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육문화원의 평화시대연구소에 바란다 :: 2005/12/26 11:36

통일교육문화원의 「평화시대연구소」 방향에 대한 제안




하느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 누리는 정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 이러한 정신으로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람은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습니다. 우리는 평화를 도모하고 서로 도움이 되는 일을 추구합시다. (롬14:17-19)


들어가는 말

새 밀레니움이 시작되는 2000년에 들어와서 국내외에는 시대적 과제와 좌표라 칭할 수 있는 중대한 사건이 터졌다. 하나는 한국현대사의 역사적 분기점을 이루는 2000년의 “6.15남북공동성명”이라는 민족사적 사건이며, 또 하나는 전 지구공동체에 충격과 깊은 성찰을 남긴 2002년의 9·11비극 사건이다. 전자는 ‘분단’의 끝과 ‘통일’의 시작이라는 역사적 과제와 책무를, 후자는 ‘폭력의 문화’의 종식과 ‘평화의 문화’의 형성이라는 인류사적 과제와 책무를 남겼다. 그리고 이 두 사건은 ‘통일’과 ‘평화’가 오늘과 미래에 있어서 사회·문화·정치·경제의 전 분야에 있어서 새로운 화두가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가 개인의 삶의 영역과 타인과의 관계의 영역에 있어서 참됨의 기준으로 의존해 온 과거의 패러다임이 무용해지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연적으로 출현해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민족사적, 인류사적 징조의 출현과 더불어 새로운 패러다임의 요구는 단순히 정치사회적 영역의 문제만이 아니라 영적인 문제라는 사실을 각성하게 되고, 유네스코나 여러 종교인들의 국제회의에서 ‘평화’는 각 종교의 전통의 가르침의 가장 오래된 근본가치이자, 그 중요성을 새롭게 확인하고 있는 과제임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과제에 발맞추어 국내에서 기독교 대중들의 몰이해에도 불구하고 ‘통일’을 위한 삶이 한국적 상황속에서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께 대한 응답으로서 참된 복음적 삶을 구체화하는 길임을 고백하고 걸어 온 ‘통일교육문화원’의 책임자들과 실무자들, 그리고 이를 후원하는 분들에게 깊은 존경과 같은 길을 걸어가는 벗으로서의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다.

특히 그동안의 ‘통일교육’에 있어서 많은 성과와 노력의 결실이 이제 또한 인류사적 과제의 요청에 응답하여 ‘평화시대연구소’를 창설하여 ‘통일’의 자국중심·민족중심을 넘어서서 ‘평화’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향한 발걸음을 시작한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갖게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기독교신앙공동체가 하나님의 역사적 부름에 눈멀어 개인의 심리적 안정, 성공과 물질적 복, 교회의 외형적 성장이라는 탐욕과 맘몬이즘의 지배에 허덕이고 있는 상황 속에서, 이 시대의 하나님나라 운동으로서 ‘통일’과 ‘평화’의 생활방식에로 방향키를 잡았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면서도 참신앙 실천운동의 한 축을 담당한다는 점에서 동료로서 진심으로 연구소의 설립을 축하한다.

본인이 공동대표로 있는 ‘푸름-청년평화센터’도 그동안 1년 동안의 준비과정을 거쳐 이제 이개월정도 후에 창립식을 남겨놓고 있다. 기독교 에큐메니칼 운동과 유네스코의 평화교육운동을 하던 실무자들이 함께 결합하여 기독성(Christian-ness)을 가지고 평화NGOs, 대안교육운동, 기독교 현장을 대상으로 한 ‘평화교육,’ ‘평화영성’ ‘지구적 기독교평화운동’을 전문으로 한 센터로 출범준비를 하고 있다. 앞으로 기독자로서 함께 하나님 나라운동으로서의 ‘평화·통일운동’에 공동 협력할 수 있기를 바라며, 「푸름」의 대표로서 「평화시대연구소」에 대한 기대와 희망 그리고 사업제안을 하고자 한다.

