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와 종교간의 대화의 새 과제 :: 2005/06/17 18:13
박성용/유네스코 아태교육원 시민사회실장
-------- 목차 ---------
1부: 이 시대의 징조로서 세계화와 그 의미
제 1장. 열리는 전 지구적 지평: 세계화의 논리와 그 현상
제 2장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동향과 그 문제점
제 3장 대안세계화를 위한 시민사회의 노력
2부 위기의 시대에 있어서 종교간의 대화와 그 과제
제 1장 위기를 맞은 지구에 있어서 종교간의 대화의 필요성
제 2장 지구적 문제 앞에 변모하는 현대불교
제 3장 해방적 실천의 연대로서 종교간 대화
결론
1부: 이 시대의 징조로서 세계화와 그 의미
제 1장. 열리는 전 지구적 지평: 세계화의 논리와 그 현상
제 2장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동향과 그 문제점
제 3장 대안세계화를 위한 시민사회의 노력
2부 위기의 시대에 있어서 종교간의 대화와 그 과제
제 1장 위기를 맞은 지구에 있어서 종교간의 대화의 필요성
제 2장 지구적 문제 앞에 변모하는 현대불교
제 3장 해방적 실천의 연대로서 종교간 대화
결론
1부: 이 시대의 징조로서 세계화와 그 의미
제 1장. 열리는 전 지구적 지평: 세계화의 논리와 그 현상
세계화 (혹은 지구화, globalization)라는 말이 어떤 내용을 의미하든 최근 들어 경제, 시장, 일자리, 생산, 상품, 서비스, 금융, 정보, 생활양식, 환경문제 등에 있어서 나라별 영토단위의 경계를 넘어서 한 지역과 전 세계가 동시에 영향을 받고 있다. 이 지구위에 벌어지는 현상 중에 어느 것도 지역적으로 한정된 사건을 없으며, 모든 발명품, 전쟁, 분쟁이 지구 전체에 관계되고 ‘지역과 지구’라는 축을 따라서 우리는 삶과 행동, 제도들의 방향을 재 조직화해야 한다는 것이 지구화 과정의 특수성을 설명하고 있다. 이제는 어떤 국가, 어떤 집단도 서로 배척할 수 없게 되었다. 돈, 테크놀로지, 상품, 정보, 오염은 이미 국경의 범주를 넘어섰고, 나라 바깥의 일이라 여기던 마약, 에이즈 에이즈는 가난한 나라, 특히 아프리카를 초토화시켰다. 아프리카 인구의 4분의 1이 감염되어 있고 지구상에서 매일 15,000명이 감염되어 가고 있다. 에이즈는 해당국가에서 사회적 부를 생산할 수 있는 노동력감소의 문제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처방이 필요한 치료약에 대한 강대국의 특허독점으로 가난한 나라에게는 무력감을 심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 불법이민, 인권탄압에 대한 압력도 지구화의 과정을 밟고 있다. 이렇게 거리(distance)가 소멸되면서 지금까지 사회와 국가가 뚜렷이 구획된 폐쇄된 영토 단위로 영위되어 왔다는 기본가설이 무너져 내렸다.
서로에게 닫힌 자족적인 사회공간으로서의 국가와 민족적 기반이 해체되고 개인, 집단, 민족, 국가간의 다방면에 걸쳐 상호교류와 상호의존성이 환원할 수 없이 빠르게 높아져 가는 세계화의 과정은 새로운 통합과 분할의 이중적 국면을 맞고 있다. 새로운 통합의 과정의 측면에 있어서는 전지구적 순환을 가속화하는 대중문화, 소비, 여행, 노동, 자본 등을 통하여 영토적 주권의 개념을 넘어서는 초국민적인 행위자, 제도, 협약들이 무수히 등장하여 새로운 권력을 얻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울리히 벡, 조만영역, 「지구화의 길」 (서울, 거름, 2000), 33쪽.
국민국가들이 국제무대를 독점했던 국제정치의 시대는 지나가고 새로운 초국가적 행위자들(국제조직, 다국적 기업, 초국가적 사회운동)의 다중심적인 권력분할 체제로 전환국면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 예로는 국제사면위원회, 맥도널드, 마이크로소프트회사, 마피아조직, 그린피스, 세계은행, 나토, 유럽연합 등).
초국가적인 행위자들(transnational actors)에 의한 다중심적 세계체제는 정치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하나의 공동운명이라는 민족공동체에게는 하나의 위기로서 다가오며, 또한 과도한 부의 축적과 집중화로 인해 환경파괴, 빈곤의 세계화, 그리고 기술적, 산업적 위험(유전자공학과 생명공학의 예측할 수 없는 결과)을 파생시키고 있다. 문제는 이들 위험과 세계화의 어둔 측면들-빈곤, 환경문제-이 분할의 세계화 과정을 밟고 있다는 것이다. 즉, 세계화는 중심부와 주변부로 분할이 되면서 세계화의 중심부는 부와 성장의 무제한적 기회를 얻고 새로운 엘리트지배계급, 초국가적 CEO들을 탄생시키는 반면, 주변부는 빈곤화, 정치적 주권의 상실이라는 새로운 식민주의를 경험하게 된다. 매년 약 1700만 헥타아르의 열대우림의 사막화, 유독성 폐기물을 산출하는 낡은 중공업 기술산업이 이들 주변부에 재 배치/할당되어진다. 지역문화와 지역정체성이 초국적 기업의 보편적인 문화상징의 조작을 통해 획일화되는 일반화의 과정이 심화된다(예, 디즈니 산업, 월드와이드웹, 코카콜라, 소니).
초국가적, 초문화적 소통형식과 생활양식을 통해 지역적인 것이 이제는 전 지구적인 측면으로 이해되고 있다. 세계화는 지역들간, 집단간의 응집과 융합, 충돌과 중첩, 결속과 분절화를 산출하고 강제한다. 지리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공간에서 공동작업과 공동생활을 가능하게 함으로서 새로운 사회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예로서 자동차, 금융업에 있어서 경영은 본국에서, 생산은 타국가에서 하게 되며 이주노동자처럼 출생과 민족적 정체성을 준 현장과 노동하고 생활하는 현장이 다른 현상이 증가하게 된다. 극단적으로는 인터넷사용자처럼 함께 사는 이웃은 잊게 되고, 역설적으로 멀리 있는 초문화적 이웃(distant Others)은 가까워질 수 있게 된다. 세계화의 중심부는 초지역적 문화와 생활세계를 향유하는 반면, 주변부는 삶의 세계가 자기 지역에 고착되면서 지구화된 부자와 지역화된 가난한 자로 분할과 위계화가 이루어지게 된다. 울리히 벡은 이렇게 표현한다.
몇몇은 지구에 거주하는 반면, 사람들은 자기 자리에 묶여 있는 것이다. 우선 지구지역화(글로컬리제이션)는 무엇보다도 특권과 공권상실, 부와 빈곤, 가능성과 무전망, 권력과 권력상실, 자유와 부자유의 새로운 분배이다. 어쩌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지구지역화는 전지구적인 새로운 위계화의 과정으로서 이 과정이 진행되면서 전 지구에 걸쳐 재생산되는 새로운 사회문화적인 위계질서가 구축된다. 시장과 정보의 지구화가 추동하고 ‘필연’으로 몰아가는 지역공동체적인 정체성과 그 차이성에서 중요한 문제는 다양성을 지닌 평등한 파트너가 아니라는 점이다. 어느 한쪽에게는 자유로운 선택인 것이 다른 쪽에게는 무자비한 운명이다. 그리고 바로 이 다른 쪽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증가하고, 전망 없는 삶에서 시작해 점점 더 깊게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게 된다. 「지구화의 길」111-112쪽.
