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동적 비폭력 (정의, 7가지 출발점, 비폭력 영성 10계명) :: 2007/05/03 00:22

능동적 비폭력 Active Nonviolence에 대한 정의

* 능동적 비폭력은 갈등의 문제를 언급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창조적이고,
  강력하며 효과적인 과정이다.

* 능동적 비폭력은 폭력의 악순환을 끊고
  좀더 인간적인 대안을 위한 선택을 창조하려고 시도한다.

* 능동적 비폭력은 비폭력적인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행위이다.
  그것은 이런 하나님을 경험하는 강력한 수단이다.

* 능동적 비폭력은 인간이 사랑하고 사랑받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 능동적 비폭력에 있어서 실재는 하나이다.
  비폭력 실천가는 그러므로 인간을 자기 자신으로부터, 서로로부터
  그리고 지구로부터 분리하는 모든 것을 변화시키려는 열망을 지닌다.

* 능동적 비폭력은 진리를 추구한다: 자기 자신의 진리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진리도.

* 능동적 비폭력은 우리 자신들과 타인들의 상처받음, 폭력
   그리고 신성함을 인정한다.

* 능동적 비폭력은 참회와 변혁의 과정이다.

* 능동적 비폭력은 두려움, 절망 그리고 탐욕으로부터
  자비, 조화 그리고 온전함으로의 영적 여행이다.


비폭력에 대한 7가지 출발점

1. 우리가 (행동을 취하기 앞서) 완전하게 비폭력적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비폭력은 우리가 점차 그런 방향으로 자라는 것이다.

비폭력 활동가이자 프란치스칸 신부인 알라인 리차드는 말한다,
"내가 비폭력에 대해 말한다는 것 때문에 내가 비폭력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나는 아마도 내가 죽은 15분까지도 실제로는 비폭력적이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가 지적하는 바는 비폭력은 우리가 건설하고 거기로 성장하는 어떤 것이란 뜻이다.
그것은 이상적인 완전함의 상태가 아니다. 간디가 강조했듯이, 비폭력은 “진리로 실험”하는 일련의 지속적인 과정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점차로 어떻게 더 인간이 될 수 있는지를 배운다.

2. 비폭력은 세상이 비폭력적이라고 가정하지 않는다.

때때로 우리는 비폭력이 효과적이기 위해서 전 세상이 다소 비폭력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능동적 비폭력은 이런 환상을 주장하지 않는다. 사실상, 능동적 비폭력은 세상이 종종 폭력적이고 불의하다고 가정한다. 진정한 비폭력은 갈등이 없는 세상을 창조하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 삶 전체를 통해 갈등을 직면하는 것을 인정한다.


3. 능동적 비폭력은 매우 진지하게 악의 실재를 다룬다. 그러나 그것은 더욱 더 진지하게 선의 실재를 다룬다.

비폭력은 악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거짓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악이 바닥선(the bottom line)이고 궁극 실재라는 믿음에 종속하지 않는다. 능동적 비폭력은 우리가 매일 미디어로부터 받는 상(the picture)가 전체의 진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능동적 비폭력은 삶에 대한 이러한 불완전하고 거짓된 상에 도전하며 폭력이 일면의 사실이지만 세상은 또한 폭력보다 더 궁극적으로 크고 그것을 변혁할 수 있는 사랑, 용기 그리고 은총으로 둘러싸여 있음을 주장한다.


4. 비폭력은 우리 자신의 마음, 감정 그리고 행동들의 상태에 대해 책임을 지기 시작한다.

대부분의 갈등에서, 우리는 두 개의 다른 반응의 방식을 택한다. 첫 번째는 방어적으로 응답하는 것이다.
종종 우리는 이것을 깊이 각인된 ‘갈등 각본들’로부터 즉각적인 행동에 의해 대응한다.
두 번째 방식은 우리이 진정한 자아가 행동을 취하도록 허락하는 것이다. 이것이 능동적 비폭력의 방식이다.

비폭력은 우선적으로 타인들에 대항하기 위해 우리 자신을 무장하는 방식이 아니다.
이것은 희생자를 만드는 감정을 생산할 수 있고 거꾸로 이것은 우리가 폭력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정당화할 수 있다. 그 대신에, 비폭력은 직접적인 폭력을 중단하고, 진정한 문제들을 명료화하며, 해결을 모색하는 상황을 창조하는 수단이다. 궁극적으로 이것은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행했던지 간에 우리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을 뜻한다.  


5. 능동적 비폭력은 모든 단계의 폭력에 응답하는 데 사용되어질 수 있다.

