필요가 없다.


♣ 양지에서 걷기


공감을 줄 때 세 번째 중요한 점은 그 사람이 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확인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것이 명료하게 하는 데 도움을 주고 우리의 욕구가 충족되는 기회를 증가시킨다. 예를 들어 기숙사동료에게 “라디오를 크게 트는 것이 견딜 수 없어!”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행동에 있어 어떤 변화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라디오를 그렇게 크게 트는 것을 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 주, 그는 TV를 큰 소리로 틀 수 도 있다. 당신이 원치 않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당신의 가장 큰 욕망이나 열망인 것에 초점을 맞춤으로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훨씬 더 많은 기회를 갖게 된다. “내가 공부 중에는 좀 조용한 것을 원하기 때문에 난 당황스러워” 혹은 “난 당신이 내가 조용히 공부하고 싶은 욕구을 고려해주길 원하기 때문에 당황스러워.” 그러고 우리는 그 ‘긍정적인’ 욕구를 충족시킬 특정한 요구를 할 수 있다-조용함 혹은 고려에 대해(4과의 요청을 보라).


♣ 짧게 그러나 다정하게


공감함에 있어서 간단한 것이 도움이 된다. 당신의 성찰을 설명하거나 정당화하려고 노력하지 말라. 목표는 화자로 하여금 그들의 욕구와 느낌을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다. 우리가 이야기의 상세한 부분에 초점을 둔다면 쉽게 “머리속으로 움직”여서 분석하기 쉽게 된다. 공감적 연결을 하기 위해 보통은 모든 상세한 부분을 알거나 이해할 필요가 없다. 만일 좀더 많은 단어를 사용한다면 듣는 이들은 당황함을 느끼게 되고 당신이 말한 것 모두를 뒤따라 가는 데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당신의 공감적 추측을 20개 단어 이내로 줄이도록 노력하라.


예를 들어보자.


친구: 철민이가 우리의 관계를 끊으려 결정한 것을 믿을 수 없어 그는 말하고자 하지 않아. 나는 끝내야 하는 것임을 알고 있지만 그 적절한 시간이 매우 어려워. 내 어머니가 슬퍼하고 그토록 오랫동안 그가 내게 많은 것을 뜻해서. 내가 어떻게 그를 대해야 할지 모르겠어. 모든 것이 부서져 가고 있어.


도움 안되는 예: 그렇군. 그가 말한 것의 결과로 보면 당신이 진정으로 관계를 중요히 여기고 있고 당신은 이런 방식으로 끝내길 원치 않아서 슬픈 것이구나. 특히 당신과 함께 했던 소중한 것들과 당신 둘이 서로간에 만났던 그 오랜 시간에 대해서 생각할 때 그런 거군.


좀 더 도움되는 예: 네가 진정 지금 지원을 받고자 원하기 때문에 그가 떠난 것에 마음이 상했구나?


♣ “머리로 말하는” 쇼를 즐기기


처음 당신이 타인에게 공감하려 할 때 당황스러운 느낌이 들고 심지어 느낌과 욕구에 대해 추측하는 것을 어려워할 것이다. 처음엔 거의 마술처럼 보일 수 있다-어떻게 누군가의 가장 깊은 감정과 욕망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그들의 옷깃에 이런 정보를 넣고 다니지 않는다. 그들이 말하고 있을 때 그것은 종종 생각, 의견 그리고 종종 판단과 이름 붙이기에 대한 것이다. 범벅이 되어 있는 모든 정보 속에서 느낌이나 욕구를 발견하는 것은 건초더미에서 바늘을 발견하는 것과 같을 수 있다.


어떻게 당신은 시작할 수 있는가? 역설적이게도 느낌과 욕구를 듣는 데 있어서 종종 시작하기 가장 좋은 장소는 표현된 의견, 생각 그리고 판단과 함께이다. 당신이 회상할 수 있듯이, “머리로부터 말하기”는 생각, 판단 그리고 인식-비난, 비판, 딱지붙이기, 분석, 진단 등의 진술들-을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우리가 머무르기 원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이들 생각들은 충족되지 않은 욕구들에 대한 중요한 첫 번째 실마리들을 제공할 수 있다.