이렇듯 세계화는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의 개념을 확장하며 시간적 차이를 축소시켜서 초국민적 상호의존성과 결속을 강화하는 한편, 공간을 새로이 분할시켜 중심공간 半-주변부, 주변부로 나누어 부와 권력의 새로운 위계질서를 형성한다. 여기서 초국적, 초문화적 행위자들은 세계화의 주역으로서 세계화의 혜택을 무한정 누리는 반면에, 그 혜택의 결과로 발생하는 즉 고통과 희생은 주변부에 있는 다수의 타자들에게로 이양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세계화 그 자체가 아니라 세계화로 커지고 있는 어둔 그늘에 대해 어떻게 우리가 책임 있게 응답하는 가이다. 다음 두 장들은 세계화의 상이한 두 주체세력들이 형성해가는 전 지구적 현상들을 고찰한다. 이들은 각각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대안적 세계화로 불리워 지며, 그 단체들은 세계경제포럼(일명 다보스포럼)과 세계사회포럼으로 대변된다.
제 2장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동향과 그 문제점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이어서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은 동서의 이데올로기 냉전구도가 종식됨으로서 소위 서구열강중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장밋빛 환상을 통한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기대를 갖게 되었다. 즉, 자본주의의 승리와 냉전에서 서구의 압도적인 승리는 재갈물리지 않은 신자유주의의 팽창과 세계화의 확산이란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자유경쟁의 원칙에 따라 경쟁상의 우열승패의 판정에 머무르지 않고 더 나아가 선인과 악인의 판정까지 시장의 소리에 맡긴다. 따라서 국가는 교육과 보건과 같은 사회보장 제도에 직접적으로 개입, 운영을 하는 대신, 시장경제 틀 안에서 제도들이 운영될 수 있는 경쟁의 법칙을 제공하는 것으로 국가의 역할을 제한하였다. 신자유주의로 불리는 다양한 구조조정 정책들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화폐와 노동력의 관리형태의 변화로 볼 수 있다. 금융산업, 특히 국제금융에 대한 탈규제는 국가가 화폐를 통제하려는 케인즈적 시도의 좌절을 의미한다. 정리해고, 파견노동제, 임시직과 성과급 제도의 확대 등의 노동시장 유연화와 복지제도의 축소는 노동력이라는 상품의 재생산을 더 이상 사회가 보장해주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 이루어진 화폐와 노동력의 국가관리가 70년대 불황의 원인이었으며 이제 화폐와 노동력도 시장의 원칙에 따라 관리 되어야 한다는 것이 신자유주의의 논리이다.
“시장”의 세계화라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는 90년대 중반까지 저항 없이 팽창해 나갔다. 시장과 시장의 법칙이 모든 사회문제의 해결책으로 제시되었다. 전자혁명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장애가 허물어지면서 여기에 부의 팽창과 집중이 가속도가 붙게 되었다. 시장이 국가위에 군림하면서 거대한 금융자본이 축적되고 이들의 파워게임을 효율적으로 하는 IMF(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 OECD(선진개발협력기구), WTO(세계무역기구)등의 국제기구들 이들 국제 금융기구들은 제 3세계 곳곳에서 벌이고 있는 광산채굴, 석유와 천연가스 개발사업에 대한 금융지원을 함으로써 다국적 기업들 및 해당 국가의 지배엘리트들과 연결되어있다.
이 각 정부를 통솔하는 meta-government의 역할을 하면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전도사 역할을 하게 되었다.
초국가적 국제기구들이 거시적인 정책지도를 그리면 각국의 정부는 이를 자기나라에 적용시킴으로서 신자유주의의 조직적인 적용이 불평등을 크게 심화시키는 악순환(즉 “빈곤의 세계화”; 미첼 촘스키)을 가져오게 되었다. 즉 세계은행 보고서 세계은행 보고서 “세계발전 2000/2001, 반곤과의 투쟁”에서 인용함.
에 따르면, 1960년대 20%의 가장 부유한 나라와 20%의 가장 가난한 나라의 격차는 30배정도였으나 1995년에는 85배로 벌어지게 되었다. 지구의 30억인구가 하루 2달러미만으로, 12억의 인구가 하루 1달러 미만의 생활을 하게 되었으며, 이 세상의 225명의 부자가 지구의 25억 인구의 일년치 소득합계에 해당하는 부를 축적하는 결과를 잉태하게 되었다.
불황을 타개하려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은 노동, 여성, 환경에 대한 공격과 제 3세계에 대한 제국주의적 지배의 증대를 통해 이윤을 추구함으로서 북-남간의 “20대80”의 부익부빈익빈 사회를 형성하게 된다. 노동력 투입에 대한 비용과 세금부담이 적은 곳으로 일자리 수출을 함으로서 초민족적 금융자본은 부를 축적함으로서 지구화된 부자와 지역화된 빈자간의 간격은 점차 멀어지게 되었다. 서구 강대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세계금융기구들은 전세계적인 신자유주의 관철을 위한 각종 자유화 정책을 펴도록 하여 세계 각국이 WTO 체제, 양자간 다자간 투자협정 및 자유무역협정을 통하여 금융의 세계화속으로 편입되도록 이끌었다. 여기서 금융자본의 초과착취를 통한 제 3세계 국가의 파산이 일반화되기 시작하였다. 남미와 아시아에서 일어난 외채위기를 통한 국가부도사태가 이를 증명한다.
몇가지 예들:
* 실업의 비용, 문명의 비용을 상처받기 쉬운 약자에게 전가함: 잘 구비된 학교, 원활한 교통체계, 환경보호, 다채로운 도시생활등의 사치는 일부 부유층에 혜택이 돌아가고, 그 발전에 따른 사회적 비용-개발공해, 환경비용-은 가난한 사람에게 전가시킨다.
*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토지소유의 집중과 환경적으로 파괴력을 지난 기업농 시스템을 도출하여 가족농을 해체시킨다. 농업생산물의 무한경쟁에로 돌입-저가격농업정책-시킴으로 농업지역에 기아현상을 촉진하여 농민들이 도시로 나가 슬럼화 되는 현상을 촉발한다. 현재 세계 농산물 시장 90%를 10개의 농업이 장악하고 있으며, ‘지식에 대한 소유권/ 생명자원에 대한 소유권 확대’를 통해 종자, 생명공학분야, 농약, 비료, 식품가공, 유통분야 그리고 전통적인 농업지식에 대한 권리가 특허를 통해 초국적 기업으로 이전되고 있다. 농민들의 도시빈민화현상은 토지소유의 집중과 환경 및 사회적으로 파괴적인 기업적 농업시스템, 댐과 기간산업의 발전을 기반으로 저임금 산업형 수출주도 성장에 근거한다.
* 제 3세계가 안고 있는 외채는 경제적 문제뿐만 아니라 윤리적, 정치적, 사회적, 역사적 환경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1998년을 기준으로 41개 중채무빈국들은 빌려온 것보다 1조 6800억 달러나 많은 금액을 상환하였다. 1981년 이후 제3세계 국가들은 그들이 빚지고 있는 금액 5600억보다 6배나 많은 3조 7000만 달러를 북반구로 이전시켰음에도 여전히 2000억이나 빚지고 있음. 이들 나라는 외채지불을 위해 국내경제의 축적가능성을 희생함으로서 보건, 교육, 고용, 주택보급, 원주민들에 대한 토지민주화와 생존조건을 악화시키고 있다.
* 국경을 넘어드는 질병과 오염의 문제: 사람, 상품, 문화의 세계화와 함께 질병의 세계화도 동시에 수반된다. 국제항공여행의 증가는 세계적인 질병확산의 수단인이 되고 있고, 세계보건기구(WHO)는 지구상의 질병과 상해의 25%가 기초환경의 파괴와 기후변화와 관련 있다고 보고한다. 세계화와 환경파괴의 상승작용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에이즈(AIDS)의 비극의 역사이다. 1999년 한해만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5,000만이 감염되었고 그 중 1,60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유독성폐기물과 오염물질의 개발도상국으로의 전 지구적 이동도 가속화되고 있다. 선진국의 까다로운 환경규제로 석면산업, 석유화학산업, 반도체산업등에 대해 개발도상국이 ‘오염의 도피처’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발전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환경비용은 계산하지 않음으로 그 피해는 제 3세계 민중에게 돌아가고 있다. 또한 강대국의 자본이익을 위한 호르몬처리식품(GMO)의 수출은 인간과 동식물의 건강에 심각한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힐러리 프렌치, 주요섭역, 「세계화는 어떻게 지구환경을 파괴하는가」 (서울, 도요새, 2001).
