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생명평화-특히 평화운동/평화교육 부문에서- :: 2008/11/08 18:12

 

내가 생각하는 생명평화

- 특히 평화운동/평화교육 부문에서 -


                                                박성용 공동대표/비폭력 평화물결


워크샵 내가 생각하는 생명평화 -통일평화영역 발제문

□ 일시 : 2008년 11/11(화) 오후 3시~9시
□ 장소 : 명동 향린교회 1층 교육실


 

1. 현 시대적 상황과 문제의식


지금의 생명평화운동에 대한 진단을 함에 있어서 먼저 우리는 어떤 시대적 상황에 처해 있는가에 대해 물어볼 필요가 있다. 몇 가지 사회적 상황들을 고려해보면 다음과 같다.


1) 국제적인 문제

- 지구온난화라는 기후변화에 대한 각종 경종의 보고들과 2015년까지의 획기적인 변화의 시급성 

-국제투기자본과 국제금융의 시스템의 붕괴와 신자유주의의 몰락 그리고 미영중심의 일극체제에서 다극체제의 징조들 그리고 풀뿌리 사회 안전망의 해체와 인간안보의 위기

- 북의 불량국가 해제와 오바마 후보와 민주당의 압승에 따른 조미관계의 새로운 관계 형성의 도래


2) 국내적인 문제

- 이명박 정부의 소통능력의 부재와 경직된 관료정치

- 민주화 20년의 기반의 공동화 현상과 대안세력의 허약성

- 평화진영의 선배와 새 세대와의 인식과 가치의 큰 간극과 넘치는 사회이슈들에 의한 평화일꾼들의 지친 상황들

- 평화운동의 외교정치적 분야의 쏠림현상과 생명평화운동의 영성/신념 중심의 정신적 물질주의 (spiritual materialism)의 바람직하지 않은 주도권 현상

   

* 생명평화운동은 시대를 초월한 객관적이고 추상적인 이념적 과제가 아니다. 그것은 시대적 과제가 부여한 문제를 적절히 다루어야 하는 적합성(relevance)과 그 시대의 사회의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그 변화의 결과를 가져와야 하는 타당성(validity)에 대해 고려해야 한다. 이는 활동가들에게 “삶의 자리”에 대한 분별과 변혁이라는 인식(awareness)과 능력(capacity)이 동시에 통전적으로 요구된다는 뜻이다.

     

2. 생명평화의 개념의 의미


- 기독교평화주의의 입장에서는 출애굽사건과 창조론에서 표현된 샬롬의 회복(사회적 우주적 혼돈[Chaos]에서 질서화[cosmos])과 그 실제적 향유를 뜻한다.

- 샬롬(신약에서는 이레이네)은 복지(well-being), 전체성, 손상되지 않음, 안전, 삶의 좋은 상태를 의미한다. 곧 물질적 측면에서는 물질적 번영과 신체적 안녕, 관계적 측면에서는 정의에 의한 긍정적이고 선한 관계의 현존 그리고 도덕적 윤리적 측면에서는 솔직성(거짓과 위선의 제거)을 포함한다.

- 예수의 “잃은 자가 생명을 얻되 더 풍성하게 얻기”(요 10:1)와 그리스도의 역활로서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엡1:22-23)은 생명평화의 궁극 목표를 표현한다.

-바알의 통치에서 “은혜의 통치” 곧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를 자유케 함”으로의 변화를 뜻한다 (눅 4: 18)

-“내가 주는 샬롬은 세상이 주는 샬롬과 다르다”(요14,27)- 이는 로마의 샬롬/지배/위로부터의 강제/칼/권력과 군사/폭력으로부터 비강제의 샬롬/은총/아래/섬김/비폭력·일치의 상태이다.

-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누리는 정의, 평화 기쁨이다.”(롬14,17)  바울의 평화는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것으로 화해의 현실과 실제로 역사하는 현실을 말한다.