종종 우리는 ‘머리로 말하기’ 쇼에서 떠오르는 단어의 뿌리 의미에 있어서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그는 내가 지금까지 만난 가장 지원하기 어려운 사람이다”라고 말하면 화자는 아마도 돌봄과 지원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비슷하게도 누군가가 ‘의존적인’ 그리고 ‘돌보지 않는’이란 단어를 사용한다면 그들에 대한 욕구는 아마도 독립과 돌봄일 것이다.


단어들은 서로 뿌리를 나눌 뿐만 아니라 인식적 ‘가족들’에 속하는 것으로 보여질 수 있다. 이런 가족들에 대한 인식과 어떻게 어떤 단어들이 비슷한 의미(함축적인 차이와 함께)는 또한 공감을 주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특히 당신이 전략 언어가 느낌과 욕구 언어와 비슷하다고 생각 할 때. 예를 들어 누군가 “난 이 일에 실증이나! 난 어떤 도움도 얻지 못하겠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화자가 지원을 원하고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지원,” “도움,” “안내,” “직접” 모두는 특정한 그러나 관계된 전략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보편적 욕구, “지원”에 대해 의미에서 비슷하다.


한 단어의 뿌리 의미와 그것의 ‘가족들’을 찾는 것에 덧붙여서 그것의 반대와(혹은) 보편적 요구가 언급된 느낌이나 판단을 “만족”시키는 것을 찾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만일 누군가가 “난 소음을 참을 수 없어! 그것으로부터  난 단지 휴식이 필요해”라고 소리 지른다면 그들은 고요, 움직임 그리고 편안에 굶주려 있음을 추측하는 것은 확실한 것이다. ‘소음’의 반대는 고요이고 만일 당신이 ‘휴식’을 원한다면 당신은 아마도 상황에서의 변화(움직임)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당신의 경험에서 변화(안도)를 경험할 수 있다. 비슷하게도 당신이 누군가에 가지고 있는 이름들이 “고집쟁이의”와 “돼지머리인”이라면 당신은 아마 상호성, 개방 그리고 고려를 원할 수 있다. 만일 당신이 굶주림을 느낀다면 무엇이 이를 만족시킬 것인가? 음식물. 당신이 지쳐있다면 휴식을 당신은 원할 것이다. 지루함을 느낀다면 당신은 자극 그리고/혹은 도전을 원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공감 추측을 할 때 우리는 타인에게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확실히는 알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머리로 말하기”쇼를-모든 딱지붙이기, 의견 그리고 분출해 나오는 판단들- 주목하면은 우린 그 아래 있는 느낌들과 욕구들과 연결될 수 있다.


♣ 타인의 신발신고 걷기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 전에 그 사람의 신으로 1마일을 걸을 필요가 있다는 옛 격언이 있다. 공감주기에서 이 개념은 또한 도움이 된다. 당신이 그 사람이 표현한 것에 기초해서 그들이 느끼거나 욕구하는 것이 무엇일지를 상상하는가? 예를 들어 내일 최종시험을 치르게 되지만 그들의 생각으로는 충분히 준비 안한 사람에 대해 생각해보라. 일 분간 잠시 상상해 보라. 당신 몸에서 어떤 감각을 느끼는가? 아마도 염려하고, 걱정하고 긴장되는 감정을? 당신에게 가장 활동적인 욕구는 아마도 효과, 편안, 확신 그리고 위로일 수 있는가? 당신의 마음의 눈으로 비슷한 상황 속에 당신은 두면 당신 자신의 경험과 타인의 경험 간의 ‘다리’를 상상할 수 있다. 당신의 경험이 타인이 경험하는 것과 맞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당신의 상상력을 사용함으로 당신은 그들의 경험이 무엇일 수 있을지 추측하기 시작할 수 있다-그리고 그들에게 공감을 제공할 수 있다.


♣ 문화적 차이를 건너서 공감하기


주어진 언어와 문화내에서 수많은 방언과 하부 문화들이존재하며,  다른 기대와 느낌과 욕구에 대해 말함에 있어서 다른 기대와 다른 경험의 수준을 지닌다. ...


일터에서처럼 어떤 상황에서는 당신은 욕구에 대해서만 공감 추측을 주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회상해 보면 우리의 욕구들은 생명의 추진 에너지이고 우리의 느낌은 단지 이 에너지에 우리를 연결할 뿐이다. NVC 실습하는 이들 중에 공감의 힘의 90%는 욕구에 대한 공감하기에 연결되어 있고 10%는 감정에 공감하기에 연결되어 있다는 신념이 존재한다.