금융의 세계화는 초국적자본의 지속적인 이득을 위해 세계 곳곳에 있는 천연자원 확보에 따른 지역적 분쟁과 전쟁의 세계화 역사적으로 군사력은 국가와 문명의 영토적 팽창에 있어 핵심적이었다. 군사/전쟁의 세계화는 군사적 관계나 상호작용이 시간과 공간의 면에서 그리고 조직적 특성에 있어서 국가의 영역을 넘어서는 유형이나 과정을 말한다. 여기에는 국가의 영역을 넘어서 지정학적으로 전 지구적인 전쟁체제의 현상, 군사수단인 무기체제의 전 지구적인 생산과 거래 그리고 군사안보 협약등의 지구적 조정을 특징으로 한다. 하영선 편, 「21세기 평화학」 (서울, 도서출판 풀빛, 2002), 1157-161쪽.
를 부추긴다. 아시아의 북쪽 끝인 카자흐스탄으로부터 남쪽 인도네시아 그리고 동쪽 한반도에서 서쪽 팔레스타인까지 아시아는 분쟁으로 성한 구석이 없다. 이는 서구 식민주의자들이 아시아 경영을 위한 인종분리정책과 퇴각하면서 임의적으로 영토을 그은 면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적 규모의 대테러 전쟁이 국지적 분쟁에 새로운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부시의 대테러전쟁은 테러지원 의심국가에 대한 일방적인 단순한 군사적 공격만이 아니다. 국내 보안국을 설치 테러방지법을 통해 미국시민과 노동자의 기본권박탈을 통해 “무장한 신자유주의”형태로 발전강화하고 있다.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전쟁의 세계화는 필리핀을 포함한 아시아 기타지역에 수출됨으로서 기타지역에서의 새 미군기지의 설립함으로써 제국주의적이고 식민주의적인 지배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은 카스피해 연안의 대규모 천연가스 및 원유에 대한 미국중심의 석유 및 군수산업의 다국적 기업의 이권과 미국의 세계재패의 전략목표의 일치에서 이루어진 전쟁임을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다. 필리핀 정부와 모로이슬람해방전선, 스리랑카정부와 타밀타이거, 네팔정부와 마오이스트게릴라, 카슈미르분쟁. 인도네시아의 아체와 말루꾸분쟁,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분쟁등은 전쟁의 세계화라는 현상으로 설명될 수 있다. 그 예로, 9.11사태로 번진 테러와의 전쟁 이념은 이미 아시아 각국에 무장철학을 주입하고 무력동원의 정당성을 제공하였다. 분쟁당사국 정부 입자에서는 테러의 명분만 내세우면 평화과시를 통해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게 되었다. 전후 최대의 호황을 누리는 무기시장과 정부개발원조자금(ODA)을 국제사회에서 받음으로서 각 분쟁국가의 지배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정책을 심화시키고 있다 (예, 인도네시아 정부의 아체공격과 필리핀 정부의 민다나오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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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네시아의 몰루카스제도/파푸아섬의 갈등: 막대한 천연자원-구리 황금 천연가스 원목-이 있는데도 원주민들은 극단적인 기아에 시달리고 있다. 그 이유는 개발이익은 모두 미국계 다국적 기업, 인도네시아 정부, 부패한 공무원들에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몰루카스 제도에서는 분쟁으로 살인방화, 교회와 모스크의 방화등을 통해 3천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그 발단은 무슬만 버스운전사와 기독교승객사이의 논쟁에서 비롯된 것으로 무슬림의 강제이주및 종교감정 조작으로 분쟁이 증폭되었다.
* 필리핀 민다나오의 갈등: 모로이슬람해방전선은 오사마빈 라덴의 알카에다와 연결되어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민다나오 중앙과 술루섬에 위치한 원유와 천연자원들에 대한 미국계 다국적기업과 현지 군인 및 공무원과의 부패의 고리로 인해 약 30만의 난민이 발생하였다.
새로운 종교적 묵시록:
1)모든 게 빠르게 드라이브한다.
2)도로포장이 엄청 잘 되어 있어서 귀 뒤를 못 본다
3) 갑작스럽게 “No Exit" 사인을 만남.
==> 갑자기 모든 게 손쓸 수 없게 됨.
세계화는 인간활동의 세 측면, 문화, 교육, 정보가 엄청난 사업임을 깨닫게 해줌으로서 경제의 문제뿐만 아니라 복합적인 양상을 띠게 된다. 문화의 동일성이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어, 운동화, 청바지, 폴로셔츠는 아주 값싸고 편리하기 때문에 아주 가난한 지역에서도 전통적인 의상을 모두 밀어내고 있다. TV의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나오는 원주민의 모습은 사실상 일상적인 모습과는 상당히 멀어지게 되었다.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등장은 적은 비용으로 손쉽게 재물, 서비스, 자본의 유동성을 증가시킴으로서 기업간의 경쟁이 심화되고 외국자본의 유치를 통해 기술과 경쟁력으로 더욱 전문화되고 생산성을 높이는 무한 경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여기에 기술과 경쟁력이 낮은 나라는 순응하게 되고 자본이득을 위한 노동력삭감으로 실업이 발생하여 빈곤화의 길을 걷게 된다. 빈곤은 재래 문화에 엄청난 파괴적인 영향을 미쳐서 모든 가치와 의미 그리고 활력을 빼앗아 버림으로 성산업과 이민이 증가하며 내부공동화가 심화되어 전통적인 공동체는 몰락하여 학교와 도서관은 비워지게 된다.
경제활동의 지구화는 결국 문화의 세계화로 이어지면서 다른 문화와의 충돌의 국면을 맞으면서 위기의 지구화로 연결되어진다. 신자유주의체제의 지구화로 갈수록 그 파장의 위험이 더 커졌다. 특히 남미와 아시아의 금융위기를 통해 보듯이 지구화는 세계경제에 개별국가들이 개입할 능력을 상실하는 결과를 보게 되었다. 그 결과 많은 지식인들과 활동가들은 지구화를 세계 자본주의의 합리화 과정으로 보는 주요 가설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모든 것을 시장의 자율규제의 논리에 맡겨야 한다는 신자유주의는 공통의 목표를 위한 것이 아니라 권력자의 이념이라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제 3장 대안세계화를 위한 시민사회의 노력
이러한 빈곤과 전쟁의 세계화로 이루어진 비극적 현실은-빈곤, 사회적 착취, 환경파괴증가 등 죽음에로의 질주를 가져오는 세계화-서구유럽사회의 중심부와 제 3세계의 주변부의 시민사회운동진영으로부터 세계화에 대한 비판적 인식의 계기를 낳게 되었다. 이는 특히 1999년 11월 말 시애틀의 WTO 제 3차 각료회의 저지를 시점으로 시작되었다. 이 날, 수백 개의 조직들과 노동자, 환경주의자, 학생, 종교집단들로 이루어진 약 5만 명의 대규모 항의시위가 시애틀의 세계무역기구(WTO)의 각료회담을 멈추게 함으로서 대안적인 미래를 향한 저항, 곧 새로운 세계화에로의 희망이 점화되었다. 이들은 인종, 국가, 성, 민족, 계층을 넘어서 정의, 공동체, 국가주권, 문화적 다양성, 생태적 지속가능성과 같은 사회적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다국적 기업과 소수 강대국에 이끌리는 세계화에 한 목소리로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이 새로운 저항의 시대를 뚜렷이 구별되게 만드는 것은 그 저항이 60년대처럼 국가가 아니라 초국적 기업들과 국제적인 경제기구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고, 이 새로운 물결의 원동력은 바로 세계권력의 주변부에 있던 노동자, 농민, 여성, 학생 그리고 양심적 지식인들로써 시민사회운동진영이 함께 모여 공통으로 인식하고 있는 지구화된 경제의 위협에 대처함에 있어 각 진영이 국제연대라는 새로운 세계화의 물꼬를 텄다는 것이다. 시애틀을 전환점으로 그 이후 2000년 워싱톤, 프라하, 2001년 제노아, 2002년 바르셀로 등지에서의 IMF, 세계은행 그리고 아시아개발은행(ADB)에 대한 대규모 시위가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시민사회운동은 급진적인 발전을 이루게 된다. 초국적 금융기구의 회의가 있을 때마다 이루어지는 조직적인 세계 시민사회진영의 저항의 구호내용은 금융과 투자자의 요구보다 인권, 생태권, 사회권이 더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시애틀 저항이후 급성장해온 시민사회운동진영은 부의 평등분배, 시민사회의 실천역량강화 및 공적영역의 발전 및 대안주체의 역량을 어떻게 강화, 대안사회를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드디어 2001년을 기점으로 신자유주의적 정책과 이념을 “세계경제포럼(일명, 다보스포럼)에 대항하여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는 구호아래 “세계사회포럼”을 남미의 포르토알레그레에서 열게 되었다.
