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갈퉁관련 일본 트렌센드및 동북아갈등해결센터 주최 평화훈련 워크숍이 열려 :: 2010/08/27 17:33

 

요한갈퉁관련 일본 트렌센드 및 동북아갈등해결센터 주최 평화훈련 워크숍이 열려


                                                        박성용 비폭력평화물결대표

                                                               남북평화연구소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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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갈퉁과 아시아 평화활동가들; 활동가들과 함께 워크숍인도하는 갈퉁; 통역하는 갈퉁과 그의 아내)

평화학자 요한 갈퉁을 중심으로 무력분쟁과 갈등에 대한 해결을 모색하는 평화활동가 모임인 Transcend의 일본지부와 동북아에서의 갈등해결과 평화구축의 훈련을 위해 새로 출범하는 NARPI(North-East Regional Peace Instititue)가 주관하는 평화훈련 워크숍이 일본 히로시마 평화공원에서 멀지 않은 아스터 프라자에서 "Transcend Japan Trainers Training & NARPI Pilot Project"란 이름으로 8월 20일부터 24일까지 열렸다.


이 워크숍은 매년 요한갈퉁이 자문하고 있는 갈등해결 모델인 TRANSCEND의 일본지부(10년전에 발족하여 매년 2회 정기 발간의 Transcend 잡지를 발간한다)와 2011년 한국에서 열릴 필리핀의 Mindanao Peacebuilding Institute의 모델처럼 동북아에서 현장 평화활동가와 평화교육자를 양성할 목표로 4년전부터 꿈꾸워온 NARPI의 훈련 모델의 사전 점검 성격으로 열렸다. NARPI는 운영위원(governing board members)들로 있는 비폭력평화물결(NPC), 한국아나뱁티스트센터, 그리고 일본의 각지에서 온 트렌센드 재팬, 피스보트, 비폭력평화대(NPJ), 월드후렌드쉽센터의 소속 실무자들과 회원들 그리고 대만/홍콩에서 대표자들 등 30여명의 워크숍 참석과 요한 갈퉁의 공개 강연회 등으로 진행되었다.


이번 워크숍의 특징은 몇 가지로 그 중요성이 요약될 수 있다. 첫째는 한국에서 평화활동가연차모임에서 시발되고, 기독교평화아카데미에서 구체적인 제안이 있어 3년 전부터 준비해오고 캐나다 메노나이트중앙위원회의 재정지원으로 가시화 되어가는 NARPI의 공식적인 출범과 공포 그리고 이에 관련한 회원단체들의 연대를 통한 훈련모델들의 실습이었다. 같은 소속과 회원이란 특징으로 인해 워크숍은 따스한 분위기와 실제적이고 실천적인 훈련에 대한 모델들의 실습에 긍정적인 평가를 얻었다.


둘째는 일본의 TRANSCEND와 비폭력평화대가 이끄는 모임에서 대학생들 등의 젊은 참여자들이 전체 참여의 반이상을 차지해서 그동안 시니어 그룹으로 있던 일본 평화활동가들의 모임에 상당한 앞으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이들 젊은이들은 나름의 다양한 전문적인 대학과정을 밟고 있으나 평화교육과 훈련에 대해 공통적인 관심을 갖고 있고 때마침 일본 교토대학에서 열린 "일본교육학회 제 69차 대회"에서 교육과 평화구축 분과가 활발하게 TRANSCEND 모델을 근거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트렌센드 모임은 'SABANA'란 이름으로 일상에서 갈등해결에 대한 접근을 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어서 트렌센드가 더욱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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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RPI  워크숍의 모습)

공개강연에서 요한갈퉁은 화해(reconciliation)의 문제와 현재 TRNACEND의 존재이유와 방향 그리고 현재 일어나고 있는 주요활동들에 대한 세계 권역별 활동들에 대해 두 번에 걸쳐 강연이 있었다. 주 내용은 무장갈등을 겪고 있는 나라들의 주요 특징들의 분석과 갈등해결 방향에 대해 구체적인 사례들을 언급하였다. 여기서 현재 평화활동가들의 열정과 국가 혹은 거리의 갱(gang)에 대한 저항은 있지만 대안적인 해결의 전략과 갈등분석 이론의 부재에 대해, 반대로 갈등지역의 정부측에서 하는 막대한 재정이 들어가는 갈등해결 프로젝트의 분석은 있지만 해결의 진정한 열정과 조직적인 시스템 작동이 없는 것에 대해 비판을 하였다.     