당신이 누구에 대해 말하는지 상관없이 당신은 당신의 언어와 표현 방식을 그들의 것과 부합시키기를 원할 것이다. 예를 들면, 느낌은 강도와 정취에 있어서 변한다. ‘신경과민의’란 말은 “두려운”과는 강도에 있어서 훨씬 다른 수준을 지니고 있지만 두 언어는 불안하거나 두려움에 대해 묘사한다. 어떤 단어를 사용하는가를 선택함에 있어서 당신은 아마도 두 고려사항들을 균형 잡으려 할 것이다: 당신의 평가에 있어서 무엇이 가장 그 사람의 현재 경험에 부합되는가? 그들이 단지 겁먹은 것인가 아니면 사실상 공포에 떠는가? 그리고 어떤 단어를 그들은 가장 편안하게 듣고 , 신뢰와 연결을 촉진하는가? 누군가 상처받거나 불안전을 느낀다면 혹은 단지 느낌에 대해 말하는 것이 불편하다면 당신은 강도의 수준에 있어서 ‘더 낮은’것을 추측하길 원할 것이다. 수식어(“거의” “조금” “매우” “극도의” 혹은 “진실로” 등)를 사용하는 것은 또한 당신의 추측의 높이를 조정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약간 당황한”은 “매우 당황한”과는 훨씬 다른 강도와 고저(높이)를 지니고 있다. ...


개인의 두려움이나 고통의 가장 깊은 뿌리에 도달하지 못 하지만 “좀 더 낮은 물”에서 연결하는 것은 여전히 연결과 이해를 창조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이 사용하는 말이 아니라 당신이 지니고 있는 의도이다.


어떤 말이 연결을 지원하는지 당신이 확신하지 못하는 어떤 사례들에 있어서 당신은 침묵의 공감을 사용할 수 있다. 침묵의 공감에서 당신은 화자의 느낌과 욕구를 이해함에 초점을 두고 당신의 연결에 대한 의도는 당신의 전체로서 듣고, 현존하고 주목함에 의해 표현된다. 당신이 진정으로 현존하고 타인에게 다가가 있다면 어떤 언어도 필요하지 않다. 누군가 당신에 대해 돌보면서 강하게 듣고 있던 때를 기억할 수 있는가? 그것이 침묵 공감이었다.


♣ 더 깊게 들어가기


공감을 줄 때, 시간을 갖으라. 느낌과 욕구를 추측하면서 당신은 “예, 정확히” 혹은 “절대적으로” 혹은 “예, 예”와 같은 문장들을 듣기 시작할 것이다. 이런 응답들은 그 사람이 진정으로 그들의 느낌아래에 놓여있는 욕구들과 연결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처음에는 그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것을 단지 스스로 설명하고 명확하게 하고 싶어서 단어들의 분출을 관찰하게 될 것이다. 그 과정으로 지속하라. 당신은 드러난 것과 출현하는 느낌과 욕구들 범위로 인해 아마도 놀랄 것이다. 시간을 갖고 그 사람이 철저하게 느끼고 그 느낌이 ‘표현된’ 것으로 당신이 느낄 때까지 공감하기를 지속하라.


어째서 그 사람이 철저히 느낄 때까지 추측하기를 지속하기를 원해야 하는가? 종종 그것은 ‘핵심’ 느낌에 도달함에 의해서만 비로소 그 사람은 충분히 들은 것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그 느낌 주변에 있는 욕구들의 ‘성좌들’에 대해 느낌이 들려지기 까지 ‘핵심’ 욕구를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다.  당신은 각각의 인형이 좀 더 작고 더 작은 러시아 인형 세트를 본적이 있는가? 당신이 한 인형을 열 때, 당신이 마지막 인형에 도달할 때까지 다른 것이 중앙의 그 안에 있게 된다. 이것은 ‘핵심’욕구를 발견하는 것과 비슷하다. 때때로 우린 한 욕구를 다른 것(예를 들면 공동체는 안전을 위한 전략일 수 있다)을 위한 전략으로 사용할 수 있다. 오직 첫 번째 욕구와 공감함에 의해서만 비로소 그것에 관련되거나 그 밑에 있는 욕구를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


