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일상화 그리고 마음 모음 -틱낫한 :: 2009/01/08 18:19
깨달음은 매 순간순간 일상생활의 활동영역에서 행해질 수 있다
-깨어있는 마음의 실천적 영성가, 틱 낫 한-
(법무사저널 2009/1-2월호 기고)
행동하는 참여불교(Engaged Buddhism)의 대표자중의 하나인 틱낫한(Thich Nhat Hanh; 1926~현재)은 마하트마 간디이후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영성가이자 사회분야의 행동주의자이다. 80여권의 책을 쓴 그는 시인이자 소설가, 번역가이며 지금 거처하는 프랑스의 ‘자두마을’ 공동체를 찾아오는 수십만 명의 방문객만이 아니라 캘리포니아에서 모스코바에 이르기까지 명상수도원을 돌면서 가르치고 있다. 존재가 지닌 역설적인 성격을 통찰하고, 일상생활에서 단순한 명상 수행법인 “깨어있는 마음”을 지님으로서 살 것을 강조한다. 또한 수많은 대학과 모임에 초청받아서 세계인들로 하여금 폭력과 갈등에 대한 관심을 통해 형제애와 인도주의를 가질 것을 호소한다. 박성용 박사 /비폭력 평화물결
전쟁의 포화속에 핀 연꽃

‘타이’(선생이란 뜻으로 동료와 추종자들이 틱낫한을 부르는 호칭)는 26년 남부 베트남의 우옌쑤안바오(Nguyen Xuan Bao)에서 하급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불교문화에서 자란 그는 어려서부터 이미 승려가 되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아홉 살 때 어느 잡지 표지에서 풀밭에 평화로운 모습으로 앉아 있는 부처의 모습을 보았다. 그 순간 나 자신도 부처처럼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살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그는 10대 초반에 도인을 찾아 산속을 헤매다 수정같이 빛나는 샘물을 마신 후 몸과 마음이 채워지는 실재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이라는 신비체험을 하게 되고 16세에 인근에 있는 ‘투 하에우 파고다’ 사원에 들어가면서 불교에 입문하였다.
행자로 물지게와 소를 치는 힘든 일을 하던 중, 매일 정오에 붓다에게 밥을 올리는 공양을 맡았을 때 도마뱀이 밥알을 물고 달아나는 것과 씨름하다가 예불하는 동안 깨달음을 얻게 된다. 붓다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은 마음을 공양하는 것이요, 모든 존재에게 공양을 드리는 것이 붓다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이며, 세상의 고통을 더는 것이 붓다에게 기쁨을 올리는 것임을 알게되어 도마뱀에게 밥그릇을 따로 놓았지만 그 도마뱀은 죽어바렸음을 알게 되었다. 이 경험으로 그는 자비심의 중요성과 생명의 연약함을 알게 되었다. 그는 바오구옥(Bao Quoc) 강원에서 1949년 구족계를 받고 ‘한 가지 행동’이란 뜻의 ‘낫한’이란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는 활달하며 야심만만한 이상주의를 지향하는 젊은이-자신이 몸담은 수도원에서 최초로 자전거를 탄 승려였다-로서 불교개혁을 시작하였다. 강원시절에 관례화된 방식을 뛰어 넘어 “철학과 문학, 외국어를 강조하는” 커리큘럼으로 바꿀 것을 요구하였고. 거부되자 사이공 대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소설과 시로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였으며 스스로 그러한 조건들을 갖추어 나갔다. 4개 과목에서 수석으로 대학 졸업을 하자 장로들이 그를 불러들였으나 승단의 보수적인 분위기와 결별하고 1950년 낫한과 탁찌우(Thich Tri Huu)는 사이공에 응꾸앙(Ung Quang) 사원을 건립하였다. 이 사원은 후에 베트남전 동안 불교계 투쟁운동의 진원지인 ‘안꾸앙 불교 연구소(An Quang Buddhist Institute)가 되었다.