1. 위기의 시대에 있어서 시대적 징조의 성찰

우리가 현재 처해있는 위기 상황은 그 규모와 질적인 면에서 과거에 신앙의 선조들이 경험해 보지 못한 전례 없는 것이다. 규모라 함은 전 지구적 영향에 있어 그러하다는 것이요, 질적인 면에서라 함은 그 결과의 치명성과 그 해결에 있어서도 근본적인 인식변화와 전적인 생활변화의 요청이 과거와 다르다는 점에서이다. 그 예를 들면 첫째, 핵 위기와 생태파괴(지구온난화에 따른 자연재해의 빈번함과 그 규모의 심각성)로 인류는 처음으로 미래의 생존가능성에 대한 불확실성 앞에 서게 되었다. 둘째, 군사주의, 빈곤 그리고 새로운 질병(광우병, 조류독감 등)의 세계화(globalization)는 국가 간의 경계를 없애고 인류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이렇게 지구화된 폭력과 재해를 해결함에 있어서 그 경계의 무용성으로 인해 어느 단체, 국가의 힘으로만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고, 문제들의 상호관계성으로 인해, 다 측면적인 공동협력과 노력이 지구적으로 일어나야 한다는 요청을 수많은 국제규약과 권고들이 하고 있다. 더구나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오직 몇 세대의 손에 남겨져 있다는 점에서 전례 없는 긴급성을 갖고 있다.

위기의 지구적 상황과 더불어 통신, 정보, 운송, 금융, 노동, 시장에 있어서 하나로 좁아진 지구촌의 경험 그리고 아인슈타인이후 현대 물리학이 보여주고 있는 상호관계성으로서의 실재( the interrelated, interdependent reality)에 대한 인식은 점차적으로 기존의 절대 경계라 생각된 인종, 국가, 이념, 종교의 배타적 영역을 허물고 인류의 보편적 생존과 공동가치에 대한 가치관과 생활유형을 창조해 내고 있다. 이에 관련하여 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세계종교 지도자들은 90년대에 들어와서 제 2차 세계종교대회를 기점으로 하여 각 종교가 이제는 분쟁과 갈등을 넘어서 공동의 과제(the common tasks)와 공동의 선(the common goodness)을 위한 각 종교전통의 영성과 가르침의 회복을 주장하는 ‘지구윤리(Global Ethics)'의 필요성에 대한 인정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세계적 추세는 한국 내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독재 권력의 시기에서 하나로 단일화된 저항운동으로서 ‘민족·민주·민중운동’은 80년대 말에 전개된 국민저항운동이후 새로운 공공영역으로서 환경·인권·지역자치·통일을 위한 전문적인 ‘시민사회운동’이 꽃을 피워내었다. 그러나 2000년대 전후를 통해 에 들어서면서 시민운동의 제 3의 파도라 할 수 있는 ‘생명·평화운동’이라는 새싹이 박토의 땅 여기저기에서 일어나고 있다. ‘생명평화운동’은 그간의 운동과는 달리 폭력의 간접적·구조적·다층적 측면에 대한 포괄적 이해, 지구의식(global consciousness)과 공동체성 강조, 보편가치의 내면화와 생활화, 그리고 갈등변혁(conflict transformation)을 위한 인식적·실천적 능력강화를 위한 훈련과 교육의 강조를 두드러지게 내세우고 있다. 이렇게 기존의 ‘통일운동’과 ‘시민사회운동’에 더하여 ‘생명·평화운동’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서로 시너지 효과를 주고 있으며, 포괄적으로 ‘죽임의 문화’에 저항하고 이를 변혁하려는 ‘살림의 문화’를 견고히 뿌리박아 가고 있는 상태이다.