평화활동은 갈등과 분쟁에 대한 과거, 현재, 미래의 통전적인 접근이며, 이는 과거의 문제에 대한 해결로서 화해(reconciliation) 현재의 긴장에 대한 중재(mediation), 미래의 건설적 해결을 위한 창조성/상상력(creativity)를 요구하는 문제해결형 (solution-oriented) 태도와 기술을 요구한다고 주장한다.


동북아의 평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화해작업의 문제는 앞으로 나올 트렌센드의 "화해"라는 책에서 전략과 그 방법들 12가지 모형이 다루어질 것이지만 약탈자와 피해자들이 같이 할 수 있는 입장(position)이 아닌 관심(interest)에 집중하여 대화를 통해 창조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아공의 진실화해위원회의 작업처럼 1) 역사를 탐구하고, 2)textbook을 바꾸며 3)함께 미래를 위해 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있는가를 살펴야 한다. 여기에는 상호이익(mutual benefits)과 동등한 이익(equal benefits)의 원칙이 준수되어야 승/승하는 전략적 해결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상호 다른 입장과 역사적 이해를 갖고 있는 갈등의 모순상황(contradiction)에서 진정으로 평화활동가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꿈꾸기(Dreaming)와 비전형성하기(envisioning)이다. 이것이 궁극적인 힘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가 현재 주요 국제평화활동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충분히 꿈꾸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갈등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고, 주로 "저항 against"에 있지, "대안 alternatives"에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특히 제국의 지배가 강한 동북아에서 화해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지만 Dream/hope-> Dialogue-> (Cooperative) Project의 과정을 밟는 작은 건설적 모임 (오키나와, 히로시마의 평화공동체 활동)들은 한 가능성을 열 수 있다. 규모가 크고 많는 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미래에 무엇을 당신은 보고자 하는가?"에 대한 상을 그려내고 그 상이 사람들에게 말하는 전략적 방법들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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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갈퉁의 80세 생일 축하)

작금의 평화교육/훈련 들이 사회적 변혁을 담보하지 못하는 찻잔속의 태풍이 안 되려면 과거, 현재, 미래를 위한 해결의 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 그것이 각각 화해, 중재 그리고 창조적 꿈꾸기이다. 이를 위해서는 1) 창조적일 것 Be creative, 2) 모임을 주선하기 call to meet, 3) 미래를 위한 좀더 많은 모임 갖기 more meetings for the future, 4) 관계를 형성하기 building of relationship 마지막으로 건설적인 대화 constructive discussion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깊은 이해에 기반한 충분한 대화 그리고 창조적인 해결전략은 트렌센드의 기본적인 갈등해결 이론이다. 일본의 평화운동의 예에서 보듯이 창조적이고 건설적인 해결중심..     


히로시마의 핵무기 피해와 "히바꾸샤"(핵피해자들)와 관련하여 미국의 '인종학살 genocide'(죄없는 어린이와 여성의 학살의 의미에서)로 표현한 갈퉁은 현재 핵의 문제는 '핵 무기 nuclear weapons'의 공격이 아니라 신학적 공격이라는 대담한 제안을 한다. '강성 기독교 hard Christianity'의 멘탈리티를 지닌 미국 보수계는 히로시마 핵투하에서 '하늘에는 구름이 없다'는 미폭격기 조종사들의 메시지에 관련하여 "일본을 처벌하는 하나님의 메신저"로 보고 있으며 일본의 진주만 습격의 하늘의 메시지인 "도라도라도라"도 이와 비슷하다고 한다. 이슬람과 일본 神道등의 정치적 영향들에 대한 사례들을 열거하면서, 하늘(신이 거주하는 곳)에서 '낙하하는 하나님 falling God'의 문제로서 핵문제는 군사적 무기의 문제가 아니라 문명적인 문제로 접근한다는 것은 우리 문명, 우리 종교, 우리 가치신념이 궁극적으로 강성 신념자들에 의해 제국주의, 국가주의 등의 무기가 되고 있다는 철저한 반성 (처벌적 정의의 실천의 수단으로서 핵무기 전쟁)을 통해 심층이해와 대화라는 대안을-아무리 고통스럽고  갈퉁은 요청하고 있다.