타이는 40년대 후반의 일본의 지배, 30년에 걸친 식민지 전쟁과 신식민주의 전쟁을 치루는 베트남 사회의 치유와 화해를 꿈꾸었다. 이는 베트남 승려와 재가신도들은 전쟁의 참상을 통해 베트남의 정치적·사회적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가 깨달았기 때문이다. 경험적이고 이론적인 중도 원리-선도 악도 아니며, 나도 남도 아닌 不二원리-를 심리학적 차원에서 사회적 차원으로 재활성화하여 정적주의의 불교로 하여금 사회적 활동성을 갖는 ‘참여 불교’(Engaged Buddhism)에 연결하였다. 베트남전을 통해 민중의 고통을 덜러주기 위해 명상과 사회행동을 결합하는 그는 자비로운 동시에 단호한 반전운동가이자 베트남 사회운동의 가장 중요한 이론가로 활동하게 되었다.
타이의 불교의 사회적 행동주의를 시사하는 대표적인 시가 바로 그의 <진정한 이름으로 나를 불러 주세요>라는 시이다.
내가 내일 떠날 거라고 말하지 마세요/나는 오늘도 여전히 도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세히 보세요. 매순간 내가 도착하고 있는 것을/나는 봄 나무의 새싹으로
새로운 둥지에서 노래를 배우는/부러질 듯한 날개를 갖는 작은 새로
꽃 속의 벌레로/돌 속에 자신을 숨긴 보석으로 도착하는 것을
.......
나는 강물 위에서/탈바꿈하는 하루살이입니다.
그리고 봄이 오면/그 하루살이를 먹는 새입니다.
나는 연못의 맑은 물에서/행복하게 헤엄치는 개구리입니다.
그리고 소리없이 다가가/그 개구리를 잡아먹는 물뱀입니다.
나는 피부와 뼈, 다리가 대나무처럼 기는 우간다의 아이입니다.
그리고 그 우간다에 죽음의 무기를 파는 무기상입니다.
나는 해적에게 강간당하고 바다에 몸을 던지는/작은 배를 탄 12살 짜리 소녀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보거나 사랑할 수 없는/마음을 가진 그 해적입니다.
.......
진정한 이름으로 나를 불러 주세요./그래야 나의 울음과 웃음을 모두 들을 수 있고
그래야 나의 기쁨과 고통이 하나라는/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깨어날 수 있도록/진정한 이름으로 나를 불러 주세요.
그래야 내 마음의 문을 열어 둘 수 있습니다./자비의 문을 말이죠.

공산주의자도 반공산주의자도 아닌 공평한 입장에 서서 평화를 갈망하는 그는 하노이와 사이공 양쪽 정권으로부터 박해를 받게 되었다. 베트남 사람들의 고통 상당부분이 미국인의 마음과 사고방식에서 비롯됨을 깨달은 그는 1966년 ‘화해친우회’의 초청으로 미국에 건너가 토마스 머튼, 마틴 루터 킹 등을 만나며 반전활동을 하였고, 전쟁종식후 하노이 공산당 정부는 1973년 그를 추방하였고, 서방에 잔류한 그는 보트 피풀 원조, 투옥된 베트남 승려의 석방등을 위해 애썼으며, 결국은 그동안 활동하던 프랑스에서 1982년 남서부의 보르도 지방인근에 위치 4개 마을로 구성된 ‘자두마을(plum village)'에 300여명의 승려와 재가신자들과 함께 수행공동체를 세워 명상을 지도하며, 지금까지 전 세계를 돌며 강연과 반전활동을 하고 있다.
타이는 불교의 가르침을 어려운 교리나 개념에 의지하지 않고 일상에서 대중이 특히 서양인들이 실천할 수 있는 삶의 언어로 바꾸어 놓았다. 그의 참여불교는 수행을 방석에 앉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의 모든 순간에 대해 <깨어있는 마음 mindfulness>로 주목하기로 요약된다. 깨어있는 마음이란 정념(正念)을 말하며 한자어 염(念)이 지금(今)과 마음(心)으로 이루어져 있듯이 현 순간에 ‘마음을 충분히 모음(mind-ful-ness)'을 뜻하는 것이다. 붓다의 원어 Budh는 ’깨닫다, 알다, 이해하다‘의 뜻으로 깨어있는 마음이 바로 붓다이며, 깨어있을 때 그 자신 안에 붓다가 있게 된다. 따라서 깨어있는 마음이 불성이고 깨어있는 마음으로 정토의 세계를 이룬다.
