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폭력 대화의 영적 기초와 목회적 응용 :: 2009/06/18 15:59
비폭력 대화의 영적 기초와 목회적 응용
박성용 NVC-er/AVP-er
갈등은 문제(a problem)이 아니라 ‘밭에 뭍힌 보화’요 영적인 것이다. 비폭력 대화는 하나의 의사소통이상이고 그것이 진실로 우리의 영성을 드러내는 시도인 것이다. 신의 실재를 지성화, 추상적인 개념화에 익숙한 기독교인들에게는 거룩의 경험을 옯고 그름의 패러다임속에 머물러 있음으로 갈등, 에너지의 소진을 경험한다. “너희는 남에게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마 7:12)는 추상화, 개념화에서 신의 자비의 실재의 역동성을 일상에서 체험하는 방식을 제안한다. 그것은 마태복음 5장의 일상에서 비폭력 수행- “마음의 가난, 슬퍼함, 온유함, 옳은 일에 굶주림, 자비를 베품, 마음이 깨끗함, 평화를 위해 일함, 옳은일로 박해를 당함-이 신의 자비를 실재와 현실로 경험하는 자에게서 나타나는 능력의 체험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비폭력 대화는 두 확신에 기초한다.
- 나와 타인의 복지에 공헌함으로서 삶에 연결하는 것으로 가장 커다란 기쁨이 솟는다.
- 영성과 사랑은 우리가 내면으로 느끼는 것보다 우리가 실제로 행하는 것에 대한 것이다.
비폭력 대화는 일상에서 하나님 통치의 삶에 대해 즉, 하나님 자비에 연결하기에 관심한다. “하나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처럼 “among-ness/between-ness"라는 관계성(연결하기)이 비난, 위협이라는 강한 강요/요구의 방식이나 조언, 충고, 가르치기 등의 부드러운 강요/요구의 방식이 아니라 단지 연결하기를 통해 변화가 일어난다는 놀라운 확신에 기초한다. 하나님 나라는 성서학자가 주장하든 개념상의 공간이 아니라 역동성/ 활동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비폭력 대화는 연결하기를 통해 욕구(needs)속에 스며지고 느껴지는 신성함의 실재 곧 ”Isness, Being fully present"한 거룩한 분의 경험으로 진리와 은총으로 충만하게 된다. 여기서 잃은 자/약한 자가 생명을 얻고 더욱 풍성해지는 길이 열린다.
신의 자비는 우리 실존의 터전이고 근본 토대이고 이것에 대한 감각은 내면의 욕구-일치, 평화, 조화, 자유로움, 활력...등을 통해 경험되고 그것을 보는 메신저는 느낌(욕구충족의 느낌 혹은 욕구충족을 하지 못한 느낌)에 의해서이다. 이 느낌과 욕구의 강력한 에너지를 볼 때 그것들의 근거가 되는 신적인 자비를 끌어 올리는 ‘속에서 나오는 샘’에 의한 다함이 없는 풍부함을 경험한다(두레박에 의한 희소성이 아니라). 이 신적인 자비라는 실재는 생명, 삶에의 연결을 보증하고 느낌과 욕구를 통해 현실화(actualization)된다. 어떤 방식으로든 인간과 연결됨에 의해 이 풍성한 신적 에너지를 알아차리게 된다. 난 신적 에너지를 볼 뿐만 아니라 맛보고 느끼며, 인간과 연결되었을 때 사랑받는 신적 에너지와 연결되어 있다. 그러면 신은 내게 매우 살아있다( being fully present). 지금 여기의 현실감각과 신적 자비의 실재의 감각은 동시에 노출된다.
과거의 영성이 내면적 영성 (the spirituality-within-selfness) 곧, 자아내면으로부터 나오는 에너지가 사회변화를 창조할 것이라고 “앉아 있는 영성”을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사시키는 영성(radiating spirituality)은 지금까지 역사에서 소수의 성취자를 제외하고는 일반 대중은 실패한 엘리트 영성이다. “among-ness/between-ness"에서, 앉아서가 아니라 움직이며 연결하기를 통해 오는 ‘역동적 영성(dynamic spirituality)'는 사람들을 앞으로 가게 해서 자신의 성장과 세상의 변화를 가져오게 한다. 그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 자신을 주는 것을 통해 감동(초월)이 일어나게 하고 삶의 풍성함을 경험하게 한다.
비폭력 대화는 신의 자비에 기초하기에 처벌, 보상, 수치, 죄책, 의무, 복종으로부터 나오는 어떤 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단지 연결하기를 통해 변화가 일어나고 풍성함을 경험하며 선물로 생을 만끽한다. ‘보기에 좋았다’는 삶의 실재의 경험속에서 자신과 타자를 선물로 경험한다. 어느 주어진 순간에 당신 안에 살아있는 것-욕구-을 노출하는 것과 다른 목적이 없이 단지 벌거벗어 정직하게 자기 자신을 노출할 때 그건 선물이 된다. 비난하지도, 비판하지도 벌하지도 않고 단지 “여기 내가 있다. 여기에 내가 좋아는 것이 있다.” 이것이 이 순간에 나의 상처받을 수 있음이다. 나에게 그것은 신적 사랑을 드러내는 길이 된다.