2005년은 ‘생명평화운동’에 있어서 한 가지 특이한 사건을 남긴 중요한 해이다. 이는 ‘이라크파병문제’로써 자국의 문제가 아닌 남의 문제로 국내 역사상 처음으로 국론이 분열되고, 문화적·인종적 타자인 무슬림의 고통을 위해 위험을 무릅쓴 ‘인간방패운동’이 전개되었으며, 자연재해가 일어난 무슬림 지역에 기독교인들이 캠프를 치고 적극적인 구호활동을 전개함으로써 자기 종교와 신념체계를 넘어서서 한 가족으로써의 휴매니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는 새로운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이제 고통 받는 타자(the suffering Others)가 신앙과 윤리의 중심문제로 바뀌고 있다는 중요한 징조이다. 비록 이런 흐름이 그 규모에 있어서는 아직 영향력이 크지 않을 지라도 이 시대의 징조를 읽는 의미심장한 지표(reference)로서 충분한 요건이 된다. 이러한 시대의 징조를 통해 하나님의 부름 앞에 책임 있게 응답하는 기독자가 되어야 할 과제가 놓여있는 것이다.

2. 현행 통일교육에 대한 평화교육의 도전

통일부의 「2001 통일교육기본지침서」에 따르면 “통일교육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민족공동체의식 및 건전한 안보관을 바탕으로 남북한간의 평화정착을 실현하고 나아가 통일을 이룩하는 데 필요한 가치관과 태도를 함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제반 교육을 말한다”고 정의한다. 평화교육자로서 위의 정의는 많은 혼란과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으며, 이러한 문제는 앞으로 ‘평화시대연구소’가 관점과 가치 그리고 실천방향을 어디로 향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숙고를 남기고 있기에 앞으로 전개될 근본적인 논쟁들의 본질에 대한 예시를 함으로써 연구소가 이에 기여하기를 희망한다.

첫째, 통일의 방식에 있어서 ‘무력통일, 흡수통일, 평화통일’의 세 가지에 있어서 심각한 고민이 아직 결여되어 있다. 무력통일은 ‘적대적’ 타자의 문화사회적 정체성을 전멸시키는 것으로서 나의 확대이며, 흡수통일은 ‘열등한’ 타자를 교화시킴으로 ‘나’가 어느 정도 여유 공간을 열등한 타자에 제공하여 ‘나’의 확대인 ‘우리’속에 편입시킨다. 이는 ‘나’의 중요한 몫과 기간은 흔들리지 않은 상태에서 열등한 타자의 자기포기를 유도하여 ‘우리’공동체를 형성해나간다. 이는 열등한 타자가 문화적 주체로서 사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명목적으로 혹은 형식적으로 표방하고 있는 평화통일은 어떤 종류의 성격인 것인가? ‘타자’가 ‘열등한’ 존재가 아니라 동등한 ‘주체’로서 파트너십이 가능한 형태의 평화통일을 지향하고 있는가가 문제가 된다.

통일부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근간을 흔들지 않은 범위에서 흡수통일이 아닌 평화통일의 방식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결여로부터 오는 혼란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정복주의도, 타자를 길들이는 성취주의도 아닌 평화통일의 길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없는 한 평화공존과 화해협력은 일시적인 전략적 미봉책으로 남고, 언제나 불똥이 튈 상황은 내재하게 된다. 평화교육자는 타자에 대한 이해와 이에 관련한 관용이라는 윤리적 실천의 문제를 넘어서서 타자를 통한 나의 정체성에 대한 교정의 가능성, 타자로부터 배우고자 하는 상호성장(mutual growth)을 지향한다.

