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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통일정세와 시민사회의 대응 :: 2012/01/04 13:47

                2012년은 통일정세의 대격변이 예고되고 있다

 

박성용 남북평화연구소소장겸

비폭력평화물결 대표

 

 

2011년이 주는 지구촌의 대격변의 메시지

지난 한해는 지구촌에 있어서는 엄청난 대변화의 시기였다. 이는 단순히 기후대변화로 오는 곳곳의 여러나라에서 겪었던 대홍수와 가뭄의 충격만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안정적이라고 일반인들이 믿었던 미국이 1조3억의 재정적자로 인한 국가신용등급의 하락이라는 충격과 이를 전가한 유로국가들의 부도위기와 신용등급하락의 여파는 가히 메가톤급 수준이었다.

세계경찰로서의 안전한 지지자로 군림했던 미국의 신용등급하락과 이에 따른 유럽국가들의 재정위기몸살은 친미독재국가들에 대한 사회․심리적 부담을 제 3세계에 전달하였고, 우방에 대한 ‘신화’가 깨져나가면서 중동지역 친미정권들(튀니지, 사우디아라비아, 예멘, 바레인)의 독재정권의 연쇄붕괴사태를 가져오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한 지구촌의 시민운동은 “월가를 점령하라‘라는 대중운동에서 보았듯이 99% 약자를 위한 공공정책의 책임성에 대한 관심이 활화산처럼 오르고 있다. 게다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전쟁개입에 대한 부정적인 윤리적 성찰과 막대한 군사비의 지출 및 인명 희생들에 대한 반발이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여기에 이란이 이슬람국가들의 자존심을 등에 엎고 핵무기개발로 인한 이스라엘과 미국간에 군사적 긴장을 높이고 있다.

이러한 간단한 국제 정세의 예증을 통해서 보듯이 지금의 지구촌은 휘발성이 강한 변화의 도전을 맞이하고 있고, 여기에는 다른 나라들에 버팀목이 되어준 미영제국주의의 가시화된 몰락의 징표와 더불어 신자유주의의 폐해에 대한 국제시민사회의 자각과 민중의 생존권을 위한 치열한 풀뿌리 민초들의 저항이 한몫을 하고 있는 추세이다. 바야흐로 옛것은 물러가고 있지만 새 것은 좀처럼 그 실체를 예측하기 어려운, 그러나 강한 변화의 에너지가 힘을 받고 있는 형국이 되었다.

 

 통일열차, 새 이정표를 알리는 터널을 들어가다

남한에서 북에 대한 정보는 대부분이 ‘독재와 빈곤’이라는 이미지 여과체를 통해 해석되기 때문에, 그리고 보수 이명박 정권의 북과의 대결 상황의 한계로 인해 한반도와 그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를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적어도 그 한 이유의 하나는 북을 볼 때 언제나 ‘사실’보다는 ‘기대’와 ‘가치판단’이 먼저 작동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정일위원장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우리 남한이 갖는 자본주의적 ‘기대’와 ‘가치판단’은 3대세습과 20대의 어린 지도자에 대한 우려와 부정적 시각이 지배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북은 조문기간동안 빠르게 지도체제를 정비하여 공개하고 있고, 중국과 러시아의 재빠른 북의 안정화에 대한 지지를, 그리고 미국과 유엔 등의 국제사회는 조심스러운 언급자제 등으로 북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남한 언론에 비친 북쪽 사회의 헐벗음과 기아의 일반적인 장면과는 달리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건강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러시아를 수천킬로 여행을 하는 강행군의 일정을 보여주었고, 북의 사회주의 체제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미국에 대한 “상호 대화이냐 아니면 쌍방의 파국이냐”라는 최후의 통첩 메시지를 보낸 가장 공격적인 외교의 한 해였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사건의 흐름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의 평화문제는 북미적대관계가 중심축이고 남한을 포함한 일본은 미국의 보조축으로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는 북의 보조축으로 사실상의 역할을 해왔다. 실제로 6자회담은 미국이 북미간의 대화의 부담을 덜고 시간을 벌기위해 끌어드린 것이었다(6자회담은 제 2차 핵위기가 일어난 2003년 수세에 몰린 부쉬정권이 위기관리차원에서 꺼내놓은 시간벌기 방책이었다). 9.19공동성명, 2.13조치 그리고 10.4남북정상회담이 지닌 ‘공약대 공약’ 및 ‘행동대 행동’은 북이 영변 핵시설 해체(2007년 12월)라는 행동을 보여주었으나 미국은 플로토니움에 대한 완전한 공개와 검증을 다시 들고 나와 대화가 막혀버렸었다.

북의 논리에 따르면 2012년을 ‘사회주의강성대국을 전면적으로 건설하는 새로운 높은 단계’에 진입하기 위한 체제안정을 보장받기 위해 핵보유국으로서 미국이 북한과 협상하기를 바랬지만 미국이 이를 인정하지 않고 ‘전략적 인내’라는 명목하에 핵협상을 자꾸 미루고 있어 미국이 협상에 나와야 할 강공카드를 북은 내밀었다. 그것은 재일 통일학자 김명철이 말한 힘으로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이미 2009년 4월 인공위성 발사와 5월의 지하핵실험을 통해서도 미국이 협상에 응하지 않았기에, 2010년 10월 인민군열병식에서 보인 사정거리 3,500km의 초강력다탄두미사일(핵탄두장착가능 미사일)의 공개 그리고 다음 달 11월 12일에 미국 핵과학자를 불러 보여준 2세대 원심불리기 2,000기가 작동하는 고농축우라늄시설(1년 2대의 우라늄핵탄두 제조 가능)의 깜짝 놀라운 연이은 공개가 바로 그 공격적 협상카드의 핵심이었다. 플루토늄 핵탄두가 아닌 우라늄 핵탄두는 소형화하기 쉽고 쉽게 움직일 수 있어서 정찰과 감시에 전혀 노출이 불가능한 것으로 이미 그 생산 규모와 미국본토로 올 수 있는 장거리미사일 출현으로 볼 때 시간이 없는 긴박한 상황이 되었음을 알고 백악관은 충격을 받게 되었다.