그리고 비폭력 대화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주는 다른 방식은 어떻게 다른 사람의 메시지를 받는가를 통해서이다. 공감적으로 받는 것, 그 안에 살아있는 것과 연결됨, 판단하지 않음. 상대에게 살아있는 것 그리고 그가 좋아하는 것을 단지 듣기가 그것이다. 그러므로 비폭력 대화는 기독교가 사랑이 무엇이라고 이해하는 것을 단지 드러낸 것이다. “너의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판단받지 않도록 판단하지 말라.”
비폭력 대화의 중심 목적은 자비로운 줌이 발생되도록 하는 방식으로 타인과의 연결-그리고 신적 에너지와 연결-인 것이다. 바로 이 줌이 의지적으로 가슴으로부터 나온다, 그 가슴으로부터 우리는 자신과 타인에게 봉사를 제공한다. 이는 의무, 복종, 체벌의 두려움, 상에 대한 희망, 죄책감이나 수치심에서가 아니라 우리의 자연스러운 본성, 본래 그러한 바의 본성, 서로 주는 것을 즐기는 본성인 것이다. 그리고 폭력은 우리가 어떻게 교육받았는가 때문에 오는 것이지 우리의 본성때문이 아니라고 비폭력 대화자는 믿는다. 우리는 신학자 월터 윙크에 따르면 약 8천년간을 우리의 자비로운 본성으로부터 우리를 분리시킨 폭력을 즐길 수 있게 하는 방식으로 교육받아왔다. 그 뽀빠이와 부르토의 ‘결투신화’신화처럼 오래전에 인간본성에 대해 발전시켜온 신화에 의해 우린 교육(사회화, 프로그램화)받아왔다. 그 신화는 기본적으로 인간은 악하고, 자기중심적이라는 신화, 선한 삶은 악한 힘을 부셔버리는 영웅적 힘에 대한 것이라는 신화, 생은 희소성(scarcity)에 근거한다는 신화이다. 윙크는 어떻게 지배 문화가 억압을 유지하기 위해 신에 대한 어떠한 가르침들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해 썼다. 그것이 왕과 사제들이 종종 가깝게 연결된 이유이다. 왕은 억압을 정당하기 위해, 처벌, 지배 등등을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거룩한 책을 해석할 사제가 필요하다.
그래서 우린 오랫동안 파괴적인 신화론의 지배하에 살아왔고 그 파괴적인 신화는 어떤 언어를 요구한다. 그 신화는 인간을 비인간화하고 그들을 대상으로 만드는 언어를 요구한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간에 도덕적 판단의 입장에서 사고하기를 배워왔다. 우리는 우리 의식속에 옳은, 그른, 선한, 나쁜, 이기적인, 비이기적인, 테러리스트, 자유 투사와 같은 말들을 갖고 있다. 그리고 만일 당신이 이들 나쁜 것들 하나를 하면 마땅히 처벌을 받는 ‘마땅한 자격 deserve'에 기초한 정의 개념이 이것들과 연결되어있다. 만일 좋은 일을 하면 그땐 마땅히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 불행히도 약 8천 년간 우리는 그런 의식에 종속되어왔다. 이것이 우리의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폭력의 핵심의 핵심이다. 비폭력 대화는 신의 자비가 실재라는 확신, 곧 신에 대한 온전한 사랑과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예수의 계명을 실제로 사는 방식이기만 할 뿐만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폭력적인, 지배적인, 강제하는 방식보다. 비폭력 대화는 우리를 우리 자연스런 본성에 보다 가깝게 하는 사고, 언어, 의사소통의 통합이다. 연결함으로서 우린 우리안에 진실로 살아 있는 것 (What is up/alive)에 연결되어 서로의 참살이(well-being)에 기여하는 즐거움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참고: 비폭력 대화(공감적 대화) 워크숍 안내
일반적으로 비폭력 평화물결에서 하는 비폭력 대화 워크숍은 6주~8주 과정으로 입문과정 일반, 가정에서의 자녀와의 비폭력 대화, 교사들을 위한 비폭력 대화 워크숍이 있다. 기독교인/목회자를 위한 비폭력대화 워크숍의 내용은 대게 다음과 같다.
제 1단계: 입문과정
1주: 공감적 대화의 영적인 토대와 가치
2주: 공감의 효과와 비폭력 의사소통의 틀과 내용
*3주: 화살의 독을 빼내기-자기 공감하기
4주: 자기 공감 실습과 심화
5주: 내면 돌보기와 거부듣기/거부하기
6주: 불길의 통로내기-화내기
*7주: 비폭력 대화로 분노하기/ 분노받기의 실습과 심화
8주: 감사하기와 힘을 부여하기
(*표는 6주일 경우 생략된다)
제 2단계: 심화과정 (5회~8회)
그리고 심화단계로는 비폭력 대화로 하는 갈등 중재와 조정, 성장그룹(공동체)에 소통의 에너지 불어넣기(empowerment), 권위자와의 비폭력 대화, 비폭력 대화를 위한 묵상수련법, 그리고 그룹으로 하는 비폭력 대화를 통한 진리공동체 만들기 등을 포함한다. 여기서 기간은 참여자의 선택에 근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