둘째, 평화교육은 구조적 폭력의 제거, 인권, 공감어린 대화, 평등과 정의, 차이와 다원성, 지속가능한 생활문화, 문제에 대한 민주적 타결 등의 평화적 가치가 사회공동체 구성원 전체에 파급된 풀뿌리 평화공동체의 실현을 과제로 한다. 이는 통일부가 갖고 있는 국가안보 개념을 넘어서서 풀뿌리 백성에 대한 ‘인간안보(human security)'와 국제적 관계를 통한 ’공동안보‘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평화교육에서는 논의하고 있는 것이다. 남과 북의 80%가 넘는 풀뿌리 대중의 인간안보실현의 문제를 도외시한 양측의 소수 엘리트지배층간의 무력갈등없는 평화통일의 실현은 어떤 유익이 있을 것인가?

한반도내에서의 평화통일은 단순히 한민족의 문제를 넘어서서 지구공동체의 평화를 확보하는 방향에서만 의의가 있다. 이는 통일부의 ‘민족공동체 의식’을 넘어서서 평화교육이 지향하는 ‘지구시민의식’과 연계 없이는 정치경제의 우월성에 근거한 내셔널리즘에 빠져 주변의 ‘열등한’ 아시아 민족들에 대한 패권주의를 조장하는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미 한국은 세계 12위의 무역 국가이지만 평화와 지구적 책임의 문제를 담당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여전히 ‘개도국’의 특권을 향유하려는 이중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민족이 새로워지지 않는 상태에서통일은 약소국인 이웃나라에 부담을 주는 존재로서 남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셋째,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일반적인 대답으로서는 한반도내에서 전쟁종식과 형제자매 됨의 회복, 일천만 이산가족의 고통종식, 군사무기경쟁축소에 따른 분단비용의 감소 그리고 남북의 인적·물적 자원의 활용을 통한 부국강병의 선진형 복지국가형성이 그 주요이유로 들고 있다. 사회·역사·문화적 생명단위로서 민족이 모든 생명체가 분리를 극복하고 일치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통일의지의 타당성을 논증하고 있지만 그 통일교육의 입장이 실용적 관점에 머무른 한계로 인해 평화교육의 가치·문화의 고려라는 근본적 관점이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정치·경제적 이득의 관점에 의한 실리적 이유는 가치·문화적 터전 없이는 피상적이게 된다. 그리고 가치·문화는 종교의 인격적이고 살아있는 내적영역(interior dimension)과 관계되어 있다. 이는 틸리히가 문화는 종교의 형식이고 종교는 문화의 핵이라고 주장한 것과 상통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통일부의 통일에 필요한 ‘가치관과 태도의 함양’에 대한 언급은 주류 교육계에 있어서는 이미 파산된 명목적 언급에 불과하다. 그 까닭은 통일로 향하는 가치관과 태도의 함양의 기본은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 형성과 관계된 것이지만, 이것이 제도교육권에서는 이미 힘·성공·명성을 향한 경쟁주의를 부추기는 입시교육에 의해 회사불능의 상태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시민사회영역에 있어서도 남·남 갈등에 대한 사회기반의 취약성과 일상의 비평화적 요소에 덧붙여서, 남·북 갈등의 해결을 모색하는 모순적인 현실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다. 비폭력, 대화, 다양성, 공동체성, 약자에 대한 배려, 생태적 지속가능성 등의 가치와 태도를 사회와 교육현장에서 내면화하고 생활화하는 구조적 시스템이 갖추지 않는 한 통일부의 가치와 태도의 함양에 대한 언급은 명목적이게 된다. 교육계와 사회에 있어서 평화와 통일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이 주류화가 되지 않는 한 선언적 의미밖에 갖지 못한다.

위에서 보듯이 평화교육의 관점은 통일교육의 내용과 방향에 대한 질적 고양의 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런 점에서 통일교육은 평화학의 포괄적이고, 근본적인 관점으로부터 도전을 받을 필요가 있으며, 이는 독일이 통일이후 늦게나마 추구하고 있는 방향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 받는 바가 크다. 6.15공동선언이 정치사회적 행위를 통해 평화통일의 방향을 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사회구성원의 일상생활에서 유리되어 자기모순과 이중적인 모호한 태도로 봉합되어 있는 까닭은 가치·문화적 영역에서 통일과 평화에 대한 가치와 태도에 대한 체험적 접근이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이제 통일과 평화에 대한 열정이 개인의 영혼과 공동체적 삶으로 접목하는 새로운 과제를 맞고 있는 것이다.

