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평화활동가가 직면하는 두 현실-성서묵상 :: 2006/01/09 22:28
갈등과 신비(Conflict and Mystery)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요8: 7-9)
기독교 평화활동가들은 두 가지 현실에 직면해 있다.
첫째는 언제나 눈과 발을 갈등의 현장 속에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problem-oriented). 평화활동가는 끊임없는 문제의 파도를 직면하며 자신의 삶을 그 한가운데 속에 정초시킨다. 우리가 직면한 상황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보라, 상대는 얼마나 교활한가. 예수를 잡기위해 일부러 간음한 여인을 끌고나와 여인의 수치심에 대한 고려는 아랑곳하지 않고 상대 남자는 데려오지도 않은 채, 예수께 덫을 놓는다.
문제의 현장, 갈등의 현장에 있다는 것은 자신을 위험에 놓게 됨을 평화활동가들은 명심해야한다. 그런 덫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지혜로워야 하고 대안적인 상상력을 키워야 한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대안적 상상력은 주어진 현상을 넘어서서 의도를 파악하고 사건의 중심을 읽어내야 한다. 갈등과 문제는 위기이다. 그러나 그 위기로 인해 계략의 본질이 폭로되어 삶이 변화될 기회가 된다.
두 번째는 갈등을 통하여 양심화함으로써 신적 현존을 대면한다(mystery-oriented). "양심의 가책을 받아...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여자만 남았더라.” 얼마나 수많은 갈등과 문제들로 인해 쉽사리 우리는 지쳐나가 떨어지던가. 소진하여 끝내는 무감각해지는 차거운 이념론자로 메말라지기 십상 아니던가. 그도 아니면 적을 상대하면서 적을 닮아가는 꼴이 얼마나 많은가. 증오가 내면에 쌓이면서 자신도 그 분노로 가슴이 굳어져버리는 상황을 종종 당하게 된다. 그러나 기독교평화활동가가 세속적 평화활동가와 달라야 하는 점은 갈등이 수련의 장이 되고 궁극적으로는 이를 통해 신적 현존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물과 사람이 하나씩 떨어져 나가서 비워지고 덜어내며 끊고 깨어져서 결국은 오롯이 그리스도한분이 내 앞에 현존하는 경지(“하나씩 나가고...오직 예수와...여인만 남았더라”)에 이르는 깊이의 체험을 얻게 된다. 갈등의 현장을 통해 떨어져 나가는 그 무엇을 경험함으로써 오롯이 그분을 마주대하는 신비의 경험을 하게 된다. 행동은 일종의 역동적인 명상의 상태이다. 즉 그 분을 보고, 마주 대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갈등의 폭풍 한가운데 있는 침묵의 고요! 외적 행동의 안에 있는 고요를 통해 신적 현존은 드러난다. 그리고 이 신비가 평화운동가를 일어서게 한다. 마치 스데반이 돌로 맞음을 경험할 때 하늘 문이 열리는 것을 본 것처럼, 갈등과 문제는 하늘을 연다.
갈등과 신비! 이는 동전의 양면처럼 기독교 평화운동가가 대면하는 두 현실이다. 갈등이 신비를 내포함을 깨달을 때, 문제의 상황, 문제를 가진 사람은 신을 지시하는 암호가 된다. 이 암호의 의미를 깨닫는 자는 갈등과 문제를 만날 때 두려움이 아니라 새로운 기대감을 갖는다. 이번 일로 어떤 신적 현존의 경험을 할 것인가로 가슴은 진동한다. 그리고 그 일로 다시 자신을 새롭게 경험하게 된다. 이는 문제(problem)가 사건(event)이 되기 때문이다.
2006. 1.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