이렇듯 시애틀투쟁이후 벌어진 일련의 반세계화 시위와 회의들은 그 과정에서 제기된 이슈와 대안들을 토론하기 위한 공간으로서 세계사회포럼을 낳았다. 세계사회포럼은 그 흐름이 해가 갈수록 안티담론(anti-discourse)을 벗어나 대안담론(alternative discourse)으로 발전하게 되면서 탈중심화와 지속가능한 대안적 경제체제의 모색하고, 총괄적인 상부구조를 만들지 않고 소농민, 원주민, 이민자, 실업자, 노동자, 빈민운동가, 지역운동가, 공동체운동가, 페미니스트, 학생, 양심적 지식인들이 각자의 다양성, 탈중심성, 소규모성을 유지하면서 연대 활동을 전개함으로서 비판적 대중이 행동에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 줌으로서, 새로운 국제사회의 민주적인 지구시민운동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고 있다.
세계사회포럼은 시민사회운동진영에 있어서 금융세계화 바퀴에 제동을 거는 단순한 저항위주의 흐름을 넘어 대안적 사회를 꿈꾸고 그 실현을 모색하는 사회적 약자들의 공통된 의지를 개념화하고 전략화하는 중심축으로 발전하였다. 이 지구적 모임은 이익절대주의, 자본중심의 발전논리에 대항하여 남녀평등, 소수민권리에 대한 연대, 외채전면탕감, 군사주의 반대, 노동자/ 농민의 생존권보장, 신자유주의 세계화 추진기구들인 IMF, WB, WTO, NATO, 다른 군사동맹, 국제기구에 대한 반대하는 지구적 시민사회(global civil society)의 출현을 가시화하고 있다. 이 포럼은 “더 인간적이고 민주적이며 평등한 미래를” 꿈꾸고, 이 희망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세계화의 어둔 그늘에 대한 분석과 민중중심의 지속가능한 공생공영을 위한 국제연대의 조직을 강화하는 데 중심축을 설정하고 있다.
지구적 시민사회운동의 동력과 그 결속은 세계사회포럼의 규모와 그 주제의 방향성에 의해 확인할 수 있다. 제 1차포럼에는 세계 500개 조직과 4천명의 외국인, 일만 육천의 브라질인, 2차에는 5만, 3차에는 해외에서 2만 브라질에서 8만이 참가하였고, 2차에는 8백개의 워크숍, 3차에는 1700개의 세미나 워크숍으로 발전되었다. 그 주제에 있어서는 제 1차 포럼은 평등과 발전을 위한 국제금융시스템문제, 자연 및 인간자원의 공공성 보존 및 인권신장, 시민사회 실천역량강화, 세계권력의 민주화, 갈등조정과 평화 등의 의제가 다루어졌다.
2002년에 열린 제 2차 세계사회포럼은 9·11사건에 따른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공격이라는 미국의 일방적 군사주의에 따른 일시적인 패배주의 극복하고, “세계은행에서 요르단서안까지”라는 구호가 보여주듯이 지구적 시민운동의 정치적 영토를 확장하고 동시에 방어적인 저항에서 공세화/정치화/대규모화되는 과정을 거쳤다. 이제 금융세계화의 파괴적 결과에 맞선 저항과 반제/반전운동의 결합을 통해 자본주의와 군사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저항(resistance)과 대안(alternative)의 지구화라는 새로운 비전의 물결을 형성한 지구시민운동의 물결은 주변부를 위한 연대(solidarity)와 세력화(empowerment)의 모색을 위해 2004년에는 남미에서 인도의 뭄바이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이 제 4차 세계사회포럼에서는 예상참가인원이 약 8만으로서 제국주의적 세계화, 군사주의와 평화, 종교적 종파주의, 카스트와 인종차별주의의 문제가 다루어지게 됨으로서 신자유주의 담론을 넘어서서 제국주의 및 군사주의에 대항하는 연대의 세계화가 가시화되어가고 있다.
세계사회포럼은 하나의 강령에 연합한 기구가 아니다. 이는 신자유주의에 의한 세계지배, 어뗜 형태이든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운동가, 단체, 지식인, 예술가, 학생, 빈민, 여성들이 모여 다원적이고 자율적인 관점에서 현재의 문제를 반성하고, 서로 토론 및 제안을 통해 문제를 공식화하며, 자유롭게 서로가 연대하여 “인간과 지구사이의 풍요로운 관계를 지향하는 전 지구적 사회”를 목표로 하는 만남의 장으로 존재한다. 이는 보편적 인권, 사회정의, 평등, 민중주권을 위한 민주적인 국제체제를 모색하고 있다.
세계화이슈에 대해 정리하자면 초국적 엘리트들 중심으로 자유시장과 자본의 지배논리에 따라 부를 집중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결국 빈곤과 군사주의의 세계화와 생태계의 파괴 그리고 문화적 다양성의 파괴라는 상호 연관된 결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에 대항하여 세계의 주변부(the marginal)에서 발생하는 시민사회운동은 각자의 다원적 목소리를 상호연대를 통해 강화하고, 죽음과 죽임의 세계화에 대항하여 생명과 살림의 지속가능한 사회 건설을 위해 사회적 약자의 문제를 세력화하는 대안운동으로 나가고 있다. 이러한 지구적 시민사회운동의 흐름이 종교계에 귀감을 주는 바는 다음과 같다. 첫째, 지역적이고 지구적 문제들-예, 빈곤, 군사주의, 생태계의 파괴, 토착문화의 멸종, 억압과 착취등-에 대한 긴급한 행동이 요청되고 있다는 사실에 전 시민사회운동이 주목하고 있다. 둘째, 이러한 긴급한 문제들에 관해 성, 인종, 종교, 계급, 국가의 경계를 넘어 문화적, 인종적 타자(cultural-racial Others)들 간에 상호협력 및 연대가 급속히 강화되고 있다. 셋째, 전 지구적으로 일어나는 대안운동은 성 민족 문화 세대간의 다중성의 존중과 참여의 다양화를 통해 생명, 평등, 존중, 평화를 목표로 하는 공동의 행동을 도모하고 있다.
2부 위기의 시대에 있어서 종교간의 대화와 그 과제
제 1장 위기를 맞은 지구에 있어서 종교간의 대화의 필요성
오늘 우리 신앙인들은 지구가 지닌 위기의 상황에 대한 응답으로 새로운 종교적 신조와 실천을 요청받고 있다. 예를 들면, 가속화되고 있는 지구화와 현대과학의 영향으로 우리는 상호의존되어 있고 서로 관계되어 있으며, 각 개인의 실존과 안녕은 타자들이 행한 것에 크게 의존되어 있음을 점점 깊이 깨닫고 있다. 대량무기살상과 핵으로 인한 전쟁과 생태계의 파괴를 통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전멸될 수도 있다는 전례없는 가능성의 앞에 서서, 모든 종교인들은 이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생존과 번영을 돕는데 자신의 삶과 작업들을 재구조화하여야 한다는 전 지구적 요청을 받고 있다.