종종 사람들이 무언가에 당황할 때 그들은 멈추지 않고 한 지점/문제에서 다른 지점/문제로 이동하게 된다. 그런 경우에 당신이 연결되고 공감적 추측을 주면서 사이에 개입하여 그가 당분간 잠시 멈추도록 요청하는 것이 매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청자로서 당신은 쉽사리 상세한 내용으로 길을 잃고 말아서 연결과 명료함을 상실하게 된다. 이해를 촉진하기 위해 개입하게 될 때, 당신이 느끼고 욕구하는 것을 진술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잠시 멈출 수 있겠나요? 내가 들은 모든 것에 의해 당황스럽고 진정으로 당신이 방하는 것을 이해하고 싶습니다.” 양쪽 당사자들이 잠시 멈춰서 숨을 쉬는 것은 진정으로 일을 늦추게 하는 데 도움을 주고 의사소통의 움직임과 명료함에 공헌하게 된다.


♣ 언제 당신이 끝낼까?


잠시 후 그 사람이 말하는 속도가 느려지면 당신은 침착해지고, 편안해지며, 긴장이 풀어지는 것을 관찰하게 된다. 이것은 신체적 변화를 포함할 수 있는 데 깊은 한숨, 안면근육의 변화, 몸의 전환 등에 의해 표시된다. 그 때 당신은 “말하고 싶은 것이 더 있습니까?”라고 물을 수 있다. 당신은 또한 “지금 당신은 어떠한가요?”라고 뒤따라 물을 수 있다. 이것은 화자가 그 사람이 그 순간에 어떤 느낌에 있는지를 “점검”하는 암시이다. 이는 그가 나누고 있는 것에 대해 ‘충분하였는’ 지를 아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당신이 침묵의 공감으로 단지 않기를 선택할지라도 화자는 언제 그가 끝나는지를 알게 해 줄 것이다.

심지어 공감과정이 철저하다고 당신이 생각하기 전일지라도 사물을 천천히 정리하고 당신의 시간을 갖는 것이 도움이 된다. 주의깊은 주목은 이해의 과정을 상승시킨다.


♣ 언제가 내 차례일까?


화자가 ‘철저하게’ 느낄 때-그가 자신에게 가장 살아있는 것을 나누는 것을 마쳤을 때-, 그는 그리고 나서 종종 당신이 어떠한지를 듣고 싶어 한다. 공유된 경험을 위한 욕구가 있을 수 있거나 당신이 그와 그의 느낌을 받아들이는 재확인의 욕구가 있을 수 있다. 당신이 공감을 주는 그 사람과 갈등 속에 빠져 있게 된다면 보통 이 지점에서 -그를 충분히 들은 후- 그는 당신이 느끼고 욕구하는 것을 듣는 데 가장 흥미를 가질 것이다. 사실상 당신으로부터 공감의 선물을 받을 후에야 그는 아마도 당신의 경험에 대해 듣고 싶은 열망이 있을 것이다.


그가 당신의 관심을 들을 수 없거나 그러려고 하지 않을 때, 이는 그가 필요한 공감에 있어서 충분히 느끼지 못했다는 확실한 표시이다. 할 수 있다면 위에서 언급한 단계로 되돌아가서 그에게 살아있는 것에 집중하라. 당신이 또한 그렇게 하도록 자극을 받거나 지치게 된다면 스스로 공감을 얻기 위해서 혹은 계속하기에 앞서 자기 공감을(5장) 스스로에게 주기 위해 휴식을 원할 수 있다.  당신 자신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타인에게 공감을 주는 게 불가능하진 않지만 어려울 수 있다. 이는 기본적인 원리인, “교육 앞서서 공감하기”로서 다음 과에서 탐구할 것이다.


