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 사건의 현재화로서 평화목회 :: 2009/06/06 21:54


평화목회실습
출애굽 사건의 현재화로서 평화목회


                                                                                                          박성용 비폭력평화물결대표


기독교 신앙의 근본은 두 구원사건에 기초를 둔다. 그것은 출애굽 사건과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다. 전자는 하나님 백성을 형성하는 ‘토대적 사건’이며 후자는 토대적 사건을 강화하고 명료화하는 ‘전망적 사건’이다. 모든 기독교인들은 이 두 기억을 어떻게 의식화하고 생활화하며 사회화할 것인가에 대한 도전에 항상 직면하게 된다. 토대적 사건으로서 이스라엘의 출애굽 행위는 기독교인의 자기 실존의 기초적 사실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성서의 출애굽 사건의 증언을 통해 무엇을 알 게 되는가? 첫 번째로 이스라엘의 해방은 그들의 필요, 억압, 고통을 들으시는 하느님에 대한 울부짖음과 그에 대해 응답하시는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신음’과 ‘탄식’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였으며(“나는 보았다...나는 들었다”), 하나님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장소는 바로 그 신음과 탄식의 공간이고, 그 분은 옹호(vindication)와 구원(deliberation)의 방식을 통해 고통과 억압받는 자에게 다가가신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구원행위는 ‘하비루’(이는 한 민족집단이 아니라 나일강 지대에 살던 죄수, 노예, 천민, 떠돌이들, 그리고 이주자들로 이루어진 억압받는 무리들을 말한다. 이들은 하느님의 현존을 발견한 원조들이다.)의 억압에 기초한다.

두 번째로 출애굽은 사회정치적인 상황으로써 이집트 바로 왕으로부터의 물리적 해방 곧 억압자로부터의 고역과 예속된 상태로부터의 해방만이 아니다. 40년간의 사막의 여정에서 하나님은 하비루를 하나님의 백성 곧 이스라엘로 변형시키기 위해 하비루 자신의 내면성인 노예정신(slave mentality)로부터 해방을 위한 ‘역사적 프로젝트’를 통해 샬롬의 실현을 기획하신다. 따라서 출애굽 사건은 ‘토대적 사건’으로서 물리적 억압으로부터의 탈출뿐만 아니라 내면의 탈-노예화라는 ‘역사적 프로젝트’를 통해 개인을 자유의 주체로 세우신다.

끝으로 출애굽 사건은 한 개인의 구원사건에 대한 진술이 아니다. 출애굽의 독특성은 전 백성이 예속으로부터의 해방이자, 집단적 체험이며, 전체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사회적 구원의 문제를 다룬다.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으며 계약의 백성이 되는 언약을 맺는 것은 하나님에 대해 한 개인이 아닌 전체가 하나님에 대해 응답한다는 공동적인 신실성의 표현인 것이다. 따라서 출애굽의 구원사건은 공동체적이고 전 백성이 함께 만들어가는 사건이다. 그리고 죄는 여기서 내면적이고도 사회적인 속박(bondage)과 억압(oppression)으로 이해되고 구원은 마음과 정신의 변혁만이 아니라 사회적 변혁이라는 통전적 이해를 갖게 된다. 

이 탈출공동체(Exodus community)를 통해 우리는 성서적인 평화(‘샬롬’; 그리스어로는 ‘이레이네’)에 대한 이해의 실마리를 얻게 된다. 그것은 세 요소를 지니고 있다. 첫째는 물질적 복지와 번영으로서의 샬롬이다. 이는 욕망이 아닌 필요의 충족(예, 맛나와 메추라기)이며 이를 위한 모두의 선을 위한 사회적 질서화를 가리킨다. 두 번째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 있어서 샬롬의 유지이다. 노예가 아닌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자유인이자 서로를 속박하지 않고 약한 자의 복지를 이루는 형평성과 평등한 관계의 준수(예, 희년제)를 말한다. 이는 사회적 관계로서 정의의 문제를 포함한다. 셋째로 도덕적 의미에서 샬롬이다. 이는 신의 의지에 대한 내적 성실성을 뜻한다. 샬롬을 위해 산다함은 거짓과 위선을 제거하기위해 일하는 것이며 정직과 솔직함을 증진시키는 노력을 요구한다.

놀라운 것은 여기서 신의 계시는 초인간적인 가치를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땅에서 자유, 사랑, 노동, 성실, 희망과 같은 순수한 인간적이고 공동체적인 가치들을 증진시킨다. 그리고 샬롬은 단순히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억압, 착취, 차별의 상황을 공정함과 평등 그리고 정의의 상태로 변혁시키는 역동성속에서 존재한다. 이것이 바로 탈출공동체가 우리에게 주는 평화의 역동성이다. 이집트와 사막의 기나긴 고역과 역경 속에서 그들은 평화를 존재화, 역사화하는 프로젝트를 형성해 나간다.

