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텍스트 (생태평화 텍스트)- 무지개 언약 "이는 땅의 모든 생물들과 맺은 언약이라" :: 2008/04/02 09:05
무지개 언약
- 이는 땅의 모든 생물들과 맺은 언약이라-
텍스트 : 창 9: 1-17
최근의 언론에 인공위성으로 찍힌 한 사진이 공개되었다. 남극의 한 거대한 빙산이 잘려져 떨어져 나가는 장면이었다. 방콕에서 유엔의 기후협약관련 국제회의가 열리고 있는 것과 때를 맞추어 국제사회에 경각심을 줄 수 있는 사진이었다. 해수면의 높이의 증가에 대한 이야기와 기후온난화에 대한 경고들, 그리고 동남아와 아프리카의 최근의 곡물가격 폭등에 따른 민중의 아우성과 시위들의 소식들이 함께 겹쳐져 외신으로 전해들어오고 있다. 지난해 8월 케냐의 국제회의로 인해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를 거쳐 소설의 제목에까지 나오던 만년설로 유명한 킬라만자로 산을 비행기로 지나게 되었었다. 그 때의 장면은 매우 충격이었는데, 왜냐하면 눈이 맨 꼭대기에 드문드문 소수의 지역에서 보일 뿐, 마치 광산에 흙더미 쌓여있듯이 전체가 흉측한 맨 몸으로 아무런 풀 한포기 없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만년설은 존재하지 않았고 그로인한 주변의 식수부족과 사막의 확장은 주변의 거주민들을 극도의 피폐한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었던 것이다.
있음이 ‘보기에 좋았다’는 창세기 첫 장의 아름다운 서곡은 9장에 오면서 있음이 신에게는 후회로 바뀌고 만다. 주변환경에 가장 예민하고 복잡한 의존관계의 먹이사슬 최고의 위층에 있는 인간의 잘못된 행위로 인해 대홍수의 심판이 내려졌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신의 창조질서에 속한 수백만 종중에 오직 한 종의 잘못된 삶의 결과가 온 통 다른 종들의 생존과 멸망에 미치고 있다는 이 의미심장한 연계성은 인간의 우월성에 대한 진술보다는 인간의 행위에 의한 타 생물에 미치는 영향의 지대함에 대한 위험한 위치를 진술하는 것처럼 보여진다.
어느 기독교 종말론적 집단의 미래에 대한 불안이라는 주관적 진술이 아니라 현대 과학자들의 일관된 미래에 대한 불안과 이를 증명하는 수많은 데이터의 홍수속에 살면서도 어째서 우리는 그토록 무감각하고, 지금의 생활방식에 아주 자연스러워하며 소름이 느껴질 정도로 우리가 태연하게 별다른 변화없이 사는 것은 어째서일까? 엘 고어의 ‘불편한 진술’의 예처럼 개구리가 뜨거운 물이 아니라 미지근한 물에서 서서히 달구어지는 온도에 대해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고 위험을 모르고 지내는 그런 비유의 상황이 우리에게 전개되는 데 대해 어떤 각성이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인가? 우리의 이성이 날카롭지 못한 결과인가. 아니면 우리의 윤리적 표준의 문제점이 그 큰 이유인가.
본문은 마른 하늘에 구원의 방주를 건설하고자 하는 결단이 일어나는 것은 바로 이성을 통한 정보의 분석이나 윤리적 의무감의 높은 수준에 의해서만 동기되어지지 않다는 사실을 전해 준다. 그것은 다가올 무질서(혼돈)과 어둠 앞에서 그보다 선행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복의 계시에 대한 자각이 주는 결단을 통해서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이미 신의 ‘보기에 좋았다’는 존재론적 긍정과 이에 대한 깊은 공감능력이 영혼의 결단을 불러 일으킨다. 축복하심과 긍정이 거대한 미래의 불안과 혼돈에 대한 조치를 하도록 이성과 윤리감각을 초대하는 것이다. 복(original blessing)이 선행되어 내게 선물로 주어졌다는 것, 은총이 먼저 행동하신다는 마음의 눈의 뜨임이 주변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과의 차이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존재함의 절대적 긍정으로서 신의 축복(original blessing)이 내게 내려졌다는 근본인식이 바로 ‘그린 피스(Greenpeace)’나 ‘지구의 친구들(Friends of the Earth)’의 예처럼 인간동료만이 아니라 생태동료의 위험과 죽음을 방어하는 창조의 공동체로 전환시키게 된다. 노아가 방주를 마련한 것은 바로 축복-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의 근본인식과 그것의 보편성에 기초한다. 새로운 출발로서 ‘한 처음에’의 사건은 이렇게 복으로 시작된다. 창조사건, 노아의 무지개사건 그리고 아브라함의 ‘열국의 아비’가 되는 떠남의 사건은 복과의 연결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너는 복이 될지라/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12:2-3) 노아의 방주는 복의 보편성과 이를 존속하고자 하는 자기 결단의 행위였다. 그것은 우리의 인생이 불안정하나 생존을 위해 창조의 공동체 구성원들이 서로 단결하고 상호의존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우리를 결코 완전히 저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과 존재에 대한 복됨에 대한 그분의 의지와 뜻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삶의 의미를 드러내어 준다.
노아가 신의 ‘보시기에 좋았다’를 다시 얻게 되고 희망을 찾게 되는 것은 다른 동료의 격려나 설득에 있지 않음은 매우 충격적이다. 그는 구원의 징조를 비둘기로부터 얻었고, 구원의 확증을 무지개로부터 받게 되었다. 생태 동료들의 도움을 통해 불안, 두려움, 혼돈, 어둠을 몰아내고 생에 대한 재 긍정과 확신을 받게 되었다. 인간에 의해 별다른 충격이나 인식지평의 확대에 대한 도전을 받지 못하는 경우에도 우리가 때때로 생태적 타자들(eco-Others)에 의해 신의 의지와 삶의 근본적 긍정에 대한 ‘예’에 대한 감동을 우리가 얻는다는 사실은 얼마나 뜻밖의 경험이자 생의 재 회복과 신뢰의 감각 강화에 있어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놀라게 된다.
여기 무지개 언약은 또한 하나님께서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과 하는 약속으로 나타난다. “...나 하나님과 모든 육체를 가진 땅의 모든 생물 사이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16) 여기서 무지개 언약은 결코 인간중심적이지 않다. 모든 생명과 맺는 언약으로 생태적 지평을 확대하고 있다. 자연도 하나님 의지의 전달이 되고 하나님의 신실성과 의지를 얻는 계약자가 된다. 인간 일반을 나타내는 아담(adam)은 흙(adama)과 관계성을 지니고 있다는 창세기 기자의 시각은 이제 인간은 다른 생명체들과 신에 대한 언약의 공동의 담지자이자 실행자가 된다.
“밭에 돌이 너와 언약을 맺겠고 들짐승이 너와 화친할 것임이라”
-욥 5: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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