충분한 협상시간을 허비하고 궁지에 몰린 미국은 그 결과로 2011년 7월과 10월 뉴욕과 제네바에서 각각 북미 고위급회담을 개최하였다. 여기서 보스워즈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10월의 2차 북미고위급회담이 ‘긍정적이고 건설적이었다“고 말하였고, 김계관 제1부상은 ”신뢰구축을 위해 해야 할 문제에 있어 전진이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앞으로 알게 된다. 상세히 말은 못한다“고 말을 함으로써 쌍방이 북미관계개선과 신뢰구축에 대한 모종의 포괄적인 합의가 진행중임을 시사하였다. 여러 북한전문가들은 이것의 의미가 북의 핵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조치와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서 미국의 체제안정 보증과 비공격에 대한 선언이 다루어질 북미정상회담의 수순밟기를 말하고 있고, 앞으로 있게 될 북미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과 같은 일을 통한 북미간 적대적 관계의 종식과 수교의 가능성을 가장 높게 보고 있다. 그리고 세상을 놀라게 할 수 있었던 12월 22일에 에정되었던 핵협상 일괄타결의 발표의 수순이 아쉽게도 17일 기정일 국방위원장의 서거로 미루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앞으로의 통일정세와 시민사회의 과제

이미 북한은 조문기간동안에 김정은 대장에 대한 북의 영도체제를 선언하였다. 19일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에게 고함”에서 김정은 대장은 ‘탁월한 영도자’라는 칭호와 더불어 그가 수행해야 할 역할을 김정일위원장의 순직정신에 따라 ‘혁명의 진두에 서있다“라고 밝혔고, 중앙추도대회에서 김영남 위원장은 추도사에서 혁명의 진두에 있는 주체혁명위업의 계승자로 밝혔다. 이것은 남한이나 국제사회가 북의 새 체제를 좋아하든 안하든 북한은 새로운 영도체제의 안정화를 국제사회에 선언한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국상중에도 미국은 21일 뉴욕에서 북의 한상렬 유엔대사와 북미접촉을 하였고, 북측보도에 따르면 1월 1일 김정은 대장이 ‘근위서울류경수 제105탱크사단’을 현지지도했다고 밝혔다. 이 탱크사단은 1960년 8월 25일 김일성 주석과 함께 이곳을 방문하고 그 날을 ‘선군영도 개시일’로 정하게 된 유래가 있는 군부대이다. 이를 통해 김일성 주석 탄생 100주년이 되는 금년에 김정일국방위원장의 강성국가건설과 조국통일의 위업을 끝까지 관철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셈이다.

북한으로서는 김영삼대통령과의 남북정상회담 성사 직전의 김일성주석의 사망과 더불어 북미간 북핵 포괄적 협상타결을 위한 북미정상회담 공식선언 발표 5일을 남기고 김정일위원장의 사망을 맞이하는 불행으로 북한 주민 전체가 오열을 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 되었다. 이렇게 결정적인 북미간의 대결종식을 향한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이하는 2012년은 남한과 미국의 대선정국과 맞물려 중차대한 역사적 기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진술을 통해 남한이 북한과의 대화의 끈을 놓고 있는 사이에 북한과 미국은 얼마나 힘든 물밑협상을 해오고 있었는지 그리고 핵협상의 타결을 통한 적대관계의 종식을 향해 결정적인 걸음을 해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앞으로 북미관계는 3가지 가능성이 존재할 것이다. 첫 번째 선택은 지금까지 진행해온 핵협상 일괄타결을 북의 새정권과 추진하는 것이고, 둘째는 북의 새정권의 지도력을 시험해보고 기다리다가 서로 다시 협상하여 진행하여 나가는 것 마지막으로는 지금까지 협상을 무시하고 북이 무너질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계속해서 기다리며 버티는 방식이 있을 수 있다.

북은 경제가 아무리 어려워도 과거의 역사가 말해 주듯이 거칠은 황야에서 단련된, 즉 굶주림을 체질화한 자립 경제를 지켜왔기에 자본주의 시각으로 보는 경제적 요인으로 북이 무너질 것이란 생각은 오판이다. 그리고 이미 진행중인 우라늄농축시설의 가동은 이제 단순한 말이상의 최후 통첩을 미국에 보낸 것으로서 미국의 가장 현명한 선택은 첫 번째 선택에 대한 존중을 보내고 이를 금년 안에 실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확인하는 시험대는 2월에 있을 한미연합작전에 대한 미국의 조치와 이란에 대한 미국의 행동을 지켜보면 알 수 있다.

남한의 시민사회는 서울시장의 시민사회후보 당선을 통해서 보여주었던 그 기운을 대선을 통해서 보여줌으로써 일방적인 강제적 권력의 소통부재의 해결, 금융정치 엘리트의 부패척결, 사회적 약자를 향한 공공영역에서 책임 시스템 구축, 구조적 폭력과 갈등에 대한 해결능력 향상, 남북간의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을 위한 건설적인 프로그램들의 구축, 평화헌법과 평화부등의 신설을 통한 시민능력강화와 평화문화 조성, 대규모 사업에 대한 합리적 결정 프로세스의 설정 등이 필요하다. 특히 화해진실위원회의 재가동, 국가인권위원회 등의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국가기관들의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과 책임성 강화, 조중동 대신에 대안언론의 구축 등도 화해상생의 사회로 가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통일은 염원과 정세분석으로만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선택과 의지에 달려있다.

20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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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4 13:47 2012/01/04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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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이커 교육사상가 파커 파머의 지도자론 -"리더가 갖기 쉬운 5 가지 그늘" :: 2011/10/19 12:54

                                                    리더가 갖기 쉬운 다섯 가지 그늘

출전: 파커파머, <삶이 내게 말을 걸어 올 때>



지도자로서 그늘보다 빛을 더 많이 드리우고 싶다면 내면의 어떤 괴물을 타고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그것들이 만들어낸 그늘을 탐험하고 우리 자신의 영적 생활에 뛰어들 때 찾아오는 변화를 경험해야 한다.

그런 괴물 다섯 가지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겠다. 내게 있어 이 다섯 가지는 이론적인 게 아니다. 나는 우울증으로의 하강을 경험하는 동안 개인적으로 그것들 각각과 친해졌다. 그것들은 또한 내가 각계각층의 리더들인 CEO, 목사, 부모, 교사, 시민, 이상주의들을 후퇴시켜 공통의 땅을 향한 내적 여행을 시작하도록 인도할 때 함께 작업하는 괴물들이다.