♣ 교육 앞서서 공감하기: 상대의 ‘컵’에 채우기 앞서 자신의 것에 주목하기


당신이 물이 가득 찬 컵을 갖고 다른 것으로 그것을 채우려고 한다면 내용물은 흘러넘칠 것이다. 거기엔 단지 양쪽의 내용물을 담을 여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두 사람이 자극받고-화나는, 좌절한, 혹은 상처 입은- 한사람이 타인에게 ‘그의 마음의 조각’을 주길 원한다면 첫 번째 사람이 둘째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 불가능은 아니지만 어려울 것이다. 물의 컵처럼, 둘이 타인의 욕구를 ‘담을’ 공간을 갖기에 자기 자신의 욕구로 너무 ‘차’ 있게 된다. NVC에서는 이 원리는 교육하기 앞서서 공감하기로 알려져 있다. 만일 우리가 누군가를 우리 자신의 경험에 대해(우리 자신의 욕구와 느낌에 대해) ‘교육하기’ 원한다면 우리는 그가 공감을 얻고 그가 먼저 필요한 것을 ‘듣는’지를 알기 원한다.


물론 때때로 우리 자신의 느낌과 욕구가 너무나 ‘현존’하여서 타인에게 일어나는 것을 듣는 것이 어렵다. 그런 경우에 우리는 진행하기에 앞서서 어떤 공감 혹은 자기-공감을 줄 필요가 있다. 우리는 좀더 받기 위해 자신의 컵을 ‘비워야’ 할 필요가 있다.



♣ 그러나 난 도움주기를 원한다!


공감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의 내적 경험과 연결하는 것이며 그 경험이나 바깥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에 대해 말하거나 어떤 것을 하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이것이 절망스러울 수 있다. 우리 문화에서는 행동하는 것에 익숙해 졌다-변화시키고, 문제를 해결하고 책임지는 것에. 누군가 곤경이나 고통에 처해 있을 때, 그가 느끼고 욕구하는 것으로 단지 현존하는 것은 도전일 수 있다. 우리는 움직임과 안심을 원한다. 공감은 우회나 “연기된 만족”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공감을 실습하면서 당신이 경험을 얻는 것처럼 당신은 변화를 창조하기 위해 공감 또한 효과적인 전략임을 알게 될 것이다. 직접적인 변화는 어떻게 우리가 상황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에 대해 어떻게 느끼며, 어떻게 타자와 관계할 것인가에서 일어날 수 있다. 이런 연결로부터 다른 전략들은 공감이 먼저 일어나지 않는 때보다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서 훨씬 더 효과적인 다른 전략들이 출현될 수 있다. 물론 당신이 원하는 어느 때나 재확인과 충고를 줄 수 있다. 당신은 아마도 경험을 나누고 전략으로 이동하는 것은 당신이 공감을 준 후에 훨씬 더 효과적임을 발견할 것이다.


어째서 그러한가? 먼저 공감을 주는 것은 당신에게 단순한 당신의 해속보다 당신의 친구에게 실제로 일어난 것에 대해 더 정보를 제공한다. 다른 사람에게 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것을 정확히 보는 것을 생각하는 게 쉬운 것이다. 때때로 우리가 그에 대해 혹은 우리 자신의 경험에 대해 알고 있는 것에 기초하여 우리는 사실상 명확한 생각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여러 많은 방식으로 같은 자극에 대해 응답할 수 있다. 우리는 만일 공감을 먼저 하지 않는다면 그의 경험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 길이 없다. 우리는 그의 관점으로부터 상황을 보고 그의 신을 신고 걷는다면 우리는 그를 가장 잘 지원할 수 있다. 만일 당신이 나누고 싶은 비슷한 경험과 제안이 마음속에 떠오른다면 공감을 준 후에 하도록 그것들을 아끼라. “당신은 내가 경험한 비슷한 경험에 대해 듣고 싶습니까?” “그 상황을 어떻게 다룰지에 대해 몇 가지 제안들을 좋아합니까?”  일단 당신의 친구가 충분히 자신의 관심을 표현하고 듣게 되면 그는 당신이 나누고자 하는 어떤 생각에 대해 훨씬 더 관심을 갖고 아마도 감사하게 들을 수 있다.



♣ 다른 사람들이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할까?