어떤 종교적 이론과 실천이든, 그 본성에 있어서는 역사적이며 상황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즉, 모든 신학적 틀은 특수한 시대의 특정한 사회가 당면한 문제에 대처하는 인간의 상상력과 노력의 계속적인 과정을 통해 변화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제는 더욱 복잡해지고 다층적인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이 시대를 살면서 우리의 낡은 생활방식, 가치와 세계관을 변혁시켜야 한다는 “새로운 실재에 대한 감각”의 다층적 도전들은 다음과 같다:
1) 기독교의 단신론으로부터 새로운 다원적 세계에로의 변화: 서구문화의 헤게모니의 몰락과 제 3세계의 도전(새로운 모형은 다원적[polycentric]이어야 한다).
2) 전통적인 종교에 있어서 영적근거의 상실과 역사비평적 의식의 출현: 이는 전 지구적 범위로 확산하고 있는 제도적 부정의에 대처하는 전통적인 가르침의 무력감에 대한 느낌이 반영되어 있다(새로운 모형은 힘을 북돋는 새로운 비젼이어야 한다).
3) 현대과학과 기술의 방향성에 대한 윤리적 회의론 즉, 진보와 이성에 대한 확신의 상실: 무기와 생태파괴의 위협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새로운 모형은 미래세대와 타존재들을 고려해야만 한다).
4) 지역적 그리고 지구적인 시민사회운동으로부터 점점 높아가는 희생자들의 목소리: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계급주의 그리고 빈곤의 세계화에 대항하는 연대운동의 확산(새로운 모형은 비지배적이며 평등적이어야 한다).
5) 자기 자신의 종교를 오직 유일한 진리로 믿는 신념체계를 상대화하는 종교적 다원주의의 인식과 평화, 인권, 지구적 안녕을 위한 종교간의 대화를 위한 목소리의 높아짐(새로운 모형은 대화적이며 실천적이어야 한다).
급속한 지구화/세계화의 결과로 인해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독백의 시대가 아닌 대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는 이제 우리의 지구에서의 삶과 운명은 어떻게 타자를-어떻게 타자를 정의하든-올바로 그리고 사려 깊게 대하는 가에 달려있음을 의미한다. 다른 말로 말하자면, 자아의 독백은 이제 타자와의 대화에로 넘어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의 종교적 담론에 있어서 타자를 진지하게 다룬다는 것은 우리 자신이 누구이고 타자와의 관계에 있어서 우리가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우리의 의식과 도덕적 가치 그리고 태도에 있어서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옴을 뜻한다.
오늘날 기독교의 주요 신학적 모형을 고찰해 볼 때, 타자를 진지하게 다루는 노력은 두 가지 방향에서 수렴되고 있다. 첫 번째 중요한 사조는 사회적 실천과 제도들의 희생자가 된 억압받은 인간타자(가난한 타자)와의 직접적인 만남(예를 들어, 구티에레즈, 레오나르도 보프)으로부터 온다. 흑인사회, 남미, 미국원주민,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일하는 해방신학자들은 그들의 삶의 상황에서 억압된 자들의 목소리를 높이는 길을 찾고 있다. 이는 자아와 억압된 인간타자간의 대화의 필요성을 나타내는 징조인 것이다.
두 번째 운동의 방향은 세계종교들의 종교적 다양성에 의해 제기되는 도전에 대답하는 것이다. 기독교 다원주의 신학자들(예를 들어 존힉, 레오날드 스위들러, 레이몬 파니카, 그리고 스탠리 사마르타, 폴 니터)은 타신앙에로의 ‘건너감’과 자신의 신앙에로의 ‘돌아옴’을 통한 새롭게 변혁된 기독자의 정체성을 주장하고 있다. 종교적 타자를 정당하게 대하기 위하여, 공통근거, 진리주장들의 평가, 그리고 대화방법론등과 같은 논점들에 있어서 제기되는 차이들 간에 다리를 놓을 수 있는 지를 그들은 관심한다.
수행의 실천과 그 과제에 대해, 해방신학자들 (가난한 타자를 관심하는 담론)과 종교신학자들(궁극실재에 관심하는 담론)간에는 긴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90년대에 들어와서는 양 물결이 수렴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이는 최근에 위협적인 핵무기와 생태파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 지구적 의제에로의 긴급한 요청으로 지금은 해방신학자들과 종교신학자들간의 합류라는 새로운 가능성이 전 지구적 안녕을 위해 열리고 있는 상태이다. 전 지구적 차원에 있어서 군사행동과 생태적 위기에 관한 통전적 비젼과 책임성을 갖기 위해 우리는 타 종교의 건설적인 작업에 대해 눈을 떠야 하며 모든 종교는 지구적 안녕을 위한 보편적 요청에 응답하여야 한다. 종교간의 대화를 주창하는 이들은 “위로 향한 대화” 즉, 실재(Reality), 내적인 영성적 삶이나 교리와 같은 진리-주장의 문제보다 더 긴급한 지구적 문제에 관심을 갖는 “땅으로 향한 대화”에 눈을 돌려야 한다.
이에 대한 예를 유대-기독교-모슬렘 전통과는 전혀 다른 현대불교가 어떻게 수행과 종교적 실천에 있어서 파라다임 전환을 꾀하고 있는 지를 살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전 지구적 문제의 도전앞에 현대불교의 새로운 변모와 변혁은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큰 자극이자 귀감이 될 것이라 믿는다.
제 2장 지구적 문제 앞에 변모하는 현대불교
현대불교인의 해방운동은 지구적 규모에 있어서 새로운 면모, 즉 동양에서 불교의 재활성화와 서양에서 전통불교의 서양화라는 측면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현대불교의 새 모습은 이들 운동의 모든 수행자들이 세상의 고통에 주목하고, 불의와 폭력을 가져오는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구조들에 대항하는 싸움에 능동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점에서 찾아질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 그들은 그들 자신뿐만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세상속으로 들어간다. 예를 들면, 동양불교인들은 가난, 전쟁, 폭력, 다국적기업의 경제적 독점, 신신민주의, 정치적 부패 그리고 현대화와 산업화의 영향에 의한 문화적 정체성의 상실등과 같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 다른 한편, 서양불교인들은 개인주의, 과도한 일중독, 경쟁과 이익극대화를 위한 냉혈적인 자본주의, 인종주의, 그리고 세속화와 물질주의에 의한 영적위기등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덧붙여 그들은 불의와 생태파괴의 세계화라는 공통의 문제에 부닥쳐있다. 아시아불교인에게 있어서는 많은 경우에 서양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영향에 대처하고, 인권과 평화를 지지함과 아울러, 자신의 토착적이고 문화적인 정체성을 유지하고자 불교는 재각성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인도에서 암베카(Ambedkar)와 그의 추종자들이 불교에로의 집단개종; 스리랑카에서 아리야랏네스(A.T. Ariyaratnes)의 사라보다야 쉬라마다나 운동; 한국에서 소태산의 원불교; 대만에서 설락 시바락사스(Sulak Sivaraksas)의 일상불교 (small b Buddhism)와 붓다다사 비쿠(Buddhadasa Bhikkhu)의 불교사회주의(Dhammic Socialism); 베트남에서 틱낫한(Thich Nhat Hanh)의 상즉교단(Tiep Hien Order); 인도에서 달라이라마의 유랑티벳불교등이 있다. Christopher S. Queen and Sallie B. King eds., Engaged Buddhism: Buddhist Liberation Movements in Asia (Albany, New York: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1996); Bokin Kim, Concerns and Issues in Won Buddhism (Philadelphia: Won Publications, 2000).