그늘을 드리우는 첫 번째 괴물은 자기 정체성과 존재 가치에 대한 불안이다. 많은 리더들이 외향적인 성향을 작고 있어서 이 그늘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외향성은 때로 자기 불신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발전되기도 한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 아니면 단지 그 문제를 피하기 위해 외적활동으로 뛰어든다. 이것은 특히 남성들 사이에서 잘 알려진 증후군으로 나타난다. 자기 정체성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어떤 외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이다. 그러다 그 역할을 빼앗기면 우울증에 빠지고 심지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불안을 느낄 때면 자기 정체성을 지키려는 방편의 하나로 다른 사람의 정체성을 빼앗는 환경을 만들어낸다. 이것은 가정 내에서도 언제나 일어나는 일이어서 부모들은 자녀들을 존중하려 들지 않는다. 또한 이것은 사무실에서도 흔한 일이다. 각계각층의 조직에는 다수의 정체성을 빼앗아 소수가 자신의 정체성을 강화하려는 역학이 작용한다.

예를 들어 교실로 가보자. 불안한 교사는 학생들에게 자기의 지식 창고를 수동적으로 받아 적을 것을 강요한다. 여기서 교사의 자아의식은 더욱 강해지고 상대적 약자인 학생들의 자아의식은 약해진다. 또, 병원을 보라. 의사들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방편으로서 ‘410호 별실의 콩팥’하는 식으로 환자들을 물건 취급한다. 바로 그 때에 약자인 환자들은 절실하게 자기 정체성을 필요로 하고 있다.

물론 상황이 늘 이런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의 정체성을 빼앗는데 의존하지 않는 사람들이 리더로 있는 환경이나 단체도 있다. 만약 당신이 그런 가정이나 사무실, 학교나 병원에 있다면 당신의 자아의식은 자기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알고 있는 리더 덕분에 더욱 강화될 것이다.

이런 리더들은 내적 여행을 떠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선물을 가지고 있다. 즉 정체성이란 우리가 수행하는 역할이나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지배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님을 아는 것이다. 정체성은 우리가 신의 자녀라는 간단한 사실에 달려 있다. 리더가 이것을 알고 있을 때 가정이나 사무실, 교실, 병원에서는 그 일에 관련된 모두에게 생명을 전해주는 일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많은 사람들의 내면에 있는 두 번째 그늘은 세상은 전쟁터이며 사람에게 적대적인 곳이라는 믿음이다. 일, 특히 회사 일에 대해 얘기할 때 우리가 얼마나 자주 전쟁의 이미지를 사용하는지 생각해 보라. 전술과 전략, 아군과 적군 얘기를 하고 승리와 패배,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식의 얘기를 한다. 그러한 이미지는 우리가 사는 세상은 본질적으로 넓은 전쟁터이기에 치열한 경쟁을 벌이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패배하고 말 거라는 상상에 빠지게 한다.

불행히도 인생은 ‘자기 예언’에 의해 이루어지는 일들로 가득하다. 패배에 대한 두려움은 사람들이 마치 전쟁터에 사는 것 같은 느낌을 갖고 살아가게 한다. 세상은 경쟁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대개는 우리 스스로가 그렇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

최근에 회사에서부터 변화대행사, 학교에 이르기까지 정신적으로 앞서가는 몇몇 단체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들은 사업을 하는 데 경쟁이 아닌 또 다른 방법, 합의를 이루고 협동하며 공동으로 일을 추진하는 방법이 있음을 배우고 있다. 즉, 그들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예언을 성취하며 다른 현실을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내적 여행의 과정에서 우리가 받는 선물은 세상은 영원히 함께 작용함을 깨닫는 통찰력이다. 현실이라는 구조는 전쟁의 구조와 다르다. 현실은 사람을 잡아먹는 곳이 아니다. 물론 죽음이 있긴 하지만 그것은 생명 사이클의 일부이다. 우리가 그 사이클에 순응하게 되면 우리 인생에는 위대한 조화가 찾아온다. 근본적으로 현실의 본질을 이루는 것은 전쟁이 아니라 조화라는 영적 진실이다. 이것이 리더십의 그늘을 바꾸어 놓을 수 있으며, 우리의 단체들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것이다.

리더들에게 흔한 세 번째 그늘은 모든 일에 대한 최후의 책임이 우리 인간의 몫이라는 믿음이다. 이것은 이 땅에서 어떤 좋은 일이 일어날 거라면 그 일을 일으켜야 할 존재가 바로 우리라는 무의식적인 믿음이다.

이 그늘은 삶의 모든 단계에서 병을 일으킨다. 그것은 우리 의지를 남에게 강요하도록 하며, 관계를 지나치게 압박해서 때로는 단절에까지 이르게 한다. 종종 세상이 우리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그 사실에 화가 난 나머지 탈진이나 우울증, 절망으로 끝나기도 한다.

이러한 ‘기능적 무신론’은 또한 집단 광란을 유발하는 그늘이다. 그것은 왜 보통의 그룹이 단 15초의 침묵도 참지 못하는지를 설명해준다. 우리는 어떤 소리라도 내지 않고 있을 때는 아무런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으며 뭔가 죽어가고 있는 거라고 믿는다.

내적 여행에서 우리가 받는 선물은 세상에는 우리만 활동하고 있는 게 아님을 알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는 다른 활동이 있기만 한 게 아니라, 그 중 어떤 것은 우리보다 더 낫다. 스스로를 해방시키고 그들에게 힘을 부여함으로써 모든 짐을 우리가 져야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때로는 짐을 내려놓고 홀가분함을 누릴 수도 있다. 우리를 이끄는 거대한 공동체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만 맡기고 나머지는 다른 사람들에게 맡긴다.

우리 내면에 있는 네 번째 그늘은 두려움, 특히 인생의 혼돈에 대한 두려움이다. 상당수의 부모와 교사, 최고경영자들은 세상에서 그런 혼돈의 잔여물을 없애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우리는 세상을 완벽하게 정돈하고 배열하여 다시 혼란스러움이 일어나 우리를 위협하지 못하게 하려 한다. 여기서 말하는 혼란의 의미란 의견 차이, 혁신, 도전과 변화를 의미한다. 가정, 학교, 종교, 기업에서 이 그늘은 규칙과 절차를 엄격하게 하여, 권한 부여가 아닌 구속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물로 그러고 나면 우리가 가두어 놓은 혼란은 구속을 깨고 나오려고 발버둥친다.