3. 단체의 생명평화의 실천 활동과 현황


2001년 9/11 사건은 국제평화운동에 있어서 루비콘 강을 건너는 사건이 되었다. 이 사건의 충격이후 특히 이라크전을 기점으로 국제평화운동은 1999년 헤이그평화회의에서 검토된 그동안의 평화운동을 재검토하고 적극적인 대안을 모색한다. 그 중의 하나가 국제평화여단 등에서 하던 훈련받은 비무장 시민의 분쟁지역에서의 갈등개입과 평화구축이다. 이는 보통 비폭력 직접행동의 모델에 있어서 사회방어, 사회변혁과 더불어 제 3자개입 모델로 알려져 있으며 이를 대규모로 실시하는 것이 바로 본 단체가 소속한 Nonviolent Peaceforce International 이다 (전 세계 55개국 93개 평화단체들이 회원으로 가입)


현재 스리랑카, 필리핀 민다나오, 콜롬비아 등지에서 실시하고 있는 이 제 3자 개입 모델은 현지 활동가들의 활동에 동반해 주기, 시위와 선거에 모니터링 하기, 활동가를 밀착해서 암살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임석(임석, presence), 갈등중재, 소년병의 구출 등의 활동을 통해 현지 평화·인권 활동가의 인프라를 구축하고 그들의 활동을 측면에서 강화 및 지원하는 활동을 한다. 실제로 이 모델은 군인에 의한 평화유지군의 고비용/저효과에 가장 창조적이고 효과적인 대안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이 국제 비폭력평화물결은 사실 간디의 사티아그라하(truth-force; 진리에의 고수) 운동과 상티쉐나 (평화군)의 이념을 현대화한 것으로 그 사상적 맥락은 그대로 간디의 비폭력 사상과 전술을 이어 발전시킨 것이다.

현재 비폭력평화물결(Nonviolent Peaceforce Corea; 앞으로 NPC로 약어함)은 2002년 설립이후 평화의 대중화 그리고 부드러움의 힘에 근거한 비폭력 운동을 전개하여왔다. 그 사례가 7.17한강하구평화의배띄우기와 그에 따른 평화 캠프와 평화 기행, 움직이는 평화학교, 평화너른마당(월요기획토론모임)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공동대표의 체제하에서 지난 2년간은 주로 평화일꾼과 평화사역자들의 훈련과 양성에 대한 집중이 이루어 졌다. 이는 전선운동 못지않게 기지운동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또한 세력화 못지않게 정예화라는 평화운동의 핵심역량강화라는 과제에 대한 비전을 창출하기 위함이었다. 여기에는 그동안 평화활동가연차대회를 꾸준히 준비기획하고 참여하면서 평화활동가의 정체성과 미래의 불확실성, 바람직한 선배모델의 결여, 담론을 넘어서지 못하는 평화기술과 역량의 미비 등에 대한 현장분석에서 나온 것이다.  


NPC는 이를 위해 두 가지의 사업방향을 잡고 기획 프로그램을 전개하였다.


첫째는 아카데미아의 고립된 영역이 아닌 갈등과 분쟁의 구체적 삶의 현장에서 활동가들이 사용하고 있으면서 실제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효과적인 모델들에 대한 소개이다. 한국에서는 최초로 NPC는 “폭력에 대응하는 새로운 평화훈련(Alternatives to Violence Project; AVP) 국제 워크숍, 비폭력 직접행동(Nonviolent Direct Action; NDA) 전문 훈련가 양성 국제 워크숍, 요한 갈퉁의 TRASCEND 모델에 대한 소개를 했고 AVP와 NDA의 경우에는 참여한 활동가들이 계속 후속 모임을 잇고 있다. 그 외 국제모델로서는 비폭력 대화(Nonviolent Communication; NVC)와 미국의 화해친우회(Fellowship of Reconciliation) 등에서 사용하는 "비폭력영성과 실천(Engage)" 모델을 비폭력평화아카데미를 통해 활동가들을 양성하고 있다.