우리 시대에 있어서, 사회정치적 억압과 생태파괴, 서양식의 실용적 생활양식 그리고 여러 풀뿌리 해방운동등과 같은 요소들은 전통적 불교의 가르침, 수행 그리고 제도들의 변혁을 촉진시켜왔다. 모든 이런 경향들은 전통적 규범과 대치하며 권위주의, 상하계급주의 그리고 전통적 불교의 타세상성에 불가피하고도 건설적인 교정을 초래하였다. 토마스 트위드(Thomas A. Tweed)의 설명에 따르면, 현대화, 고통과 생태위기의 심각한 상황등의 도전을 통해서 현대불교는 그 “수동적이고 염세적인 경향”을 벗고 “낙관성(optimism)"과 ”활동성(activism)"의 잠재적 씨앗을 재 발견하기 시작하였다. 토마스 트위드는 낙관성과 활동성이란 용어를 구분함에 있어서 낙관성은 인간의 자유와 가치에 대한 긍정과 역사의 유의미성을, 그리고 활동성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정치적 경제적 영역에 참여하는 것으로 구분한다. The American Encounter with Buddhism 1844-1912: Victorian Culture and The Limits of Dissent (Bloomington and Indianapolis: Indiana University Press, 1992) 133-162.
오늘날의 불교는 대담하게 악의 문제를 직면하고 고통어린 세상에서 해방적 다르마(붓다의 가르침)를 촉진시키고 있다. 아시아에서 다르마는 가난, 제도적 부정의, 계급주의 그리고 서양의 제국주의에 대항하여 활동하고 있다. 서양에서는 불교의 문화순응(acculturation)에도 불구하고, 현대 불교의 가르침과 수련은 서양의 이원론적, 물질적 세계관에 도전하고 있다. 불교는 서양인들로 하여금 자신과 자아, 인간 그리고 자연과의 관계를 비이기성과 상호의존성의 입장에서 재 고찰하도록 독려한다. 불교는 또한 인종주의, 가정의 폭력, 전쟁, 오염 그리고 약물중독등과 같은 서양 사회의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현대의 불교운동을 볼 때, 특히 미국불교에 있어서도 몇가지 새로운 각성의 징조들이 인식되어진다. 첫 번째로 실재는 이분적이기 보다는 상호연관되고 상호의존되어 있다는 개인적 각성의 현상이다. 이러한 각성을 통하여 개인과 사회, 내적평화와 세계평화, 명상과 사회적행동간의 관계성이 재 확인되고 있다. 두 번째 현상은 대화로의 각성이다. 불교도들은 이제 현대과학, 기독교해방신학 그리고 서양심리학과 실용주의로부터 배우고 있다. 이러한 다자학문간의 대화를 통해 다르마의 새로운 씨와 수행이 서양의 토양에 전파되고 있다. 그 결과로서 “참여”불교(Engaged Buddhism)라는 새로운 불교운동이 출현하고 있다.
셋째로는 세상에로의 각성으로서 이는 금욕적이고 영성적 수련에 중심을 둔 전통적인 수도원중심의 한계를 넘어서서 세상에로 깊이 들어가는 수행운동을 말한다. 불자의 수행의 장소가 세상 그 자체 그리고 일상사의 모든 면-가정, 인간관계, 상점, 거리등등-으로 확대되어진 것이다. 마지막 주요현상은 기독교의 경우처럼 생태적 각성이다. 생태보살(eco-sattvas), 생태공안, 생태승가라는 새로운 신조어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는 전근대적인 불교담화와 수행은 생태적 위기라는 새로운 현상과 현대불교도들의 새로운 예민성에 호소력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새로운 불교용어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생태적 각성에 있어서 지구적 안녕(planetary wellbeing)을 위한 사회정치적 개입과 참여는 현대적 불교수행에 있어서 필수가 되고 있다.
기독교신학자들이 대규모적인 인간의 고통과 생태파괴에 직면하여 신학적 준거틀에 있어서 파라다임전환을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여러 불교인들도 “수레(yana)"의 입장에서 다르마의 ”새롭게 법륜을 돌림“에 관해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크리스토퍼 퀸은 참여 불교를 전통적 수레-즉, 초기불교로서의 히나야나(소승불교, ”근본적 수레“), 극동아시아의 개혁불교로서 마하야나(”큰수레“), 티벳의 혼합불교로서 바즈라야나(”다아몬드 수레“)-와 연관하여 네 번째 수레(yana)로서 참여불교를 말한다. Queen, Engaged Buddhism in the West, 1.
퀸(Queen)은 고통(dukkha)의 사회정치적 영역에 초점을 둔 참여불교는 ”새수레“(Navayana) 혹은 네 번째 수레로 간주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참여불교”라고 불리워지게 된 신조와 수행의 일반적 양태는 선례없는 것으로 전통의 역사에서는 새 장과 동일함을 나는 주장한다. 윤리적 수행의 양식으로서, 참여불교는 불교인의 해방에 대한 새로운 파라다임으로 보여질 수 있다. 전통용어를 빌린다면, 불교인들은 이를 “새수레”-혹은 인도의 시민운동가인 암베카(A.T.Ambedkar)가 1956년 불교에로의 개종전날에 칭한 새수레(Navayana)-다시말하자면 다르마의 진화에 있어서 네 번째 수레(fourth yana)라 부를 수 있다. Ibid., 1-2.
새로운 파라다임으로서 참여불교의 위치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 퀸은 불교윤리의 4 양식을 소개한다. 그들은 “훈련, 덕목, 애타성 그리고 참여”이다. 퀸에 따르면 “훈련(discipline)”이란 윤리는 재가신도를 위한 오계(pancha shila)와 수도자를 위한 계율(vinaya)에서 보여진다. 재가신도들이 지키는 5계는 1) 산 것을 죽이지 말 것 2)주지 않은 것을 취하지 말 것 3) 감각적 쾌락으로 타락하지 말 것 4) 함부로 틀린 입을 놀리지 말 것 5) 마음을 흐리게 하는 술을 마지지 말 것등이며 승려의 계율로서는 약 250가지가 있다.
훈련이란 윤리의 초점은 타자에게 해를 주거나 악을 행하는 것을 피하는 것이다. 덕(virtue)의 윤리는 4무량심(brahma viharas)과 6 바라밀(paramita)이다. 4무량심(無量心)은 애어(metta bhavana, loving-kindness), 자비(karuna, compassion), 기쁨(mudita, joy) 그리고 부동심(upekkha, equanimity)이다. 6바라밀은 보시(dana, generosity), 지계(sila, morality), 인욕(kshanti, patience), 정진(virya, vigour), 선정(dhyana, contemplation) 그리고 지혜(prajna, wisdom)이다.
이 수행은 마음을 청정케하고 재생을 피하기 위해 공덕을 쌓은 것이다. 심지어 타자에 대한 봉사도 자기-수양의 우선적 관심을 향한 수단이 된다. 그러나, 애타심이란 윤리, 즉, 타자에 대한 봉사는 대승불교에 있어서 6바라밀이라는 보살수행의 완성으로 간주된다. 이 수행에 있어서, 타자에 대한 봉사는 “불성의 현현 바로 그 자체”가 된다. Queen, Engaged Buddhism in the West, 15.
지혜(prajna)는 불가분리하게 자비(karuna)속에 내재되어 있다. 그러나, 이 애타성이 주로 구조적이고 제도적 업보(karma)를 보지 않고 개인적 선의나 관대성에 국한된다면, 타자를 구원하고자 하는 목표는 불철저하다. 그러나 이러한 불교의 도덕인 처음 세 양식[훈련, 덕 그리고 애타심]들은 개인적인 수행의 관점에 있기 때문에 오늘날 만연한 정치적 독재, 경제적 불의, 그리고 환경파괴등과 같은 구조적인 업보(karma)에 대응하는 데는 불충분하다. 그러므로 현대불교는 수행의 새로운 덕목으로서 “참여(engagement)"를 강조한다. Ibid.