우리는 수많은 폭력의 현현들(manifestations) 앞에서 능동적 비폭력을 실험하도록 도전받는다.
이들 폭력의 모습들은 사람들간의 폭력, 일터에서의 폭력, 다른 공동체들간의 폭력, 지구에 대한 폭력을 포함한다. 이들 또한 경제적 폭력, 인종차별주의 그리고 성차별주의를 포함하여 심각하게 저해하는 방식으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우리의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삶을 형성하고 가르치는 폭력의 지배적인 구조(overarching structure)를 포함한다.
비폭력 실천가는 이들 조건, 그 조건아래에 깔려있는 가정들과 태도들을 변혁시키기 위해 비폭력적인 방법들을 사용하는 창조적이고 강력하게 지속적인 방식을 추구한다.


6. 우리는 능동적 비폭력을 실천하기 위한 지원을 필요로 한다.


비폭력은 폭력과 불의의 패턴을 인지하고 도전하는 과정이다. 이것을 잘 하기 위해서, 우리는 각자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그들 자신의 폭력과 그들 주변의 폭력을 변혁하기를 시도하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필요하다. 우리는 타인들과 이 과정에 대해 성찰하는 안전한 공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들 방법을 실습하는 협력자와, 우리가 보고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우리는 비폭력 행동을 취할 때 동료가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비폭력은 고독한 행동이 아니다.
 

7. 능동적 비폭력은 영적 여행이다.

우리의 삶과 세상의 삶속에 있는 폭력에 대해 언급한다는 것은 모든 상처를 변혁시키고 치유하는 사랑과 자비의 자원만큼이나 또한 우리의 환상과 얼굴과 얼굴을 맞대는 여행을 시작하게 한다. 그것은 절망에서 희망으로, 두려움에서 은총으로, 파편화로부터 우리의 가장 진실한 자아로의 여정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누군가 단순히 특정한 기술을 적용하는 순수히 기계적인 것이 아니다. 도구들은 유용하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들을 이 프로그램에서 탐구할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것들은 존재의 근거에, 개인이자 공동체로서 우리의 온전함을 기대하시는 비폭력적인 하나님의 자비롭고 충만케 하시는 사랑에 뿌리박아야 한다.


비폭력 영성의 10계명
                             

능동적 비폭력은 다음을 위해서 우리를 부른다:


1. 모든 사람에게 있는, 우리 자신에서와 창조의 모든 부분에 있는, “신성함”(퀘이커의 말로하자면 “하나님의 그것”)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을 배우기. 비폭력 인간의 행동은 상대방/적대자 안에 있는 이러한 신성을 어둠과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도록 돕는다.


2. 자기 자신을 깊이, 모든 나의 선물과 풍부함, 모든 나의 제약, 실수, 실패와 약한 그대로의 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내가 하나님에 의해 받아들여졌음을 깨닫기. 초과적인 교만 없이, 미몽과 거짓된 기대감을 적게 하고 자기 자신의 진리에서 살기.


3. 내가 다른 이에게 분노하고 아마도 심지어 혐오하는 것이 이와 똑같은 실재가 내안에도 살아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 내가 어려워함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승인하기. 내가 자신의 말, 몸짓, 반응을 검토하기 시작할 때, 명백한 증거가 되는 나 자신의 폭력을 인정하고 끊어버리기.


4. “우리-그들” 정신태도(마니키니즘)라는 이분법을 포기하기. 이것은 우리를 “선한 사람/악한 사람”으로 가르고 적대자를 악마화하도록 허락한다. 그것은 권위주의적이고 배타주의적인 행동의 뿌리이다. 그것은 인종차별주의를 낳고 갈등과 전쟁들을 가능하게 한다.


5. 두려움을 대면하고 그것을 주로 용기로서 아니라 사랑으로 다루기.


6. 새로운 피조물, 사랑의 공동체의 건설은 항상 타인들과 함께 진척되어짐을 이해하고 이를 받아들이기.
그것은 결코 “솔로의 행동”이 아니다. 이것은 인내와 용서하는 능력을 요구한다.


7. 우리는 지배의 관계가 아니라 사랑의 관계를 촉진하는 전 피조물의 한 부분으로 우리 자신을 보기.
우리 지구의 파괴는 심각히 영적인 문제이지 단순히 과학적이거나 기술적인 문제가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이다.


8. 만일 비폭력이 타인 안에 있는 신성(the Divine)을 해방시키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우리가 믿는다면, 심지어 기쁨으로 기꺼이 고통 받기. 이것은 우리의 장소와 시간이 그 상처와 불확실성을 지닌 역사 안에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포함한다.  
 

9. 하나님의 현존이 받아들여 질 때, 그리고 그것이 이러한 사실을 발견하고 인정하는 데 도와줄 수 없을 때, 축하와 기쁨을 가능하게 하기.


10. 사랑과 용서의 씨앗을 우리 가슴과 우리 주변의 이들의 가슴에 심으며, 속도를 낮추고 인내하기.
천천히 우리는 사랑과 자비 그리고 용서하는 능력 속에서 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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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03 00:22 2007/05/03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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