내적 여행에서 우리는 혼돈이 창조성의 전조라는 통찰력을 얻게 된다. 모든 창조 신화에 있듯이 인생도 무(無)에서 나온 것이다. 이미 창조된 것도 때때로 혼돈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그래야 더욱 생기 있는 형태로 다시 살아난다. 리더가 혼돈을 진정으로 두려워해서 그것을 없애려 든다면 그 리더가 접근하는 모든 것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울 것이다. 인생의 혼란에 대한 최후의 해답은 죽음이니까 말이다.

리더가 드리우는 그늘에 대한 마지막 예는, 역설적이지만 죽음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때로 어떤 것을 그 수명이 다하기 전에 죽이는 경우도 있지만, 또 모든 것은 정해진 때가 되면 죽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며 살기도 한다. 이런 부정을 따르는 리더들은 종종 주변 사람들에게 이미 죽은 것을 부활시키라고 요구한다. 오래 전에 끝냈어야 할 과제와 프로그램이, 죽음을 자기 눈으로 보고 싶지 않은 리더의 불안감을 달래기 위해 계속 살아 있게 되는 것이다.

죽음을 부정하는 심리 내면에는 또 다른 두려움이 숨어 있다. 바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다. 대부분의 회사에서 실패는 해고 통지서를 의미한다. 비록 그 실패가 지고한 목적을 수행하다가 나타난 결과라 해도 말이다.

흥미롭게도 우리 문화에서 그토록 존경받는 과학은 이런 종류의 두려움을 초월한 것처럼 보인다. 훌륭한 과학자는 가설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실패’는 진리에 이르는 데 필요한 길을 더 분명하게 입증해주기 때문이다. 때로는 성공한 하나의 가설보다는 더 많은 사실을 알려 주기도 한다. 모든 환경에서 최고의 리더는 실패가 뻔한 일이라도 해도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면 위험을 무릅쓴 사람들에게 포상을 한다. 이런 리더들은 죽음이 언제나 새로운 배움의 원천이라는 걸 알고 있다.

내적 여행에서 우리가 얻는 선물은 결국 모든 것에는 죽음이 다가옴을 알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죽음이 끝은 아니다. 생명이 다한 어떤 것을 죽게 함으로써 새로운 삶이 나타날 수 있는 환경을 창조할 수 있는 것이다.

공동체에서의 내면 활동

리더십에 수반하는 내면의 문제 해결을 서로 도와줄 수 있을까? 도와줄 수 있다. 그리고 도와야 한다. 우리가 리더로서 우리의 내적 생활을 다루는데 자주 실패하면 너무 많은 개인과 단체를 어둠 속에 방치하게 된다. 가정에서부터 기업, 정치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이 내가 지적한 바 있는 그늘 때문에 곤란을 겪고 있다. 거기서 빠져 나올 방법은 없으니 그 안으로 뛰어들어야만 한다. 서로 도와서 우리 내면의 삶을 탐험해야 한다. 그런 도움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먼저 ‘내면 활동(inner work)'의 가치를 끌어올려야 한다.’ 내면 활동‘이라는 말이 가정이나 학교, 종교 단체에서 평범한 말이 되어야 한다. 적어도 내면 활동이 외적 활동과 마찬가지로 실제로 있다는 것부터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활동에는 일기 쓰기, 책읽기, 명상과 기도처럼 계속해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부모들이 지금까지 그 부분에 대해 잘 몰랐다 해도 자녀들에게 알려줄 수는 있다. 내면 활동에 소홀한 사람은 외적 활동 역시 어려움을 겪게 되리라는 점 말이다.

두 번째로, 우리는 내면 활동이라는 말을 널리 퍼뜨려야 한다. 내면 활동은 매우 개인적인 문제이긴 하지만 반드시 비밀스런 일일 필요는 없다. 내면 활동은 공동체를 통해서 도움 받을 수도 있다. 정말이지 내면 활동을 함께 하는 것은 혼자 하는 것과는 결정적인 대조를 이룬다.

그러나 이것을 그냥 두면 사람들이 잘못을 고쳐줄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들지 모른다. 우리 주변에는 온통 ‘서로 바로잡아 주기’를 실천하는 공동체들이 많다. 하지만, 극단적인 전체주의적 실천은 수줍음 많은 영혼을 더 깊이 숨어들게 만든다.

하지만 공동체가 어떻게 그런 도움을 줄 수 있는지가 중요한 문제이다. 다행히도 공동의 통찰력과 지원에 대한 다른 모델이 있다. 예를 들면 이 책의 앞부분에서 언급했던 퀘이커 공동체의 명료화모임 같은 것이다. 개인적 문제를 이 소그룹에 가지고 오면 위원회에서는 당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도와준다.

그러나 ‘고쳐야 할 점’에 대한 제안이나 조언은 금지되어 있고, 다만 세 시간 동안 정직하고 개방적인 질문을 통해 당신 스스로 자신의 내적 진실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런 공동의 절차는 침범이 아니라 지원이다. 이런 절차는 섣부르게 판단하는 것을 막고, 내면에서 울려나오는 의식의 탄생을 돕는 산파 역할을 한다. 그리하여 우리가 가진 문제와 가능성을 면밀히 살펴보는 것을 도와준다.

이런 형태의 공동체를 이루는 비결은, 관계를 맺되 그 안에서 서로 혼자일 수 있는 권리를 보호하는 역설을 유지하는 것이다. 우리는 함께 살되, 그 방식은 영혼의 고독을 존중해야 한다.

또 우리가 남을 구하려 들 때 흔히 범하는 무의식적인 폭력을 피해야 한다. 그 신비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의 삶을 지탱하도록 돕는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리고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우리 자신의 필요를 채워 달라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그런 방식으로 함께 사는 것을 일상생활에서 확인하기란 어렵지만 가능하기는 하다. 나의 경우 병적 우울증을 통한 내 여행에서 확인할 수 있다. 몇몇 사람들이 내 영혼의 순결함을 해치지 않으면서 내게 다가오는 방법을 찾아냈을 때 경험했던 치유의 효과에서 나는 그것을 확인했다.

그들이 나에게 보여 준 행동은 나를 ‘고치거나’ 서로를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나온 게 아니었다. 그러기에 나에게 인간 세상으로 돌아오게 하는 생명의 끈이 되어줄 수 있었다. 그 생명선은 가장 심오한 형태의 리더십을 만들어 냈다. 고통 받는 사람을 죽음 같은 삶에서 다시 삶으로 인도한 것이다.