타이가 그의 승단을 Interbeing이라 칭하였듯이 선과 악, 옳고 그름은 서로 의존하며, 우리의 존재는 본래 inter-being(상즉존재)이기도 하다. 그의 독창적인 창조성은 전통적인 불교의 불이/중도 사상, 연기론, 정념사상을 사회행동과 일상생활속으로 끌여들여 개념이 아닌 생활의 알짬으로 활성화시켰다는 점이다. 위에서 언급한 시에서 드러나듯이 그는 불교 가르침인 불이/상즉 원리를 고통의 현실에 적용시켜, 고통에 대해 ‘마음 다함(mindfulness)' 수행을 강조했다.
깨어있는 마음은 하루살이와 개구리, 우간다와 베트남 어린이라는 고통의 현상을 주시하고, 고통의 뿌리를 이해하기 위해 그 고통을 스스로 느낀다. “나는 그 아이들이 느끼는 배고픔과, 비참함, 절망을 느낀다. 그들의 가슴속에 있는 동일한 감정들이 나이 가슴속에도 있다. 그리고 우리들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리하여 그 고통에 대한 해답으로서 희생자와 가해자 모두에 대한 경험의 일체화가 일어난다. 하루살이/새, 개구리/물뱀, 우간다어린이/무기상, 해적/12살 소녀의 상호연관성을 본다. “우리 모두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책임이 있기 때문에 만일 당신이 총으로 해적을 쏜다면 그것은 당신 모두를 쏘는 것이다.”나는 기쁨이고 슬픔이며 살인자이자 피살자이다. 이러한 무분별지에서 깨달음의 길이 생긴다. 자비스런 불성, 곧 깨어있는 마음이 이해와 사랑을 가져오고 변화를 일으킨다. 우리는 여러 생을 사는 존재이자 인간은 다른 생명체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너의 운명과 비참이 나의 것이 되면서 명상이 사회적 봉사로 완성된다. 지금까지의 심리적이고 실존적인 4성제(고-집-멸-도)가 사회적 경지를 띠게 된다. 고통의 제거가 깨달음의 길이 되는 것이다. “언제나 가능한 빨리 모든 살인 행위와 참혹한 고통을 중지시키고 중지시킬 수 없다면 고통을 줄여야 한다.” 평화와 인간의 생명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그는 불교의 생존보다 베트남의 평화를 더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깨어있는 마음을 통해 존재의 본질이 궁극적으로 완전하다는 것을 깨달으면, 수행자는 주체와 객체 사이에 더 이상 어떠한 구별도 존재하지 않는, 무분별지라 불리는 지혜의 단계에 도달한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행동에서 이루어지는 명상이자 명상안에서 이루어지는 행동이다. 예를 들어 그가 보트 피풀이나 전쟁고아들을 위해 서방의 도움을 받기 위해 한 활동이 예에서 알 수 있다.
나의 책상에는 후원자들에게 보여줄 고아들의 신상기록 카드가 있다. 나는 매일 이것을 조금씩 번역하고 있다. 한 장을 번역하기 전에 나는 사진 속 아이의 눈을 들여다보고 아이의 표정이나 모습을 자세히 본다. 나는 나 자신이 모든 아이들과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느끼고 그것을 통해 그들과 특별한 교감을 나눈다... 이것은 일종의 무분별지이다. 나는 아이들을 돕기 위해 카드를 번역하고 있는 ‘나’라는 존재를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사랑과 도움을 받을 아이를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그 아이와 나는 일체가 되어, 아무도 동정하지 않고, 아무도 도움을 구하지 않으며, 아무도 돕지 않는다. 해야 할 일도, 사회 활동도 없고, 자비도 없으며, 특별한 지혜도 없다. 이 때가 바로 무분별지의 순간이다.