“참여”의 방식으로서의 수행은 “탐욕, 증오 그리고 어리석음의 집단적이고 제도화된 표현”을 인식한다. 참여수행자들은 제도적이고 조직적인 업보(karma)를 인간고통의 원인으로 보고 제도화된 폭력과 불의에 의한 고통을 제거하기 위한 전략으로서 새로운 사회제도와 관계(즉 집단적이면서 공동적인 참여 수행)을 추구한다(예, 틱낫한, 술락시바락사, 조안나 메이시). 참여의 수행은 전통적인 훈련, 덕 그리고 애타성이란 세 수행과는 다르다. 예를 들면, 참여수행에 있어서 고통의 범위는 개인적이고 심리적인 고통의 영역뿐만 아니라 제도와 사회적 조직의 영역을 포함한다. 깨달음의 깊이는 단순한 좌선을 넘어 자비심있는 행위속에서 드러난다.
현대불교의 새 모습인 참여불교는 그 중심에 두 가지 요소를 지닌다: 하나는 “봉사에 기초한 수행(service-based practice)"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의 세속적 삶속에서 ”깨어있는 수련(mindfulness-based practice)"이다. Ibid., 8.
봉사에 기초한 수행은 직접적으로 수도원아닌 세상의 사회 정치 경제 그리고 환경의 문제에 적용된다. 그것은 “고통, 억압 그리고 폭력의 구조적이고 사회적인 형상”에 관여한다. Ibid., 80.
깨어있는 수련이란 일상의 모든 면에 있어서 각성을 말한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적인 삶 전반-집, 관계, 일터, 우연한 만남, 시장 그리고 거리등에서-에서 정확함, 주의집중, 상냥함, 사랑, 자발성, 그리고 온전성(sanity)등과 같은 “지상적인 깨달음(mundane awakening; laukodaya)"를 촉진한다. 케네스 크래프트(Kenneth Kraft)는 수련의 “장(field)”과 수련의 “양식(modes)”의 입장에서 참여불교의 10가지 요소를 말한다. 그에 따르면 참여불교에 있어서 수련의 장들은 “일상적 삶에 있어서 깨달음을 양성하기,” “가족을 포함하기,” “타자와 일하기,” “정치에 참여하기,” 그리고 “지구를 돌보기,”등이다. 수행의 양식이란 “세상에로의 진입,” “자비심있는 행위의 확대,” “새 영역의 탐구,” “활동가운데 마음편하기,” 그리고 “십방에로 기쁨 전파하기”등을 말한다. The Wheel of Engaged Buddhism: A New Map of the Path (New York: Weatherhill, 1999).
참여불교운동은 1989년 술락 시바락사(태국), 테루오 마루야마(일본)을 중심으로 한 전 세계 11개국 36명의 불교도들이 모여 참여불교국제네스워크(the International Network for Engaged Buddhism; INEB)를 창립하여 지구적 문제에 대처하고 있다. 이 운동은 주로 불교의 사회참여, 타종교와의 상호이해와 협력, 진보적인 사회단체와의 정보교류, INEB관심분야에 대한 훈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동안의 활동은 주로 종교간의 대화, 세계화에 대한 대안교육, 환경, 여성, 비폭력, 인권, 사회활동가들을 위한 교육, 영성에 근거한 사회문제 해결, 청소년교육프로그램등을 하였고 올해(2003. 7. 20-25)에는 한국에서 INEB 국제대회를 치루면서 “불교의 사회참여” 및 “갈등과 위기의 시대, 평화와 화해의 길”이란 기조연설과 공개심포지엄, 그리고 여성, 환경, 빈곤퇴치, 평화, 인권, 청소년, 공동행동등의 주제별 모임을 갖게 되었다. 이는 진흙속에서 연꽃으로 화하는 실천적 불교인으로서 시대적 사명에 부응하는 불교의 사회적 실천의 경험을 서로 나누고 성찰하여 모두가 화합하고 번영하는 지구공동체로서의 불국정토(佛國淨土)의 미래세계를 모색하고 있다.
제 3장 해방적 실천의 연대로서 종교간 대화
우리의 삶이 서로 관련되어 있다는 새로운 실재에 대한 감각과 지구화되어가는 분쟁과 생태적 파괴에 대한 현실의 인식은 이제 지적이고 양심적인 종교인들로 하여금 수행의 과제가 지구를 문제시 하는 수행(practice-as-if-the-Earth-matters)을 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비젼은 종교적 훈련에 있어서 긴급하고, 혁명적이며, 근본적인 변혁을 요구하고 있다. 왜냐하면 인류는 이제 다음과 같은 전례 없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1) 한 곳에서 일어나는 자신의 행위의 결과가 다른 지역에서 타인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2) 생태적 파괴의 전 지구적인 규모와 정도가 가속화되고 있다; (3) 인류역사 최초로 인류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직면하고 있다; (4) 병든 지구를 치유하는 데 있어서 모든 인류의 노력과 지혜가 요구 된다; (5) 고통당하는 세상에 대한 조처가 긴급히 일어나야 한다(왜냐하면 지구를 살리는 기회는 오직 다음 몇 세대에게만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와같은 전례없는 상황에 살고있는 우리의 삶의 위치를 고려하여, 종교인들은 하늘의 문제-누구의 신이 참 신인가, 타종교에는 구원이 있는가에 논쟁하거나, 서로의 교의나 수행에 대한 방어와 체계화가 아닌 지구의 문제에 서로간 대화를 통해 상호변혁하고 더 충만한 인간성(full humanity)을 발견하고, 공통의 문제에 상호협력하는 파트너쉽을 요구하고 있다. 대화는 종교적 타자를 진리의 인식과 자유체험이라는 수행에 있어서 인식론적 주체로 설정한다. 이는 타자를 통해 나를 “비판적”으로 보게 되고, 종교적 타자에게 배타적이고 자신의 종교를 절대화 및 규범화하는 종교적 근본상징들을 재 검토해야 한다. 왜냐하면 근본 은유/상징의 변화없이는 실재를 다르게 볼 수 없고, 다르게 우리는 행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권력과 지배 그리고 구조적 폭력과 관련된 종교의 이념적 기능에 대한 의심의 해석학(hermeneutic of suspicion)을 통해 진리가 드러나야 한다는 점에서 “비판적”이어야 한다. 폭력은 주로 전통적으로는 신체적 폭력(예,전쟁, 살인, 강간등 직접적인 폭력유형)과 구조적 폭력(사회구조에 의해 발생하는 빈곤, 차별등의 간접적인 폭력)의 차원에서 이해되어 왔지만, 이제는 문화적 폭력(종교, 이데올로기, 언어, 예술등을 통해 신체적 구조적 폭력을 정당화시키는 사고나 윤리 및 관습체계)이 더욱 근본적인 요소가 되고 있다. 종교는 이러한 문화적 폭력의 수단으로 쉽게 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적 검토가 요구된다.
또한, 우리의 종교적 수행은 사회의 억압과 지배의 현상유지 상태를 도전하는 개입, 전복 그리고 변혁의 정치적 의제(a political agenda for social transformation)를 가져야 한다. 우리의 상호의존과 상호연관의 상황속에서, 어떤 종교적 수행도 단순히 인격적이고 개인적일 수만은 없다. 오히려 그 수행은 개입, 저항 그리고 변혁의 공동체로부터 힘을 내는 공동적이고 집단적인 수행(communal and collective practice)이 되어야 한다. 정치적 행위의 장소로서 이러한 변혁의 공동체는 지역적이고 지구적인 그물망조직/연대를 통해 발전되어야 한다. 전통적으로 신앙인에게 타자를 사랑한다함은 자선이나 선의의 차원에 머물렀다. 그러나 가난의 원인은 종속받는 자들의 무능력때문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지배 계층에게 혜택을 주고 나머지 모든 이들을 희생하는 부정의와 불평등의 제도적 관행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단순한 자선이나 선의는 완고한 제도와 사회체제를 변화시킬 수 없다. 제3세계에서 약자들의 의존성과 억압은 신식민주의, 신자유주의, 인종주의 그리고 지구화된 자본주의라는 제도체제로 인해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억압받는 자들의 해방은 반실재(anti-reality)에 대한 제도적 분석과 공동의 노력없이는 진실로 효과있게 성취될 수 없다
대화는 단순히 서로 발설을 통해 상호이해를 증진하는 데 멈추지 않는다. 대화는 좀더 큰 진리에로의 영적순례의 가능성 그리고 세상의 고난받는 이들을 위한 종교인들 간의 연대라는 실천(praxis)에 관여한다. 존 힉(John Hick)은 신앙의 우주속에서 “코페르니쿠스 혁명” John Hick, God Has Many Names (London: Macmillan, 1980), 52f.