세 번째로, 우리는 서로에게 두려움이 우리 삶에서 차지하는 지배적인 역할을 상기시켜줄 수 있다. 그리고 우리의 능력을 가로막는 두려움이 어떤 방법을 즐겨 사용하는지도 모두에게 인식시켜줄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전통적인 지혜의 말씀이 두려움을 언급하고 있음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 모든 지혜의 말씀이 인간이 이 오래된 적을 이겨내기 위한 싸움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지혜의 전통은 엄청난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말씀으로 통합된다.

“두려워 말라.”

두려움을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나는 자칫 그 뜻이 왜곡되어 ‘완벽’이라는 기운 빠지는 충고를 만들어내지 않기 위해, 그 말씀들을 주의 깊게 읽었다. 두려워 말라는 말은 두려움을 가져선 안 된다는 뜻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두려움을 갖고 있다. 그리고 내면에서 리더십을 발견한 사람들은 종종 더 많은 두려움에 빠지기도 한다.

이 말이 가진 의미는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두려움에 빠질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두려움의 공간으로부터 리더십을 발휘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하면 오히려 그 때문에 두려움이 증폭되는 세상을 만들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내부에 두려움의 공간을 갖고 있다. 하지만 신뢰와 희망, 믿음이라는 이름을 가진 또 다른 공간들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 공간들 중 하나를 선택해서 거기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우리가 그런 공간들 중 하나에 서 있을 때에도 두려움은 가까이 있고 우리 영혼은 아직도 떨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우리를 지탱해 줄 단단한 땅 위에 서 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시작해서 더 믿을 만하고 더 희망차고 더 충실한 존재의 길로 다른 사람들을 인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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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권력의 폭력성과 시민 저항권의 정당성-강정마을 해군기지건설로 보는 평화학- :: 2011/09/08 22:40

                     국가 권력의 폭력성과 시민 저항권의 정당성

                        - 강정마을 해군기지건설로 보는 평화학⓶-



강제적인 공권력의 투입이 국가 통치에 대한 신뢰를 추락시킨다

강정마을이 결국은 국가권력에 의한 공권력 투입이라는 극단의 조치로 경찰들의 진압작전에 의해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해온 주민들과 이들과 함께 해온 평화활동가들과 시민들 모두를 진압하고 기지건설에 대한 수순을 빠르게 밟고 있다.

그동안 반대측들은 일천명이나 되는 거주주민중 90명이 제대로 홍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찬성후 이를 바탕으로 급조한 계획추진에 대해 한 사전홍보와 주민토론회의 절차적 하자의 문제, 제주도 절대보존지역과 희귀생물에 대한 올바른 환경평가 부족, 기지후보지로서의 적정성과 해군측 주장의 미래에 예측되는 이어도 부근의 해양자원 국유화에 대한 근거리 기지필요성에 대한 설득논리의 부족과 가능한 군사행동의 위험성 등을 지적해왔다. 최근에는 제주도와 해군이 지닌 강정마을 개발에 대한 복합단지건설과 해군기지건설에 대한 계약서상의 목적표기의 중대한 차이 그리고 해양경찰과 해군간의 제주도 영역에 대한 관할권과 미래 예측되는 상황에 대한 대처에 대한 입장의 현격한 입장차이 등이 속속히 드러나면서 졸속과 독단적 강행에 대한 의혹에 강한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여기서 필자가 논하고자 하는 것은 이미 언론에 공개되고 있는 중대한 절차적 하자와 해군기지 건설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을 확인하는 데 있지 않다. 이것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공개된 것이요 실제로 더 심각한 문제는 무소부재한 "공권력"의 남용에 따른 통치 엘리트들의 국가 통치의 신뢰성을 급락시키는 오만과 독선의 관행에 대한 자각의 필요성 때문이다. 실제로 찬성주민들중에는 "국가가 하는 일인데 개인이 뭘 어떻다고 하는 게 정당한 일이냐"는 생각에서 어쩔 수 없이 찬성하였고, 이는 일반 시민들에게 있어서도 암암리에 국가의 정책결정에 대해서는 일반 개인 시민이나 소수 그룹이 반대할 정당성이 없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공권력 행사에 대해 의심하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그러나 경찰의 진압력에 따른 공권력의 무력행사에 기초하여 국가정책이 진행된다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소수 정치특권층의 입맛에 따른 정책실천을 가능하게 하겠지만 결국은 합의안된 정책의 강제 집행은 반(反)- 권력 투쟁에 힘을 보태주면서 국민들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통치권 허약함을 초래하게 된다. 지금의 한국사회는 국론분열과 사회적 갈등이 기층 국민의 생활에서 나온 갈등이 아니라 일방적인 소통부재의 국가정책 강행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상황이다. 다른 예들인 한미FTA, 쇠고기수입개방, 4대강건설, 경상도지역의 공항건설, 부산 한진사태, 수명이 다된 고리원전의 사용기간연장, 그리고 서해안 갯벌지역의 여러 조력댐 건설계획 등은 이명박정권하에서 수많은 갈등을 초래하는 원인을 제공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출과 소통보다는 일방적인 공권력 발동을 통한 문제해결과 돌파를 통해 곳곳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가중되고 있다.

영국과 같은 합리적인 정당정치 풍토가 자리잡지 못한 국내 상황에서, 정치 엘리트들은 선거철에는 국민을 위한 선거공약을 남발은 하지만 정착 뽑아놓고 나면 정작 조직의 논리에 사로잡혀서 국민이 아닌 자신이 소속한 동료문화 속에서 자신의 생각과 활동을 규정한다. 이것은 백성의 안보를 책임지겠다는 군에 있어서도 정착 백성의 안보는 안중에 두지 않은 채, 군조직의 자기논리와 국가안보의 명분에 의해-그것에 대한 명료한 이해와 예측의 자료를 제공하지 않은 채- 군기지 사용영역에 있는 거주주민들은 소거되어야 할 '불법적인 종북좌파세력'으로 규정하여 자신의 목적을 합리화하게 된다. 대추리의 미군기지 이전문제가 그랬고 지금은 제주도 강정마을이 그러하다.

문제는 과거처럼 '국가이익'과 '국가안보'라는 명제만 있으면 국민들이 무조껀 따르는 시대가 아니라는 점이다. 최근의 소셜 네트워크의 급팽창에 의한 정보공유와 평등한 수평적 관계망이 급속도로 퍼져가는 상황은 맹목적인 권위주의와 독단적인 국책결정에 대한 광범위한 불만과 사회심리학적인 불편함이 시민들 사이에 공유되는 것을 빠르게 하고 있다. 희망버스와 희망항공기 등의 사례는 합리적이며 진정성을 갖는 소통의 지도력에 대한 갈증을 예시하고 있다. 이는 최근의 안철수, 박원순 등의 사회적 공공선에 대한 기여자들에 대한 지도자로서의 호감도의 급증에서도 알 수 있다.

