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기름유출 100일째를 맞으며 :: 2008/03/14 19:39

 

                         서해 기름유출 100일째를 맞으며...


       
                                             박성용 비폭력평화물결 대표


서해 유조선사고 직후 한 환경단체가 찍은 검은 기름의 움직이지 못하는 철새모습과 검은 흐름의 바다 사진은 그 이후의 국민에게 줄 충격의 여파를 예고하고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는 유례없는 백만 명이 넘는 각 계층의 자원자들이 겨울의 추위와 싸우며 온 몸에 검은 기름을 바르며 일일이 손으로 기름을 닦아 냈다. 이는 IMF충격에 많은 국민들이 행한 금모으기 이후 보는 대규모 자원활동 현상이다. 그리고 정부는 이 자랑스러운(?) 자원봉사기록을 다른 나라에 알리기 위해 백서를 준비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그렇게 해서 아픔과 절망은 이제 서서히 잊혀져 가고 있다.


건설, 조선, 석유화학 및 유류업계를 담은 한국의 개발성장의 꿈을 가시화한 거대 상징인 예인선과 유조선간의 어이없는 충돌은 천문학적인 경제비용과 태안반도의 현지민의 생업에 대한 타격 그리고 일반대중들에게 심리적인 충격과 고통을 몰고 왔다. 개발문명의 이기에 의한 환경사고처리가 바로 사람들의 원시적이고 안전한 수작업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아이러니하다. 개발성공신화의 무대위에서 남은 쓰레기는 연기당사자가 아니라 무대뒤에 보이지 않는 더 많은 사람들의 몫이 되었다. 그렇게 가해자인 주인공은 별문제 없고 오히려 죄 없는 무명의 다수는 심각한 고통을 받고 잊혀 가고 있다. 더욱이 이러한 생태대학살의 결과는 대번에 그리고 최소 10년이 넘게 지속되겠지만 별다른 주목 없이 잊혀갈 것이다.


그러나 남은 질문은 비용문제와 책임의 소재가 아니다. 오히려 쉽사리 일상으로 돌아가는 도덕적, 윤리적 민감성의 부재이다. 기억은 사라지지만 시스템은 여전히 남아있다. 교훈으로부터 배움이 없기에 미래의 또 다른 사고와 비극들을 예측하게 한다. 환경재앙으로 인한 무죄한 빈곤층의 대량생산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해양생물들의 죽음의 침묵은 끝까지 무시할 성질일까. 이번 사고에 대해 인터넷 댓글들의 많은 부분은 새, 갯벌생물들의 죽음에 대한 어린 청소년들의 충격과 아픔들에 대한 글이었다. 혹시 우리는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의 모습을 더욱 닮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의 건강은 몸의 어느 한 약한 부분의 아픔으로 문제가 되듯이, 사회적 건강도 이제 약한 부분에 의존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할 때가 되었다. 환경파괴는 신체적 폭력이나 전쟁과 달리 그 원인과 과정이 보이지 않게 서서히 지속적으로 나중에 드러나며 일단 증상을 인식할 때는 이미 손을 쓸 기회를 놓친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배움과 영적수련이 세상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에 대해 성찰과 분별함을 키우는 데 도움 되지 않는다면 사고는 예정되어 있다.


환경사고들로 인한 위기에 대한 두려움이 이젠 실지 피부에 닿으면서 많은 서민들의 가슴에 감정적인 불안과 위기의식이 커지고 있다. 보이는 화려한 규모와 성장뒤에 취약한 안전 시스템이 그리고 그 뒤를 감당하고 있는 사회·생태적인 ‘바닥의 약자들’의 고통은 나의 문제이다. 왜냐하면 이제는 나의 안전이 나만의 노력만이 아니라 전적으로 남의 성실성에 크게 의존하고 있고 약한 곳에서 문제가 먼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보이는 희생자의 뒤에 작동하는 검은 흐름의 시스템을 닦아내는 데로도 눈이 떠져야 할 때이다.

2008.3.18. 국민일보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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