3. 평화시대연구소의 방향과 사업에 대한 제안들

지금까지 통일부의 통일교육이 지닌 내재적 모순과 모호성에 대한 지적과 더불어 그 접근의 사회정치적 측면의 제한성을 넘어서서, 통일교육문화원의 통일교육은 몇 가지 진일보한 공헌을 하고 있다. 그 예로는 이념에서 문화적 접근을 꽤하고 있다는 점, 거대담론에서 일상의 생활화 모색, 남한체제 우위성에 근거한 구호적 차원(relief-oriented)이 아닌 평화적 공생공영의 입장을 선호한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아직 통일교육의 근거가 되는 철학적 기반과 가치의 관점이 혼재되어 있다는 점에서 자기 정리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평화시대연구소가 씽크 탱크(think tank)로서 중요한 공헌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현존해 있는 수많은 통일관련 단체 중에 국가이데올로기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시민사회영역의 통일교육 기관의 씽크 탱크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평화시대연구소’는 그 성격과 과제에 있어서 태생적으로 통일교육문화원의 활동을 질적으로 강화하고, 그에 대한 이론적 토대를 심화하고 실천 역량을 강화하는 과제를 부여받게 된다. 이를 위해 다른 통일단체나 기관과의 차별성이 무엇이며, 통일교육문화원의 지금까지의 사회적 공헌의 엑기스가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위에서 앞으로의 진로에 대한 모색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평화통일에 관련된 연구소들에 대한 상황분석도 필요할 것이다.

아직 평화시대연구소의 설립미션이 정확히 무엇인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민사회영역의 평화교육에 몸담고 있는 본인으로서 가장 기대하는 바는 통일일꾼과 평화사역자를 배출하는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연구와 커리큘럼의 개발이라는 실천성의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현재의 적지 않은 평화연구소들이 정부의 입장을 지지하는 체제유지적, 이념적 결과물을 내놓거나, 군사안보에 관련된 소극적 평화주의의 입장에서 활동을 함으로써 좁은 의미의 평화학에 머물거나, 혹은 사회정치적 거대담론(meta-discourse)에 치중함으로써 가치지향적인 일상의 평화를 간과하는 등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

지금 새롭게 일어서는 ‘생명·평화운동’의 욕구에 발맞추기 위해 ‘평화시대연구소’는 시사성이 강한 일회성의 평화 포럼, 세미나 혹은 대중성 획득의 이름 하에 매스컴이나 아카데미 엘리트의 지적 상품으로써의 통일논의를 지양하고, 특정영역에서 전문화하는 일관성이 필요할 것이다. 통일운동과 평화운동은 지금까지 국가보다는 시민사회영역이 주로 담당하면서 주로 전선운동으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지속해 왔다. 그럼으로써 생활영역과 전선운동의 큰 거리가 발생하고, 이슈지향적인 단속적(dis-continuing) 성격으로 인해 진보적인 소그룹의 점유물이 되어왔다. 그리고 통일에 대한 세대간의 이해의 격차는 매우 커졌고 평화와 통일진영에서 노령화는 매우 심각한 상태에 있는 형편이다.