이번 워크숍을 통해 NARPI 주요 실무책임자들과의 모임을 통해 다음과 같은 몇가지 사업들을 구상하고 이를 구체적으로 진행하기로 하였다. 첫째는 2011년 8월 16일부터 2주간 하워드 제어(Haward Zehr)등의 진행자들을 초청하여 갈등전환, 회복적 정의, 평화훈련등의 내용으로 활동가훈련 코스를 2주간 진행하기로 하고 이를 10월 말 일본의 피스보트 운행기간(요코하마~홍콩)중에 모여 구체적인 내용을 최종 결정하며, 피스보트 탑승자들에 대한 평화워크숍을 진행한다. 그리고 내년 4월에는 대만에서 지역 NGO들과 함께 평화워크숍을 진행하기로 한다. 둘째, 2012년 8월에 히로시마에서 열릴 예정인 NARPI 2차 훈련코스와 TRANSCEND 국제회의 즈음에 일부 전문가를 한국으로 미리 와서 한국에서 평화훈련 워크숍을 진행하고 일본으로 가도록 구상한다. 한국에서 "회복적정의 시민단체 네트워크"의 12월 회복적 정의 전문진행자 양성 워크숍과 회복적 정의/실천의 한국사회 역량강화를 위해 NARPI내에 회복적 정의문제를 지속적으로 진행하는 분과를 두며, 책들을 출판하는 데 NARPI 한국모임과 비폭력평화물결이 지도력을 갖는다.


위의 회의 결과들을 통해 얻어진 내용들에 따라 앞으로 비폭력평화물결 그리고 남북평화연구소의 방향은 청소년훈련센터에 관련된 평화와 비폭력에 관련된 평화교육진영의 활성화, "삶을 변혁시키는 새로운 평화훈련"(AVP)의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발전, 회복적 정의/실천 진영의 활동강화라는 세 토대 진영들의 활성화에 좀더 집중하는 방향으로 앞으로 2~3년간의 실천과제들이 설정될 필요가 있게 되었다. 이를 위해 각 훈련 모델 진영들은 서로 투명하고, 지도력을 나누며, 실제적인 적용에 초점을 두고 서로에 힘을 주는 여러 '배움 공동체(learning community)'로 구조를 갖고 나아갈 수 있도록 방향을 갖게 된다. 운동은 있는 데 성찰과 기술이 부족하다면 쉽사리 에너지가 소진될 뿐만 아니라 폭력에 대항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핵심역량의 부재하에서는 어떤 전문가의 전망도 실질적인 변혁을 가져오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를 위해 수개월 이내에 훈련가 양성 연수 모임 "training of trainers"을 몇몇 단체들과 계획하고 이를 통해 좀더 구체적인 방향을 모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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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7 17:33 2010/08/27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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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변혁시키는 평화훈련 AVP 입문워크숍(8/12-14) 안내 :: 2010/07/16 11:37

                

삶을 변혁시키는 평화훈련
(Alternatives to Violence Project: AVP)
워크숍 안내


종교계, 공동체, 학교(방과후 아동센터 등 포함), 교도소 등에 실제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평화 교육 프로그램이자 전문 진행자로서의 길을 열어드리는 "삶을  변혁시키는 평화훈련 AVP" 입문 과정 -금년은 마지막 입문과정임-이 다음과 같이 열립니다.  75년에 퀘이커로부터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성인용도 있지만 앞으로 수개월이내 나올 청소년 AVP워크숍 매뉴얼도 있습니다. 이프로그램 과정을 마치신 활동가(진행자)들을 위해 한국 AVP 활동가 모임과 비폭력평화물결에서는 앞으로 종교계나 (대안)학교, 교정복지 등에서 전문 전문진행자로 활동하실 여러 길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매우 실제적이고, 무엇보다 본 프로그램의 핵심인 "변혁시키는 힘 transforming power" (기독교 용어로는 성령이나 내면의 신성한 빛/에너지로도 번역할 수 있음)에 대한 감각을 체험하면서 자기 삶에 변화가 일어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귀중한 통찰과 도구를 제공합니다.  이 워크숍의 진행자가 되면 또한 회복적 정의/실천과 관련된 다른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와 수용 및 변형이 더욱 자유로워지고 풍성해집니다.


자신의 본질적인 삶에 대한 영적인 갈망과 폭력적인 상황에서 비폭력적인 해결에 관심있는 분들 그리고 신뢰의 서클이나 공동체적 분위기를 형성하는 길에 고민하시는 분, 또는 앞으로 어떤 그룹이나 아이들을 지도할 현장의 활동가나 교사로 의욕을 가지신 분들께 적극 권합니다.  참여형 워크숍이어서 15명 내외의 참가자를 받고 있어서 선착순으로 등록을 받고 있습니다.

더 자세한 것에 대한 궁금증은 사무실로 문의 바랍니다.