둘째는 협력적 지도력의 활용이다. NPC의 자신의 자체 사업목표(mission)만이 아니라 함께 공동의 선과 공동의 힘(비유로서 ‘공동의 우물’을 통해 자신의 텃밭에 물주기)에 대한 신뢰와 이를 통한 연대활동의 구축이다. 다른 단체의 실무자들과 연대하여 준비, 기획, 실행에 동참하는 예로서 평화활동가 대회, AVP, NDA, 7.27한강하구평화의배띄우기, 기독교평화아카데미 등은 평화활동가들 간에 보기 드문 신뢰와 우정 그리고 대안모색에 대한 공동지혜의 소통이라는 분위기를 창조하고 있다.


4. 단체 활동의 기대와 전망


NPC는 비폭력(간디는 사티아그라하라는 말로 대치)운동이 역-폭력으로 폭력에 맞서거나 회피하기 혹은 순응하기가 아닌 전체의 공동 복지와 선을 위한 창조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에 관심을 두며 기독교 평화주의(특히 퀘이커 평화운동)에 근거하되 종교와 신념, 그리고 태도와 가치의 영역을 넘어 폭력과 갈등의 현장에서 실제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기술(도구들)과의 접목을 꾀하고 있다.


앞으로 AVP의 경우 2009년에는 한국의 전문 진행자(faciltator)들(약 15명 예상)이 양성될 전망이고, 이들은 감옥, 공동체/단체, 학교의 영역에서 활동할 수 있게 되며 2010년부터는 한국인에 의한 전문 진행자들이 양성되고 자체의 AVP공동체가 형성되게 된다. 또한 비폭력직접행동과 제 3자개입 (Third-party Nonviolent Intervention; TPNI) 모델에 대한 활동가간의 자료공유와 워크숍이 기획되어져서 사회변화를 위한 구체적인 전략 짜기와 분석과 실행을 위한 도구들(tools)이 축적되고 공유될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평화아카데미를 중심으로 활동가들을 위한 동북아 훈련센터를 평화교육단체들과의 협의하에 구체화될 예정이다. 여기에서 가르치는 커리큘럼 내용은 조정자훈련, 회의진행(facilitation)의 전문기술, 비전 창출과 힘 부여하기(empowerment), 차이를 통한 동의 얻기, 공동체 조직론, 평화 목회론, 비폭력 전술과 전략 세우기, 비폭력 평화의 세계역사와 그 교훈, 공공갈등 조정과 갈등해결, 캠페인의 기초와 실행, 사회변혁의 전략과 그 실천 등에 대한 해외 전문가의 초청과 워크숍을 기획하고자 한다.      


NPC가 다른 평화교육단체와 공동으로 구상하는 것은 현재의 아카데미아의 엘리트주의와는 다른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것은 활동가로 하여금 구체적인 갈등과 폭력의 분야에서 좀더 헌신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평화인지, 평화태도 그리고 평화능력을 배양하는 데 있다. 그래서 가리키는 지도자가 아닌 진행자(facilitator, enabler)로서 모두의 지혜와 힘을 엮어 내는 누룩의 역할을 하도록 하게 하는 것이다. NPC는 폭력에 대한 순응과 회피에서 저항하는 것도 작은 일은 아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활동가에게는 단순히 저항만이 아니라 대안과 성찰의 힘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따라서 대안과 성찰을 위한 전략과 도구가 신념과 가치에 조화가 될 때만이 내적 변화와 사회변혁의 가능성이 열린다고 보고 이에 대한 준비와 실천에 노력하고자 한다.   



5. 생명평화운동을 위한 제언


첫째, 통인식, 통인식 담론에서 분화된 중심과제 실현을 위한 전략적 담론으로 나아가야


간디와 퀘이커 평화운동이 모델이 되는 이유는 진리에 대한 사상과 신념의 견고성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분야별 갈등현장에 대한 실제적 접근과 그 효율성에 있다. 진리를 갈등의 현장에서 체득하는 방식이 명확하다. 예를 들어 간디에게는 갈등 양측의 진정한 요소와 진정치 못한 요소에 대한 갈등분석, 새로운 전체성의 입장에서 각 측의 진정성 모으기, 투쟁에 있어서 상대보다 더 충만하게 진정한 위치에 있기, 투쟁의 과정에서 상대의 진정성에 따라 자신의 위치도 지속적으로 수정하기 그리고 양측이 진정성의 위치에서 같이 있을 때 투쟁을 끝내기라는 전략을 사용한다.