필자가 걱정하는 것은 국민의 주권을 위임받은 국가가 소수의 밀실정치에 의해 국가정책이 기획되고 강제적으로 통보되어 강행됨으로써 스스로 국가통치권에 대한 공공의 신뢰를 추락시키는 것이 염려의 수준을 넘어 위기의 수준까지 가고 있어서 참 안타까운 일이기도 하다. 우리가 조선왕조시기를 사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통치권이 국민의 주권에 의한 위임사항이며, 다스리는 권력이 아니라 봉사와 섬김을 위한 권력이 민주주의의 근본 이념이라고 생각해 본다면 현재의 군, 검, 경의 공권력에 주로 의존하는 통치권력의 작동은 군, 경, 법조계의 개혁은 커녕, 힘없는 일반시민을 절벽의 위치로 모는 상황에 대해 극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신뢰와 소통, 그리고 공공합의라는 사회자본(social capital)이 미래 국가 지도력의 중요한 요소이면서도 이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큰 손실을 눈에 보고 있는 점이 안타까운 일인 것이다.

합리적인 정치 이성과 갈등과 상반된 입장을 조율하는 공공영역 기관들의 중재소통 시스템이 부재인 상황에서 공익에 대한 당사자들의 의견표명과 과정으로서 대화절차가 없이 밀어붙이는 국책사업은 그 진실성을 의심받고 결국은 신뢰와 협력의 사회적 기반을 잃게 되면서 국가통치에 부담이 되는 장애물로 역작용하게 된다.


국가권력의 폭력성에 대한 정체는 희생자를 통해 노출이 된다

민주사회에서 국가통치의 정당성은 주권재민에 대한 엘리트 지배집단의 철저한 인식속에서 그 근거와 힘을 얻는다. 대부분의 일반 백성들이 국가권력에 대해 아무런 저항없이 손을 들어주는 것은 그 공공성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국가 정책은 일반 시민들의 상식수준과는 다른 해당 영역의 전문가들의 지적인 합리성에 따른 논의가 있었을 것이라는 기대, 적어도 국가정책 수행은 여러 단계의 안전장치들과 의견수렴의 공정성에 대한 믿음, 개발사업의 공공성에 대한 신뢰, 정치엘리트의 사심없는 투명한 비전과 전문집단과 공무원들에 의한 정책이 가치와 의미에 있어서 퇴보가 아닌 성장으로 이끌 것이라는 희망 등으로 인해 한 개인이나 소수의 그룹들은 국가정책에 대해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무척 힘들어 하도록 우리는 사회화되어 왔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하나의 신화임을 일깨워 주고 시민사회의 권력자에 대한 끊임없는 주의력을 상기시켜 준 것은 미셀 푸코와 부르지외와 같은 지배담론에 대한 사회학자들의 성찰의 덕분이다. 이들은 지식은 권력에 의해 생산되어지고 권력과 지식간의 상생관계가 있음을 증명해 주었다. 곧, 지식인들의 권력에 대한 공모와 권력은 지식과 진리를 생산해 낸다는 것이다. 그리고 밀그람에 의한 권위에 대한 복종실험("밀그람 시험"은 가운 입은 자(권위자, 전문가, 국가권력 등을 상징)가 옆에 있을 때 일반 시민은 피해자에게 가운 입은 자에 지시에 따라 얼마나 충실하게 상대방의 고통에 관계치 않고 지시를 기대이상으로 잘 수행하는 가를 보여준다. [사회심리학에 대한 유명한 과학실험으로서 밀그람 실험(The Milgram Experiment)은 예일대학의 심리학자인 스탠리 밀그람의 논문 “복종의 행태연구”에서 최초로 묘사되고, 이어 1963년 “비정상과 사회심리학 잡지”에 출판되었고 후에 1974년 “권위에 대한 복종: 실험적 견해”라는 책에서 정리 요약되었다. 그것은 참여자의 개인적 양심과 갈등을 일으키는 어떤 것을 행하도록 참여자를 지시하는 당국에 복종하려는 참여자의 의욕을 측정하는 데 사용된다. 참고: http://www.ecopeace.pe.kr/entry/촛불정국과-권위에-대한-불복종-밀그람-실험의-예로-보는-교훈]

푸꼬와 부르지외의 지배담론의 고찰 그리고 밀그람의 실험은 우리의 정치 담론과 지식에 대한 정보, 그리고 사회적 공공 담론 등이 중립적인 진공지대에서 생산되는 것이 아니며, 일반적인 공공담론과 국가적 공론속에 지배자/정치적 힘의 소지자들의 굴절된 의중과 이를 미리 알아서 실천하는 지식을 생산하는 기관과 기구들이 미리 이들의 의중을 알아서 시행하는 컨넥션이 작동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공공담론으로서 국가정책에 대한 발표와 그 시행은 누구의 이득을 숨기고 있는 지 그리고 누가 그 이득의 향유자인지를 언급된 공공담론뒤의 실제 의중을 읽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정치공학적 논리와 이데올로기를 통해 이른 바 "공권력의 집행"과 "불법행위 엄단"의 용어들은 지배권력의 실행에 있어 거론되는 전형적인 패턴이다. 여기서 진행되는 사회드라마의 연기자들은 지배권력자의 지시와 그것의 대행자인 군, 검, 경의 일사분란한 의사결정과 집행에 관여한다. 여기서 이들이 규정하는 '불법 집회자" 혹은 "혼란 선동자" 심지어 최근에 나온 "종북좌파"의 부류는 아무런 사회적 지위가 없는 백성중의 한 무리들이라는 것이다. 국가권력에 의해 위험인물로 설정된 이들은 사실상 그다지 사회적 지위가 없을수록 지배권력이 이들에 대해 이름을 붙인 그 힘은 파괴력을 더하게 된다. 그들의 익명성은 위험인물로 소개함에 있어서 좋은 수단이 된다. 또한 특수한 한국의 경우로서 전쟁이 미친 사회심리적인 굴절로 인해 기존 체제의 관점에 속하지 않은 지성인이나 특정 유명인사의 경우에는 손쉽게 친북(종북)좌파 부류로 명명하기(Naming)를 통해 그들을 위험인물로서 마녀사냥감에 해당하는 정당성을 부여하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과거의 친일행적이나 식민지배를 통한 특권의 향유에 대한 어두운 과거는 자연스럽게 망각될 수 있었다.