삶을 변혁시키는 평화훈련 AVP

(Alternatives to Violence Project)

입문워크숍


● 일시 : 2010년 8월 12일(목) 오후 2시45분- 14일(토)오후 5시

● 장소 : 인천 금잔디 수녀원(자세한 안내는 추후 다시 공지합니다)

● 대상 : 평화에 관심있는 성인 누구나

● 주제 : 체험을 통한 배움으로 삶을 변혁시키는 평화훈련(AVP)

Alternatives to Violence Project Basic workshop(Level one; 입문워크숍)

● 주최 : AVP한국활동가모임

● 참가인원 : 15명내외

● 참가비 : 20만원 (대안학교 교사는 일부 장학금 제공)


● 내용 : AVP 입문 워크숍은 3일간의 체험을 통한 배움으로 단계별로 개인 간의 갈등 해결을 제공한다. 소그룹과 일대일 상호활동을 통한 이들 경험은 실습을 통해 다음에 기초한 공동체와 신뢰의 감각을 구축한다.

1. 일상 속에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일들을 순간적으로 선택하고 결정해야 한다. 그중에는 겉으로 혹은 숨겨진 크고 작은 폭력들과도 만나게 된다. 각 사람의 지각력, 의사소통의 여지, 갈등 해소의 능력과 감정의 높낮이에 따라 순간적으로 반응 하게 되고 많은 경우 상처와 후회가 따른다. 프로젝트 목적중의 하나는 모든 참석자들이 폭력과 갈등을 해소하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함께 모색하는 연습을 통해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변화시키는 힘 Transforming Power>에 의해 평화로운 방법을 선택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이다. 내용과 과제는 매우 진지하지만 그 과정은 즐거움과 자발성을 도입한다.

 2. 워크숍은 책상 없이 원으로 의자를 놓고 앉아서 진행되며 모든 참석자의 능동적 참여로 과제가 주어지고 혼자, 파트너별, 소그룹별 표현, 만들기, 역할극, 침묵, 놀이와 웃음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진행되며 주제는 진지하지만 과정은 즐거운 방법들이 도입되고 자발적이고 평화로운 수단으로 결단하는 과정을 체험하게 된다.

3. 지금까지 한국에 소개된 기존의 갈등해결 방법론이 주로 피교육자가 갈등의 정의, 각 소주제영역에서의 그 지식과 기술을 알아가는 내용중심형과는 달리 AVP 프로그램은 사전에 내용에 대한 숙지보다 이미 자신이 가진 고민과 욕구를 근거로 주체가 되어 서로의 자원으로부터 그 힘을 끌어내어 연결시키는 경험적인 과정중심형 방법론을 제안한다. 이는 재소자, 폭력희생자, 갈등당사자들의 경험의 눈높이로부터 자발적인 에너지를 끌어내는 독특한 방식으로 강력한 변혁의 힘과 지원공동체를 만들어내게 된다.


● 일정안내(상황에 따라 변동될 수 있습니다)

12일(목)

13일(금)

14일(토)

07:00 - 08:00

오리엔테이션

아침식사

아침식사

08:00 - 09:00

휴식 및 산책

휴식 및 산책

09:00 - 12:00

SEC 3

SEC 6

12:00 - 14:00

점심식사 및 휴식

점심식사 및 휴식

14:00 - 18:00

SEC 1

SEC 4

SEC 7

18:00 - 19:00

저녁식사

저녁식사

19:00 - 21:00

SEC 2

SEC5

21:00 - 22:00

만남의 시간

만남의 시간

22:00

취침

취침



 참가신청서 다운로드:  http://cafe.daum.net/avp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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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6 11:37 2010/07/16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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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전쟁에 대한 작은 실천- 작은 희망의 징조들 :: 2010/07/15 09:50

                                작은 희망의 징조들

4월에 우리는 프랑스에서는 해바라기를 볼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해바라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역의 농부들은 이미 수천 개의 씨앗들을 심어왔고, 그들이 아무것도 없는 맨 언덕을 볼 때도 이미 해바라기들을 볼 수 있었다. 해바라기들은 거기 있다. 그들은 단지 태양, 열, 비 그리고 7월의 조건만을 결여할 뿐이다. 단지 우리가 그들을 볼 수 없다는 것 때문에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 틱낫한, 살아있는 붓다, 살아있는 그리스도-



희망의 징조는 해바라기의 연약하고, 놀라게 하는 작은 씨앗과 같다. 내가 평화의 문화에 대한 씨앗을 볼 때 이미 전쟁 지대의 사막에서조차 일어서 올라오는 녹색의 발아들을 본다.

국제 관계에 있어 시민사회의 점증하는 영향력은 희망의 주요 징조이지만 내 삶의 대부분은 유엔의 무거운 분위기가 아니라 매일의 일상사의 작은 영역에서 보낸다. 희망의 징조들 모두는 평화의 문화에 대한 작은 표현들에서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시민사회의 공공의 목소리는 수천 개의 활동에 기초한다. 각각은 틱낫한의 해바라기처럼 작고 결과가 없는 것처럼 외형적으로는 보인다. 각 행동은 우리가 우리 사회로 하여금 갈등의 도전에 대응하기 원하는 방식을 형상화하는 존중, 돌봄 그리고 협력의 습관들을 형성한다.