지금의 생명평화운동이 신념운동의 중심화에 머물러 있는 채로 담론중심으로 흐르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예를 들어 생명평화순례의 토론마당이 주제가 만물의 공동관계성이라면 이 신념인식은 어떤 구체적인 전략적 실천을 가져내오고, 도전하는 기득권의 신념적 타자들, 배제된 사회적 타자들을 포섭하고 변화시키려고 하는가? 존재론적 인식의 ‘무엇됨(what)'은 적용과 현실화라는 ’어떻게(how)'와 무슨 연계를 갖고 있는가가 물어져야 한다. 활동가인 우리는 선언적 담론은 이미 충분히 갖고 있다. 다음은 어떤 실천적 담론형성인가에 대한 제기가 있어야 한다.


둘째. 보이는 것이 모두인 생명평화 운동에서 뿌리화 운동으로 기지건설운동으로 나아가야

보이는 파동은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의 뒷받침되는 물적·인적 자원구축이 되어 있어야 한다. 특히 현장을 책임지고 거기서 일어서는 기지론 운동이 뒷받침되어야 전선운동이 살아난다. 대중화는 촉발적인 사회적 사건에 힘입어 한때 반짝일 수 있고, 숫자적인 면에서 큰 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지만 그 흐름이 어디로 흘러가야 하는 가에 대한 비전과 대안은 핵심역량의 헌신과 비전 그리고 창조성에 의거한다.


생명평화운동이 전략적으로 효과적이기 위해서서는 그 행동을 수행할 수 있는 전략과 도구를 지닌 핵심그룹 필요하다. 이것이 예수가 무리 속에서 제자를 훈련시켜 비폭력의 샬롬통치의 매개자 혹은 하나님 나라의 통치에 대한 촛불로 삼은 이유이자 간디가 남아공과 인도에서 아슈람 공동체를 만들어 지지자들과 측근들을 철저히 훈련시킨 이유이다. 간디가 1930년에 다라사나 소금 작업장에 소금 사티아그라하 운동이 이를 증명한다. 아무런 무장없이 줄을 서서 끊임없이 연달아 3주 동안 소금작업장에 걸어 들어가려다가 쇠파이프와 곤봉세례를 맞이하면서도 되풀이 한 이 시도를 통해 소금은 얻지 못했지만 전 세계 미디어들이 폭력의 잔인성을 보도하는 바람에 인도에서 영국의 제국주의는 균열이 가는 전환점의 계기를 마련했다. 이는 전적으로 일반대중의 힘이 아니라 아슈람에서 이를 위해 훈련받은 소수의 훈련가들이 대중을 설득하고 다시 훈련하여 만든 헌신과 용기에 의한 것이다. 비폭력 훈련의 덕택에 로자 팍스는 몽고메리의 버스 안에서 저항을 할 수 있었고 이것이 흑인민권운동의 불씨가 되었던 것이다. 


생명평화운동의 활동가들은 많은 말을 하고 있다. 염원도 강하다. 그러나 드러낸 말의 뒤에 그는 어떤 풀뿌리 공동체/단체에 발을 내리고 있고 이를 지원하고 있는 것인가? 사람을 죽이는 군인들은 수년 동안 아니 일생을 통해 군사훈련과 예비군 훈련을 지속하면서 살인연습을 한다. 여기에 수많은 연구소, 군사학을 가르치는 대학들, 무기 공장들, 연습훈련장들, 미디어, 권력이 공모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생명평화운동도 일생을 건 지속적인 비폭력 훈련의 과정이다. 자신의 담론이 어떤 실천적 재생산을 하고 있는가? 최선의 그룹은 가장 큰 무리의 그룹이 아니라 가장 정밀하게 조직화된 그룹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출현의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토마스 쿤이 자신의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논증한 것처럼 패러다임(생명평화운동)의 진실성만이 아니라 그 진실성을 답보해 주는 대안공동체/대응권력/대응기구의 노력에 달려있다. 패러다임의 생존과 그 진실은 바로 이를 신념으로 사는 공동체의 의지와 역할에 달려있는 것이다.