을 그리고 레오날드 스위들러(Leonard Swidler)는 “독백의 시대로부터 대화의 시대로” Leonard Swidler,et.al., Death Or Dialogue? From the Age of Monologue to the Age of Dialogue (London: SCM Press; Philadelphia: Trinity Press International, 1990), vii-viii.
건너감에 대해 강조한다. 그들의 신학적 작업의 핵심은 바로 우리는 자기중심성과 우월성의 사고체계로부터 벗어나서 신뢰와 사랑을 통한 타자와의 대화에로 가야한다는 것이다. 다원주의적이고 상관관계적이며 대화적 위치의 다른 신학자들을 더 열거하자면 존캅, 폴 니터, 레이몬 파니카 그리고 스텐리 사마르타등이다.
이들 기독교다원주의자들의 태도는 두가지 면에서 커다란 공헌을 한다. 첫째는 신앙의 우주내에서 우리의 참된 정체성을 이해하는 것이다. 기독교인의 참된 정체성은 과거시간과 공간의 계시 속에 폐쇄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타자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점점 성숙해지는 통합성(ever-growing integration)에 놓여있다. 둘째로, 신앙간의 대화는 (더 큰) 진리를 추구하는 가장 적당한 방식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화는 단순히 다른 신앙들에 대한 종교적 관용을 보여주는 방식이 아니라 진리와 평화를 추구하는 적극적인 방식인 것이다.
기독교 다원주의자들의 구원론적 관심은 1993년 시카코에서 열린 세계종교회의에서 제기된 “지구윤리”(global ethic)에서 증험되듯이, 지역적 수준을 넘어 전 지구적인 영역에로 확산되고 있다. Hans Kueng, ed., Yes to a Global Ethic: Voices from Religion and Politics (New York: Continuum, 1996); Leonard Swidler, ed., For All Life: Toward a Universal Declaration of a Global Ethic-An Interreligious Dialogue (Ashland, Oregon: White Cloud Press, 1999).
지구적 책임에 기초한 지구윤리에로의 이러한 방향정위는, 큉의 용어로 보자면, “세계윤리없이는 생존하지 못한다. 종교간의 평화없이 세계평화없다. 종교간의 대화없이 종교간의 평화없다” Hans Kueng, Global Responsibility: In Search of a New World Ethic (New York: Cross Road, 1991), xv.
는 각성으로부터 온다. 핵위협과 생태파괴의 전례없는 상황을 맞이하여 많은 종교적 사상가들은 전지구적 동의를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지구윤리는 세계의 종교인들이 그들이 이미 그들 자신의 종교적 전통속에서 긍정하는 최소한의 윤리적 지침으로서 동의한 것이다. 지구윤리를 제창함을 통하여 종교간의 대화론자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실천들을 정치와 경제라는 세상적인 영역속으로 불러들이고, 지역적인 데서 지구적인 영역에로 자신들의 종교적 실천의 초점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사회에 있어 종교간의 대화는 1965년 10월 18일 “한국제종교의 공동과제”라는 주제로 6대 종단 지도자모임이 용당산 호텔에서 처음으로 열리면서 시작되었다. 그 흐름은 주로 타신앙의 이해, 존재론적, 영성적 대화, 그리고 경전과 가르침의 상호이해에 있었고, 주로 극히 소수의 종교적 지도자 및 신학자의 점유물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90년대 들어오면서 일상생활 속에서 타종교인들과의 모임이 새만금 문제 등을 포함한 환경 분야와 남북간 화해의 문제를 가지고 미약하게나마 형성되기 시작하였고, 새천년에 들어와서 911테러사건과 여중생사망사건등으로 반전평화에 대한 종교인들 간의 각성과 연합모임이 점증하고 있다. 국내의 종교간의 대화모임은 최근에 와서는 지역적 그리고 지구적인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각 종교의 진리주장에 대한 설득력이 현대인들에게 약한 것은 동시대인의 경험에 부합되는 지적인 정확성의 부족때문이 아니라, 희생자들이 지배집단의 억압으로부터 스스로의 존엄성과 자유를 위해 싸우는 데 힘을 북돋아 주는 연대가 부족(즉, 지배계층과 종교적 엘리트들간의 공모) 때문이다. 신에 대해 의미있게 말하기 위한 공간은 해방과 구속을 위한 인류의 노력이 있는 장소에서이다. 우리 시대에 있어서 신에 대한 진정한 신앙은 해방의 실천과 곤핍자와의 연대가 있는 상황에서 가능하다. 신은 인류의 해방, 전체성 그리고 온전함을 향한 노력의 바로 그 중심에서 자신을 계시한다는 믿음이 해방을 향한 대화와 연대를 추구하는 신앙인들을 결속시키고 있다.
결 론
지금까지의 역사적 교훈은 소수의 금권, 관료, 기술에 의한 힘의 지배는 불평등과 타락으로 이어져왔음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빈곤과 불평등은 싸움, 적대감, 불안정을 만들어 내고 결국은 종교가 지배이데올로기의 수단이 되어 수많은 분쟁과 긴장을 일으켜내는 데 주요한 요소로 활용되어 왔다. 자기 종교적 신념에 대한 배타적이고 절대적인 태도는 타자, 차이, 다름에 대한 불관용과 더불어 이들 타자들에 대한 억압을 정당화하는 이념적 기능을 해 왔다. 그러나 대안세계화운동에서 보듯이 차별받는 주변부의 사회적 약자들은 “희망이 두려움을 이긴다”는 공통된 믿음을 통해 저항과 연대의 공동체 건설에 대한 전 지구적 열의를 품고 있다. 이는 종교간의 대화에 있어서 그 방향과 과제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곧, 절대적 배타주의를 넘어서서 다원주의를 포용하는 교차문화담론(cross-cultural discourse), 다중담론(multi-discourse)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폭력과 죽임의 문화에 대항하는 실천적 생명담론과 평화를 위한 대안담론이 해방적 신앙수련의 중심에 위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집단적, 신체적/구조적, 지역적/전지구적이라는 양쪽의 관점에서 폭력의 문화는 희생자만이 아니라 결국은 억압자 자신도 비인간화한다. 이는 다른 사람을 억압하는 사람은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눔과 돌봄은 새로운 세기의 가치의 핵심이며 함께 살고, 함께 존재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인식의 공유는 종교간의 대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 되고 있다. 평화, 발전, 민주주의는 자유공간의 확보로 이루어진다고 할 때, 에고의 집착과 탐욕에 대항하는 각 종교의 선과 평화에 대한 가르침과 수행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시민사회단체들의 “연대와 대안의 세계화”를 위한 노력은 주로 경제 및 정치의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폭력과 불평등은 인간의 마음에서 출발함”을 인식하는 유네스코 헌장의 진술에서 보듯이 인간의 마음의 영역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전 지구적인 요구(“지구윤리”)가 남겨져 있다. 종교인들은 보다 근본적인 정신적이고 영적인 영역에서 인간의 사고, 의식, 가치 그리고 태도가 철저히 변화되는 데 더 충만한 인간성을 향한 상호변혁의 증진(mutual transformation toward a greater humanity) 그리고 상호존중과 돌봄의 공동체(a greater community of mutual 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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