소수의 해바라기들

빅토리아라는 내 고향마을에는 작은 한 학교의 교장선생님이 아침에 가두에 서서 아이들이 도착할 때 그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환영하고 있었다. 전체 스텝들은 어떻게 학교를 환영의 공간으로 만들 것인지에 있어서 훈련을 받았다. 여러 다른 학교에서 아이들은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한 소녀들을 위한 학교를 위해 후원금을 모금하고 있었고 우간다에 있는 학교와 미술품을 교환하교 있었다.

비록 교회 출석은 캐나다에 있어서 계속적으로 낮아지고 있었지만 교회의 사회 행동과 봉사에 대한 투자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었다. 교회들은 일요일에는 차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주중 밤에는 사람으로 차고 그 때는 집없는 이들이 추위로부터 와서 식사를 대접받고 쉼터로 있게 된다. 교회들은 베트남 징병 모집자들이 70년대에 했던 것처럼 캐나다에 오는 미국 군대 저항자들 주변에 모이고 있다. 성소 운동 (the sancturary movement)은 미국이 징병을 회복시키는 경우를 위해 대비하고 있었다.

토론토는 "아기를 위한 소년들(Boys for Babies)"라고 불리우는 6학년 소년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다. 각 교실은 1달에 한 번 교실에 오는 2살 이하의 영아가 소개되어진다. 학생들은 여러 달 동안 아기의 성장과 발달을 다룬다. 그들은 아이들의 어휘, 음식, 그리고 이정표들의 입장에서 무엇을 기대할 것인지 배운다. 교실에 대한 요구는 너무 커서 교사들은 아기가 있는 자원 부모를 충분히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지니고 있다.

한 뉴욕 택시 운전수인 호삼 압달라의 이야기는 2005년 8월에 세계적인 뉴스가 되었다. 30살인 이 분은 택시 트렁크에 놓고 내린 한 유대 상인에게 200,000달러 가치가 있는 다이아몬드로 채워진 자루를 돌려주었다. 압달라는 기자들에게 최고로 좋은 부분은 그의 아버지가 좋은 무슬림으로서 기대된 정직한 행동을 한 것에 대해 그에 대해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고 말하였다.

용서 프로젝트 Forgiveness Project는 가슴에 증오를 심지 않기로 선택 하지만 끔찍한 잘못을 용서할 능력을 발견하기를 시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대한 웹사이트이다. 영국의 한 국회의원인 안토니 베리 경은 1984년 아일랜드공화군(IRA)가 영국 브링톤에서 보수 당 당원대회를 주최하는 호텔을 폭파했을 때 살해되었다. 조는 보이지 않는 적을 비난하는 것을 멈추기로 선택하고 2000년에 그녀는 자신의 남편을 죽인 남자인 패트릭 맥기를 만나는 치유의 여행을 시작했다. 그들은 세 시간 대화했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기 위해 있는 노력을 다했다. 둘 다 지금은 아일랜드가 "고뇌기"라고 부르는 시기로부터 사람들이 자신의 고통을 통해 작업하도록 돕는 프로젝트에 관여하였다. 그들의 이야기가 용서 프로젝트 웹사이트에 있다.

관대함, 정직, 자비 그리고 유머라는 이러한 행동들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은 정글이라고 믿게 하는 폭력, 분노 그리고 두려움의 이미지에 반대한다. 친절함이란 행동 모두가 보고된다면 우리는 아마도 세상은 정글로서가 아니라 우리를 양육하고 쉼터를 주는 열대림으로서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어린이들에게 그들이 존중받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당신의 신앙을 가난한 자와 불이득을 당하는 이들을 돕기 위한 줄서기에 놓기, 고정관념을 깨기, 정직하기 그리고 웃을 때를 알기는 우리가 매일의 삶에서 우리가 심는 씨앗들이며 그것들이 희망의 추수를 가져오게 된다.