셋째, 종교운동의 아류에 머물러 있는 생명평화운동을 실재에 대한 각성과 그 문제해결의 능력배양운동으로


생명평화운동이 영성운동일 때 거기에는 분별(discernment)이라는 사이언스 즉 실재로 이 세상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에 대한 삶의 실재에 대한 투철한 성찰이 요구된다. 가치/신념은 동기와 에너지를 주지만 문제해결은 다른 문제이다. 예를 들어 내면에 각성된 영혼이 복잡한 컴퓨터 작동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 해결은 그것 나름의 갈등해결기술이 필요하고 이러한 사이언스가 없을 때는 대안이 되지 옷하고 저항만으로 머무르게 된다.


생명평화운동에 분별이라는 영성 혹은 사이언스가 필요하다는 말은 정책개발, 갈등해결의 실제적 모델 개발, 훈련시스템의 구축, 현장간의 돌봄과 지원 네트워크 구축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저항의 힘에서 성찰과 대안적 상상력의 힘을 이용한 싱크탱크와 훈련기관의 활동의 중요성이 여기서 대두된다.


마이클 네이글러는 “폭력없는 미래”에서 간디로부터 다음과 같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간디는 지속적이고 건설적인 방법을 통해 미래를 창조하려고 했다. 가끔 이목을 끄는 사건을 연출하기 보다는 꾸준히 노력을 기울이고, 저항하기 보다는 노동하며, 남을 방해하기 보다는 자신을 개선하고, 상징적 효과보다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쪽에 중점을 두었다는 뜻이다.”(288쪽)


상징적 효과보다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활동에 전렴하라는 말을 유념해 볼 필요가 있다. 평화운동에서 주로 일을 30대들이 하고 있다면 그나마 남아있는 소수의 지도자들-이른바 어른들-이 앞에 서서 장애를 뚫기 위해 노력하는 숭고한 노력은 존경할만하지만 이는 매우 전략상의 실패이다. 앞에서 깃발을 꽂기에 매진할 것이 아니라 평화운동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인적, 물적, 사회자본(네트워크)을 구축하는 데 자신의 영향력을 쓰도록 배려해야 한다.  생명평화운동이 신념과 가치의 내면운동에서 머무르지 않고 건설적인 프로그램을 구축해야 한다는 이유는 바로 시간적 제약에 따른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는 사실에 있다. 제한된 시간 안에 이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대안기구와 문제해결 기술의 습득과 적용이 필요한 것이다. 



넷째, 생명평화운동의 지도력, 힘의 행사, 힘의 근원에 대한 인식적 전환이 뒤따라야


생명평화운동에서 가장 힘든 문제중의 하나는 지도자/어른 대접이다. 촛불시위에서 드러나듯이 현재의 N세대는 창의적이고 쌍방 소통적이며 자유분방하다. 이명박 정부의 관료들이 총체적으로 지니고 있는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소통방식은 ‘강제적 힘(power-over)'의 사용에 놓여있다. 이는 힘과 지도력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나의 옮음으로 너를 변화시켜야 하겠다는 강성적이고 하드웨어적인(이념적인) 방식을 택한다.


현재의 생명평화운동에 있어서도 그러한 하드웨어적인 힘의 사용까지는 아니더라도 강제적인 힘의 소프트웨어적인 방식으로서 일의 추진을 많은 지도자들이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개인의 카리스마적인 성격에 근거한 선도적 힘에서 볼 수 있다. 폭력의 현장에서 전선을 만들어 내기 위해 앞서서 전진하며, 나를 따르라는 형태의 선도적 힘은 power-over의 부드러우면서도 또 다른 강제적 힘의 사용인 것이다.