하나님의 새 백성이 되고 신의 의지에 충실한 ‘계약 백성’(covenant people)으로 이들은 에집트에서 경험한 삶의 가치와 사회문화적 시스템에 대해 대안의 프로젝트를 모색한다. 전자의 경우는 소유에 있어서 권력 집중형, 자기만족의 확대에 기초한 소비, 희소성에 따른 경쟁과 배타성, 자원의 착취와 계급주의, 유산자의 권리를 위한 강제와 억압적 질서를 사회적 시스템으로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계약백성으로서 꿈꾸는 대안적 프로젝트는 이와는 정반대였다. 곧 땅과 소유에 대한 신에게의 귀속권, 착취대신에 자연과 약자에 대한 안식과 희년제도 도입, 필요에 따른 소비와 배분, 사회적 약자에 대한 돌봄의 경제, 충분성과 신뢰함의 사회윤리적 분위기, 부의 축척보다 모든 이의 생계를 위한 잉여의 분배, 법의 강제성보다 신의 의지에 대한 도덕적 분별과 공동체적 선을 위한 봉사 등을 대안의 사회적 프로젝트로 삼아 새로운 샬롬의 생활방식을 실험해 나가게 된다. 이런 것들은 전혀 그들은 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었으나 그들의 공통된 억압받음의 경험이 대안적 상상력과 전망의 힘을 주게 되고 그들의 ‘아님’의 경험은 신 앞에서 미래로의 ‘예’를 향한 새로운 비전과 실천적 힘을 부여받는다.

종결되지 않은 ‘의미로 가득 찬’ 예표로서 출애굽 사건은 평화목회가 연장해야 할 시원적 발원지이자 에너지와 전망의 모체(matrix)이다. 이는 경제적·정치적·사회적·문화적 “굴레”와 내면적 노예속성이라는 우리가 처한 상황으로부터 미래에로의 투신에 대한 부름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사건에서 약속으로, 그리고 그 약속이 새 백성의 정체성이 되고 또한 새로운 전망을 제시한 것처럼, 이 동일한 해석학적 순환속에서 우리도 자신의 고통을 신앞에서 ‘신음하고’ ‘울부짖는’ 표현을 예배와 신앙실천 그리고 신학속에 육화시켜야 한다. 그럴 때 새로운 사건이 고지된다.

평화는 열망과 생각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억압상태를 내면화하거나 습관화하지 않고 ‘신음’과 ‘울부짖음’으로 표현함으로써 저항과 초월이 일어난다. 신앙의 이스라엘은 자유에 대한 자신들의 소명의식을 초월적 의미로 고백하고(“나는...그들을 불러내리라”)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는다. ‘존재하게 만드는 자’로서의 야훼의 이름이 우리의 미래를 답보한다. 그리고 이 미래를 현실화하는 것은 역사적프로젝트 (간디는 이를 '협력적 프로그램'이라 하였다)를 통해서이다. 제도화, 기구의 형성, 조직의 체계화와 직임의 부여, 사회적 소통 기제의 형성, 권한과 책임의 부여, 협력적 지도력 강화, 약자에 대한 배려의 사회적 시스템 형성, 부의 재배분과 공평성의 원칙의 생활화, 신의 자비와 은총에 대한 자기 개방과 세속적 권위의 상대화 등등의 역사적 실험들이 소명을 현실화하였다. 그렇게 현대의 우리에게도 탈출공동체를 지향하는 역사적 실험과 평화의 사회적 프로젝트가 요청되고 있다.

‘있으라’ ‘보시기에 좋았더라’ ‘더풍성하게 존재하라’는 신의 의지를 역사적인 프로젝트로-법, 체제, 관계, 도덕적 규율, 정체성, 가치관 등속에 현실화하기- 연결함으로써 현실로 보였던 불의, 착취, 폭력, 억압, 그리고 내면의 두려움과 굴종은 착시로서 판명나게 된다. ‘사건’에 대한 기억과 ‘약속’에 대한 전적인 투신은 이제 우리의 새로운 정체성이 되고 소명은 힘을 부여하여 ‘더 풍성히 존재하는’ 샬롬의 실존적 정황을 잉태시킨다. 평화목회는 이렇게 각 존재의 있음의 당위성, 있음의 선함, 그리고 있음의 풍성함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재 발현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이에 근거하여 '빈약한 존재'를 위한 당파적 우선성이 선결되어진다. 이는 있음의 당위성, 선함, 그리고 풍성함을 위한 형평성을 이룩하기 때문이다.

2009. 6. 6.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2009/06/06 21:54 2009/06/06 21:54
Trackback Address :: http://ecopeace.pe.kr/trackback/347
[로그인][오픈아이디란?]
Name
Password
Homepage

Secr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