앞에서 언급한 문제점들을 고려하여 앞으로의 중요한 과제는 교육을 통한 평화·통일의 가치의 내면화(internalization)와 다양한 평화공동체의 건설이라는 평화의 구조화(structuring of peace-building)라는 과제가 가장 중차대한 것임을 본인은 확신한다. 평화적 가치의 개인적 실천과 사회적 시스템의 구축을 위해 가장 선결적인 목표는 다양한 영역에서 통일일꾼과 평화일꾼을 길러내고 이들을 통한 개인과 사회변혁을 가시화하는 길밖에 희망이 없다. 이렇게 ①「통일교육문화원」의 정체성과 기능을 심화하고, ② 생명·평화운동의 기운에 함께 하는 평화·통일 일꾼의 교육훈련을 위한 연구능력을 강화하며, ③ 사회전역에 평화적 가치를 시스템으로 구조화하는 평화 실천에 물적·인적 자원을 집중화할 필요가 있다. ④ 또한 실무자와 후원자가 많은 기독교인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신앙인으로서 문화적·이념적 타자와의 신념체계의 상호소통성과 세상 섬김으로써 신앙실천의 비종교적 재해석화의 문제를 깊게 고려해야 한다. 왜냐하면 평화통일의 삶이 기독교의 근본가르침에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 없이는 생활화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향에서 제시할 수 있는 구조와 사업제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평화시대연구소의 평화연구의 인식론적 토대는 기독교 평화신학이 제기하는 성찰(실재의 이해)-확인(하나님나라 신앙운동의 관점)-실천(praxis)이라는 해석학적 순환과 더불어 평화교육의 3대 과제인 지식(knowledge), 가치/태도(value/attitude), 기술과 능력배양(skills and empowerment)의 상관성을 고려한 자각과 해방의 교육학(pedagogy of awareness and liberation)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 이는 지식축적이라는 앎의 문제를 체험과 구체적 실현이라는 실천의 문제로 이어주는 것이며, 통일교육의 피교육자에 대한 정보제공자로서의 강의와 토론중심의 학습 분위기를 학습자의 비판적 사고능력을 스스로 키울 수 있는(facilitating) 체험과 의사소통 그리고 자기발견의 과정을 중시하는 교육방법론의 개발이 평화의 인식론위에 구축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통일교육문화원은 실무자와 후원자가 대다수 기독교인들로 구성되어 있으면서 이들을 위한 신앙과 신학의 관점에서 통일·평화에 대한 해석 작업을 소홀히 함으로써 마치 이중국적자의 경우처럼 신앙의 세계와 통일평화의 세계에 따로 서있는 긴장을 가져왔다. 이는 정부의 보조금이 종교적 색체를 갖는 기관에 대한 부정적 시각과도 관련되어 있는 데, 신앙운동으로서 평화통일운동에 대한 자리 매김을 어떤 형식으로 확보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다. 신학자 샐리 맥훼이그(Sallie McFague)는 하나님께 직접적으로 영광을 돌리는 삶은 불가능하고 오직 세상을 섬김으로써 간접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고 하면서 ‘일하는 신학’(working theology)과 이세상적인 봉사(mundane work)로서 신앙실천운동의 중요성을 지적하였는데 이는 평화통일운동이 어떻게 신앙운동이 될 수 있는지를 시사해 준다.