적을 비난하고 비인간화하는 데서 우리의 마음은 닫혀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인간서의 일부를 잃으며 우리는 문제의 부분이 된다. -Jo Berry-

용서 프로젝트 Forgiveness Project: www.theforgivenessproject.com


("흘린 피로 충분하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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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5 09:50 2010/07/15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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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 대한 예수의 비폭력 저항-샬롬 통치의 현실성의 수행 :: 2010/07/11 09:30

폭력에 대한 예수의 비폭력 저항
-샬롬 통치의 현실성의 수행-

"하나님 나라가 다가왔다"는 우리 현실에 있어 새로운 샬롬의 통치의 실재에 대한 예수의 비전과 그에 대한 삶으로서의 철저한 헌신은 새로운 능동적인 비폭력과 사랑의 공동체를 탄생하였다. 그와 그의 추종자들이 함께 형성해 나간 이 비전은 당시 유대교의 신을 만나는 길로서 성전/회당에 의한 거룩한 제의적 공동체나 대안의 주류였던 시온니즘의 무력적 투쟁이라는 열심당 혹은 타락한 세상과의 거리를 두고 자신의 정결과 '빛의 자녀'로서의 영적인 수행을 추구한 제 3의 무리인 엣세네파와도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변혁적인 현실을 자신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모시는 것이되, 좀더 적극적으로 산상수훈의 공동체 이상을 따라 삶에서 폭력과 증오의 독을 뽑아낸 적극적인 저항과 변혁의 방식, 곧 자비의 현실화라는 방식으로 통해 "마음이 교만한 자를 흩으심, 권세자를 내치심, 보잘 것 없는 이의 높이심, 배고픈 자의 대접과 부요한 사람을 빈손으로 만드심'(누가복음의 마리아 찬가)과 같이 삶에서 실제적인 변화의 증상을 몰고 오는 새로운 현실성을 실천하는 것이었다. 예수 공동체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무기를 들고 대항을 하진 않았더라도 그가 몰고온 새로운 변혁적 현실로서 삶의 방식과 타자와의 관계방식은 이미 통치자에게 위협이 되었고 그는 현 체제의 전복자로서 이미 낙인이 찍혔고 결국은 다른 반란자들 사이에 정치적으로 형집행을 당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의 행위가 지금의 우리 대부분이 추종하고 있는 개인 영혼의 구원이라는 영적 수행의 모범이 아니라 가장 비폭력적인 그의 비전과 실천은 역설적으로 가장 정치적인 위협과 도전이 되었다는 사실은 그의 폭력에 대한 적극적인 저항-그러나 비폭력적인 방식으로-이 "예수 운동(Jesus movement)"의 핵심이었고 그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거룩한 길에 대한 혁명적인 통찰을 제공하는 것이다. 즉 영혼의 내면에서 신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화해와 비폭력의 생활실천-"회당과 성전이 성소가 아니라 삶의 방식이 성소(sanctuary)이다"-은 정치사회문화에 샬롬 통치의 증거(witness)자로서 거룩함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그의 샬롬 통치의 새 현실성이 얼마나 혁명적인 특성-무리가 놀라 새로운 권위였다고 고백함-을 지녔는지는 다음과 같은 사실로 명백해 진다.

샬롬 통치의 현실성에 대한 가장 극명한 상징적 실마리는 그의 식탁교제(table fellowship)이었다. 정결법을 어기는 그의 추방된 자들과의 식탁교제는 신적 비전의 철저성과 아버지이신 신의 사랑의 팔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보여준다. 이것은 모두를 한 테이블에로 환영하고, 폭력의 한 형태로서 어떤 종류의 배제에도 비판하는 세계관을 창조한 하나님의 포괄적인 사랑(inclusive love of God) 에 대한 예수의 비전과 헌신의 핵심을 보여준다. 그가 “죄인들”과 “세리들” 그리고 그 당시 사회가 배제한 이들과 함께 공동 식사를 함으로써 가름과 배제의 폭력에 대한 비폭력적인 저항을 실천하였다. 예수의 비전에는 우리가 모두 하나님의 모두를 포괄하시는 사랑에 의해 유지되는 한 몸의 모든 지체들이다. 이러한 포괄적 비전은 서로를 신을 한 아버지로 둔 형제자매로 만들고 따라서 '적대자'를 형제자매로 감싸고, 약자에게 힘을 부여하는 비폭력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그의 샬롬통치에 대한 비폭력적 실천은 타자와 주변자(the marginalized)에 대한 보편적 치유에 대한 그의 비전에 의해 심화된다. 생에 대한 이러한 접근은 타자의 기본적인 복지에 대한 희망을 포함한다. 예수는 항상 돌봄의 서클 바깥으로 내던진 이들을 발견하고 그들을 치유의 문을 통하여 공동체 속으로 되돌아오도록 초대하신다. 그는 공동체의 복지와 안녕은 각각 구성원의 복지와 안녕과 상호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니 오히려 가장 약한 자의 안녕과 복지에 의존되어 있다는 사실을 가르쳤다.