지배권력에 의한 "위험한 인물/그룹"으로의 조작되어지는 일반 백성중 소수층은 구조적인 폭력을 통해 자연히 희생자(victim)로 전락하게 된다. 그들의 목소리는 잊혀지고, 그들의 존재는 왜곡의 변형과정을 통해 사회로부터 '낯선자' 혹은 '위험한 자' 더나아가서는 '적-이미지'로 대상화되어진다. 이들의 사회적 지위의 낮음과 익명성은 지배권력의 강제적 실행에 안전장치를 풀어 버린다. 이들은 국가내에 거주하고 있어서 이제는 보호받지 못하는 아웃사이더로 취급되고 국가가 이들에게 가하는 강제집행은 이들 아웃사이더들에 대해 법적인 정당성 -불법적인 소요를 일으킨 자-을 갖게 되면서 자기 논리를 합리화 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권력의 지배논리과 그 실행이 지닌 폭력성을 드러내 주는 것은 바로 다름아닌 이들 희생자의 존재를 통해서이다. "non-person"으로 그리고 "국민으로 국가에 의해 보호받지 못한 불법적 시민"으로 취급되는 이들 익명의 시민 세력/주민들의 희생화는 바로 국가 권력의 폭력성과 그 심도를 거꾸로 뒤집어서 볼 수 있게 해 주는 바로미터가 된다. 그것은 바로 태평양 전쟁에 있어서 위안부들과 일본의 광산에 끌려간 이들의 희생으로 인해 일본제국주의의 야만성과 한국정부의 무관심에 의한 자국민 보호에 대한 아무런 법적 조처를 취하지 않는 국가권력의 폭력성이 드러나는 예와 같다.

역사에 있어서 침묵을 강요당한 희생자들의 소리없음은 사실의 은폐를 넘어 국가권력의 한계와 그 권력의 오용과 태만에 의한 폭력성을 무엇보다 강하게 증언하는 표시가 된다. 용산참사나 뉴타운개발에 의한 현지 전세자들의 소리없는 그 지역에서의 '사라짐'과 '소리없음'은 거꾸로 권력의 기만성을 드러내는 바로미터로서 우리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윤리적 민감성을 촉구한다. 이들 사회적 약자의 침묵과 사라짐은 거꾸로 국가권력의 명목적인 국가이익과 국가안보의 가면뒤에 있는 실제 진면목의 리얼리티를 깨닫게 해주는 지시자가 된다. 따라서 아무리 "로마의 평화(Pax Romana)," "팍스 아메리카," "한강의 기적" "해양대강국"와 같은 화려한 수사학(rhetoric)을 통한 부국강병의 논리뒤에는 권력자의 특정한 이득실현을 위해 공공담론이 남용되고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이를 위해 누가 희생되고 있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국민다수를 위한 명목하에 특정 그룹의 이익이 숨어져 있고, 이에 반하여 설득과 동의없이 약자의 희생을 강제하는 상황은 국민의 자유권의 보호를 책임지어야 할 국가 권력의 오용이자 국가폭력으로서 저항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 그리고 시민사회영역은 개인과 소수자들이 그러한 희생에 놓여있을 때 연대할 책임이 민주사회에 있으며, 이것이 그 민주사회의 건강성과 사회적 합의 과정을 강화시키는 토대를 주게 된다.


인간의 존엄성과 양심의 자유는 그 어떤 국가 권력보다 위에 있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아주 간단한 윤리적 원칙은 인간이란 결코 단순히 수단으로 간주되어서는 안되고 언제나 그 자체로서 목적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민주정치질서는 모든 사람의 자유의 실현의 형식을 강화해야 하며, 개인의 권리가 의견을 달리 하는 사람들에게도 주어져서 자신을 표명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러한 개인의 존엄성속에는 내적인 최고 권위로서 양심의 무제한적인 명령에 대한 수행속에서 보여진다.

소크라테스는 도시국가의 지배층의 정치적 권력과의 갈등속에서 국가에 대한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며 재판장에게 "나는 그대들보다는 신에게 복종하겠노라"고 말함으로서 국가의 개인에 대한 강제의 한계를 주장한다. 이러한 개인의 양심의 이유로 인해 국가의 불의에 대한 저항은 1648년 베스트팔렌의 평화조약에서 처음으로 양심의 자유가 비록 기독교인에게만 이었지만 보장되기 시작한다. 양심의 자유는 법질서와 개인 양심에서 경험되는 구속력 사이에서 자신의 자유의 공간을 지키며 이는 독일연방공화국의 기본법 제 4조 1항이 어떤 제약도 없이 양심의 자유는 침해될 수 없는 것으로 선언되고 있는 사례에서 볼 수 있다.

강정마을 주민들의 오래된 자기 고향에서 자신들의 선조의 이야기와 고향의 이야기를 지키며 거기서 그대로 살고 미래에 태어날 자신의 후손과 자연에 대한 훼손에 반대하는 데 있어 평화활동가들이 동참하는 것은 양심의 부름에 대한 자발적인 자기표현에 따른다. 이는 국가권력의 합법성보다는 개인의 양심의 부름이 요구하는 보편적 진리성(자유실현, 폭력제거, 가난의 극복 등에 관한 초이성적 부름)과 사회적 자아가 본래적 자아의 요청에 의해 분리된 가치와 의미에 대한 통합성 그리고 국가 프로젝트가 훼손한 공평성에 대한 우선적 선택이 이런 행동을 유발하는 것이다.

이러한 보편적 진리성, 통합성 그리고 공평성에 기초한 "양심의 자유"로부터의 부름이 국가 권력에 대한 저항의 길을 열고, 이는 또한 목소리 없고 삶의 공간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 상실된 미래후손의 세대와 현재의 생태적 타자들을 위한 의사결정의 사회적 대리인으로서 강정마을에 활동가들과 뜻을 같이 하는 시민들이 함께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전후 독일 전범자들에 대한 국제재판에 있어서 한 국가의 헌법에 따라 공무원이나 군인으로서 명령을 수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보편적 양심에 대한 위배를 근거로 합법적 행위위에 인간으로서 보편적 양심의 우선성에 손을 들어주고 전범자들에게 형을 내릴 수 있었던 근거이기도 하다. 즉, 국가 헌법은 개인의 양심 위에 서지 못하며, 또한 현대 헌법은 국가가 개인이 자신의 양심을 통해 헌법에 도전할 수 있는 여지를 주게 되는 것이 현대 민주사회의 헌법정신이기도 하다.