우리는 생명평화운동의 지도력과 힘의 행사 그리고 궁극적으로 우리가 의지할 힘이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물음의 대답을 '관계하는 힘(power-with)’에서 찾아야 한다. 이는 대화와 경청, 상호관계성과 협력, 자율과 선택을 중시한다. 설득하고 선도하는 힘을 통해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를 중심으로 뒤따르는 무리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자들의 내적 자각, 소통능력, 욕구, 비전을 기반으로 한 공동적 지도력, 협력적 지도력을 개발하지 않고는 미래를 창조하는 동력이 지속되지 않는다. 누가 말하고, 어떻게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며, 누구의 힘에 의존하고 지혜를 어디에서 얻는가는 생명평화운동에서 매우 중요한 근본 문제이다. 세상에 공헌하지 않는 잡초는 없다.

 

다섯째, 개인수행(individual practice)에서 공동수행(collective/communal practice)으로, 종교적 담론의 수행에서 이지상적 수행(mundane practice)으로


생명평화운동의 과제는 그 사회적 이슈의 포괄성과 복잡성-예를 들면 기후변화문제-으로 인해 어느 한 개인, 집단/단체, 사회, 종교, 나라의 힘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과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종교가, 엔지니어, 철학자. 기업가, 사회학자, 미래학자, 예술가, 농민, 상인, 어린이, 주부 등의 다양한 계층의 공동협력과 상호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


자기실현과 사회변혁을 위해 과거의 (종교적) 수행은 개인적이고 명상적이며, 정적인 과정을 통해 구원/각을 얻는 방식을 선호했으나 지금은 자비의 실천, 누구든지 함께 하는 공동  선과 공동 목표를 위한 기획과 지지, 서서 움직이는 역동적인 수행의 방식이 요구되어 진다. 이런 면에서 대화는 단순히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된다. 그리고 대화는 인식의 근거가 된다. 왜냐하면 실재자체가, 존재의 기반이 대화적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기독교인의 삶의 목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은 ‘얼굴과 얼굴을 맞대는’ 직접적인 대면을 통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의 신의 의지의 실현을 위해 이 지상적인 일에 정성을 다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신께 영광을 돌리게 되다(Sallie McFague). 이를 위해 기독교인은 선의를 지닌 모든 사람들과의 연대와 협력을 하게 되고 이것은 수행이 되고 구원/각의 수단이 된다. 즉 이러한 연대와 협력을 통해 에고 중심(ego-centeredness)에서 실재중심(the real-centeredness)으로 자기초월이라는 변화가 있게 되는 것이다(John Hick). 따라서 종교 평화 운동가들에게 있어서 수행은 종교담론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이지상적 수행(불교로 말하면 무처심의 수행)에 의해 구원을 성취한다.   



나오면서


현재의 생명평화운동의 주류는 자기 고백적이고 영성적이며 신념가치적인 측면의 흐름이나 국가권력에 대항하는 사회방어의 저항의 두 흐름을 지속하고 있다.  성찰과 대안에 의한 전략과 대안적 민중권력을 형성하는 부문별 혹은 지역적 풀뿌리 단체와 공동체의 형성 그리고 이들을 통한 상호지원과 네트워크는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평화운동에서 이제 새롭게 접목되고 있는 다양한 활동가 양성 과정의 모색과 분석 및 실천능력을 지원하는 도구들과 전략들은 실상 환경운동 분야에도 필요한 실정이다. 이슈 파이팅에 있어서 토론과 시위 그리고 연대서명의 방식을 넘어 좀더 대안을 향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창조력을 개발할 수 있는 워크숍과 활동가의 능력강화와 이슈에 대한 명료한 과제수행을 지원할 수 있는 재충전의 지속적이고 단계적인 활동가 양성모델들이 앞으로 2~3년간 깊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변화의 주체역량이 다변화되고 풀뿌리화 되지 않는 한 성장과 확장은 없게 되며 언제나 이슈의 과대한 규모에 의해 냉소적이고 패배적이게 되어 자기 영역에서 활동가로서 정체성을 지니고 평생을 가는 일이 어려워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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