예수는 개인의 불행과 병이 폭력적 지배와 배제의 이념으로 작용한 불행과 병에 대한 인식 개인적 죄의 잘못이나 그 결과가 아님을 가르쳤다. 눈먼 소경은 자기 죄가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함"(요 9:3)이고 나사로의 죽음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 위함"(요11:40)이라는 주장을 통해 예수는 치유와 거룩한 힘을 세상의 거부 받고 접촉할 수 없는 이들에게 확대하였다. 그들은 징벌받은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 자비의 수여자라는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의 주체인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누구든 복지의 서클밖에 있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뿐만 아니라 진정한 치유와 회복은 단순히 육체적 몸의 회복만이 아니라 공동체로 불러들임으로서 상호 연결(interconnection)에 있다는 것고 이 상호연결이 거룩함의 알짬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주셨다. 상호연결이 있는 곳에 신이 있고, 상호연결이 거룩의 길임을 각인시켜 주신 것이다.

예수의 능동적 비폭력을 통한 샬롬의 통치의 또 다른 예는 그의 설교에서 나타난 하나님에 대한 그의 이해와 그분에 대한 접근의 길에 대한 이해에 있다. 십계명에 아직도 흐르는 저 위 하늘의 유일한 만군의 신이자 '우리 신앙 공동체'내에서 타자에게 폭력을 휘두르지 말라는 것을 더욱 철저화시켜 그는 신이 사랑이시고 무제한적인 타자에 대한 사랑의 실천을 강조하셨다. 이렇게 예수가 하나님 안에서 본 철저한 사랑의 종류는 인간의 삶이 보복하시는 하나님에 아첨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응답하는 것이며 그것은 성전의 공간을 넘어 또한 우리의 일상과 세상에서 전일(全一)적으로 하는 이 지상적 수행(mundane practice)로 초대하셨다. 그 핵심은 "양이 생명을 얻되 더욱 풍성히 얻는"(요 10:10) 길에 있다. 이것이 그 근본 뿌리에 있어서 폭력을 정화시키는 영성이다. 늑대와 여우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발톱을 날카롭게 하여 자기 방어와 힘의 논리로 세상을 사는 것이 아니라 양으로서 있으면서 모든 형태의 죽음과 죽임 그리고 폭력에 확고한 대항을 하며 생명을 위하고 이것이 충만하도록 삶을 투신하는 것이다.

그가 주장하는 예배의 날, 안식일은 따라서 인간 공동체를 섬기는 데 있어야 하며 사랑의 하나님과의 이러한 관계를 반영해야 한다. 치유가 필요한 자가 있을 때 치유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 응답하는 장소와 시간 그리고 그 방식에 대해 예수는 근본적인 질문을 제시한다. 그러한 특권적인 날, 성소와 같은 헌신하는 장소에서 어떤 종류의 활동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기쁘시게 하는 것인가? 이는 우리가 하나님은 어떤 분이라고 생각하는 가에 달려있다. 예수는 인간의 고통에 무관심한 예배의 폭력에 반대하는 입장에 선다. 그는 또한 예배드리기 위해 모인 이들의 공동체 삶의 질에 관심을 갖는다: 그들은 진실로 한 테이블을 공유하며 모든 이의 복지를 추구하는가? 예수에게는 사람들이 예배를 적절하게 볼 수 있기 전에 공동체내에서의 화해에 대한 긴급성이 먼저이며 이 화해가 진정으로 예배라는 사실을 주장한다. 예배하기 전에 이웃과의 갈등이 있다면 뒤로 돌아 즉시 가서 먼저 화해를 이루라는 것이다(마 5:23-24). 이것은 단순한 윤리적 권고가 아니다. 이는 하나님의 본성과 관련이 있다. 하나님의 포괄시키는 보편적 사랑-비와 햇빛을 누구에게나 허용-에 근거하여 그에 대한 유일한 응답의 길로서 사랑을 요구하는 것이다. 사랑이 사랑을 가져오고 평화가 평화를 가져온다. 증오와 배제가 거룩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첫 번째이자 궁극적인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인 것이다.

지금까지 진술을 요약하자면 예수는 식탁에 모두를 포함하는 것, 모두의 복지와 안녕을 회복하는 치유, 그리고 생명과 평화의 하나님에 대한 삶으로의 응답으로서 예배라는 새로운 제자직으로서 사랑의 공동체에 대한 비전을 열어주셨다. 이것은 자비, 겸손, 비-보복, 용서, 진실추구, 화해 그리고 자신의 적을 포함하여 타자에 대한 사랑에 헌신하는 생활양식을 의미한다. 이것의 단초는 기부, 금식, 기도, 신뢰, 그리고 우리의 가슴을 하나님의 지배에 두는 것으로부터 성장한다.