둘째, 평화·통일 가치의 개인적 내면화와 사회적 구조화를 위한 역량을 형성하기 위해 평화와 통일을 위한 일꾼을 배출하기 위한 전문화과정의 훈련모델과 교육용 커리큘럼의 개발이 다방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까지 평화와 통일에 대한 담론은 많이 형성되어 있고 전선운동에서 많은 욕구분출이 일어나고 있으나 구호(slogan)의 차원에 머무를 뿐, 이를 통전적으로 삶의 과정 안으로 끌어들이는 비판적 인식이나 가치교육이 미진한 상태에서 평화통일을 위한 뿌리로서의 기반이 취약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화시대연구소의 연구결과물은 전문학자의 아카데믹 지적 호기심을 만족하는 성과물이 아니라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는 다양한 집단들(종교계, 교육계, 시민사회계)의 요구를 에 우선적으로 연구결과물들이 쓰이는 실천성을 답보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연구를 위한 자문위원회는 학자와 더불어 다른 평화기관의 교육담당 실무자들이 조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어 현장의 욕구를 수용하고 연구기획에 대한 평가를 받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몇 가지 구체적인 사업제안을 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국내와 외국에서 이루어진 통일과 평화를 위한 정책과 교육 모델의 수집과 평가의 자료 제공으로써 허브 역할: 한때 분단국가이자 현재 갈등국가들인 독일, 예멘, 스리랑카, 북아일랜드, 필리핀, 이스라엘, 남아공이나 유네스코, 평화대학과 같은 국제기관 등에서 이루어진 평화와 화해의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자료의 수집과 이에 대한 연구업적 강화와 교육 프로그램 적용가능성 제시 그리고 국내의 다양한 평화통일 교육활동에 대한 경향제시와 이에 대한 좋은 모델들의 제시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IT의 서비스 강화가 필요하며, 사이버 정보축적을 위해 여러 국내외 평화통일기관과 지속적인 정보교류와 제도적인 역할분담, 연구프로젝트의 공동참여 등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추구하면 효율성이 증대될 것이다.

둘째, 북한 주민이나, 국내의 새터민들의 삶의 이야기(story-telling)에 대한 모음이나, 남남갈등 및 남북갈등의 여러 구체적 사례집이 필요하다. 이는 통일교육이 정치사회적 거대담론에 머물고 있어서 개인의 삶에 대한 적용에 대한 실천부분과 공감능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설문조사에 의하면 80%가 넘는 새터민들이 남한에서의 정착에 대한 실망과 실패의 경험을 호소하고 있으며 이는 통일조국에 대비하는 중요한 교훈과 과제를 주게 된다. 새터민을 교화의 대상으로만 삼는 기존의 일방적 통일교육 관행을 벗어나, 이들이 왜 그리고 어떻게 사회적 적응에 실패하고 어떤 가치관의 혼란을 겪고 있는지에 대한 그들의 입장과 경험에서 나온 삶의 글이 타자의 눈으로 자신을 볼 수 있는 시각교정의 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아직도 많은 북에 대한 글들이 북을 제대로 이해하자는 좋은 취지에서 있기는 하지만, 타자에 대한 이해가 나의 편견과 시각교정에 어떻게 도움을 주는 지에 대한 성찰은 미비한 실정인 셈이다.

셋째, “평화·통일교육”에 대한 평화교육전문연구기관으로서 평화시대연구소는 프로젝트기금을 마련하여 실무진과 자체 연구인력의 연구활동의 제한성을 넘어서서 다양한 외부 연구자가 연구프로젝트에 참여함으로서 연구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기를 바란다. 이는 학교내 청소년 교육, 기독교교육, 시민사회의 성인교육 등의 영역에 그 연구결과가 활용되는 내용개발로 이어지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주제별로, 학습대상별로 CD-Rom으로 제작하여 배포하거나 사이버 원격교육 등의 방법을 통해 대중화하는 길을 열어가야 할 것이다. 연구 프로젝트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타 기관/단체의 인적자원을 함께 공유하는 방식도 모색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넷째, 평화통일일꾼 양성을 위한 수준별 다양한 커리큘럼 개발이 시급하다. 이는 피학습자의 전체 삶의 주요 단계별(청소년, 청년, 성인용)에 따른 체계적이고 심화된 교재와 더불어, 일꾼양성을 위한 단계별 전문화 과정이 요구된다. 이러한 커리큘럼은 수료자들이 자율적인 정보교류와 재학습을 위한 공동체를 형성하여 현장과 수요자의 필요에 따른 교재를 재생산하고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장(사례발표회, 학술회)을 마련하도록 한다. 특히 대부분의 통일교재가 남북의 과거와 현재에 국한하고 있어서 어디로 향할 것인가에 대한 지적 모험이 약한 실정이다. 미래의 통일조국의 이상적인 상과 국제관계에서의 역할, 그리고 풀뿌리 대중의 삶의 모습이 어떠할 것인가에 대한 창조적 상상력을 촉진하는 교재가 필요할 것이다. 비전과 꿈없이는 바람직한 현실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다섯째, 청년평화센터 푸름은 평화민주시민교육, 평화영성, 아시아기독교평화운동과의 연대, 평화교회로의 리모델링을 위한 커리큘럼 제공, 외국 평화교육자료의 번역, 평화일꾼양성을 위한 국제전문가 초청 전문과정 워크숍 개최 등의 사업을 기획하고 있고 이에 관심 있는 타 평화단체나 기구의 참여를 희망하고 있다. 평화시대연구소가 자신의 설립목적과 취지에 맞는 사업을 타기관이나 단체가 할 경우에 공동사업추진자로서 적극적인 협력의 길을 열어감으로서 기관 이기주의를 넘어서서 공동의 선을 실현하는 공동작업의 메커니즘을 마련하는 열린 기관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나오는 말