이렇게 무분별지를 지닌 참여불교도들은 전쟁과 분쟁의 문제에 있어서 거기에 연루된 모든 당사자들과 거리를 두지 않고 편을 갈라 한 편에 서지 않으면서 조화와 분쟁의 해결을 위해 노력을 하게 된다. 즉, 북베트남, 남베트남, 인민해방전선, 사이공 정부, 미국, 공산주의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다. 이는 모두가 상호 연관된 존재(interbeing)이기에 일방적인 비판은 할 수 없지만 고통은 없애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그들은 행동을 하였다. 어렇게 중도적 행동을 통해 사원에 깊숙이 숨은 불교를 꺼내 일상적 삶의 모든 영역에 참여하고 봉사하도록 함으로써, 그는 전쟁과 평화, 종교성과 물질주의, 인류 공동체, 인류의 안녕과 같은 지구적 문제와 아울러 현대화, 출가/재가 관계, 사회로부터의 은둔과 행동주의와 같은 문제를 통합적으로 다루었다.
현재의 순간에 깨어있기
숨을 들이쉬면, 내 몸은 평온해진다./ 숨을 내쉬며 난 미소 짓는다.
현재 순간에 살면서/ 난 지금이 굉장한 순간임을 안다.
숨을 들이쉬면, 내 몸은 평온해진다./ 숨을 내쉬며 난 미소 짓는다.
현재 순간에 살면서/ 난 지금이 굉장한 순간임을 안다.

현재 순간에 몰두하는 일은 용기 있고 자애로운 자세로서 현재의 세상을 정확하게 직시하는 행위임을 그는 가르친다. “명상은 지금 이 순간에 나의 몸, 나의 감정, 나의 마음, 그리고 이 세상 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깨닫는 행위”‘이다. 고통의 비극속에서도 마음의 안정과 단순한 행복이 불이/무분별지의 명상을 통해 얻어질 수 있다.
어린이들이 굶주려 죽고 있다 그럼에도 일출은 아름답고, 오늘 아침에 담을 따라서 핀 장미꽃은 기적과도 같다. 삶은 두려운 동시에 경이로운 세계다. 명상을 행하는 건, 이런 두 가지 측면과 동시에 접촉하는 일이다.
예를 들면, 걷기, 미소 짓기, 청소하기, 차 마시기, 친구들과 어린아이들의 눈을 들여다보기 등은 모두 불교도의 수행법인 ‘깨어있는 마음’의 실천이 된다. 천천히, 즐겁게, 시간의 흐름을 의식하지 않고 접시를 닦는 일조차도 영적인 수련이 될 수 있다. 이것들은 마음을 현재에 두는 수행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이곳에 존재하는 것들을 파악하고 그것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주며 여기서 힘과 행복이 솟는다. “숨을 들이마시며 나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숨을 내쉬며 나는 삶을 향해 웃는다.” 깨어있는 마음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100%함께 함으로 매순간 온전히 살아있게 하고, 주변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통찰력을 줌으로써 고통으로부터 치유하게 되고 변화되게 된다.
숨쉬기 명상
들이쉬고, 내쉬고 in, out
깊이, 천천히 deep, slow
고요히, 편안히 calm, ease
웃고, 놓아버려라. smile, release
지금 이순간, 아름다운 순간. present moment, wonderful moment.
미소 명상
아침에 눈뜨며 나는 웃음 짓네.
새롭고 신선한 24시간이 내게 있네.
나는 서원하네. 매순간 충실히 살며
모든 존재를 자비의 눈으로 바라볼 것을!
세수 명상
숨을 들이쉬며 내 눈을 느끼네.
숨을 내쉬며 내 눈에 미소 짓네.
컴퓨터 명상
컴퓨터를 켜는 순간,
나는 내 안에 저장된 것들을 만난다.
나는 서원하네.
습관의 힘을 변화시킬 것을!
사랑과 이해가 자라날 수 있도록.
걷기 명상
들이쉬고 들이쉬고/ 내쉬고 내쉬고
깊이 깊이/ 천천히 천천히
고요히 고요히/편안히 편안히
하나 둘/하나 둘
연꽃이 피네/연꽃이 피네
푸른 지구/푸른 지구
도착했다 도착했다/고향집 고향집
지금 지금/여기 여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