예수가 제시한 사랑의 공동체에 대한 비전을 갖는다는 것은 그 길이 쉽거나 성공적인 실재가 금방 나타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이미 예수는 우리가 극도로 적대적이고 폭력적인 세상에 놓여져 있으며 당신 자신이 그것의 희생 제물이 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의도는 완전한 유토피아 사회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사랑에 대한 꿈을 꾸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성공의 여부와 상관없이 신실하게 폭력의 현실 한 가운데에서 비폭력적인 세상을 건설하도록 초대한다.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의 사역에 사랑으로 응답하면서 우리는 성공하는가가 아니라 신실함으로 응답하며 그 과정에 있어서 필요하다면 자발적인 고난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게 비폭력적인 세상을 건설하는 중요 요소들 중에는 물리적인 폭력, 법적 소송 그리고 강요된 징집(마 5:39-42)을 대면함에 있어서 보복적인 활동을 종식하는 것이 포함된다. 예수는 전체를 희생하는 한 그룹이나 한 국가의 파괴적인 자기-이익의 폭력적 수행에 대해 능동적으로 저항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의 능동적인 비폭력에로의 부름은 그 응답이 폭력적인 행동과 맞대응하기라는 순환의 방식이 아니다. 그의 샬롬통치의 제자직에로의 부름은 누가 관계를 깨뜨리는 데 책임이 있든 지간에 화해를 시작하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이에는 이로, 눈에는 눈으로'라는 정당한 대의하에서 폭력에 대항한 보복과 징벌이 아닌 치유와 관계의 회복이라는 화해를 제시한다고 해서 타협적이고 순응적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예수가 비폭력적인 반면에 그는 동시에 확고하게 대결적이었고 그의 대결적인 행위는 위협적인 결과를-전복과 변혁을- 가져왔다. 그는 일반인이 그를 묘사하듯이 그의 단순한 선행이 악마적인 사람들의 악행들로부터 반대를 일으키게 된 타협적인 희생자는 결코 아니었다. 복음은 예수의 비폭력 수행이 결코 수동적이고 개인적인 것이 아님을 명확히 보여준다. 오히려 그로 하여금 그 시대의 어떤 실천에 대항하는 도전을 개시하도록 하는 그런 확고한 끈기가 있는 변화의 실천이었다. 그는 대중을 선동하고 정치가들을 불안하게 하였다.

몇 가지 점에서 예수는 그의 "혁명적 비폭력"(revolutionary nonviolence-존 하워드 요더의 용어)과 그가 살고 있던 죄 된 세상의 잔혹한 폭력 간에 다가오는 충돌을 명확히 보고 있었다. 이미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알고 있으면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그의 결정은 비폭력에 대한 그의 헌신의 깊이를 드러낸다. 왜냐하면 그의 반대자가 그를 거기서 기다리고 있음을 알고 있었고 공개적으로 그들이 그의 삶을 위협하고 있음을 말하였기 때문이다. 폭력의 아가미속으로 자발적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무모한 용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신과 그에 대한 무제약적 책임성으로서-성공여부와 관계없이- 자신을 내어주는 신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의 행위였다.

죽임과 죽음을 촉진시키고 죽임과 죽음의 구조를 지지하는 체제에 대해 기꺼이 자발적인 고난을 통한 죽음의 수용을 통해 죽임과 죽음에 대한 그들의 동맹을 단절시키는 신의 명령에 대해 신실한 응답의 표현인 것이다. 죽음에 대한 비폭력적인 수용에서 예수는 치유하고 해방하는 방식으로 행동하고, 정확하게는 그가 경험한 증오와 폭력의 살인적인 지배/통치를 역전시켰다. 예수는 저주받고, 주먹으로 맞고, 조롱받았다. 심지어 고뇌가운데서도 그는 그에 대해 사용된 똑같은 폭력에 의지하지 않았다. 그는 배신당하고, 친구에 의해 거부당했으며, 징벌 받았고, 옷을 벗기웠으며, 벌거숭이로 십자가에 못 박혔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비폭력적인 응답과 자발적인 고난은 새로운 각성과 신의 뜻에 대한 분명한 '눈에 비늘이 벗겨지는' 명료함이라는 부활을 가져온다. 신의 고난과 예수에서 나타난 신의 보편적 사랑의 철저성은 새로운 영혼의 불꽃을 점화시켰다. 그리스도의 영은 제자들에게 옮겨져서 그들은 이 화해와 평화 만들기를 지속적으로 하게 되었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에서 나타난 폭력에 대한 신적인 반응에 대한 그의 제자들의 이해는 이제 자신을 얽매였던 죽음과 두려움을 넘어서 사랑과 진리의 영의 부여받음과 선물로서 자기 생에 대한 자각이라는 신념공동체의 탄생과 더불어 새로운 사명으로서 평화를 만드는 인간 공동체에로의 부름에 대한 전적인 헌신이 일어나게 되었다.

201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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