강정마을의 해군기지건설에 국가의 시민으로서 반대할 수 있는 권리는 바로 이러한 양심의 권위에 근거한 저항권에 기초한다. 이미 강정마을에서의 해군기지건설 문제는 절차적인 중대한 하자, 건설목적의 이중성과 모호성 그리고 실익에 대한 객관적 근거의 부족, 냉전논리에 따른 보수적 이데올로기의 일방적인 정당성 주장, 미래의 동북아에서 군사적 갈등증폭에 대한 가능성과 그 위험의 증가, 국익 명목하에 토건세력과 엘리트 군인들간의 기득권의 확대, 생태적 파괴 등의 이슈들이 그 건설 시행의 합법성과 정당성을 심각히 훼손하였다. 뿐만 아니라 필자가 제시하였듯이 자유 실현, 폭력 제거, 가난 극복이라는 공공성이 국가 권력에 의해 답보가 안되고 오히려 국가권력이 자신의 힘을 오용하는 경우에는 양심의 자유에 근거한 시민의 저항권이 발동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진술하였다.

이러한 저항이 오히려 국가의 민주성과 공공적 책임성 그리고 의사결정의 합리성을 강화시킴으로서 국가의 민주적 통치력을 강하게 만들게 된다. 따라서 국가 권력의 중심에 있는 소수 정치 권력자들과 이를 시스템으로 뒷받침하는 자리에 있는 공공기관들 책임자들, 특히 경찰과 검찰은 국가가 국민적 합의 없이 추진하고 있는 개발 프로젝트에 대한 반대자들을 "종북좌파"나 "불순세력"으로 매도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화에 나서서 협상과 소통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적어도 반대하는 시민들이 강정마을에 모이는 것은 최소한 자기 이득과는 전혀 거리가 먼 생태적 타자와 강정 주민의 고통 그리고 같이 겪게 될 미래 세대의 자유 제한과 두려움에 대한 염려와 환경의 보전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대한 순수한 결단이라는 점에서 통치권자들은 삼가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201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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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08 22:40 2011/09/08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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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이커영성에 따른 내면돌보기 평화서클 -"마음비추기"- 소개 워크숍 안내 :: 2011/07/21 21:34


퀘이커의 영성인 모든 인간에 고유한 "내면의 스승" (혹은 신성한 빛)에 따라 자신의 본질적 자아와 능력을 부여받고
열린 정직한 질문과  공감의 신뢰의 서클을 통해 자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도록 돕는 데 강력한 체험을 주는 "마음비추기 피정"모델에 대한 소개워크숍이 아래와 같이 열린다. 이는 한국에 도입된 퀘이커 평화훈련 모델인 "삶을 변혁시키는 평화훈련(AVP: Alternatives to Violence Project)"와 더불어 참가자들에게 자기발견적 경험모델을 제공한다.
원래 퀘이커 교육사상가이자 평화실천가인 파커 파머의 CTT(Courage to Teach)모델을 도입한 모델로서 CTT와는 한국에서 진행되는 내용에 대한 자문을 받고 있다. AVP가 관계속에서 활동과 성찰을 중심으로 한 역동적인 모델이라면 마음비추기 피정은 관계와 홀로의 침묵과 성찰을 통해 내면에 힘을 부여하는(empowerment) 모델이다.  다음은 마음비추기 피정의 소개 워크숍 공고문이다. (박성용)  






영혼과 역할의 통합을 추구하는 ‘마음비추기’ 소개피정이 열립니다~!

숨가쁜 일상에서 벗어나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이는 피정이 열립니다.

각자의 생활과 직무를 돌아보면서 영성의 뿌리를 탐색하는 자리입니다.

매년 가을에 시작되어 계절을 따라 네 차례 이어지는 본피정을 앞두고

이를 개괄적으로 소개하고 경험하는 단기 피정입니다.


누구에게나 자아를 이끌어가는 '내면의 교사'가 있습니다.

그 안내자를 만남으로써 우리는 온전한 자아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안과 바깥이 이어지면서 통합되는 삶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 기반 위에서 우리는 가르칠 수 있는 용기를 회복해갈 것입니다.


가르치는 일에 종사하시는 분, 자녀를 키우는 부모, 사회의 변화를 꾀하는 활동가

자기 안에 이런저런 분리를 넘어서고자 하는 분들은 누구나 환영합니다.

새로운 존재의 탄생을 열망하는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제 목 : 내 삶의 여정, 안과 밖이 만나다

일 시 : 2011년 8월 6(토)-7(일) 1박2일

장 소 : 서울 가회동 노틀담교육관

참가신청 : 7월20일까지(25명 내외)

참 가 비 : 12만원

참가문의 : 전화 (02-756-5669)

‘우리들의 마음비추기(Gardening People's Heart)' 피정 진행팀 메일 및 블로그

teachersheart@hanmail.net/ innerteacher@naver.com

http://blog.naver.com/innerteacher (참가신청서 다운, 작성후 메일로 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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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21 21:34 2011/07/21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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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여름 평화훈련 국제 워크숍 (NARPI) 참가 신청 안내 :: 2011/05/31 15:57

평화훈련 국제 워크숍 안내

동북아의 평화교육기관과 평화훈련단체들이 평화활동가 양성의 필요성을 인식하여 지난 3년간 실행타당성관련 국제실무회의를 하고서 금년 여름에 공식적인 훈련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되어서 관심있는 분들의 참여를 바람니다. 한국에서는 남북평화재단, 비폭력평화물결, 개척자들, KAC 등의 여러 단체들이 이 프로그램에 후원단체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것은 아래에 공지되어 있는 내용을 참조해 주시고 6개 코스중 주당 1 코스(5일간 집중 코스)를 선택하시면 됩니다. 내용은 영어로 진행되며 재정 지원이 필요한 분에게는 장학금 신청서(참가 신청과 장학금 신청서 마감일은 지났어도 한국인 참가자에게는 아직 여유가 있읍니다)를 아래 주소로 보내주시고 장학신청자는 비폭력평화물결(02-312-1678)에 연락을 주시면 상담후 도움의 길을 찾아드리겠습니다(정해진 인원수내에서 신청자순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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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31 15:57 2011/05/31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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