유네스코는 2010까지를 ‘평화의 10년’으로 정하고, 또한 금년부터 2014년을 ‘지속가능한 발전교육의 10년’으로 정하였다. 이는 지구공동체가 그만큼 평화와 지속가능한 삶으로부터 멀어져 있는 상황임을 반증하는 예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지구시민의 각 구성원이 특별히 무엇을 고려하며 살아야 할지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아우슈비츠 이후 서구신학은 서서히 관념론적이며, 교회중심적이던 신앙과 신학체계를 해체하고, 삶지향적이며, 세상지향적인 평화와 화해의 실천을 위한 누룩의 역할을 강조하기 시작했고, WCC는 90년 서울에서 평화가 기독교의 핵심임을 천명하고 이를 ‘정의, 평화, 창조질서의 보존’이란 개념으로 풀어서 앞으로 기독자의 삶이 어디에 중심을 두어야 할 것인지를 명확히 하였다.

현재의 한국과 세계적인 새로운 기운인 ‘생명평화운동’에 부응하여, 통일교육문화원이 또다시 ‘평화시대연구소’라는 평화의 옥동자를 낳게 됨은 매우 고무적이며 시기적절한 선택이라 확신한다. 그동안의 통일교육의 경험위에 ‘평화교육’이 주는 좀 더 포괄적이고 심도 깊은 교육학적 기반과 실천방법론이 접목되어지길 기대한다. 평화교육이 주는 ① ‘적극적인 평화’와 ‘구조적 폭력,’ 지구적 관점에 대한 이해(지식), ② 대화와 관용, 다양성(차이), 인간안보, 평등, 생태적 감수성 (가치/태도), ③비폭력적 의사소통, 하위주체(subalterns)의 자기존중, 평화·정의·지속가능한 공동체건설(기술) 등의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교육학적 입장이 통일교육에 시너지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확신한다.

앞으로 평화시대연구소가 기존의 평화·통일 연구소들과 차별성을 가지고 일꾼을 조직적이고 지속적으로 키워내어, 평화·통일의 가치를 개인의 삶에 내면화하고 사회 제도에 구조화하여 단순한 통일이 아니라 평화의 가치가 골고루 사회전반과 일상생활에 실현되며, 국제사회에 또 하나의 제국형 강대국이 아니라, 인류사회에 평화를 제공하는 새로운 형태의 풀뿌리평화국가로 거듭나서 신이 계획한 샬롬의 정치와 삶이 구현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며,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청년평화센터 푸름이 함께 협력할 의지를 갖고 있다. 앞으로 연구소의 활동을 통해 많은 성과가 일어나서 개인과 사회가 변화되는 모습을 보기를 간절히 기대하며 축하한다.

2005. 12. 26.

박성용 /푸름-청년평화센터 공동대표
감리교 본부교육국평화교육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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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26 11:36 2005/12/26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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