초기에 있어서 사람들은 NVC로 의사소통하는 당신의 새로운 방식에 대해 의심을 가질 수 있다. “말하는 데 있어서 이런 다른 방식은 무엇인가? 이는 당신이 내게 시도하는 어떤 기술인가? 이런 종류의 질문이나 불만이 온다면 당신은 명백하게 응답하려고 할 수 있다. :예, 나는 우리의 관계를 증진시키고 더 가깝게 느끼며 우리의 갈등을 더 효과적으로 다루기를 원한다. 그것은 아마도 다르게 느껴지지만 당신에게 일어나는 것을 훨씬 더 잘 이해하고 나의 가장 깊은 욕구를 표현하고자 원하는 것이 나의 방식이다.” 사실상 명백해짐에 있어서 당신은 NVC를 사용하여 충족시키기를 원하는 욕구들(효과, 편안, 친밀 그리고 연결)을 나눈다. 그렇게 함에 의해 당신은 이미 공감과 연결을 향한 한 발을 내딛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충족하고자 하는 욕구를 들으면 당신이 말하는 그 사람은 어째서 당신이 새로운 방식으로 의사소통 하려는 지를 좀 더 이해하고 존중하기 쉽다. 


당신이 NVC를 배워서 그것을 실습하면 당신 주변의 이들은 또한 어떻게 좀더 효과적으로 듣고 당신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지를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아마도 또한 당신이 이전에 오해와 불일치로 깨어져 나갔었던 대화속에서 더 잘 머물러 있을 수 있음을 주목하게 될 것이다. NVC를 실천함에서 기술을 얻게 됨으로 당신은 또한 엄격한 모델을 따르지는 않지만 여전히 느낌과 욕구(6장을 보라)에 집중하는 “대화체”나 “거리” 형태를 사용하기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공감은 진정으로 말에 대한 것이 아니다-그것은 타자의 말을 듣고 가능한 가장 깊은 수준에서 타인의 경험을 이해하기 위한 의도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때때로 공감적 응답의 가장 좋은 형태는 결코 말이 아니다. 우리가 말 할 때, 종종 우리가 사용하는 말이 아니라 우리의 목소리의 어조와, 타인과 관련하여 우리의 의향을 가장 잘 소통하는 우리의 몸을 어떻게 위치시키는가이다.


♣ 조심스러운 경고!


NVC를 연습할 때 당신과 가장 친한 사람들과 대화하는 방식을 바꾸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호작용에서는 먼저 느낌과 욕구에 대해 단지 생각하기를 원할지 모른다. 당분간 당신과 먼 사람들에게 실습하라-혹은 자신에게 공감을 주라(5과를 보라). 당신의 친한 친구와의 문제는 그들이 너를 잘 알고 네가 이야기하는 방식에 있어서 변화에 눈치 챌 것이다. 만일 당신이 많은 갈등을 갖고 있다면 그들은 당신에게 큰 신뢰를 주지 않을 것이며 당신이 그들을 너의 이익을 위해 통제하려 시도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경우에 연결을 시도하는 것은 조깅을 하는 첫날에 마라톤을 뛰는 것과 같다. 기술을 익힐 기회를 스스로 갖은 다음 올림픽을 위해 뛰기 전에 실습을 하라.


이것은 당신이 새로운 기술을 즉시 사용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마샬 로전버그는 할 가치 있는 어떤 것도 잘못되기 할 가치가 있다는 말을 즐겨 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뭔가 완벽하게 할 때까지 기다린다면 그 날은 결코 찾아오지 않는다! NVC를 실습하고 사용함에 의해 당신은 확신과 유창함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외국어를 배우는 것과 같이 약간의 NVC를 아는 것은 전혀 모르는 것보다 낫다. 심지어 일상적인 접촉도 NVC 의식과 기술로부터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만일 당신이 시작하는 것이 불안하다면 완전히 낯선 자와 함께 시작하라. 난 나의 요구를 명백히 하고 ‘공식적’인 상황-은행, 학교 그리고 다른 기구들-에서 사람들을 다룰 때 도움을 요청함에 있어서 NVC가 매우 도움이 됨을 발견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여기서 제시하는 틀은 단순히 공감적 연결을 창조하기 위한 로드맵임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길을 따라 4개의 신호들은 관찰, 느낌, 욕구, 그리고 요청이다. 이들 단계들은, 당신이 그것들을 의식할 때, 당신이 말하지 않고 침묵 공감을 줄 때조차도 공감적 연결에 크게 공헌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이 사용하는 말이나 틀거리와 관계없이 화자의 느낌과 욕구에 초점을 두라. 만일 당신이 둘 다 추측할 수 없을 경우 초점을 두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보통 욕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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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17 19:08 2007/10/17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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